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고복저수지, 송림사, 비암사, 단비책방, 세종시립민속박물관, 김종서역사공원과 묘
■세종 고복자연공원, 송림사, 비암사, 단비책방, 세종시립민속박물관, 김종서역사공원과 묘
세종시 전동면에 위치한 베어트리파크를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많은 2시간 20분여 소요되었다. 따라서 중식시간을 훨씬 지난 시간에 연서면에 위치한 고복저수지(고복 자연공원)로 왔다. 고복저수지는 상당한 규모로 동.북쪽편에 데크로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 좋고, 주로 상부쪽에 음식점과 카페등이 들어서 있다. 용암골 식당에서 늦은 중식시간을 가졌다.
송림사는 어느 한 스님이 수십년간 돌로 쌓은 법당으로 인해 정교하고 기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나 디테일에 있어 살짝 모자라는 느낌이고 주변이 살짝 어수선하나 한번쯤 둘러볼 만한 곳이다.
송암사로 가는 길목에 연기향토박물관(연서면 청라리 146번지), 쌍류초등학교를 지나면 효자 김종철 정려가 있다, 송암사를 둘러보고 김종철 정려쪽 좁은 길을 따르면 인근에 쌍류 예술촌과 갤러리 FM 98.5카페 등이 있으나 외견상 크게 볼 것은 없는 것 같아 당일 차창으로 위치만 확인하고 지나쳤다.
비암사 권역으로, 가는 길목의 도깨비도로는 약 100m정도의 구간으로 별 실감이 나지 않았으며, 아담한 비암사와 다비숲공원을 둘러보고, 단비책방(책방 겸 카페)쪽으로 내려왔다.
전의면 금사리에 위치한 세종시립민속박물관은 옛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박물관으로 만든 곳으로 조그마한 규모로 크게 볼 것은 없으나 지나는 걸음이면 찾아봐도 되겠다. 입장료, 주차료 등은 없다.
장군면 대교리에 위치한 김종서장군 역사테마공원은 현 조성중으로 사당을 제외하면 넓은 공터로 있으며 가까운 곳에 장군의 묘가 있다.
▷일정
고복저수지(용암골식당 중식) - (연기향토박물관) - 효자 김종철 정려 - 송암사 -(쌍류리 예술촌, 갤러리 FM 98.5 - 도깨비도로) - 비암사 - 단비책방 - 세종시립 민속박물관 - 김종서장군역사테마공원, 김종서장군묘.
/ 2025. 1. 3.)
북쪽으로 전동면의 베어트리파크, 동쪽으로 조치원 봉산동 향나무, 연기면의 고복자연공원, 연기향토박물관, 쌍류리예술촌, 서쪽으로 전의면의 비암사, 도깨비도로. 세종시립민속박물관이 서로 인근 지역에 있음을 볼 수 있다.
▷탐방후에
고복저수지 상류에 위치한 용암골 식당에 왔다.
주변 도로변을 따라 몇몇 식당들이 있다,
새로 신축된 건물로 깨끗하다.
이와 비슷한 홀이 양쪽 두군데 있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므로 메뉴판이 벽에 부착되어 있지는 않다.
석갈비 (19. ~ 20.) + 식사(밥과 시래기국/ 2.) = 21.원 / 1인분이다.
당일은 때가 늦은 탓도 있겠지만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
◐고복자연공원
고복저수지변의 도로는 세종 3대 벚꽃길 중 하나라 한다.
중간지점에 민락정이 있어 고복저수지를 관망할 수 있으며, 저수지 동쪽편으로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을 하기에도 좋다. 연기대첩비 공원은 고려 충렬왕때 고려를 침공하여 금강 연안꺼지 내려온 원의 반란군을 한희유, 인후, 김흔 등이 경파한 장소로 우라나라 7대 대첩중 하나인 연기대첩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이곳은 고복저수지 동북편 중간쯤 지점이다.
좌측방향으로 갈대습지원 1.1km, 우측편으로 방문자 센타 1.1km를 가리키고 있다.
