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안동 도산서원

정헌의 티스토리 2024. 11. 27. 21:53

■안동 도산서원

 

서원은 조선 사회에 성리학(중국 송나라 때에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한 파)이 정착하면서 사림(조선 시대 성리학적 가치를 중시하던 지식인을 일컫는 말)세력이 지방에 설립한 사립 고등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인재를 교육하는 강당이 있는 강학 공간, 존경하는 스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 있는 제향공간, 그리고 유생들이 시를 짓고 토론도 벌이며 휴식하고 교류하는 유식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인격을 갈고닦는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조선 시대 서원 중에서 소수서원(안동),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의 9개 서원이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이들은 한국 서원의 총체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한국의 서원'은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이 되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 걸쳐 건립된 이들 서원은 조선 시대 성리학이 교육과 사회 활동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또 이 서원은  조선 시대 성리학이 교육과 사회 활동에 널리 펴져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또 이서원들 은 전국 각지의 지식인들이 제향을 올리고 강학을 하여 성리학 교육 체계를 만들고 그것에 꼭 맞는 건물을 지어, 성리학 가치가 담긴 독특한 역사 전통은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유식공간(遊息空間): 자연속에서 수양하고 휴식하는 일를 성리학을 배우는 과정의 하나로 보고, 자연과 더불어 수양할 수 있도록 서원 내외부에 조성한 공간

<현지 안내문에서>

 

▷탐방코스

도산서원 -  와룡기사식당 중식 - (선성현 문화단지와 선성수상길 - 안동국제컨벤션센터 세계유교문화박물관)

 

▷탐방후에

 

안동시에서 도산면으로 진입하면 도산서원으로 진입하는 길이 분천리에서 지름길로 진입하는 소로와 도산면 소재지 방향으로 우회하여 진입하는 넓은(편도 1차선) 도로가 있다.

분천리에서 지름길은 입구에 대형차량 진입금지 표시가 있다. 노폭이 중앙선 없는 1차선으로 대형 차량이 못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교행시에는 서행을 해야 하기에 도산면소재지 쪽으로 우회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도산면 소재지 방향으로 우회하는 길은 편도 1차선으로 시간상으로 5분 정도쯤 차이가 날 것 같다.

대형버스 주차장은 사진상 좌측에 별도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관광안내소 앞에서 도산서원 안내해설사님을 만난다.

예사 도산서원 내에서 이곳 저곳을 같이 다니며 설명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곳 안내도 앞에서 시작하고 마무리 한다.

우리 일행이 131명이나 되어 너무 많아서인가?

동행을 하면서 이곳 저곳 설명을 해 주면 더 실감이 날 것이고 시간도 절약될 것인데, 이곳에서 전체 해설을 듣고 난 후에 각자 도산서원을 둘러보라고 하니 일정에 맞춘 서원내에서의 시간이 촉박하다.

 

 

 

 

 

입장료 어른 2,000원, 단체(30인 이상) 1,500원, 어린이, 청소년, 제복(군,경,소방) 근무자 1,000원, 단체 800원

65세 이상, 6세 이하, 국가유공자, 장애인 등은 무료이다.

 

 

 

 

 

도산서원으로 간다.

 

 

 

 

 

뭐지?

 

 

 

 

 

입구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200~300m쯤 될 듯하다.

도산서당과 서원내 각 건물들 간의 거리가 여타 서원이나 향교보다 밀집되어 있는듯 하여 아늑한 느낌이 든다. 

 

 

 

 

 

도산서원 앞쪽은 안동댐이다.

안동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이곳을 흐르게 됨을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호수가 되었다.

 

<천광운영대>

도산서원 양편 신기슭에는 절벽이 있는데, 퇴계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을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하던 곳이다. 퇴계는 서쪽 절벽을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 동쪽 절벽을 천연대(天淵臺)라고 불렀다.

