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진천 농다리와 초평호, 보재 이상설선생 기념관, 종 박물관과 판화 미술관, 안나의 화원, 배티성지

정헌의 티스토리 2024. 6. 11. 11:47

■진천  농다리와 초평호, 보재 이상설선생 기념관, 종 박물관과 판화 미술관, 안나의 화원, 배티성지

 

현지 안내문을 보면 진천은 예로부터 물이 많고 평야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풍수해가 없어 농사가 잘 되는 고장인 연유로 인심이 후덕하여 생거진천이요, 용인은 산자수명하여 산세가 순후하며 사대부가의 유명한 산소가 많다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 불리었다.

또한 진천과 용인에 사는 동명이인 '추천석'에 관한 전설도 있다. 진천에 사는 추천석은 마음씨가 착한 농민이다. 어느날 저승사자가 용인의 추천석을 데려 간다는게 실수로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갔다가 다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장사를 지낸 이후이기 때문에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들이고 그 시체에 진천의 추천석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켰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다시 환생하여 용인에 살았다고 하여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 하였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오늘은 진천의 몇 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잡았다.

 

 

▷가는 길 

 

 

 

▷탐방코스

진천  농다리와 초평호 - 보재 이상설선생 기념관 - 종 박물관과 판화 미술관 - 안나의 화원 카페 - 배티성지

 

 

▷탐방후에

 

▣ 진천  농다리와 초평호

 

옅은 청색(미르 309 및 수변길 / 1시간) :농다리에서 출렁다리 미르 309까지 코스를 말한다.

짙은 청색(초롱길 / 1시간) : 초평저수지변으로 난 길이다. 하늘다리까지 인것 같다.

적색 (농암정 등산길 / 40분) 

주황색(황토색, 붉은바위 임도길 / 50분) : 자색 이암을 볼 수 있다.

분홍색(메타쉐콰이어 길/  25분)

표시외 미스숲길, 황토맨발숲길 생태탐방로 등등 적절히 이용하여 일정을 잡으면 되겠다.

 

 

 

 

 

 

주차장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오면 바로 우측에 주차장이 있고, 좌측으로 화장실과 광장을 지나 상부쪽 강변을 따라 몇 군데의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의 여지는 충분하다.

 

 

 

 

  

주변을 살펴 본다.

강 건너편에 인공폭포 인것 같다.

상부에 생거진천으로 표시되어 있다.

 

 

 

 

 

농다리 조금 상부쪽이다.

건너편 메타쉐쿼이아 길이 보이고 징검다리를 놓았다.

 

 

 

 

 

인공폭포, 메타쉐쿼이아길, 징검다리가 서로 인근이다.

 

 

 

 

 

농다리로 간다,

농다리 윗쪽에 부교를 놓아 통행 적체도 해소하고, 돌다리를 건너기 어려운 분에 대한 편의도 도모하고 있다.

 

 

 

 

 

오늘 농다리 오길 잘 했다.

마침 토요일이기도 해서 이곳을 찾는 분들이 엄청나다.

 

 

 

 

 

농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는 굼?굴티마을(구곡리)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독특한 모양의 돌다리이다. 문헌에 따르면 "고려 초 임 장군이 세웠으며, 붉은 돌로써 음양을 배치하여 28수에 따라 28칸으로 만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총 길이는 약 95m정도이며, 사력암질의 돌을 물고기 비늘 모양처럼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후  긴 상판석을 얹은 형태이다. 견고하여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는데, 이러한 형태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국토해양부에서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농다리를 지나는 하천과 더불어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되어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정받은 명소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하류

 

 

 

 

 

농다리를 건너와서 되돌아 본 모습이다.

 

 

 

 

 

부교에서 바라본 농다리

 

 

 

 

 

오늘은 등산보다는 여행지로, 미르 309 출렁다리, 하늘다리를 한바퀴 돌아오는 가벼운 코스를 걸을 것이다.

