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안동 선성현 문화단지와 선성 수상길, 세계유교문화박물관

정헌의 티스토리 2024. 11. 27. 23:18

■안동 선성현 문화단지와 선성 수상길, 세계유교문화박물관

 

오전 일정으로 도산서원을 둘러보고 와룡기사식당에서 중식 후 예끼마을에 있는 선성현 문화재단과 선성 수상길, 안동 컨벤션센터 내에 있는 세계유교문화 박물관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예끼마을 인근 한국 국학진흥원내에 유교문화박물관이 있어 비슷한 이름으로 인해 헷갈릴 수 있다. <세계>라는 단어를 넣고, 빼고의 차이가 있음을 기억해 둠이 좋다. 전화로 두 기관의 차이를 세계유교문화원 측에 물어보니 물론 내용이야 다르지만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두 군데 다 탐방하면 좋겠지만 어느 한 곳을 택할까 궁리하다 세계유교문화박물관을 점찍었다.

 

▷탐방코스

안동 선성현 문화재단과  선성 수상길 - 세계유교문화박물관 / (2024. 11. 26.)

 

 

▷탐방후에

 

◐선성현 문화단지

 

예끼마을에 왔다.

아주 넓지는 않지만 주차에 부족함은 없을 정도로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주차장 정비공사로 주변이 조금 어수선하다.

 

 

 

 

 

오천유적지(군자마을)에서 출발이 아니더라도 이곳 예끼마을을 기점으로 하여 원점회귀 탐방도 가능하겠다.

 

 

 

 

 

주변 관광명소 및 문화재

안내도를 보면 가까이 서원과 고택 등이 있으므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같이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도산서원 5.1km, 

이육사문학관 11.3km,

산림과학 박물관 2.5km,

호반자연휴양림 2.4km,

국학진흥원 0.7km, 

농암종택 16.5km

 

 

 

 

 

선성현 문화단지 입구이다.

아랫쪽으로는 선성 수상길 들머리이기도 하다.

 

 

 

 

먼저 선성현문화단지를 둘러보고 선성 수상길을 걸을 것이다. 

 

 

 

 

 

주차장에서 선성현 문화단지까지는 100m 남짓 평지길이다.

 

 

 

 

 

규모가 넓지 않아 안내도를 한번 보고,

 

 

 

 

 

가까운 입구로 들어선다.

 

 

 

 

 

장관청(將官廳)

장관청은 임진왜란 이후 지방 군대로 편성된 속오군을 지휘하는 군관장들이 근무하던 집무소이다.

<이하 건물에 대한 설명은 현지 안내문의 내용이다>

 

 

 

 

군관청(軍官廳)

군관청은 지방 군현의 청사 건물 중 하나로, 군사를 담당하는 장교들이 집무소이다.

장관청(將官廳)과 함께 군방을 담당하는 중추기관이다.

 

 

 

 

 

관장(官倉)

관창은 조선시대 정부 관서와 지방  관아에 속하여 무기류, 잡물 등을 보관하던 창고를 일컫는다.

 

 

 

 

 

 

 

 

 

 

 

선성현 아문

 

 

 

 

 

인리청

인리청은 관아에서 일하는 아전들이 근무하는 건물이다.

지방의 관아에서 일하던 하급관리를 말하는데, 지방 관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향리라고 하였다.

건물에는 도산면 서부리 출장소로 사용했던 건물 내에 있는 현판으로 장부당(掌簿堂)이라는 편판이 걸려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중문을 통과하면,

 

 

 

 

 

동헌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다.

관찰사, 병사, 수사(水使), 수령 들의 정청으로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여기서 행하여졌다.

동헌은 그 지방 최고 실력자인 수령의 지위에 맞게 향청, 작청보다 규모가 크고 공들여 치장 하였으며, 객사, 향교와 함께 지방 관아의 핵심 건물로 중요한 의의를 가졌다.

건물 전면에 걸려있는 근민당(近民堂)현판은 도산면 서부리 출장소로 사용했던 건물에 걸려 있는 현판을 확대 복제하여 설치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객사로 간다.