천광운영대는 주자가 지은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에 나오는 '하늘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감도는구나 / 天光雲影共排徊, 물리칠배, 노닐 회)'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지었다. 천연대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 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네(鷹飛戾天 漁躍于淵, 응비여천 어약우연/ 어그러질 려(여))라는 구절에서 하늘 천과 연못 연자를 따서 지었다. 두 이름에는  주변의 절경과 퇴계가 말년에 이곳에서 자연의 이치를 벗 삼하 학문을 성취하려던 뜻을 담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근데 현지에서 육안으로 볼 때 크게 절벽의 느낌이 드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안동댐

 

 

 

 

 

 

 

 

 

 

 

시사단(試士壇)

시사단은 조선시대 특별 과거시험을 보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과 비각이 있는 곳이다. 시사(試士)는 선비에게 시험을 보인다는 뜻이다,

1792년 정조는 평소 존경하던 퇴계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열고 영남 지역의 인재를 선발하도록 하였다. 시험 응시자만 7천여명에 이르렀고 문과급제 2명 등을 선발하였다. 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1796년 이곳에 단을 마련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다.

안동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이는 강변의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비각이 세워져 있었다. 1975년  안동댐 건설 이후 원래 있던 자리에 10m높이로 축대를 쌓아 올린 뒤 옛 건물과 비석을 원형대로 옮겨 지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저 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도산서원에서 보면 동쪽 절벽이므로 천연대 방향이고, 선생이 산책하던 곳에 산책로를 정비해였나보다.

산책로가 어느만큼 개설돠어 있는지 궁금하다.

 

 

 

 

 

왕버들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냇가에서 흔히 자란다, 도산서원 앞마당에 있는 왕버들은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을 지을 시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동댐 조성시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도산서원 전면부 마당을 5m가까이 성토하는 과정에서 지하고 대부분이 땅속에 묻혔다. 퇴계선생은 <도산잡영>에서 시냇가의 왕버들을 바라보며 풍류 넘치는 버드나무와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하였다.

 

 

 

 

 

澗柳(간유/산골물 간)  시내버들  / 이황

 

간변수유(澗邊垂柳)    시냇가 드리운 버들  / 드리울 수

탁탁풍도(濯濯風度)    깨끗하다 그 풍도  / 씻을 탁, 법도 도

도소상호(陶邵賞好)    도연명, 소강절이 알아주고 좋아 했으니 / 상줄 상

기아하모(起我遐慕)    나더러 아득히 사모하는 마음 일으키네  / 멀 하

 

무궁조화춘(無窮造化春)  무궁환 조화의 봄

자시풍류수(自是風流樹)  바로 풍류있는 나무로세

천재양절옹(千載兩節翁)  도연명과 소강절 천고의 두 늙은이

장음기흥우(長吟幾興寓)  길게 읊으며 몇 번이나 흥겨워했던고?   / 몇 기, 부칠우,

 

 

 

 

 

초겨울인데 단풍이 곱다.

 

 

 

 

 

 

 

 

 

 

 

매화나무인 것 같은데....

도산서원을 앞예서 바라보았을때 좌측편 뜰에 있다.

 

 

 

 

금송은 어디있고 안내표지석만 있나? 못 보았나?

 

이 금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12월 8일 도산서원 성역화사업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도산서당 앞에 심었다가 1972년 고사한 나무를 대체하여 이듬해 새로 심었으며 그 후 크게 성장하여 주변과 조화롭지 못해 2018년 11월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

 

 

 

 

 

도산서당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문은 양쪽 두 곳 있으며, 일반적으로 우측에 있는 이 문으로 들어가  사진상 보이진 않지만 좌측의 문으로 나온다.

 

 

 

 

 

위 문을 들어서면 사진상 우측의 토담으로 둘러쌓인 도산서당 구역과 마주 보이는 도산서원 구역으로 나뉨을 볼 수 있다.

저곳 사람이 지나가는 곳 좌측에 보이는 문이 하고직사로의 출입문인가 보다.

 

 

 

 

 

매화나무

 

도산서당 앞쪽에 있다. 금송표지석 뒷쪽에도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으며 대충 짐작으로 어느것이 더 고목인지는 구별하기 어렵다.

