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아쿠아플라넷 여수. 유월드 루지. 선소유적지.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
■ 여수 아쿠아리룸. 유월드 루지. 선소.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
산청고등학교 3학년 학생 20여명과 함께 여수를 다녀왔다.
역사속의 인물 이순신의 발자취를 찾아 충과 효에 대해 알아보고, 그동안 공부에 찌들린 노고를 잠시 풀고자 함이다. 여수에 이순신 자취가 남은 곳으로는 진남관, 이순신 전선 신호연박물관, 고소대와 타루비, 이순신광장이 서로 인접해 있고, 선소유적지, 이충무공어머니 사시던 곳, 충민사와 돌산도의 둔전마을을 들 수 있겠다.
진남관은 단층건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건물이며 현 보수 중이다.선소유적과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을 대표로 둘러보았다.
▷가는 길
▷탐방코스(12.22)
여수 아쿠아리움 - 본부(돈까스 전문점)중식 - 더해피 루지 - 선소 -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 (2023.12.22)
▷탐방후에
▣ 아쿠아플라넷 여수(여수 아쿠아리움)
여수 아쿠아리움에 왔다.
입장권
수능시험을 치룬 학생들이어서 많이 할인된 금액으로 입장한다.
매표 후 1층 로비로 진입하면 아쿠아륨 입장 안내를 볼 수 있다.
엘리베이트나 에스컬레이트를 이용하여 2층으로 오르도록 안내하고 있다.
1층엔 특별전시실과 기념품 매장들이 있고, 2층은 아쿠아리움(1. 2. 3관), 3층 마린 라이프 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 및 3층의 아쿠아륨을 둘러보고 출구를 따라 내려오면 1층의 <피쉬 n 피쉬> 기념품 가게를 통해 나오게 된다.
여수 딸기모찌
부드럽고 맛있다.
1층 로비 천정이다.
3조각으로 구분됨을 강조하기 위해 한 컷 했다.
에쿠아리움을 쉽게 둘러보는 방법은 2층으로 오르면 1관, 2관, 3관이 구분되어 있다. 이 순서대로 둘러보고 3층의 마린 라이프관을 둘러보면 된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오면 특별전시관이 있으므로 이곳도 빼먹지 말 것.
2층으로 올라 제1관부터 차례로 둘러본다.
사진은 제 1관이다.
펭귄 먹이를 주는 언니.
Beluga / 흰고래. 백경(白鯨/고래 경)
툭 튀어나온 이마, 하얗고 매끈한 몸, 항상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이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희귀고래이다. 새소리 같은 미성을 가지고 있어 '바다의 카나리아'라 불리기도 한다, 목이 그의 직각으로 구부러질 만큼 유연하고, 입으로 공기를 불어 도너츠 모양의 버블링을 만드는 신기한 재주도 있다한다.
<안내문에서>
제2관으로 이동한다.
2관은 대충 이런 분위기이다.
2관을 둘러보고 나오면 3관 입구로 연결된다.
3관.
주로 수중의 경관을 볼 수 있다.
1.2.3관을 차례로 둘러보고, 마린라이프 입구가 보여 3층으로 오른다.
3관으로 가는 길에 바깥 조망이 트인다.
마린 라이프관을 둘러본다.
이곳은
대형 수족관?
뭐하는 곳이지?
1.2.3관과 3층 마린 라이프 관을 둘러보고 출구를 따라 내려오면 <피쉬 n피쉬> 기념품 가게를 통해 1층 로비로 나오게 된다.
12시경이나 이 이후 시간을 잘 맞추면 몇 가지 쇼를 볼 수 있다는데 오전에 방문하다보니 전시관 외 볼게 없다.
1층 색의 뮤지엄
이곳도 빼먹지 말 것.