 

 

 

 

 

선성현 객사

조선시대 각 고을에 설치된 관청 청사 건물로, 객관이라고도 한다. 객사는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지방관(수령)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왕궁을 향해 망궐례를 행하였다. 또한 왕이 지방 군현에 보낸 관리나 암행어사, 감사들, 외국 사신 숙소로 이용되었다.

이 건물은 안동댐 건설로 이건된 선성현객사(경북 유현문화제 제29호)를 재현한 것으로, 조선시대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객사앞 삼문을 나서면,

 

 

 

 

 

정지가 있다.

 

정지는 관아에서 소요되는 음식을 만들던 곳이다.

권율장군의 부친이신 권철(1503~1578)이 영의정에 오른 후 정치의 유익을 위해 퇴계 이황(1501~1570)에게 자문을 받으려 예안현을 방문하자 이황은 권철에게 고을에서 먹는 음식(마른 명태무침, 마른 가지무침, 장 그리고 밥과 국)을 대접하였다. 다음날에 다시 뵈었을 때도 같은 음식을 대접하였다고 한다.

밥도 쌀밥이 아닌 보리 70%에 쌀 30%를 섞었다고 한다.  권청은 이황의 검소한 식사 대접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보고, 한양으로 돌아간 뒤에도 3첩 반상으로만 식사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지 안내문에서>

 

 

 

 

이곳으로 진행하면 예안향교와 선성산성에 갈 수 있다.

이곳 도산면에 몇 군데 가볼만한 곳이 있으나 단체로 방문하였기에 이곳 저곳 둘러볼 수 없어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든다.

 

 

 

 

 

쌍벽루는 이곳에서 본다.

 

 

 

 

 

선성역사관은 반지하에 있다.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

 

 

 

 

 

 

 

 

 

 

 

지명의 역사

이 지역은 안동시 예안면과 도산면, 녹전면 일대에 있었던 옛 고을이다.

삼국시대에는 매곡현, 선곡현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에는 선성군으로 승격하였다가 길주(안동의 옛 지명)의 속현이 되기도 하였다.

1413년(태종13)에 예안현으로 개칭되었거 1895년에 지방관제 개편으로 예안군이 되었다. 1914년 예안, 도산, 녹전면으로 분리되어 안동에 편입되었다.

이후 선성의 중심지이던 예안면은 안동댐의 건설로 수몰되면서 인근으로 이주하였고,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동시에 편입되었다.

 

 

 

 

 

조선새대 지방 행정과 관직

1. 임금

2.경관직 -의정부 - 육조(행정실무담당) - 이(행안부). 호(기획재정부). 예(교육.외교 문화체육관광부). 병(국방부).형(법무부.법원). 공조(산업통산자원부,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승정원 (뫙의 비서기관)

                의금부(나라의 큰 죄만 다스리는 사법기관)

                사헌부(관리의 비행 관찰)

                사간원(국왕에게 간쟁)

                홍문환(왕의 정치적 자문)

                한성부(수도 한양의 행정 담당)

                춘추관(역사편찬 기관)

                성균관(최고 국립교육기관)

3.외관직 - 8도(관찰사 파견) - 부

                                               목

                                               군

                                               현 - 이. 호. 예. 병. 형. 공방

 

 

 

 

 

 

 

 

 

 

안동 도산권의 종택

후조당 : 안동시 와룡면군자리길 41

안동 진성이씨 온혜파 종택 : 도산면 온해중마길 46-5

농암종택 : 도산면 가송길 1262-133

성성재종택 : 안동시 예안면 부포로 668

퇴계 종택 : 도산면 백운로 368

삼대종택 : 안동시 녹전면 삼대길 31-50

 

 

 

 

 

 

 

 

 

 

 

 

 

 

 

 

석빙고

 

 

 



석빙고의 과학적 원리

일반적으로 석빙고 내부는 길이 12m, 폭 5m, 높이 5m 내외이며, 빙실 공간의 절반은 지하에 있는 구조이다. 석빙고의 외형은 무덤처럼 보이나 내부는 돌로 만들어졌으며 계단으로 내부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석빙고는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천장을 아치 모양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움푹 들어간 구조로 되어 있어 내부의 더운 공기를 쉽게 밖으로 빼낼수 있게 하였다. 이런 구조로 차가운 공기는 내려가고, 더운 공기는 위로 뜨기 때문에 실내는 0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빗물을 막기 위해 석회암과 진흙으로 방수층을 만들었고, 얼음과 벽, 천장 틈 사이에는 왕겨, 밀짚, 톱밥 등의 단열재를 채워 넣어 외부 열기를 차단했다.