일부 인터넷 상에 떠도는 자료중 퇴계선생이 관기 매향에게서 아별의 선물로 받은 매화분을 선생 사후 이곳에 옮겨심었다고 하는데  위 두 매화나무는 아닌것 같다.

앞쪽 팻말에는 메화나무 /장미과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패며, 연한 혹생이 드는 흰빛으로 향기가 강하다고만 적혀있다.

 

 

 

 

 

위매화나무 옆에 몽천이 있다.

 

몽천은 산골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퇴계가 역경(易經)의 몽괘(蒙卦)에서 의미를 취해 직접 이름을 지었는데,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가는 스승의 도리를 뜻한다. 한 방울 샘물이 수많은 어려움 끝에 바다에 이르듯이, 제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서 뜻을 이루라는 의미를 담았다. 퇴계는 이 샘물을 도산서당의 터를 잡은 이유의 하나로 꼽았다. 이 지역의 자연 배경이 학문을 수양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데 적합하다고 여겼다.

*몽괘 : 주역의 64괘 중 4번째에 있는 괘의 이름, 몽(蒙)은 무성하게 자란 풀에 의하여 덮혀 있는 모습을 뜻하는 글자인데, 여기에서 '어둡다(眛/어두울 매)'라는 의미가 파생되었으며, 사물이 태어나 아직 어릴 때는 몽매하기 때문에 '어리다(稚/어릴 치)'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 괘는 몽매한 어린아이를 교육하여 계몽하는 방도에 관하여 설명하는 괘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근데 현재는 샘물이 없고 말라있다.

 

 

 

 

도산서당으로 들어간다.

남쪽으로 난 이곳엔 문이 없다.

 

 

 

 

도산서당

도산서당은 퇴계가 만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1560년에 완성되었으며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원래 부엌, 온돌방, 마루로 되어 있었는데, 제자들이 늘어나면서 부엌과 마루를 확장하였으며 확장한 마루 위에는 덧지붕을 달았다.

퇴계가 머물던 방의 이름은 완락재(玩樂齋/희롱할 완)인데 '완상하며 즐긴다. 貦樂'의 의미이다. 제자를 가르쳤던 마루는 암서헌으로 바위에 깃들어(巖棲/깃들일 서)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뜻을 포함한다. 두 이름 모두 주자의 글에서 따온 것으로, 학문의 즐거움과 겸손한 마음을 담았다.

<현지 안내문에서>

 

 

 

 

 

암서헌(巖栖軒 / 길들일 서)

巖棲軒과는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서 자는 둘 다( 栖 , 棲) '깃들일 서' 자이다.

 

 

 

 

 

정우당(淨友塘/ 못 당)

도산서당에 있는 작은 연못 속에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 글자 뜻대로 한다면 '깨끗한 벗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지만 더렵혀지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므로, 퇴계는 절의를 지키는 청결한 군자의 모습으로 상정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하고직사 문인가?

 

 

 

 

 

이 건물은?
도산서당 측면? 아닌것 같은데.....

위 두사진에 대해서는 어디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도산서원으로 간다.

 

 

 

 

 

동광명실(東光明室)

광명실은 책을 보관하고 열람하던 곳으로, 이름에 포함된 의미는 '수많은 책들이 밝고 환하게 비추어 준다.' 이다. 습기로 책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2층 누각으로 높게 지었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가 직접 썼다.

<현지 안내문에서>

광명실은 동,서 양쪽에 있다.

 

 

 

 

 

서원으로 들어서는 문에는 진도문(進道門) 현판이 걸려있다.

 

 

 

 

 

도산서원

앞쪽에 동.서재가, 뒷쪽에 진사청과 사당(상덕사)이, 우측에 장판각이 있다.

 

 

 

 

 

동재 박약재(博約齋)

서재는 홍의재(弘毅齋)

동재에 거처하는 원생이 서재의 원생보다 선배가 된다.

