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산

고성 청광리박진사고가, 소천정, 봉동리 배씨고가, 다연가

정헌의 티스토리 2024. 12. 19. 18:57

■고성 청광리박진사고가, 소천정, 봉동리배씨고가, 다연가

 

옛 고택이나 별 알려저지 않은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개천면의 박진사고가는 도지정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잘 보존된 돌담과  정원을 가진 한옥고택이다. 건너편 마을에 달마선원이 있어 같이 둘러보면 된다.

구만면소재지에서 소천정으로 가는 마을길은 대체로 좁다. 또한 마땅히 주차 할 곳도 찾기 어렵다. 소천정까지 소형차량 진입은 가능하나 길이 너무좁아 초행이라면 들어가기 어렵다. 당일 정문은 잠겨있지만 샛문이 열려있어 둘러보는데 지장은 없었다.

회화면 봉동리 배씨고가는 특이한 초가 건물이다. 오목조목한 원시적인 건물에 여러 농기구들이 있다. 지나는 걸음에 잠시 둘러보면 될 듯 싶다, 인근에 금봉재와 고성이씨 시조공 묘소가 있다.

배씨고가에서 고개너머에 다연가가 있다. 뜰엔 각종 화분과 화초를 심었고,내부는 옛 한옥 건물에 각종 골동품,  찻잔셋트, 그릇, 모자, 신발 등등을 감상하며 잠시 머물기 좋은 곳(카페)이다.

늦은 중식후 오후 일정으로 고성읍내에 위치하고 있는 고성박물관, 송학동고분군, 고성탈박물관을 둘러보았지만 이 외에도 마음에 두고 간 곳이 여러곳  있다.

 

다음 방문을 대비하여 몇 곳 기록해 두고자 한다.

○ 고성읍 :고성이씨선세유허지, 동외동 유적(패총), 석불사(교사리 삼존석불), 남산공원, 수남유수지 생태공원과 대독 누리길(갈모봉 자연휴양림까지 이어짐), 고성생태학습관 등

○ 미임면 : 장산리숲, 장산리 허씨고가, 석마마을 석마과 위계서원, 도연서원

○ 대가면:  법천사지 부도군, 대무량사(양화리 삼존석불), 송계리 이씨고가(공룡나라 휴게소 뒤), 소산정사

○ 하일면 : 육영재, 학림리 지석묘, 학동마을옛담장

 

▷탐방코스

고성 개천면 박진사 고가 - 구만면 소천정 - 회화면 봉동리배씨고가 -  다연가 - (고성박물관 , 송학동 고분군 - 고성탈박물관)   / 2024. 12. 18.

 

▷탐방후에

 

◐고성 박진사 고가 /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92호

 

고성 군 개천면 청광리 292-3

박진사 고가를 보러 왔다.

 

 

 

 

 

먼저 담장이 시선을 끈다.

 

 

 

 

 

이 건물도 솟을대문이라 해야 하나?

박진사고가는 한옥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인데 오늘 대문이 잠겨있다.

 

 

 

 

박진사고가

 

밀양박씨의 옛 집으로 대대로 진사와 효자가 태어났으며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이 집에서 효자 박효근이 출생하였고 그의 아들 박한회와 손자가 진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되어 일제시대에 증축된 주택으로 실용성과 전통성이 조화된 전통한옥으로 조선후기 건축 변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 가옥은 사대부 주택의 형태를 갖추고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2채와 곳간채 2동, 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장이 잘 보존되어 있고 대문에는 효자정려현판이 붙어있다.

대문간채, 행랑마당, 안마당, 사랑마당은 각각 담으로 구획하고 정원을 구성하고 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안채는 부엌 방, 대청, 갓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안채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담장을 둘러 별당처럼 안사랑채를 배치하고 있고 중문간채를 바깥사랑채로 이용하였다. 중문에서 안채가 직접 보이지 않도록 담장을 둘렀다. 집 주위로는 전체적으로 높은 담장을 두르고 있는데 기와조각을 섞어 모양을 내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안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드렸더니 출타 중이어서 집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방문시  010 - 2063 - 2541 (바깥양반) ,  010-3743 - 2541(안주인) 전화인것 같다

당일 전화를 드렸더니 외출중이라며 오히려 미안하다고 한다.

 

 

 

 

 

孝子(효자)

贈童蒙 敎官朝 奉大夫 朴孝根 之 門 ( 증동몽 교관조 봉대부 박효근 지 문 )

 

 

 

 

 

특히 앞쪽으로 돌담이 잘 보존되어 있고 높이도 높다.