 

 

 

 

 

대표 교육기관

 

안동향교 : 안동시 향교길 65

예안향교 : 도산면 퇴계로 2020-13

월천서당 : 도산시 월천길 437-7, 월천 조목(1524~1606)

역동서원 : 안동시 경동로 1375.  우탁의 학문과 덕행 추모

도산서원 :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퇴계 이황

분강서원 : 도산면 송길  162-133,  이현보의 학문과 덕행 추모

 

 

 

 

 

선성8경

제1경 선성효욱(宣城曉旭/햇살치밀 욱) 선성에 떠오르는 아침해

제2경 영지수운(靈芝宿雲/잘숙(수)) 영지산에 머무는 구름

제3경 낙동상범(洛東商帆) 낙동강에 떠있는 장삿배

제4경 원포장연(遠浦長烟/연기 연) 먼 포구에 길게 뻗은 안개

제5경 비암창주(鼻巖蒼籒) 비암에 새겨진 이끼낀 글씨

제6경 성시귀인(城市歸人) 저잣거리에모인 많은 사람들

제7경 삼봉고월(三峯高月) 산봉우리에 높게 떠 있는 달

제8경 름산자취(凜山積翠/찰 름, 물총새 취) 운남산에 쌓인 해질무렵 멀리 보이는 푸르고 흐릿한 기운

 

예안14곡(선성지에 청량산 입구부터 안동과 경계지점인 어탄까지 굽이치는 물길로 안동댐 수몰로 지금은 볼 수 없는 곳도 있다.

1곡  박석천, 2곡 경암당, 3곡 고산, 4곡 월명담, 5곡 벽력암, 6곡 백운지, 7곡 단사협, 8곡 천사, 9곡 월란대, 10곡 분양, 11곡 대라, 12곡 비암, 13곡 오천, 14곡 어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올곧게 지켜온 선비정신의 고장으로 안동은 다만 한 지역을 이르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경상북도를 크게 대구문화권과 안동문화권으로 나눈다면 안동은 바로 경북 북부의 중심인 것이다.

이러한 안동문화권의 형성에는 낙동강이 젖줄이되어 키운 들과  그 들을 둘러싼 아늑한 산들의 자연 형세가 바탕이 됬고, 그기에 그 땅을 일구고 정신을 키워온 사람들의 힘이 기둥이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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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 수상길

 

선성수상길은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마을(시점) ~ 호반자연휴양림(종점) 으로 길이 약 1km이다.

서부리마을이 예끼마을이지 싶다.

 

 

 

 

 

 

 

 

 

 

 

 

 

 

 

 

 

 

 

 

 

 

 

 

 

 

 

 

 

 

 

 

 

 

 

저곳 수상길이 끝나는 곳에 호반자연휴양림이 있나 보다.

중간에서 되돌아 간다.

 

 

 

◐안동국제컴벤션센터 / 세계유교문화박물관

 

안동국제컨벤션센타

이곳 2층 일부에 세계유교문화박물관이 있고, 지하층에 특별전시관이 있다.

 

 

 

 

 

앞쪽에 문화테마파크가 있는데 오늘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곳 문화테마파크도 상당히 공들여 시설을 만든 것 같다.

 

 

 

 

 

오늘 버스4대에 131명이 참석했다.

 

 

 

 

 

학예사님이 마중을 나왔다.

1층 로비

 

 

 

 

 

2층으로 에스컬레이트를 이용하여 오른다.

물론 엘리베이트도 있다.

 

 

 

 

 

2층에 세계유교문화박물관이 있다.

 

 

 

 

 

관람료는 성인 개인 3,000원  청소년.군경.어린이  2,000원이며 단체는 위 금액에서 500원 할인된다.

경로 등은 무료관람이다.

 

 

 

 

 

박물관 앞쪽에 넓은 휴식공간이 있다.

