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김명관고택, 무성서원, 송현섭공원, 피향정, 순창 애재원
■정읍 산외면 김명관고택, 칠보면 무성서원, 송현섭공원, 태인면 피향정, 순창 쌍치면 애재원
오전 일정으로 정읍 구절초지방정원과 오브제 민간정원겸카페를, 오후 일정으로 산외면 김명관 고택, 칠보면 무성서원, 태인의 피향정, 순창 쌍치면의 애재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태인의 피향정은 연꽃이 필 무렵 찾아야 좋을 곳이고, 쌍치의 애재원은 숙박객들만이 둘러 볼 수 있는지 출입금지 표시가 있어 살짝 귀퉁이만 엿보니 제대로 관리가 되지않는 느낌이다. 위 두 곳은 차후로 미루고 차라리 칠보면 주변을 둘러보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칠보면 주변 가볼만한 곳으로는 칠보 물테마유원지와 동진강 생태공원이 이웃해 있고, 물테마유원지 옆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송정, 영모당, 후송정(송정 밑 바위 위), 향토문화사료관, 한정, 필양사, 시산사, 송산사 등이 서로 밀집되어 있어 같이 둘러보고, 무성서원 - 무성리3층석탑, 불우헌 정극인 묘를 둘러보고 되돌아 오면 되겠다. 멀지않은 백암리 원백암마을의 남근석과 여근목, 입석 등도 지나치는 걸음에 둘러보면 될 듯,
태인읍에서는 피향정과 함벽루, 신잠비와 태인중앙교회(피향정 남쪽 소로 건너편에 있다), 태인향교등 볼 거리가 있다.
▷가는 길
▷탐방코스
(정읍 구절초 지방정원, 오브제 카페) - 산외면 김명관 고택 - 칠보면 무성서원 - 태인읍 피향정 - 순창 쌍치면 애재원 (2024. 10. 20.)
▷탐방후에
▣산내면 김명관 고택
산외면 김명관 고택에 왔다.
넓게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앞쪽 몇 노거수 들이 세월을 말해 주는 듯 싶다.
주차장에 주차 후 김명관 고택으로 간다.
우측에 길게 보이는 건물이 바깥 행랑채이며, 저만큼 솟을 대문으로 보이는 곳이 정문이다.
긴 행랑채에 이어져 솟을 대문이 있으나 규모가 소박하여 주 출입문의 위용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좌측 초가 건물은 호지집1,
안내문을 보니 이 집을 호지집(1)으로 표시되어 있다.
김명관 고택의 담밖에 있는 집으로 모두 8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두 채만 있다. 한 채는 입구의 이 건물이고, 다른 한채는 사당 뒷편의 담 밖에 있다.
호지집이란 용어가 생소하여 인터넷 다음에서 검색하니 노비들이 기거하던 집이라 한다. 호지(護持/보호할 호, 가질 지)란 수호하고 지켜낸다는 소리다. 어떤 분은 이 호지집을 단순히 노비들의 집이라기 보다는 김동수 가옥의 규모가 대단하고 부농이었기 때문에 재물을 지키기 위하여 사방에 집을 짓고 집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바깥 행랑채
솟을 대문을 중심으로 문간방, 마구간, 곳간,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간방은 청지기에 달린 하인이, 문간사랑방은 청지기가 기거하였다.
정읍 김명관 고택/국가민속유산
김명관고택은 조선 정조 8년(1784)년에 김명관이 지은 집으로, 조선 중기 상류층 주택의 면모을 잘 갖추고 있다. 이 집은 창하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동남쪽을 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바깥 행랑채을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아담하게 조화를 이룬 사랑채가 보인다. 또한 안쪽 행랑채의 대문을 들어서면 집의 구조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좌우 전면의 돌출된 부분에 부엌이 배치되어 있어 특이하다. 이 집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왔으며, 주변과 조화를 이룬 모습에서 균형미가 드러난다. 처마의 흐름이나 기중의 배열 등이 소박하면서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현지 안내문에서>
바깥행랑채의 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출입할 수 있다.
우측은 사랑채로 들어서는 곳으로 협문이 있고 좌측은 외양간 옆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양쪽다 안쪽 공간에서는 서로 통하여 있다.
우측 협문으로 들어선다.
협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남자 주인이 거주하여 찾아 온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때로는 집안일도 이곳에서 관장하였다.
소박하면서도 단아하게 균형을 이룬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현지 안내문에서>
사랑채는 방과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정갈하고 품위가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사랑채
사랑채 앞쪽에 바깥 행랑채가 있다. 긴 행랑채는 양쪽 끝에서 ㄱ자로 꺽여, 크게 보아서 ㄷ자 형태이다,
보이는 행랑채의 우측에 (사진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솟을 대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행랑채로 들어선다.
안행랑채는 살림을 돕는 여종들이 거거하던 방과 소년이 공부하던 책방, 안변소, 곡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깥사랑채와 안채를 구분 짓는 역할도 한다.
이 건물도 크게 보아 ㄷ자 형태로 안채를 바라보며 살짝 감싸는 느낌이다.