"컬리 ! 이 얼마나 심오하고 신비로운 꿈의 언어란 말인가" / 풀 고갱
8월의 어느날, 선셋 - 윤새롬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때문에 아름답다. 이곳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그중에서도 하늘의 색채를 본 따 만든 공간이다. 디자인 어워드 2018 선정 파네라이 넥스트 제너레이션 디자이너, 윤새롬은 하늘의 색채를 아크릴이라는 물질로 구현해내는 작가다. 작가에게 하늘이란 닿을 수 없는 비물질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매 순간마다 변화하는 하늘의 색감은 시공간 속에서만 온전히 경험가능하다. 그리하여 작가는 아크릴에 수없이 다양한 염료를 덧입혀, 걸음을 뗄 때마다 다른 색으로 빛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어떤 색으로도 쉽게 명명될 수 없는 그의 작품은 빛의 스펙트럼이자, 색채의 경혐 그 자체이다,
가만히 가만히 아무렇지 않게 있다보니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들이 되었다.
안소현, 휴심의 숨 中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양한 삶의 요소들이 편안히 녹아든 것들이에요,
그런 그림과 함께 긍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 아트놈
슈퍼마켓
사진의 매력은 그 절묘함에 있다. 같은 피사체를 찍는다고 할지라도 광원과 시간대, 각도, 배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진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예너 토룬(터키 사진작가)은 그 절묘한 순간의 마법을 통해, 회색 도시를 무지갯빛의 거리로 재탄생시키는 아티스트다. 작가는 도심의 공업지대와 개발 지역을 누비며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건축물들을 발견하고, 그 기하학적 특성을 포착하여 선과 면, 색채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작품 속의 건축 요소들은 서로 다르지만 또 완벽하게 하나인 무지개처럼 조화롭고, 즐거움이 가득한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당신의 열정을 향하여 -핑크
핑크는 옅은 빨간색으로 분류되던 색으로, 오랜 기간 서양에서는 장미색(Rosa)으로 불리다가 17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짙은 분홍빛은 띠는 패랭이꽃(China Pink)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복숭아꽃과 색이 닮았다 하여 도화색이라 불렀고, 여성의 화장품을 통칭하던 '분홍'의 의미가 넓어져 그 이름을 가지게 됐다. 핑크는 이름만큼이나 상징성도 다채롭게 변화해왔다. 중세 시대 결혼과 연대를 상징하던 색채가 18세기에는 로코코 시대의 관능을 상징했고, 19세기에는 레드의 권위를 이어받기도 했다. 핑크가 여성성을 규정하는 색채로 인식된 것은 20세기 초 핑크색 여성복이 등장하면서부터이며, 오늘날에는 성 중립적인 핑크 트렌드가 등장하고 있다. 의미의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색 핑크- 이곳은 그 변천사를 형상화한 아치의 터널이다. 꿈꾸는 듯, 아주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분홍의 시간을 걸어보자.
언제나 시작에서 길을 잃는다. ㅡ신달자<미로>
모든 밤은 낮이다. 꿈이 당신을 비춰주면 ㅡW 세익스피어, <소네트 #43>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ㅡ 황인찬, <무화과 숲>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ㅡ W.B 예이츠 <하늘의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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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현지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 중 일부를 옮겨왔다.>
▣ 본부(本部)
본부라는 이름으로 내비에서 검색되나 모르겠다.
학생들이 돈까스가 먹고싶단다.
▣ 여수 더해피 루지
스트레스도 풀 겸 루지체험도 해 본다.
2회 탑승으로 맛만 본 셈인데 날씨가 추워 그런대로 만족했다.
▣ 선소 유적지
선소 유적지를 둘러본다.
시전동 684번지, 주차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처음 만나는 굴강은 배를 건조. 수리를 하거나 정박, 방파제 선착장 역할을 한다.
당시 선소는 6곳이 있었다 한다. 여수 본영 밑의 본영 선소(현 진남관 앞쪽 어디쯤이다.), 돌산의 방답진 선소, 순천부 선소(이곳 선소)로 3곳에서 거북선을 1척씩 건조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임진왜란 기간동안 대체로 2대 출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장간은 비교적 근년에 복원하였으나 규모가 너무 작아 눈길을 끌지 못한다.
세검정
1985년 복원했다.
집무를 보고 지휘소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한다.