 

 

 

 

 

 고개로 오르는 중간 '장수 및 말 발자국' 안내표지판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임장군이 이곳 세금천에 다리를 놓기 위해 큰 바위를 메고 말을 탄 채 용고개(살고개)를 내려오고 있었다. 농다리에 그의 도착할 무렵 힘센 말이 이곳을 지날 때 장군이 메고 있던 바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그 힘에 의해 디딘 바위가 움푹 들어가 말의 발자국이 생겼다고 하며, 말이 움질일 수 없게 되자 임장군이 큰 바위를 든 채 말에서 뛰어 내리는 순간 그 무게에 의해 장군 발자국이 생겨났다고 한다.

<현지 안내문에서>

 

 

 

 

 

용고개로 오르는 길은 우측 임도도 있지만 데크 길을 따라 오른다.

쬐끔 가깝다.

 

 

 

 

 

용고개에 오르면 <입신양명 등용문 소나무 용>이 이 있다.

 

작가 : 김도형

작품설명  :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인 용고개에 대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듣고 머릿속에 작품명인 입신양명 등용문 소나무 용이 떠올랐다.  상상 속의 동물인 용과 현실에 있는 소나무를 합하여 소나무 용을 만들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분들이 상상속으로만 그리던 꿈과 희망이 현실에서도 소나무처럼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인 나도 동화되어 작업을 하였다. 주변에 행운의 상징인 네잎 클러버와 풍요의 상징인 물+고기를 같이 연출하여 의미를 더했다.

중요: 용이 쥐고 있는 여의주를 한번 슥~ 만지고 소원을 빌면 바라던 소원이 더 잘 이루어 집니다.

작품 제작연도 : 2024.

 

 

 

 

용고개 성황당

성황당에 대한 전설도 있다.

 

 

 

 

 

용고개를 넘으면 몇 갈래 갈림길이 있다.

좌측 넓은 길은 등산로.

 

 

 

 

 

현대모비스 야외 음악당으로 내려선다.

 

 

 

 

 

현대 모비스 음악당에서 호수변을 따라 좌.우측 어느 곳으로 방향을 잡아도 출렁다리, 하늘다리를 한바퀴 도는데는 난이도의 차이는 별로 없다,

그래도 미르 309 출렁다리쪽으로,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 조금 쉬울것 같다.

 

 

 

 

 

미르 카페가 있고,

쉼터를 만들었다.

출렁다리는 지척이다.

 

 

 

 

카페 더 미르

 

 

 

 

 

출렁다리를 건넌다.

 

 

 

 

 

미르 309,

 

교량형식 : 무주탑 현수교

길이 309m,  폭 1.6m. 길이에서 미르 309란 이름을 따왔나 보다. 성인 (70kg)  1,650명이 동시에 지나가도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단다.

내진 1등급

설계풍속 : 26m / s

지금까지 다녀본 출렁다리 중에서 가장 심하게 흔들리는 곳이다.

 

 

 

 

 

저쪽 좌측 잘록한 부분이 용고개

현대 모비스 음악당이 가늠된다,

 

 

 

 

 

우측

저곳 우측으로 돌아 가면 저수지의 둑이 있다.

 

 

 

 

 

건너와서 되돌아 본 출렁다리.

 

 

 

 

 

주변에서 잠시 쉬었다가,

 

 

 

 

 

하늘다리 쪽으로 간다,

 

 

 

 

 

저수지변으로 내려선다.

 

 

 

 

 

 

 

 

 

 

 

 

 

 

 

 

 

 

 

저만큼 하늘 다리

 

 

 

 

 

주변에 진천군 청소년 수련원이 있다.

 

 

 

 

 

하늘다리변의  쉼터로 왔다.

 

 

 

 

 

청춘상회

매점은 이곳 한 곳 있다.

이곳에서 쉬는 시간 포함 50분여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시간을 갖는다.

 

 

 

 

 

 

 

 

 

 

 

중식후, 하늘교를 건넌다.

 

 

 

 

 

 

 

저만큼 바위지대.

 

논선암(論仙巖)

하늘다리 우측면에 있는 바위로 두타산의 3신선(儒,佛,仙)이 내려와 담소를 나눈 바위로 우기에는 빗물이 모여 장관의 폭포를 이룬다.