카페는 아니다.

 

 

 

 

 

박물관 입구

 

 

 

 

아침에 도를 깨달았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朝聞道 夕死可矣(조문도 석사가의)

 

 

 

 

 

주제영상관

외벽의 영상이 화려하다.

 

 

 

 

 

관람방향을 따르면 된다.,

 

 

 

 

 

공자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는 것이 인이다.

진실로 인에 뜻을 둔다면 악한 것은 없느니라

오직 어진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맹자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대단하지 않다.

자기 마음을 다하는 자는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된다, 자기의 본성을 알게 된다는 것은 곧 하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순자

군주는 정치의 근본이다. 하늘과 땅이 없다면 어떻게 생존할 것이며, 조상이 없다면 어디서 나올 것이며, 군주가 없다면 어떻게 다스려지겠는가.  세 가지 중에 어느 하나가 없어도 편안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베트남 유교

 

 

 

 

 

 

 

 

 

 

 

다르게 읽혀지는 경전

경1장의 격물 致知在格物(치지재격물)

주희의 격물설 :주희는 그 사물이 내재한 사물이 이치를 궁구하거나 성현의 진리가 담긴 경전을 독서하여 사물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왕수인의 격물설 : 왕수인은 치지격물이 내 마음의 양지를 각각의 사물에 실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박세당의 격물설 : 박세당은 "구하서 이르는 것을 致(이를 치)라 하고, 사물의 법칙(格)은 법칙(則)이며 올바름(正)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주희와 달리 실천을 강조하였다.

정약용의 격물설 : 정약용은 格은 헤아리는 것이며,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지극히 아는 것이 치지(致知)"라고 하였다.

 

 

 

 

 

영상관 외벽

 

 

 

 

 

아래 서랍을 열어 관찰해 보세요.

 

 

 

 

 

 

 

 

 

 

 

조선의 대표적인 천거 제도인 현량과(賢良科)는 조광조의 건의로 시행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학문과 덕행, 재주와 행적이 뛰어난 사람들을 추천받아 시험을 거쳐 관료로 선발한 제도였습니다.

 

 

 

 

 

가(家)에서 국가(國家)로

유교는 끊임 없는 수양과 실천을 통해 인간의 착한 본성을 밝히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대동사회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인에서 시작해 집안과 국가, 온 세상을 수양과 실천의 범위로 제시한 유교는 공자, 맹자 등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완성된 이래  근대 동아시아의 핵심 사상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먼저 내 집의 노인을 존경하고 나서 남의 집 노인을 존경하며, 내 집 아이를 사랑하고 나서 남의 집 아이를 사랑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움질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시경에 보면 '아내에게 모범되어 형제에게 이르고 그 덕화로 집안과 나라를 다스리네' 하였는데 이 마음을 들어다가 저기에 놓는 것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은혜를 미루어 넓혀 가면 천하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넓혀 가지 못하면 처자식도 보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은혜를 잘 미루어 넓혀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은혜가 짐승에게는 미쳐갔으면서 그 공덕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 입니까?

<맹자 양혜왕 상>

 

 

 

 

 

 

 

 

 

 

 

 

 

 

 

 

동아시아 4개국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유교지식인  - (사)

학식과 인품을 겸비하고 유교적 이상 실현을 추구하는 사람 혹은 그 신분계층이다.

관직에 나아가서는 나라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정사에 힘쓰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을 때는 학문과 인격도야에 힘쓰는 사람을 의미한다.

 

 

 

 

만권서적 혜아광명(萬卷書籍 惠我光明)

수많은 책이 나에게 광명을 준다.

 

 

 

 

 

 

 

 

 

 

 

 

 

 

 

 

 

 

 

 

 

 

 

유교는 백성의 삶 속에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가야금

 

 

 

 

 

세계유교문화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유교문화박물관은 2층에 있고

특별 전시관은 지하 1층에 있어 지하로 간다.

 

 

 

 

안동국제컨벤션센타은 거대한 건물이라 다른 구역도 있을 것 같다.

지혜의 보물창고 유-누리 도서관

 

 

 

 

 

지하 1층으로 내려왔다.