박약 : 학문을 넓게 배워 예로 향하라(博學於文 約之以禮)

홍의(弘毅/굳셀 의):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은면 안 될 것이니, 그 책임은 무겁고 도학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도산서원 전교당(陶山書院 典敎堂) /보물

 

전교당은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1574년에 세웠다. 강당은 유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중심건물이다.

전교당은 대청과 서쪽에 한존재(閑存齋)라는 온돌방이 있다. 도산서원의 원장이 머물렀던 한존재의 문을 들어 올리면 대청까지 트인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 정면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1575년 선조가 내려주었으며, 글씨는 한석봉이 썼다.

전교당 서쪽 계단 옆에는 높게 만든 둘기둥 위에 반원 모양의 돌을 받쳐놓았는데, 이것은 밤에 행사할 때 불을 맑히던 정료대이다. 전교당 동쪽 뒤편 높은 곳에 사당안 상덕사(尙德祠)가 있다.

<현지안내문에서>

 

 

 

 

 

 

 

 

 

 

 

 

 

 

 

 

 

전교당 동쪽 벽면이다.

 

 

 

 

 

전교당 우측 뒷편에 사당인 상덕사가 있다.

상덕사로 들러가는 사당문으로 내삼문이라고도 불린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삼문 형식으로 상덕사와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계단 때문에 문 안쪽과 높낮이의 차이가 생겨 전면 기둥을 1단 낮은 자리에 세웠다. 이러한 이유로 기단 하래까지 기동이 내려오는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역태극 문양에 단청을 하였다.

 

 

 

 

 

전교당 우측(동쪽편)에 장판각 가는 문

 

 

 

 

 

장판각은 도산서원에서 만든 책의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퇴계의 문집, 언행록, 글씨 등을 새긴 목판을 보관하였다. 목판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헤 2003년 목판 전부를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옮겼다.

 

 

 

 

 

이곳은 전교당 좌측 뒷편으로 진사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진사청 주고(서쪽 건물)

진사청은 사당인 상덕사에서 향사를 받들 때 제주와 제수(제사음식)를 보관하던 곳이다.

동쪽 건물은 제수를 보관하고 서쪽 건물은 제주를 보관하던 주고(주고)라고 현지 안내문에 설명되어 있으나 도산서원 홈페이지에 보면 이곳은 제기고로 제기를 보관하는 곳이다. 문이 달린 마루칸과 전돌이 깔려있는 봉당은 제수와 제기를 옮기기 현하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사청 동쪽 건물 주청은 온돌방 1칸, 마루 1칸으로 구성되었다.

온돌방은 제수를 준비하는 유사가 하룻밤을 지내는 공간이며, 마루는 제상을 마련하여 보관하는 장소이다. 

 

 

 

 

 

천사청에서 상덕사로 이어지는 샛문이다.

 

 

 

 

 

상덕사(尙德祠)

도산서원의 廟宇(묘우)로서 퇴계선생과 그의 제자인 월천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보물 제211호이다. 일반적으로 사당 건물은 간결하고 근엄한 맞배지붕으로 구성하는데 도산서원의 사당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어 특징적이다. 전면 빈칸은 퇴칸으로 개방하고 퇴칸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나머지 1칸 반은 전면에만 문을 달았다. 전면을 제외한 삼면은 벽으로 처리하고 내부는 하나의 통칸으로 하였다. 월천은 선생 곁에서 오로지 학문에 전념하였고 선생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는 스승을 대신하여 서원에서 제자들을 훈육하였으며 특히 청렴 강직함이 돋보인 수재이다. 주향위는 정면 중앙에서 남향으로  '退陶李先生'을 모시고 종향위는 동쪽벽에서 서향으로 '月川趙公'을 모시고 있다.

 

 

 

 

상덕사 내삼문

 

 

 

 

 

전사청과 담 너머로 숭도사를 너머다보고 전교당으로 되돌아 왔다.

망료대 키가 제법 높다.

 

 

 

 

 

 

전교당 서쪽편에 고직사가 있다.