논선암 위 비룡승천봉으로 내려온 3신선은 "죽정천이 흘러가는 주변 곳곳에 선배, 학배, 스승배, 장배라는 지명이 있어 훗날 이곳에 배가 뜨게 될 것이라"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댐을 막아 초평호로 불리우며 배들이 뜨게 되었으니 선선들의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하늘교를 건너면 좌측 호수변을 따르는 길은 초롱길

우측으로는 등산로가 있다.

 

 

 

 

 

하늘다리를 건너와서 건너다 본 청소년수련원쪽.

 

초평호는 진천 동방의 두타산을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담수량을 자랑하는 큰 호수이다. 초평호의 모양은 용이 한반도를 등에 업고 두타산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여의주를 찾아 비룡승천봉에서 승천하는 모습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형국을 하고 있다. 또한 저수지 내에는 미호팔경이라 불리는 명소가 곳곳에 숨어 있어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미호팔경

1.개창암(開窓巖), 2.봉용대(鳳龍臺) 3.영학암(迎鶴巖),  4.피서대(避暑臺)  5.논선암(論仙巖), 6.장자대(長者臺), 7.죽정암(竹亭巖), 8.낙조대(落照臺)

 

美湖八景 

美湖八景 開窓巖  / 미호팔경 유람이 시작되는 바위에 창처럼 뚫려 있는 창바위에 이르러

乘船問師 鳳龍臺  / 배를 타고 스승께 물으로 봉용대를 찾아갔네

三十三天 迎鶴巖  / 선인이 하늘에서 학을 타고 학암으로 영접을 나오고

龍城五彩 避暑臺  / 용이 다섯 빛깔로 완성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건만 피서대에 머무르네

儒佛兼修 論仙巖  / 유불선 세 신선이 서로 의논하였다던 선바위가 여기이며,

人生無常長者臺  /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삶이 덧없음을 보여주는 옛날 부자마을인 장자의 터만 남아있네

金烏圖書 竹亭巖 / 태양이 떠오르고 세상을 다스리는 기운이 서린 두타산 아래 조선 초 문신 최유경이 대나무 정자를 세웠다는 죽정터가 여기로고

樂山樂水 落照臺 / 인간 팔십 노익장으로 미호 산수경치 즐기고 석양이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낙조대에서 일장춘몽 꿈을 꿔보았네.

 

 

 

 

 

데크길을 따라 간다.

우연히 경상도 말투를 듣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온다. 이웃 생초가 고향이란다.

 

 

 

 

 

 

 

 

 

 

 

 

지나온 곳 하늘다리 0.7, 초평호 미르309 1.7km,

진행할 곳 현대모비스 야외음악당 0.4, 농다리 0.7km

뒷쪽 등산로 논암정 0.6km,

 

 

 

 

 

 

 

 

 

 

 

 

현대 모비스 야외음악당으로 왔다.

 

 

 

 

 

저만큼 지나온 미르309 출렁다리가 건너다 보인다.

 

 

 

 

 

용고개로 올라

 

 

 

 

 

여의주도 만져보고,

 

 

 

 

 

임도 수준의 넓은 길을 따라 농다리로 되돌아 간다.

 

 

 

 

 

 

 

 

 

 

 

 

 

 

 

 

 

 

 

하늘다리 입구의 청춘상회 주변에서 중식시간 약 50분여 포함 2시간 30분여 소요하여 초평호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곳 고속도로 굴다리(검게 네모로 표시된 곳) 를 지나들어오면 사진상 좌측에 주차장이 있고, 우측으로 2, 3, 4 주차장이 차례로 있다.

 

 

 

 

▣ 보재 이상설 기념관

 

카카오 내비가 제정신이 아니다.

내비가 안내하는 곳으로 진입하다 보니 마을길이 좁아 차량 진입이 곤란하다.

동료에게  티맵을  요청해도 비슷하다.

지도를 확대하여 목적지를 확인하고 적의 방향을 잡으니 그때야 주차장으로 안내한다. 목적지를 가까이 두고  조금 헤맸다.

진입하는 마을길이 대체로 좁은 편이어서 대형버스 진입은 곤란하겠다.

