해학 유머

반쪼가리 아들

정헌의 티스토리 2010. 9. 18. 19:46

반쪼가리 아들
 
옛날옛적에, 뒷집에는 정승이 살고 앞집에는 참 가난한 사람이 살았다.
앞집에 사는 내외는 늙도록 자식을 못 얻어서 뒷산 산신당에 백일기도를 해서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이게 반쪼가리다. 낳고 보니 반쪼가리일세.
눈도 하나 귀도 하나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 이런 반쪼가리 아들을 낳았다.
『아이고 답답 내 신세야, 내 나이 쉰이 넘어 산신당에 석 달 열흘 공을드려 아들하나 얻었더니 반쪼가리를 낳을 줄 누가 알았겠나?』
어머니가 이렇게 탄식을 하니,
『아, 이 사람아. 우리 복에 옹근 아들 바랐겠나? 반쪼가리 자식이라도 낳았으니 다행이지. 어 그놈 눈도 뚱글 입도 뚱글 시원하게도 생겼다』
아버지는 이렇게 위로를 한다.
반쪼가리나마나 늘그막에 본 아들이라 애지중지 키웠는데, 아 이 놈이 젖을 먹으나 안 먹으나 밥을 먹으나 안 먹으나 잘도 큰다.
그럭저럭 열일여덟 살 먹도록 키워 놓으니 하루는 반쪼가리가 하는 말이,
『늙으신 우리 어머니 우물에 가서 물 긷기 힘들지요? 제가 앞마당에 우물 하나 팔까요?』이런다.
『얘야, 네가 무슨 수로 마른 땅에 우물을 판단 말이냐?』
반쪼가리가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앞마당에 푹 꽂았다 뽑으니 거기서 맑은 물이 콸콸 나온다.
온 식구가 바가지로 퍼 쓰고도 남아서 이웃에서도 와서 함께 쓴다.
또 하루는,
『늙으신 우리 어머니 개울가에 가서 빨래하기 힘들지요? 제가 사립문 밖에 개울 하나 만들까요?』이런다.
『얘야, 네가 무슨 수로 없는 개울을 새로 만든단 말이냐?』
반쪼가리가 괭이를 들고 나가 사립문 밖에 주욱주욱 그으니 땅이 깊이 파이면서 개울물이 줄줄 흐른다.
온 마을 사람들이 빨래하고 목욕해도 사시사철 물이 안 마른다.
또 하루는,
『우리 어머니 저녁마다 나와 노시게 바위 하나 갖다 놓을까요?』하더니
어디 가서 참 신선이 앉아 놀 만한 넓은 바위를 번쩍 들고 와서 뒤안에 갖다 놓았다. 그러고는,
『우리 어머니 바위 위에 앉아 노시면 볕이 들어 더우실 텐데, 그늘 좋은 정자나무 하나 심을까요?』
하더니 어디 가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한 그루 쑥 뽑아 와서 바위 옆에 갖다 심었다.
그렇게 살다가 하루는 반쪼가리가 어머니한테 한다는 말이,
『어머니, 어머니. 날 뒷집 정승 댁 딸한테 장가보내 주세요』이런다.
『얘야, 그런 말 말아라. 네가 몸이 온전해도 우리같이 없는 집과 혼사 묻자 할 리가 없는데 하물며 너 같은 반쪼가리한테 딸을 보내겠느냐?』
『그래도 말이나 한 번 해 보세요』
그래서 어머니가 뒷집 정승 댁에 갔다.
『정승님, 정승님. 우리 집 반쪼가리란 놈이 이 댁 따님한테 장가들고 싶다 하니 어쩌면 좋습니까?』
『그게 무슨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말인가. 다시 그런 소리 했다가는 곤장을 맞을 일이지』
어머니가 하릴없이 돌아와서 안 된다 하더라고 그랬다.
반쪼가리는 그래도 싱글벙글 웃기만 한다.
그 날 저녁이 되니까 반쪼가리가,
『오늘밤에 내가 정승 댁에 가서 그집 딸을 업어 올랍니다. 어머니는 집에 계시다가 하늘에서 비단이불과 옷가지가 내려오거든 받아서 방에다 쟁여 놓으세요』한다.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방에 들어가 보니 벌써 환하게 신방을 꾸며 놨는데, 조금 있으니 하늘에서 비단이불, 비단베개, 원삼 족두리, 사모관대가 비 오듯 줄줄 내려온다.
어머니가 그걸 모두 받아서 신방에다 쟁여 놓았다.
이제 밤이 이슥하여 반쪼가리가 정승 집에 들어가는데, 가만가만 들어가서 잠자는 정승한테는 한 손에다 황을 바르고 한 손에다 불을 쥐여 놓고, 정승 마누라한테는 한 손에다 징 들리고 한 손에다 징 채를 매어 놓고, 정승 아들한테는 솥뚜껑을 씌워 놓고, 정승 며느리한테는 꽹과리를 들려 놓고, 머슴들은 모두 상투를 풀어 문고리에 매어 놓고, 몸종들은 옷고름을 풀어 부엌문에다 매어 놓고, 이제 정승 딸을 업어 온다.
『정승님, 정승님. 앞집 반쪼가리가 딸을 업어 갑니다!』
하고 고함을 치고 업고 오니, 깜짝 놀라 일어난 정승집 식구들이 야단법석을 떠는데 이런 난리가 없다.
정승은 이게 무슨 일이냐고 수염을 쓰다듬다가 수염에 불이 붙어 펄쩍펄쩍 뛰고, 정승 마누라는 아이구 큰일났다 하면서 징을 징징 두드리고, 정승 아들은 솥뚜껑을 덮어쓰고 하늘이 무너졌다고 허우적거리고, 정승 며느리는
어머님 무슨 일이요 하면서 꽹과리를 깽깽 치고, 머슴들은 내 상투 놓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몸종들은 내 옷 놔라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는 난리다.
반쪼가리는 정승 딸을 업고 집에 와서 신방을 차렸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반쪼가리가 왠말이냐. 허우대 멀쩡하고 풍채 좋은 옹근 사람이 되었다.
경사 났다고 온 동네 사람 다 모여 북치고 장구치고 큰 잔치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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