 

 

 

 

 

고직사(庫直舍)

고직사는 도산서원을 관리하고 식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전교당과 도산서당 왼쪽에 각각 상고직사와 하고직사가 있다.

상고직사는 도산서원 영역의 관리인들이 거처하던 곳이고, 하고직사는 도산서당의 관리인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상고직사는 뒤편의 진사청과 앞쪽의 하고직사와 바로 연결되어 관리인들이 편하게 사용하도록 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고직사 부속 건물

 

 

 

 

 

앞쪽,

저곳으로 하고직사와 연결되나 보다.

 

 

 

 

 

이곳으로 통로가 있으나 출입은 금하고 있다.

 

 

 

 

 

고직사를 둘러보고 되돌아 나간다.

사진상 보이는 문이 전교당으로 연결된다.

 

 

 

 

 

도산서원 구역을 둘러보고 되돌아 나간다.

 

 

 

 

 

좌측의 건물이 서광명실 뒷편이다. 상고직사 앞쪽으로 샛문이 있다.

 

 

 

 

 

위 샛문을 나서면 아랫쪽으로 옥연당 등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 저곳 빠짐없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보이는 좌측은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서광명실, 하고직사, 농운제사 순인데 문이 어디로 있는지 시간에 쫒겨 빼먹었다.

 

 

 

 

단풍이 곱다.

 

 

 

 

 

서쪽 광명실로 연결되는 문

 

 

 

 

 

옥진각 쪽으로 내려간다.

 

 

 

 

 

옥진각

도산서원은 1969년부터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역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된 옥진각은 퇴계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1970년에 완공되었다.

'옥진'은 '集大成金聲玉振 / 떨칠 진'을 줄인말로 '집대성했다는 것은 금소리에 옥소리를 떨친 것이가'라는 의미이다. 옥진각에는 퇴계 선생이 생전에 쓰던 베개와 자리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 매화 벼루, 옥서진, 서궤 등의 문방구에서는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을 기울였던 선생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외에도 청려장, 매화등, 투호 등과 함께 혼천의도 전시되어 있다.

 

 

 

 

옥진각을 둘러본다.

 

 

 

 

 

목판

 

 

 

 

 

성학십도

 

 

 

 

 

제1 태극도(太極圖)

태극도: 태극도. 도설 주돈이 

태극에서 음양.오행. 만물에 이르기까지 천도(天道)가 구체화된 변화의 과정과 양상을 하나의 도식으로 설명하였다.

 

제2 서명도(西銘圖)

서명도 : 임은 정복심,  서명 횡거 장재

하늘과 땅 사이에는 사람의 존재가 갖는 의미와 실천, 즉 인간의 존재성과 인륜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제3 소학도

소학도: 퇴계 이황, 소학제사 : 회암 주희

소학제사(小學題辭)는 주희가 어린이들의 도덕교육을 위해 편찬하였다. 오륜을 밝힌다는 의미인 명륜(明倫)을 중심으로 입교(入校)와 경신(敬身)의 실천구조를 설명하였다.

 

제4 대학도(大壑圖)

대학도 : 양촌 권근,  대학경 : 진(秦).한(漢) 시대 작품, 작자 미상

대학에서 제시된 3강령(명명덕. 신민. 지어지선)과 8조목(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을 지행(知行)으로 구분하고 그 실천단계를 도식으로 나타내어그 봉부철차와 성공의 효과를 요약하였다.

 

제5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백록동규도 : 퇴계 이황,  백록동규후서 : 회암 주희

주의의 백록동규를 도설로 정리하였다. 오륜 아래 열거한 박학(博學)에서 명변(明辯)까지를 궁리(窮理)의 요(要)라고 요약하였고, 독행(篤行)은 수신(修身). 처사(處事). 접물(接物)의 요(要)라고 정리하였다.

 

제6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심통성정도 : 상도 - 임은 정복심,  중,하도-퇴계 이황, 심통성정도설 : 임은 정복심

상.중.하 3개의 도설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의 본체와 작용으로서 본성과 감정의 구조,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이라는 본성의 구분, 사단과  칠정이라는 감정의 이원적발용(二元的發用) 등을 도식으로 나타냈다.