 

 

 

 

 

현대식과 한옥이 섞인 대형 건물이다.

 

 

 

 

 

이상설 선생이 누구지?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구한말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던 분이다.

 

 

 

 

 

이상설 선생의 후손은 단절되고

외손녀 李良遠, 李賢遠만 연결이 된단다.

 

 

 

 

 

먼저 이상설 기념관을 둘러본다,

 

 

 

 

 

이상설의 생애

1870년 음력 12월 7일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나다.

1876년  7세, 동부승지 이용우의 양자로 입양되어 서울로 가서 성장

1877년  8세, 학자 이제촌으로 부터 한학을 수학

1882년 13세, 두 아버지를 잃다.

1883년 14세, 친어머니 벽진 이씨 별세

1885년 16세, 신학문을 배우다. 참판 서공순의 장녀 달성서씨와 혼인, 서울근교 신흥사에서 이범베, 서만순, 여규형 등과 함께 기거하며 신학문 수학

1887년 18세, 건강 악화로 강원도 산중에서 휴양

1894년 25세, 조선왕조 마지막 과거에 급제하다.(갑오 문과에 병과로 급제)

1895냔 26세, 궁내부 비서감의 좌비서랑으로 임명

1896년 27세, 1월 초대 성균관 관장, 2월 한성사범학교  교관, 4월 탁지부 재무관 임명(6월 의원면직)

1899년 30세, <수리> 저술. 전통수학과 서양수학을 연결한 수학 교재.

1903년 34세, 2월 궁내부 특진관. 전선사 부제조 임명

1904년 35세,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를 하다. 1.21대한제국 국외 중립선언, 2.8 러일전쟁 발발, 8.22 제1차 한일협약 늑결 

1905년 36세, 국권을 잃고 자결을 시도하다.

1906년 37세, 서전서숙을 세우다(북간도 룽징)

1907년 38세, 헤이그 제2차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파견되다.

1908년 39세, 구미 외교를 지속하다. 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에서 활동

1909년 40세, 나라 밖에서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다.(연해주)

1910년 41세, 일제의 한국 병합 반대투쟁에 나서다.

1911년 41세, 독립전쟁을 준비하다 

1913년 44세, 독립군 사관학교 설립을 지원하다.

1914년 45세,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하다.

1915년 46세, 꺾이지 않는 독립운동을 펼치다.(러시아 정부의 탄압으로 중국 상하이로 옮겨 신한혁명당 조직)

1916년 47세, 하바로브스크에서 병이 깊어지다. 러시아 우수리스크로 옮겨 투병 생활, 부인과 아들 정희가 간호

1917년 48세, 바람의 땅 연해주에서 불꽃으로 지다. 3월 31일 니콜리스트에서 사망, 라즈돌나야(수이푼강) 강변에서 화장.

 

 

 

 

불꽃같은 삶, 불멸의 애국

 

토지란 것은 국가의 근본이고

토지가 없으면 이 국가도 없을 것이며,

재물이란 것은 백성의 근본이고

재물이 없으면 이 백성도 없을 것입니다.

 

<일제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한 반대 상소> 중에서.

 

 

 

 

 

독립을 위한 긴 여정

 

서전서숙 설립, 13도의군, 한성사범학교 교관, 신학문과 근대사상, 구미 외교활동, 성균관 관장, 애국동지 대표회의, 대한 협동회 결성,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정사 파견, 궐석재판, 사형선고............

 

 

 

 

 

신.구 학문을 유산으로 민족의 미래를 밝히다.

 

 

 

 

 

나라를 위한 죽음의 상소

 

"엎드려 아뢰옵니다. 신이 어제 새벽 정부에서 일본과 약관을 체결하여 마침 조인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르기를 '천하 대사를 다시 어찌할 수 없구나'라고 집으로 돌아와 다만 슬피 울고 힘써 자정하기를 도모하고자 상소 진정하여 면직을 바랐습니다.