안채
안주인이 거거한 곳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양측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좌우에는 큰방과 작은방, 양측에 각각 부엌을 배치하였으며 큰방은 시어머니, 작은방은 며느리가 기거하였다.
ㄷ자 모양을 하고 있다.<현지 안내문에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에 방이 배치되어 있다.
우측 부엌
좌측 부엌
솥의 위치만 조금 다르지 그의 대칭이다.
안채 뒷모습이다.
시계방향으로 안채를 한바퀴 둘러보는 셈이다.
안채 뒤엔 제법 넓은 뜰, 밭이 있다.
안채와 사당의 뒷편이다.
협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엔 무슨집이지? 싶었는데 안내도에 호지집 2로 표시된 집이다.
호지집 1은 바깥행랑채를 들어서기 전에(밖애) 있는 초가집으로 현재 남아있는 호지집은 2곳 있다.
안채의 옆 측면이다.
좌측 부엌 2칸, 우측 방 2칸으로 이루어지고 방에서 측면으로 툇마루를 두었다.
사당으로 왔다.
사당
안행랑채의 꺾여진 분분의 측면인 셈이다
안행랑채 좌측 뒷편에 사랑채로 통하는 공간이 있다.
안행랑채의 창고
골동품은 아니지만 보기 힘든 항아리이다.
이곳 역시 안행랑채.
안채를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둘러본 셈이다.
안채을 바라 보았을때 좌측 옆에 위치한 안사랑채가 있다.
안사랑채는 안채의 여인들이 외부의 여인네와 만나서 담소를 즐기는 안채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안주인을 찾아오는 여인들이 하루 유숙하기도 하고, 출가한 딸이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에 오면 이곳에서 몸을 풀었다고 한다.
이 안사랑채는 입향조인 김명관이 본채를 지을때 그 자신과 목수들이 임시로 거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 한다.
안사랑채 옆 협문을 나오면 이렇게 연결된다,
좌측의 협문? 대문?으로 들어가 본다.
담으로 구분되어 있어 김명관 고택은 아닌 것 같다.
보이는 건물은 행랑채?
우측으로 살짝 보이는 건물이 안채이다.
안채 우측에 있는 이집은 안사랑채일까? 사랑채일까?
이 건물은 안채이다.
안채에서 마당을 바라보았을 때 우측의 곡간 역할을 했을 건물이다.
좌측의 건물이다.
조금전 들어온 협문에서 처음 보이는 건물을 안채에서 본 모습이다. 이 행랑채? 문간채?에도 대문이 있다. 아마 정문일 듯 싶다. 문간채에 방 한칸이 보인다.
김명관 고택으로 되돌아 왔다.
초가 건물은 외양관, 우측 기와건물은 바깥 행랑채의 한쪽 끝이다. 따라서 외양한 옆으로 들어가면 이 집의 출입문인 솟을 대문이 있다.
이곳은 김명관 고택의 우측(앞에서 바라 봤을 때) 건물이다.
부속건물은 보이지 않지만 이 건물 또한 대단하다.
그 옆집
풀꽃요리연구가 김현희 선생님과 함께하는 밥상머리체험 현수막이 붙어있다.
단촐하고 아담한 집이다.
▣무성서원
무성서원에 왔다.
입구에 승용차 10여대의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앞쪽 이정표상 불우헌 정극인 묘 방향으로 계속 직진하면 무성리 3층석탑을 지나 불우헌 묘가 있다. 산능성이에 있지 않아 쉽게 갔다올 수 있다.
이곳에서 거리는 900m,
홍살문을 지나.
피향정과 애재원을 생략하고 차라리 이 길을 걸을 걸 싶은 생각이 후에 들었다.
(무성리 3층석탑과 불우헌 정극인 묘 포함)
무성서원
서원은 강학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제향을 통해 지역의 선현을 배향하였으며, 사림의 정치,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정읍 무성서원은 신라말 이 고장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유화적 교화로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헤 세운 서원이다.
1615년 건립하여 태산서원이라 했는데 1696년(숙종22) 무성서원이라 사액되었다.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아니한 전라북도 내 유일한 서원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 조선 중종때 태인현감을 지낸 신잠, 상춘곡을 지은 불우헌 정극인 선생, 이 외에도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 이 지역에서 성리학을 보급하고 학문을 장려한 7분을 배향하고 있다.
특히, 이 고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 향약을 시행하였으며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에 항거하여 무성서원에서는 1906년 연암 최익현을 맹주로 호남 최초의 의병를 창의한 역사적 현장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교류와 유식의 공간인 현가루와 강학 공간인 명륜당, 강수재, 내삼문을 지나 제향공간인 태산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성서원은 서원의 입지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일반서원과는 달리 자연경관보다는 접근성 및 서원 참여자에 주목하였기 때문에 주거지 인근에 서원이 건립되어 성리학이 사림에 한정하지 않고 지역 공동체 전반으로 확대됨을 보여준다.