 

제7 인설도(仁說圖)

인설도 : 회암 주희,  인설 : 회암 주희

주희의 저작인 <인설(人說)>을 요약한 도설이다. 인을 주제로 하여 마음의 본질과 그 공능(功能)을 설명하여 모든 성정(性情)을 인으로 포괄하고 있다.

 

제8 심학도(心學圖)

심학도. 도설 : 임은 정복심

상단의 심권(心圈) 주변에는 마음의 양식과 경(敬)을 이루기 위한 마음공부 방법을 요약하였으며, 하단의 경권(敬圈) 주변에는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人欲)을 막기 위한 방법을 요약하였다.

 

제9 경재잠도(敬齋箴圖 /바늘 잠 )

경제잠도 : 노재 왕백,  경재잠 : 회암 주희

심학도에서 설명한 경을 완성하기 위한 공부 방법으로 마음을 중앙에 두고 동정(動靜). 표리(表裏) 등의 일상생활에서 상황에 따라 실행하여 경성(敬省)해야 함을 나타낸다.

 

제10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

숙흥야매잠도 : 퇴계 이황, 숙흥야매잠 : 남당 진백

경을 중앙에 두고 진백의 <숙흥야매잠> 본문을 일곱 단락으로 구분하고, 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 절목을 새벽부터 취침 전까지 하루간의 시간 진행을 따라 정리하였다.

 

 

 

 

 

 

 

 

 

 

수신십훈(修身十訓)

몸가짐에 대한 퇴계 선생의 가르침

입지(立志) 성현을 목표로 하고 털끝만큼도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요

경신(敬身) 바른 모습을 지키고 잠깐 동안이라도 방종한 태도를 보이지 마십시오

치심(治心)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유지하고 흐릿하고 어지럽게 놓아두지 마십시오

독서(讀書) 책을 읽으면서 뜻을 깨달아야 하며 말과 문자에만 매달리지 마십시오

발언(發言) 말을 정확하고 간결하게 하며, 자제하고 이치에 맞게 함으로써 자신과 남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제향(制行) 행동을 반드시 바르고 곧게 해야 하고 도리를 잘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마십시오

거가(居家)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 자매와 우애를 다하며 윤리를 지킴으로써 서로의 은혜와 사랑을 굳게 하십시오

접인(接人) 만나는 사람들을 성실과 신으로 대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들을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처사(處事) 엄무에 임해서는 옳고 그름을 철저히 분석하고 쉽게 분노하지 말며 욕심을 줄이십시오

응거(應擧) 시험에 관해서는 득실을 따지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평안하게 치른 다음 천명을 기다리십시오

 

 

 

 

삼경사석의

퇴계 선생이 유학의 핵심 경전인 주역, 서경, 시경의 삼경과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에 대한 선현의 주석과 함께 제자들과 연구, 강론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안석과 완석

 

 

 

 

 

퇴계선생과 혼천의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기기로 혼의(渾儀). 혼상(渾象).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한다. 도산서원에는 퇴계 선생이 교육용으로 제작한 혼천의와 선기옥형의 일부가 남아있는데, 이 유물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천문기기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그동안 도산서원 옥진각에 전시되어 있던 원본 유물은 영구보존을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되어 있으며, 전시 된 자료는 안동 MBC에서 '혼천의에 담긴 하늘 꿈'이라는 다큐맨터리 제작 시에 복제한 것을 2018년 도산서원에 기증한 것이다.

 

 

 

 

 

 

 

 

 

 

 

짧은 시간 둘러본 도산서원이었다.

 

 

 

 

◐안동 와룡기사식당

 

안동과 도산서원의 중간쯤 와룡면 도로상에 위치한 와룡기사식당이다.

 

 

 

 

 

이곳에서 중식을 먹었다.

많은 단체손님을 받을 수 있는 식당이 흔치않다. 맛도 보통이상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