 

 

 

 

 

이웃집 쪽으로 이동하여 담 너머로 본다.

노송이 보이고, 여타 나무들이 윗면만 살짝 보인다.

한옥의 일반적인 마당과 달리 이집 마당은 정원으로 꾸며진 집인것 같은데 둘러볼 방법이 없다.

 

 

 

 

 

담장 끝까지 와 보니 우물이 있다.

 

 

 

 

◐ 고성 소천정

 

구만면 소재지에서 이곳까지 마을길은 좁다. 카카오 내비가 안내하는 길을 따랐더니 인근 엉뚱한 곳으로 안내한다. 카카오 내비가 살짝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찾아가는 입구가 농로여서 길찾기가 쬐끔 혼란스럽다.

이곳은 마을을 살짝 벗어난 곳으로 쬐끄만 4거리이다. 저기 보이는 좌측 좁은 농로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그냥 농로에 주차했다.(잠시 둘러보고 올 것이고 차량이 그의 다니는 곳은 아님)

 

 

 

 

 

이곳으로 차량 진입은 가능하나 길이 좁아 초행이라면 어렵다. 

마을에 주차하고 도보로 이동함이 좋을 듯 싶지만 마을에도 마땅히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렵다,

 

 

 

 

 

문은 잠겨있다.

 

 

 

 

 

소원문(溯源門) 편액을 달고있다 

溯자는 '거슬러올라갈 소'자이다. 소원의 사전적 의미는 물의 근원지를 찾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감, 즉 어떤 사물이나 일의 근원을 찾아 밝히고 상고함을 뜻한다.

 

 

 

 

 

소천정 좌측편에 폐가옥이 있다.

소천정 관리하는 분이 살았던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현 폐가로 남아 있다.

 

 

 

 

 

소천정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0호

 

고성 소천정은 소계 최강(蘇溪 崔堈 /깨어날 소, 언덕 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정자를 세운 터는 최강이 어릴 때 무술을 연마한 곳이다. 최강은 선조 18년(1585)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소호 최균(蘇湖 崔均)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성, 진해 사이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임진왜란 후에는 경상도 좌수사, 충청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했다. 그 공으로 의숙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구릉의 서북쪽 비탈면에 남쪽으로 향해 있으며 소천정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이다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된 1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마루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공포양식은 정면의 툇마루 상부에만 소로(장여나 살미, 첨차. 쇠서. 익공 등 공포재의 밑에 받치는 됫박모양의 네모진 나무)로 장식한 소로수장집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장여수장집(민도리집 형식으로도 불리며 기둥이나 벽체 윗부분이 도리와 장여 사이에 소로없이 도리와 장여만으로 된 구조를 말함)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서까래를 놓도록 하는 도리는 3개로 구성 홑처마팔작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포전실록 1매, 선무원종공신녹훈 교지 1매 등의 유픔을 소장하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소천정(소川亭) 

현판을 보면 蘇(깨어날 소)자와는 다르다. '풀초'변 아래에 '벼화'자와  '고기어'자가 좌우 바뀌어 있다. 현판의 소자는 '차조기 소'자로 나오는데  이 한자를 제공하지 않는다.

 

 

 

 

 

측면 1.5칸

 

 

 

 

 

축담 아래의 저 돌은 무슨 기능 또는 역할을 하는 돌이지?

건물의 칸 수를 뜻하는 것일까?

 

 

 

 

 

여러 편액들이 있으나 뭔 말인지............

 

 

 

 

 

앞쪽 비석 건립시 찬조금 내역이다.

 

 

 

 

 

정문

 

 

 

 

 

측면의 샛문은 열려있다.

 

 

 

 

 

◐임란공신 쌍충비원(雙忠碑園),  3.1운동 근거지 구만면

 

구만면 소재지를 막 지나온 곳에 만대첨앙(萬代瞻仰 / 볼 첨, 우러러볼 앙)비석이 있다.

 

 

 

 

자연석과 일반 비 등이 섞여있는 곳으로 뭐지?하고 차창으로 본 모습이다.

 

 

 

 

◐봉동리 배씨고가

 

차도에서 봉동리로 들어서니 길이 좁아진다.

배씨고가앞을 지나 흘러내려가는 하천의 작은 다리를 건너기 직전 직진했어야 하는데(작은 이정표 있으며 직진하라는 화살표시 있음) 내비가 안내하는 대로 다리를 건너 진행하니 배씨고가로 가는 길이 없다.

이곳인가 싶에 주차를 했지만 농장의 진입로다.

길은 아니지만 이곳 농장을 가로질러 배씨고가로 간다.