좌,우측으로 데크로드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효자 김종철 정려 / 향토문화유산 제8호
송암사로 가는 길목인 쌍류초등학교를 막 지나면 도로변에 효자 김종철 정려가 있다,
이 정려는 김종철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1979년 건립되었다.
김종철(1755~1817)은 강릉김씨로, 어머니 송씨 부인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극진하게 간호하였다. 그러나 그가 겨우 12세가 되던 해인 1767년, 어머니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김종철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침저녁으로 어머니 산소를 찾아 성묘를 했다. 1788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꿈에 나타난 도사의 말을 따라 청라리 마을 뒤편에 묘를 쓰게 되었다. 명당의 기운이 있었는지 이후 자손이 번성하였다. 특히 조카 경현은 울진군수로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죽고 50년이 지나 1868년에 정려가 내려졌다.
◐송암사
스님이 주거하시는 요사인가 싶다.
바로 앞쪽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쌍류초등학교 인근에서 송암사까지 약 1km가 채 안되는 거리로 길이 좁아 소형차량만 진입할 수 있다.
송암사 전경이다.
목조의 건물이 아니라 석조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만불전이다.
송암사에서 가장 큰 건물로 주 법전인 대웅전이 있지만 중심 건물이 되는 셈이다.
법당 내부이다.
가운데 기둥이 있지만 벽돌 내지는 돌로 쌓은 법당에 이런 공간을 낼 수 있다는게 대단하다.
법당 가운데 사면으로 불상을 모셨다.
벽면쪽으로도 이런 불상을 모셨다,
그래서 만불전이 되었다.
흔한 돌과 벽돌로 이런 탑도 앃았다.
탑의 층을 구분하는 곳엔 벽돌로 만들었다.
맨 아랫층에 물이고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탑은 여름철엔 폭포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만불전엔 옥상?으로 오를 수 있다.
아직 미완인 듯한 옥상에서 바라본 송암사 일부이다.
만불전 뒷쪽이다.
관욕전이라 이름붙였다.
좀 낯선 이름이다.
관욕전 내부이다.
이곳은 약사전
약사전 내부이다.
이 구층석탑은 높이는 장대하나 균형미는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섬세함에 있어서도 좀 부족하다.
지형상 맨 위쪽에 3 건물이 나란히 있다.
좌측 건물이 대웅전이다.
맨 처음 건축된 건물이라고 한다.
대웅전 내부
가운데 건물은 관음 인등 법당
맨 우측 건물은 참선전이다.
이곳에선 명상을 할 수 있다.
이곳 돌탑 꼭대기에도 불상을 모셨다
이 돌탑이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난 임도를 따라 도보로 7~8분 오르면 지장전과 산신각이 있는데 당일은 몰랐다. 지장전에는 많은 위패를 모시고 있고, 기도를 하는 분들이 많이 찾기도 한다고 한다.
후답자들은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마무리를 잘 하여 아름답고 특이한 사찰로 스님의 공덕이 칭송받았으면 좋겠다.
송덕사를 둘러보고 쌍류초등학교 뒷편에서 김종철 정려 앞으로 난 길을 따르면 쌍류예술촌으로 갈 수 있다.
쌍류예술촌은 5~6채 건물과 갤러리 FM 98.5 카페가 있는 곳인데 외형상 특별히 찾아봐야 할 곳은 아닌것 같아 차창으로 보며 위치만 가늠하고 지나쳤다.
◐비암사
비암사에 왔다.
사찰 바로 아래까지 차량으로 진입할 수 있다.
한켠에 금성산(금이성) 등산로가 있어 참고삼아 올려본다.
계단을 따라 비암사로 오른다.
