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일상들

산청 신안정사

정헌의 티스토리 2025. 6. 10. 21:07

■산청 신안정사

 

산청군 단성면에 신안정사가 있습니다.

현재에도 이택계를 조직하여 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단성향교와 더불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잠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탐방후에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 745번지

들어오는 입구가 1차선의 좁은 도로라 승용차 1대 정도 다닐수 있는 길이지만 도로가 포장되어 있습니다.

 

 

 

 

 

들어오는 입구의 좁은 길과는 달리 신안정사로 들어서면 아늑한 느낌으로 자연경관과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신안서당은 1700년대 초(1538년(조선 중동 33)?)에  신안의 주자사당을 본따 안동 권씨와 성주 이씨 가문이 주자의 영정을 봉안하고 유생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세웠습니다.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에 철거되었다가 1874년에 재건하여 신안정사로 이름붙였습니다.

신안이라는 이름은 성리학의 이론체계를 완성한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의 고향인 신안에서 따온 것으로 주희가 자신을 신안 주희로 칭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91호호 지정되어 관리. 보존되고 있습니다.

 

 

 

 

 

돌담과 고목, 방지가 어우러져 경관이 제법 수려합니다.

 

 

 

 

 

1874년에 재건된 후 1924년까지 여러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 경내에는외삼문과 신안정사 본 건물, 사당인 신안영당, 옆에 신안서사와 문간채 등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유림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교류하는 장소로 꾸준히 활용되어 기정진의 문집 목판이 1902년 이곳에서 제작되었으며 유림과 지역민들이 유학경전을 해석하고 토론하는 전통이 현재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참고로 기정진(1798~1879)은 조선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로, <노사집>, <답문유편> 등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신안정사 현판

 

 

 

 

 

명나라 숭정제가 쓴 非禮不動(비려부동) 현판

 

 

 

 

 

 

 

 

 

 

 

 

신안정사 뒷편의 툇마루

 

 

 

 

 

신안정사 뒷편에 사당이 있습니다.

주자와 우암 송시열의 영정을 모신영당입니다.

 

 

 

 

 

영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은 닫혀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유림들이 유학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 둘러본 신안정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