 

 

 

 

 

김종흥님의 장승과 솟대전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마을을 지켜주다.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며 등장한 마을의 수호신 장승.

 

 

 

 

 

장승이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 또는 절의 입구에 나무나 돌을 이용하여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말한다,

장승의 명칭은 신라와 고려시대에서 장생, 장생표주, 장생표, 황장생이라 부른 기록이 있으며,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에는 장생, 장승, 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16세기 이후부터 장승이라 사람들에게 통용되어 불려왔다.

장승의 기원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신앙의 대상물에서 유래되었다,

하늘과 땅, 산 등 자연을 숭배하고, 돌과 나무 등 무생물에 정신을 부여해 신봉하는 것이 한국의 토속신앙이 되었고, 특히 사람 모양의 형상물인 장승은 마을이나 절에 있고, 동네 고개등지 등에 세웠던 수호신으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나쁜 제액을 막아준다고 여겼다.

신앙의 한 대상이기도 했던 만큼 조상들의 삶의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여 잡귀나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서 장승이 세워졌다,

장승은 통행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 마을 간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 그리고 마을과 사찰을 지키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마을과 사찰을 지키고 보호하는 역할은 장승이 지닌 가장 큰 역할이자 기능이다.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무서운 얼굴로 무언가에게 호통치는 모습은 흉한 기운이 마을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키기 위함이다. 나아가 마을 주민의 안녕과 풍농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장승은 마을 주민들에게 무서우며, 정겨우며, 때로는 감사함의 대상으로 오랜 시간 우리 옆을 지켰다. 민중들은 장승을 영험한 존재로 여겼고, 그에 걸맞는 예우하여 장승과 공존했다.

 

 

 

 

 

 

신과 인간을 잇는, 솟대

솟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상징물을 말한다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솟대를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을 잇는 안테나로 생각해 음력 정월 대보름 마을 제사를 지낼 때, 좋지 못한 것을 막고, 마을의 안녕과 그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장승과 함께 마을의 초입에 세웠다.

솟대는 과거시험 제도가 자리한 이후에는, 과거시험의 합격자를 축하하기 위한 경축의 의미에서 솟대를 만들어 세우기도 했다.

솟대는 한반도 남부에 자리했던 삼한의 소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소도는 제사를 위한 신성한 구역이며, 외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특수한 공간이었다.

솟대는 소도에 세웠던 긴 나무장대로서, 최상단 부분에는 날갯짓하는 새가 자리한다. 이 새는 오리가 일반적이지만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기러기, 갈매기, 까치, 왜가리 등 자유롭게 설정하기도 했다.

대개 철새류의 물새인 오리가 솟대의 새로서는 가장 대표적이며, 솟대를 오릿대라고도 불린다. 여기에는 많은 종교적 상징성이 깃들여 있는대, 철새는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하여 날아갔다가 다시 날아오는 행위를 해마다 반복하기에 고대인들은 오리를 인간세계와 신령의 세계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신조(神鳥)로 여겼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승과 솟대, 서낭당의 민속적 의미

 

서낭당은 마을의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주민들의 종교적인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으로, 마을의 수호신을 섬김으로써 심적 유대와 연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마을신앙이란 마을 전체 및 개인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신앙으로, 일반적으로 동제, 마을제를 통칭하며, 삼신당을 위시하여 장승, 솟대, 탑, 선돌, 서낭당 등이 마을신앙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동서남북에 적절한 마을 신을 정주시킴으로써 마을을 수호하게 하거나, 풍수상 마을 지형에 따라 어떠한 조치를 함으로 자신이 속한 정주공간을 질서와 안정 세계로 이끌고자 하였다.

 

 

 

 

 

 

 

 

 

 

장승제의 유래

 

 

 

 

 

 

 

 

 

 

 

 

 

 

 

 

 

 

 

 

 

 

 

 

 

 

 

 

 

장승을 만들때 쓰이는 여러 연장들

 

 

 

 

 

 

 

 

 

 

 

 

 

 

 

 

 

 

 

 

 

 

 

 

 

 

 

 

 

 

 

김종흥 장승 특별전을 끝으로 안동 선현지 탐방을 마무리 한다.

귀가길 고령 휴게소 식당에서 석식하고 오후 7시경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