수령 수백년의 보호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비암사는 세종시의 오래된 전통사찰이다, 사찰이 지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애 새겨진 637년(계유년)을 통해 이 시기에는 이미 지어졌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비암사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비암사 극락보전과 시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점을 가지고 있다.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비상(비석의 형식과 불상 조각이 결합된 비석형의 불상) 3점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암사 삼층석탑
비암사 삼층석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며,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날카롭게 하늘로 향해 있고,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은 2층과 3층의 탑신과 비교해 매우 긴 편이다. 지붕돌이 몸돌에 비해 둔해 보이고, 밑면의 받침이 4단인 점 등을 통해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삼층석탑에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기축명아미타불비상(보물),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보물)의 3점의 비상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비상은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요사
대웅전
앞쪽에 당간지주를 높게 설치하였다.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괘불탱화는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법당 앞들에 걸어 놓는 대형 불교 그림이다. 그림의 규모는 길이 863m, 폭 486m이다.
비암사 영산회 괘불탱화는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가르치는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영산회상도이다. 효종8년(1657) 화원 신겸이 그렸으며, 17세가 이후의 불화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군도(석가모니와 10대 제자 등 많은 수행자들이 둘러 서 있는 그림)형식이다. 그림의 내용이 1652년 신겸이 그린 안심사 괘불과 같아 이 불화를 본떠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도 매년 4월에 이 그림을 법당 앞뜰에 걸어 놓고 법회를 행하는데, 이때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대웅전 내부
대웅전과 극락보전 뒷편에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
산신령님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 극락보전, 명부전, 요사, 범종각, 삼층석탑, 설선당 등으로 구성된 비암사는 조촐하고 아담한 사찰이다.
극락보전 / 보물
비암사 극락보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되어 있는 법당이다. 일반적인 옆면 3칸 구조에서 벗어난 2칸 건물의 구조를 보이는데, 이는 임병양란(壬丙兩亂) 이후 사찰 경제가 축소된 사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여덟팔(八)자의 모양이다. 지붕을 받치며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매우 큰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며, 불상 위에 화려한 닫집(궁전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든 집 모형)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극락보전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7세가 중엽 지방 사찰 건물의 시대적 특성과 지역색을 잘 간직한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비암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은 비암사 극락보전 안에 있는 아미타불좌상이다. 진흙으로 만든 매우 큰 소조(塑造/흙 빚을 소) 불상으로 높이는 196cm, 어깨 폭 89cm, 무릎 폭 132cm이다.
전체적으로 건장하고 직사각형에 가까운 강건한 얼굴, 둥글면서도 벌어진 어깨, 결가부좌(좌선할 때 앉는 자세)를 한 넓은 무릎으로 안정된 자세를 보여준다. 촘촘한 머리카락 위에는 큰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있다.
표현 양식을 보면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7세기 소조 불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대충 비암사를 둘러보았다.
비암사 아랫쪽 조그만 숲을 다비숲공원이라 이름 붙였다.
조촐하고 아담한 부도 2기가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단비책방
비암사 인근에 단비책방이 있어 둘러보고 간다.
단비책방
개방시간 오전 10:00 ~ 오후 7시
월. 화요일은 개방하지 않음
일반 평범한 주택의 한쪽 건물을 책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은 주인장의 주거공간인 듯,
온실같은 이 건물은?
휴식장소 내지는 차를 마실수 있는 공간이다.
1층 독립출반, 출판사 도서.
독립출판은 글. 그림, 사진등의 장착물을 유통에서 판매까지 1인이 진행하는 형식으로 제작된 개인도서로 다양한 장르를 만나볼 수 있으며 개인의 이야기, 개인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만나볼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2층 다락방에서는 중고도서를 구매할 수 도 있고, 북스테이 등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한강
18종 작폼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한강, 자전소설, 몽고반점, 그대의 차가운 손, 바람이 분다 가라,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여수의 사랑, 검은 사슴, 희랍어 시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흰, 내 이름은 태양꽃, 천둥 꼬마선녀 번개 꼬마선녀,
다락방도 있다.
다락방은 천정의 높이 때문에 마음대서 서서 다닐 수 없다.