이제 듣자오니 그 약관이 아직 황제의 인준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니 신의 마음에 위행이 가득하고 '국가를 위한  계책으로 아직 해볼 만한 길이 있겠구나'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대저 그 약관이란 인준을 해도 나라는 망하고 인준을 아니 해도 나라는 또한 망합니다.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할 바에야 차라리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뜻을 결정하고 단연코 거부하여 역대 조종이 폐하에게 맡기신 무거운 임무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중략)

 

 

 

 

 

 

 

 

 

 

 

 

 

 

 

 

 

 

 

해외언론이 주목한 특사단,

 

특사단을 이끌고 헤이그에 도착한 이상설은 곧장 헤이그 시내 용호텔 3층에 투숙하였다.

특사단은 호텔 문전에 당당히 태극기를 걸고 1907년6월27일자로 서명한 각국 대표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가지고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집요한 공작으로 각국 열강 대표단들은 한국 특사단의 활동을 외면하였다,

일본의 침략을 고발하고 한국 문제를 본 회의에서 다루어 줄 것을 요구하는 <공고사>를 각국 대표들에게 배포하고 평화회의 의장인 러시아 넬리도프 백작을 방문했으나 면담은 거절당하였으며 각국 대표들을 만나 지원을 호소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특사들의 활동에 호의적인 이는 영국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였다. 그는 <만국평화회의보>편집장으로 공고사 전문을 실어 대한제국의 불행한 처지를 알리는 한국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만국평화회의보에 실린 한국 특사 소개와 탄원서 내용은 <런던타임스>와 <뉴욕헤럴드>등 구미 각국 신문에 실렸다. 7월 9일 각국 신문기자단의 국제협회 모임에 특사들이 초청된 자리에서 이위종은 유창한 프랑스어로 한국의 호소라는 주제로 연설하였다. 이 연설을  통해 일본의 한국 침략을 폭로하고 한국민의 저항운동을 열거하여 한국의 입장을 동정하는 결의안을 이끌어냈다.

 

 

 

 

 

서숙관

 

 

 

 

 

이런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이상설 기념관 앞쪽에 숭열사(崇列祠)가 있다.

 

 

 

 

 

숭열사에는 이상설 선생의 존영을 모시고 있다.

 

 

 

 

 

이곳은 생가

 

 

 

 

 

토담집이다.

여러 유명인사의 생가를 복원한 곳 치고 이런 집은 보기 드물다.

 

 

 

 

 

방안

 

 

 

 

 

비각과 기념관

이 기념관은 신축된 기념관이 생김으로써 비어있다.

 

 

 

 

 

보재 이선생 상설 유허비

 

 

 

 

▣진천 종박물관

 

백곡저수지 아랫쪽에 위치한 진천 종박물관에 왔다.

 

 

 

 

 

소망의 종

 

 

 

 

 

종박물관에 입장할려니 이 양반 우리 일행을 유혹한다.

 

 

 

 

 

매직 저글링

원태윤 마술사

 

마술 / 저글링 / 1인 서커스 / 매직 저글링

 

 

 

 

 

 

 

 

 

 

 

 

 

 

 

 

 

 

 

 

 

 

 

 

 

 

종 박물관 입장료는 5,000원이지만 지역 상품권 5,000원으로 되돌려 준다.

경로는 무료인것으로 기억된다.

 

 

 

 

 

성덕대왕신종의 명문

 

종은 악기로 쓰이는 악종(樂鐘), 시와 때를 알리는 시종(時鍾), 위급함을 알리는 경종(驚鐘), 불가에서 종교적 의미로 쓰이는 범종(梵鐘)등 목적에 따라 종류를 나눌 수 있다.

 

 

 

 

 

운주지 소장 종, 선림원터 출토 종, 고묘지 소장 종, 청주 운천동 출토 종

앞쪽의 둥근 표시의 발판을 터치하면 각 종류의 종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몇 종소리를 들어본다.

전부 약간의 차이를 두고 소리가 다르다.