무성서원을 포함한 '한국의 서원'은 조선 후기 교육 및 사회적 활동에서 널리 보편화된 성리학의 증거라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밭아 지난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상 현지 안내문에서>
강당
정읍 무성서원 강당은 무성서원이 교육공간으로 성종6년(1475) 불우헌 정극인이 향약을 창설하면서 세운 향학당에서 유래한다. 광해군7년(1615)에 태산서원(무성서원의 옛 이름)을 창건할 당시에는 현재와는 규모와 형태가 다른 강당 역할을 하는 건물이 있었으나 1825년 큰불이 나서 사라져 버렸다. 그 후 1828년 태인 현감 서호순의 도움으로 다시 세워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우측 강수재로 나가는 협문이 있다.
강당엔 무성서원 편액을 달고있다.
강당 뒷편에 태산사가 있다.
태산사
태산사는 신라 말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던 최치원을 기리고자 새운 생사당(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성종 14년(1483)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으며, 현재 건물은 헌종 10년(1844)에 세운 것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은행나무
사면에서 바라본 무성서원
마당에서 무성서원을 바라봤을대 좌측 협문을나가면 비각 2곳이 있고, 우측 협문을 나가면 강수재가 있다,
신용희 불망비
1925년에 세운 것으로 비신에는 통정대부 전비서감승(前秘書監丞) 신용희 불망비라 새겨져 있으며, 규모는 높이 1.16m, 촉 0.45m, 두께 0.18m이다.
무성서원 내에는 현재 4개의 비각이 있다.
이곳에 위치해 있는 2곳과 강수재 서나측면에 2개가 있다.
보이는 곳엔 오른쪽 강당 재건에 힘쓴 현감 서호순 불망비각이다.
무성서원 내.외부에 모두 15기의 비석이 있는데 역대 현감들과 무성서원을 지켜낸 인물들에 대한 공적비가 대부분이다.
서호순 불망비
철종 즉위년에 세운 것으로 비면에 현감 서호순 불망비라 새겨져있으며, 규모는 높이 1.23m, 폭 0.36m, 두께 0.16m이다.
강수재에 왔다.
강수재는 유생들의 거주 공간이다. 원래 동쪽 기숙사인 강수재와 서쪽 기숙사인 흥학재가 있었으나 현재는 강수재만 남아있다. 강수재는 숙종22년(1695) 사액(임금이 서원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후에 고직사(서원을 관리하던 사람들의 살림집)를 기숙사로 변경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24년(1887)에 세워진 것으로 이후에 여러번 수리하였다.
강수재 앞쪽에 2곳의 비석이 있으나 안내문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오른쪽 비석은 병오창의기정비(丙午倡義紀蹟碑)
이 건물은 관리사?
무성서원을 둘러보고 잠시 불우헌 묘소까지 갔다올까 하다가 태인 피향정으로 향한다.
▣송현섭 공원
칠보면 소재지에 위치한 송현섭 공원
송인섭
정읍출신, 초대 전북명예도지사, 전 국회의원(3선)
효행으로 2005년 5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1997년 어머님 김종애 여사의 백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노래비를 세우고 평소에 어머님고 주고받은 말씀을 작사하시어 직접 노래를 불러 102세까지 무병장수하셨다.
외관상으로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차창으로 몇 컷 했다.
이곳은 강가의 정자
정자.
편액이 화소수가 낮아 판독이 않된다.
▣태인 피향정
태인 피향정에 왔다.
피향정 남쪽으로 도로 건너편에 신잠 기념비, 중앙교회 등이 있는데 찾아보지 않았다.
피향정 앞쪽에 연못이 있다.
연못 안에 섬이 있고, 작은 정자(루)가 있다.
돌로 된 다리를 건너 정자로 간다.
함벽루
정자에 올라 연못을 본다.
이곳엔 연꽃이 싱싱할 때 와야 제격이겠다.
온통 연밭이다.
▣ 베르데 카페
베르데 카페
주변 소나무 정원이 좋아보였으나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태인엔 피향정과 함벽루, 정읍 신잠비, 태인중앙교회 외관, 태산선비문화사료관(태인터미널 인근) 후송정 등 볼거리가 있는데 다음을 기약한다.
▣ 순창 쌍치 애재원
애재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대체로 좁다.
네비의 도움으로 도착한 곳엔 애재가 표시와 송태희, 송건희, 남궁남조, 송현창 문패?를 달았다,
애재원은 전라북도 민간정원 제5호로 지정된 곳으로 외부인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있다.
일부러 정원을 둘러보러 이곳까지 왔는데, 사람사는 곳이라 방해되지 않는다면 쫓아내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들어가 본다.
저곳은 소동물과 조류를 키우는 곳일 것이라 짐작해 본다.
이곳도 뭐 단정한 느낌은 들지않는다.
...............
송선생댁
애재가 조금 아랫쪽에 어런 건물이 있고 문은 닫혀있다.
앞쪽에 승용차 두어대 주차공간이 있고, 카페인가 싶어 문을 밀어보니 닫혀 있는 것으로 보아 카페는 아닌 것 같다.
혹시 민박시설인가?
위 건물 아랫쪽이다.
스테이 소꿉 손님외 출입금지
이런 잔디밭도 조성중인데...............
스테이 소꿉손님 외는 일부러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 찾을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귀가를 서두른다.
남원 인월에 종종 들러는 국밥집 마감 전에 도착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