다락방의 도서들
단비서점에서는 도서판매, 북스테이, 카페 역할등을 하고 있으며 금.토,일요일엔 아름아름 제법의 손닙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세종시립민속박물관
전의면 금사리에 위치한 세종시립민속박물관에 왔다.
연서면 쌍류리에 연기향토박물관이 있는데 하루 일정으로 두 곳다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 한 곳을 선택한 곳이 이곳이다.
앞쪽에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옛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한 곳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입장료는 무료,
현관 로비에 신경환작가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다.
상설 전시관이다.
나름대로 지역 민속품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토기와 자기
날틀: 옷감을 짤 때 실을 뽑아내는 틀
벳솔:옷감을 짤 때 질기게 만들기 위해 풀을 먹이는 솔, 광복 이후.
인두
다리미 등등
국자, 청동그릇과 수저, 세숫대, 화로와 부삽, 청동거울
삼합색지상자, 함, 안경집 등
고무래, 바람개비, 뒤주, 종이독, 맷돌, 쥐덫 ........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김종서장군 역사테마공원과 김종서장군 묘
겨울철, 시간은 오후 5시 30분 경으로, 바로 귀가할려다 마지막으로 한 곳 더 들런 곳이 장군면에 조성된 김종서 역사테마공원이다.
비교적 근년에 기반공사는 넓게 조성되어 있으나 아직은 공원으로서 황량한 느낌이다.
저만큼 보이는 건물은 관리사무소, 뒷쪽으로 원형광장(모래놀이터)를 만들었다.
사당으로 왔다.
홍살문은 도색하지 않아 그대로의 나무색이 오히려 음침하다.
삼문은 충의문 편액을 달았고,
한켠의 재실 사주문엔 진무문, 본 건물 재실엔 숭인재 편액을 달았다.
사당엔 충익사 편액을 달았다.
충익사는 절재 김종서를 제향하는 사우이다.
절재 김종서는 조선 초기 재상으로 세종 때 북방의 6진을 개척하고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편찬하였으며, 좌의정으로 단종을 보좌하다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1453년 두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한 충절의 인물이다.
사육신과 함께 영조 22년(1746)에 관직이 복구되고, 충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때 부조묘(불조묘, 조선 시대 신위를 영원히 모셔 제향하도록 하는 사당(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도 받았다. 중익사는 부조묘의 전통을 이어 2019년 묘소 앞에 건립하였다.
중익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전통 제례에 대라 절재 김종서 제향 행사가 개최된다.
충효정려
영조 22년에 건립된 김종서와 아들의 충과 효를 기기기 위한 정려가 있으나 건물 내부는 비어있다
신도비는 국왕이나 공헌이 많은 분의 무덤 앞 또는 묘지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입니다.
김종서장군께서 잠들어 계신 이곳 세종시 장군면 대교리는 풍수지리상 지네형국이라 하여 국운의 융성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신도비 좌대를 거북이 대신 두꺼비로 하였습니다. 두꺼비는 행운과 재물을 풍성하게 가져다주는 신령스런 동물로 국가와 가정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아들 딸을 많이 낳게 해주는 수호신으로 옛 부터 신성시 하고 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묘소 가는 길
김종서 장군묘
조선 초기 재상인 절재 김종서(1383~1453)의 묘이다.
절재 김종서는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서 태어나 태종 5년(1405) 문과에 급제한 후 함길도 도절제사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세종 때에 6진을 개척하였으며,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였다.
좌의정으로 단종을 보좌하다가 세조에게 아들 둘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당시 역적으로 몰려 시신을 전부 거두지 못하고 한쪽 다리만을 이곳 묘소에 묻었다고 전한다.
묘비 중에 작은 비가 원래의 것이다. 이 묘비에는 '조선 좌의정 절제 김선생 종서 지묘'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충신으로 인정받고 2년 뒤인 영조 24년(1748)에 공주 판관 이익진과 지방 유생들이 세운 것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양쪽의 문인석
가운데 동자석
주차장 옆의 어느 사찰인 듯 싶다.
어둠이 내리고 있고, 귀가길이 있어 들러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