 

 

 

 

 

법고: 사찰에서 나무와 소가죽으로 만든 큰 북으로, 조석예불 등 의식에 사용하는 불구이다. 북통에 용을 표현한 것은 북소리가 멀리 퍼지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북을 받치는 법고좌(법고대)는 보통 사자, 해태, 거북 등 동물 형상으로 만든다. (박찬수 작)

 

상원사종 : 현존하는 우리나라 범종 중 가장 오래된 오대산 상원사종은 통일신라시대 725년에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웅장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목어 : 나무를 깍이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고 배 부분을 파내고 속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범음구이다.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깨어 있으므로 목어는 혼미한 정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가 있다.(목조각장 박찬수)

 

운판 : 구름 모양을 하고 있어 운판이라고 하며, 장판, 판종이라고도 불린다. <대청규>, <영산청규>에 의하면 운판은 원래 잠을 깨고 참선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자 사용한 것이라 하는데, 점차 용도가 확대되어 공양 시각을 알리거나 대중을 모을 때, 예불 때 쓰이게 되었다.

 

 

 

 

대종은 명부의 무리를 청한다,大鐘請冥府衆

목어는 물속의 무리를 청한다.木魚請水府衆

운판은 허공의 무리를 청한다.雲版請空界衆

법고는 세간의 무리를 청한다.法鼓請世間衆

 

운판(雲版) : 하늘의 소리로 날개를 펴다

운판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운판에는 보통 구름 위에 해와 달을 좌우에 배치하거나 전면을 구름 모양으로 채우며, 때로는 불. 보살이나, 범어로 '옴마니반메홈' 글자를 새겨놓기도 한다. 원래 부엌이나 공양하는 장소에 매달아 놓고 대중에게 공양 시간을 알리기 위한 기구로 씌였으나, 현재는 아침 저녁 예불 때 쓴다.

 

법고(法鼓) : 땅의 모든 생물을 제도하다.

법고는 북소리를 통하여 속세의 모든 축생(사람이 기르는 온갖 짐승)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법고의 몸통은 나무로 만들고, 두드려서 소리 내는 양면은 소의 가죽을 쓴다. 이때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양면에 부착하는데, 이는 음양이 잘 조화되어야 좋은 소리가 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목어(木魚) : 물, 잠들지 않는 수행의 길로 인도하다.

목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목어를 물고기 모양으로 취한 것은 물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가 졸지 말고 도를 닦으로는 뜻을 담고 있다. 목어는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형태였으나, 점차 용 머리에 물고기 몸을 취한 용두어신에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목어는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대자재(大自在)를 얻은 물고기(중생 또는 보살)를 상징한다.

 

범종(梵鍾)  : 만물을 깨워 세상을 밝히다.

범종을 치는 본뜻은 지옥의 중생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동시에, 불법의 장엄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데 있다. 아침에 33번을 치는 것은 삼십삼천에 울리라는 뜻이고, 저녁에 28번을 치는 것은 이십팔수에 들리라는 뜻이다. 범종은 본래 대중을 모으고 때를 알리기 위하여 쳤으나, 점차 사찰에서 조석예불이나 의식을 치를 때 쓴다.

 

 

 

 

풍경

풍탁의 일종으로 풍령이라고도 부른다. 수행자의 방일(放逸)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풍경에 물고기를 단 것은 물고기가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탁

염불을 하거나 대중이 모여 경전을 외울 때 운율과 박자를 맞추는 불구이다. 목탁은 목어의 변형으로, 물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음을 상징하여 불자도 졸음을 쫒고 불도를 닦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큰 목탁은 대중에게 알릴 때 포단 위에 놓고 치며, 작은 목탁은 불. 보상의 명호를 외우면서 기도할 때 손에 들고 친다.

 

요령

밀교의식에서부터 유래된 용구로, 풍령과 같은 일종의 소종이지만 작은 종신에 비하여 고음이 난다. 이를 흔들면서 염불하게 되므로 요령이라고 한다.

 

 

 

 

2층으로 간다.

 

 

 

 

 

 

 

 

 

 

 

 

 

 

 

 

 

이층엔 범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형으로 만들었다.

 

 

 

 

 

이곳엔 세계의 조그만 종(벨)들을 전시했다.

 

 

 

 

 

특별전시관으로 왔다.

 

 

 

 

 

 

 

 

 

 

 

이곳은 기념품 판매장

15,000원을 주고 종을 하나 구입했다.