 

 

 

 

 

집은 저만큼있는데  길을 잘못 들어 묘포장을 가로질러 간다.

 

 

 

 

 

저 밑 어디쯤에 조그만 주차장이 있는데 들머리 이정표를 정확히 보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배씨고가가 저만큼 있다.

 

 

 

 

 

처음엔 이곳이 대문인줄 알았다.

기어 들어가야 하나?

지붕은 초가인데 현재 노랑색 비닐? 천막?으로 덧씌웠다.

 

 

 

 

 

마당 앞쪽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안채는 앞에서 보면 2칸이고 옆에서 보면 1칸인 셈이다.

 

 

 

 

안채

방 2칸에, 부엌은 난달이다.

 

 

 

 

 

방은 깨끗하게 도배되어 있다.

 

 

 

 

 

이곳이 부엌인 셈인데.........

앞뒤 문도 없고, 찬장 등 부엌을 메꿀 아무 가재도구도 보이지 않는다.

 

 

 

 

 

부엌쪽 측면에서 본 모습이다.

이쪽에 방문이 있다. 부엌쪽에도 문이 있다.

 

 

 

 

안채의 반대쪽 측면엔 창문이 없고 토담이다.

 

 

 

 

 

이곳은 문간채?

저곳으로 서로 통하여 있어나 서서 통과할 수 없는 나즈막한 곳으로 헛간쯤으로 보면 되겠다.

 

 

 

 

 

집의 규모로 보면 소농이나 소작농이었을 것 같은데 농기구는 이것 저것 많다.

 

 

 

 

 

퐁로와 새끼꼬는 기계도 있다.

 

 

 

 

 

이곳은 아랫채?

한쪽은 헛간, 다른쪽은 소를 키웠을런지도 모르겠다.

 

 

 

 

 

방문을 열어보니 깨끗하다.

천정의 높이가 키보다 낮아 반듯히 설 수는 없을 높이이다.

 

 

 

 

 

아랫채 뒷쪽에 조그만 헛간이 있다.

화장실 내지는 잿간 등으로 사용되었음직 하다.

 

 

 

 

 

어느 산기슭 하천변에 위치한 조그만 건물이어서 양반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

하여튼 규모도 작고 ..... 뭐 .....  지금까지 보아온 집 중 가장 원시적인 묘한 집이다.

 

 

 

 

 

저쪽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종종 카카오 내비가 말썽을 일으킨다.

저만큼 어디쯤 금복제와 고성이씨 시조공이 있어 도보로 찾아 볼 수 있는 거리인데 미쳐 생각치 못했다.

 

 

 

◐다연가

 

내비가 꼬불꼬불 산골짜기로 들어서 고개를 넘어 안내하는대로 따라 다연가에 왔다.

 

 

 

 

 

다연가

교통편으로 보면 대중적인 위치는 아닌 것 같다.

 

 

 

 

 

정문은 저만큼 있다.

 

 

 

 

 

도로변에서 바라본 다연가.

 

 

 

 

 

 

 

 

 

 

 

 

 

 

 

 

 

매월 1.3주 월요일 휴일 3월부터

말이 쬐매 어렵다. 매월 첫째, 셋째주 월요일은 휴일이란 소리인것 같다.

 

 

 

 

 

분위기가 좋다.

 

 

 

 

 

 

 

 

 

 

 



 

 

 

 

 

 

 

 

 

 

 

 

 

 

 

 

 

 

 

 

 

 

 

 

 

 

 

 

 

 

 

 

 

 

 

이곳은 풀장

 

 

 

 

 

 

 

 

 

 

 

이쪽에도 출입문이 있다.

 

 

 

 

 

 

 

 

 

 

 

 

 

 

 

 

 

 

 

 

 

 

 

 

 

 

 

 

 

 

 

 

 

 

 

 

 

 

 

 

 

 

 

여러 다기들도 있고,

스카프 종류도 전시되어 있다.

 

 

 

 

 

꽃신발도 가지런하고,

 

 

 

 

모자, 가방, 스카프 종류를 판매도 한다.

 

 

 

 

 

 

 

 

 

 

 

일반 가정집으로 치면 거실이다.

 

 

 

 

 

 

 

 

 

 

 

 

 

 

 

 

 

 

 

 

 

 

 

 

 

 

 

 

 

 

 

 

 

 

 

 

 

 

 

 

 

 

 

 

 

 

 

 

 

 

 

 

 

 

 

 

 

 

 

 

 

 

 

 

 

 

 

 

 

 

 

다연가에서 차한잔 하며 안주인과 이런저런 애기 나누다 보니 점심시간이 영 늦어지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고성읍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