세검정 앞 바닷가에 계선주가 있다. 멀리서 보면 경비를 서고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도 있어 의인전술이라기도 하고, 계선주. 즉 배를 매어두기 위한 기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선소 뒷편의 망마산은 적군의 동태를 살피던 곳이다. 당시 기마훈련장이 있어 기마병의 복장을 붉은 옷과 푸른 옷으로 바꿔입어가며 훈련을 하여 멀리 있는 왜군에게 수군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고도 한다.
망마산 정상에는 이순신이 심었다는 동백나무가 있나보다.
진남관은 내년까지 보수중인것 같다.
▣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
여수시 웅천동 1849번지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에 왔다. 한자로 줄여서 이충무공자당기거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내비에는 <이충무공어머니 사시던 곳>으로 검색하면 된다.
이충무공 자당기거지 뒷편에 조그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앞쪽에도 도로변에 주차장이 있다.)
따라서 뒷편에서 접근한다, 주변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쯤 전에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발령을 받아 여수로 부임한다.
1592년 4월 13일(음력)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고 이듬해 이순신의 휘하 장수인 정대수 장군의 집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부인을 비롯한 식솔들 포함)를 모시고 와 5년 동안 거주하신 곳이다.
먼저 거북선 모양의 비석을 만난다.
난중일기의 첫 머리가 어머니로 시작되니만큼 이순신은 효성스러웠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7년 동안(음력, 1592. 1. 1.~1598. 9.17일(노량에서 전사하기 2일 전)) 군중에서 쓴 일기이다. 원래 제목은 임진일기, 계사일기 등으로 그 해의 간지를 붙여 표기되어 있으나 조선 정조 19년 왕명으로 간행된 이충무공전서에서 처음으로 난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7년간의 전쟁 동안 출정한 날, 한양으로 압송되어 백의종군하기 직전의 약3달 등 일기를 쓰지못한 날도 있다
이충무공사모비 비문해설
1월11일 경인,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어머니를 뵈려고 배를 타고 바람을 따라 바로 고음천에 도착하였다. 남의길, 윤사행. 조카 분과 함께 갔다. 어머님께 배알하려 하니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큰 소리로 부르니 놀라 깨어 일어나셨다. 숨을 가쁘게 쉬시어 살아 계실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듯하니 감춰진 눈물이 흘러내릴 뿐이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데는 착오가 없으셨다. 적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여 오래 머물 수 가 없었다. 이날 저녁에 손수약의 아내가 죽었다는 부음을 들었다.
1월12일 신묘 맑음. 아침 식사 후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니, "잘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분부하여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심정으로 탄식하지 않으셨다. 선창에 돌아오니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아 바로 뒷방으로 들어갔다.
이충무공의 <난중일기> 친필을 비에 새겼음.
현 집 주변에 약간의 공터가 있다.
이 집은 윗채와 아랫채 2동으로 중건되어져 있고 윗채와 아랫채 사이에 우물, 아랫채 좌측 뒷편에 자당기거지 비석이 있다.
안채,
아랫채
안채와 아랫채 사이에 돌 절구와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이순신이 어머님 발을 씻겨드린 것에 비롯하여 족욕체험을 하는 곳이란다.
李忠武公母夫人草溪卞氏遺跡碑 (이충무공 모부인 초계변씨 유적비)
이충무공 자당 기거지
이충무공께서 1591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시어 좌수영 본영에 근무한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1592~1597?) 충청도 지방이 전란에 휩싸이자 모친을 웅천동 송천마을 정대수 장군댁으로 모셔와 전란 중에도 어머님께 아침 저녁으로 문안 드렸던 곳으로 이충무공의 효심이 깃든 충효의 장소이다,
현재의 집은 정대수장군 후손인 창원 정씨 문중에서 1930년 초에 개축한 건물(39평)이며 유물로는 선소병기(船所兵器)외 인수인계서인 반열책(反悅冊)과 자당께서 쓰셨던 가재도구 중 절구통과 밥솥이 보존되어 있다.
<현비 비문과 안내표시비>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을 둘러보고 귀가를 서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