 

 

 

 

 

종박물관 뒷편에는 체험장?

 

 

 

 

 

생거판화미술관으로 왔다.

 

 

 

 

 

전시동을 둘러본다.

 

 

 

 

 

 

 

 

 

 

 

 

 

 

 

 

 

 

 

 

 

 

 

 

 

 

 

 

 

 

 

 

 

 

 

 

 

 

 

 

 

 

 

 

 

 

 

 

 

 

 

 

 

 

 

 

 

 

 

 

 

 

 

 

 

 

 

 

 

 

 

 

 

 

 

 

 

 

 

 

 

판화미술관 외관

 

 

 

 

 

외부의 종각

 

 

 

 

 

▣안나의 화원 / 카페

 

이곳은 마을 입구 상송경로당이다.

주소는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 53-1.

 

카카오 내비에 <안나의 화원>으로 검색하니 좁은 골목을 따라 안나의 화원 뒷집으로 안내한다.

아무래도 카페같지가 않아 되돌아 나오니 입구에 작은 안내표지판이 있다. 

카카오지도에는 옳게  표시되어 있는데 왜 내비에서는 살짝 틀리게 안내해 헷갈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상송경로당 뒷편에 주차하면 된다. 주의하여 보면 안나의 화원 주차장 표시가 있다.

 

 

 

 

이 집이 안나의 화원 정문이다.

뚜렷하거나 눈에 훤이 띄는 간판이 아니라서 주의깊게 봐야한다.

 

 

 

 

 

 

 

 

 

 

 

 

대문간부터 이런 모습이다.

처음엔 새로 지은, 큼직한 한옥인 줄 알았다.

 

 

 

 

 

소박한 시골집이다.

 

 

 

 

 

안채인 셈이다.

 

 

 

 

 

문간채

 

 

 

 

 

안채로 들어선다.

주방이다.

 

 

 

 

 

 

 

 

 

 

 

 

고양이 한마리 천하태평이다.

 

 

 

 

 

주인장과의 환담을 나눈다,

8천인가 주고 구입하여 억이 넘는 수선비가 든 구입과정의 이야기, 평소 이런 소품을 모으는게  꿈이었던 이야기, 남편 이야기 등등

찻값은 1만원 선으로 모든 차가 수제라서 쬐끔 한다.

 

 

 

 

안채 뒤편에 담배건조장이 있다.

구입할 때는 있는지 조차 몰랐는데 담쟁이 덩쿨이 너무 커 걷어내는데 애를 먹었다 한다.

 

 

 

 

 

건조장은 이처럼 꾸몄고,

 

 

 

 

 

담배 건조를 위해 불을 때던 아궁이는 기도실로 바뀌었다.

 

 

 

 

 

문간채(사랑채) 옆 모습이다.

군용 탄피통, 헬멧, 콘티빵 상자 등등............

 

 

 

 

 

사랑방의 분위기는 이렇다.

 

 

 

 

 

별채? 아랫채?

 

 

 

 

 

어머! 국민학교 현판을 달고있다.

 

 

 

 

 

한쪽방은 탈의실로 사용하고 있다한다.

 

 

 

 

 

남편은 서울에 있고

멀리 진천에 내려와 이렇게 산다.

그동안 다녀간 사람들은 수십만명을 넘는다.

 

 

 

 

▣배티성지

 

베타성지

박물관 폐관시간이 5시까지라 하여 마음이 좀 급하게 왔다.

오후 5시를 막 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면 성지를 한바퀴 도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 걷는 순례길은 한바퀴 도는데 총 3.8km,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이다.

 

 

 

 

 

대성당(선종기념성당)

 

 

 

 

 

대성당 내부

 

 

 

 

 

 

 

 

 

 

 

 

배티쉼터 / 카페. 사무실, 성물방

 

 

 

 

 

대성당 측면

 

 

 

 

 

최양업신부님 박물관으로 간다.

 

 

 

 

 

문이 열려있다.

방문과 관련하여 전화를 하여서인지 일부러 열어 둔 듯 하다.

지금 시간은 오후 5시를 막 넘은 시간이다. 

 

 

 

 

 

촤양업 토마스 신부 연보

 

출생에서 사제 서품

1821.3.1 충청도 홍주 다래골 새터(현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출생

1836.2.6 우리나라 첫번째 신학생으로 선발

1837.6.7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안이 조선교구(조선대목구) 신학교 도착. 수학 시작

1839.9.12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 기해박해로 서울 포도청 옥에서 순교

1840.1.31 모친 이성례 마리아 서울 당고개에서 순교

1849.4.15 상해성당에서 사제 수품

1849.12.말 유학을 떠난지 13년만에 귀국

 

사제로서 선교활동

1850.초 다블뤼 신부에게 병자성사를 주고 페레올 주교와 상봉 후 전국 다섯 개 도 순방시작

1860.9 경신박해를 피해 경상도 죽림(현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공소에 은거했다가 사목 순방 재개

1861.6.15 베르뇌 주교에게 사목 보고차 상경하던 중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선종

 

.....................................

 

 

 

박물관은 1관부터 7관까지 순서대로 둘러보면 된다.

 

 

 

 

 

1관은 각종 고문 기구들을 중앙에 배치했다.

 

 

 

 

 

2관으로 들어가 7관으로 나오면서 차례로 둘러본다.

하나의 방에 여러 물건으로 꾸며진 박물관이 아니라 신부님의 일대기를 소박하게 꾸몄다.

 

 

 

 

 

최양업 신부의 사목 여정

 

최양업 신부는 사제품을 받고 조선으로 귀국하여 사목 활동을 한 땀의 증거자이다.

조선 땅을 처음 떠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오로시 사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그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조선의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하느님을 만나기 원하는 한 명의 신자라도 더 만나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모르는 불쌍한 어린양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더 전하기 위해 그는 걷고 또 걸었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그의 사목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12년간 9만리를 걸으면서 사목 활동을 한 최양업 신부, 그의 사목 열정은 '12년'이라는 기간과 '9만리'라는 거리로 단순 계산하기에 부족함이 있을 정도이다.

하느님 말씀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의 정신을 받들며, 그의 뒤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현지 게시된 자료에서>

 

 

 

 

 

서양 음악 수용의 선구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강의실?

 

 

 

 

 

최양업 신부의 신앙이 서려있는 서한

모두 영어? 불어?로 씌여있다.

 

 

 

 

 

최양업 신부의 저술

 

 

 

 

 

 

 

 

 

 

 

 

땀방울을 표현한 상징물입니다.

 

 

 

 

 

2층이다.

 

박해받는 고난을 작은 소품으로 만들었다.

 

"내 영혼은 이미 하느님께 맡긴 지 오래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어. 오직 죽을 뿐입니다. "

- 성 원귀임 마리아 -

 

 

 

 

 

"원컨대 지극히 강력하신 저 십자가의 능력이 

저에게 힘을 응결시켜 주시어,

제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게 하시기를 빕니다."

 

 

 

 

 

셀프 카페

 

 

 

 

 

최양업 신부 박물관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와 탄생기념성당쪽으로 올라간다.

 

 

 

 

 

수녀원을 지나 오르면,

 

 

 

 

 

Obedience  복종, 순종, 공손함

Delight    기쁨, 즐겁게 하다.

Forgiveness 용서

 

 

 

 

 

탄생기념성당

소성당

 

 

 

 

 

산상제대 방향으로 군데 군데 이런 조형물을 배치했다.

 

 

 

 

 

영성관(피정의 집)

가까이 산상제대, 제법 거리를 두고 6인 무명선교사의 묘 등이 있으나 둘러보지 않았다.

 

이로써 진천 여행은 마무리 되는 듯 하다가 중간 휴대폰 사건이 일어난다. 금산휴게소에 도착하니 일행 중 한 명이 베티성지에 휴대폰을 두고왔다 한다. 연결할 방법이 없어 안나의 화원 주인장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후 연락이 왔다. 휴대폰이 있다고.

오늘은 차타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카페에서 성지까지 제법 거리도 되는데 기꺼이 다녀와 주신 안나의 화원 주인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