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의 일상들

상주 기행 / 상주향교, 도남서원, 경천대, 상주박물관, 우복종택, 흥암서원

정헌의 티스토리 2017. 10. 29. 20:50

           ■ 상주 기행  /  상주향교, 도남서원, 경천대, 상주박물관, 우복종택, 흥암서원 


               과거 대전과 상주는 동시대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한다.

               지금 대전의 인구는 약 150만, 상주는 10만 정도이다. 어떤 상주인은  이 차이를 청주에서 상주를 거쳐 부산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찾기도 한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자기지역으로 나는 도로를 엄청 반대하는 곳도 있다.

               경상도는 고려 충숙왕 원년(1314년)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취하여 명명하였고, 낙동강 또한 상주 (옛 이름이 上洛)의

               동쪽에 위치한 강이라는 뜻이어서 과거 상주의 위치를 가늠할수 있다.

               상주는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  상주시를 중심으로 향교, 흥암서원 등과  경천대를 중심으로 상주 박물관,  자전거박물관

               낙동강 생물자원관, 경천섬, 도남서원등이 있다. 산으로는 문장대 주변, 성주봉, 갑장산, 노악산 등을 들수 있겠다.

               산청 선비대학 회원들과 함께한 상주 유교와 관련 몇 곳이다.



           ▷ 가는 길,


 



           ▷ 탐방코스 

               상주향교 - 남도서원 - 경천대 - 상주박물관 - 우복종택 - 흥암서원.  

 

           ▷ 탐방후에



              상주향교








 

           △ 상주 시내에 위치한다,





 




             1426년(세종 8)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8년(광해군10)에 중건하였다. 현재의 남산중학교 일대가 향교의 경내였으나 1949년 학교로 개조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재(東齋),

             원래의 것을 어느 시기에 줄인 것으로 보이는 서재(西齋),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누각인 태평루(太平樓) 등이 있다.

             정면 10여 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현재 학교 교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명륜당은 1920년대에

             소실되어 그 자리에 교실을 신축하였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남산중학교의 소유로 되어 있다.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두어 명이 담당하고 있다.


















            △ 명륜당과 앞쪽의 부속 건물들,







 

           △ 명륜당 뒷편에 대성전이 있다.







 

           △ 대성전으로 오른다,







 

 







           △ 대성전,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대성전은 전면 퇴칸은 앞쪽을 개방하였으며, 어칸에 양개, 협칸은 외여닫이문을 내었다.  숙석(熟石:인공으로

               다듬은 돌)으로 축조한 높은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주상의 전면에만 2익공 위에 연꽃을

               올리고 퇴량머리는 봉두(鳳頭)를 조각하였으며  대량머리는 그대로 빼내어 놓았다.  가구는 2고주 7량가인데,

               중앙 2열은 모두 고주로 하여 대량과 퇴량을 주신에 꽂아 넣었다.

               대량 위에는 접시받침과 양봉을 직교되게 짜아서 중종량을 얹었으며, 중종량 위에도 양봉과 접시받침을 두어

               종량을 받도록 하였고, 종량 위에는 파련대공(波蓮臺工)으로 종도리를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건실한 상부가구와 구조양식을 가지고 있어 조선 중기 후반의 구조 및 장식수법을 볼 수 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6.25때?

               이 위패 및 몇분의 위패를 모신 분에 대한 얘기를 하신다.







 

           △ 명륜당,

               오늘 기로연이 있다 한다.

               과거 기로연이 국가에 공이 있는 노인네들에게 베푸는 연회로 본다면,

               요즘 기로연은 경로잔치가 아닌지................


               

                기로연


                매년 상사(上巳 : 음력 3월 상순의 巳日, 혹은 3월 3일)와 중양(重陽 : 9월 9일)에 보제루(普濟樓)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기로연에는 정2품의 실직(實職)을 지낸 70세 이상의 문과출신 관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종친(宗親)으로 70세에 2품 이상인 자, 정1품관, 경연당상관들을 위하여는 훈련원이나 반송정(盤松亭)에서

                기영회(耆英會)라는 잔치를 베풀었다. 이들 잔치에는 왕이 술과 1등급 풍악을 내렸다.

                조선시대의 기로연은 1394년(태조 3) 한양천도 후 태조 자신이 60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들어가면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늙은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 것이 처음이었다.

                .......................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 도남서원 (道南書院)



                                                   △ 도남서원 북쪽으로 경천섬, 국립낙동강 생물자원관, 상주 자전거 박물관

                                                       경천대, 상주박물관 등이 근거리에 있다.





 

  

           △ 도남서원으로 이동하였다.

               입덕문(入德門),







  

           △ 정허루(靜虛樓)
















  

           △ 도남서원,








  

           △ 사행당(四行堂), 영귀문(詠歸門), 화장실(靴裝室)

               도남서원을 올려다 보았을때 좌측편에 위치한다,







  

           △ 민구재(敏求齋)







  

           △ 손학재(遜學齋)







  

           △ 도남서원 뒷편 내삼문(內三門)으로 오른다,







  

           △ 도정사 (道正祠)



              도남서원은 1606년(선조39) 정포은(정몽주), 정일두(정여창), 이민재(이언적), 김한훤당(김굉필), 이퇴계(이황)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 위패를 모셨다,

              후 1617년(광해군9 노소제(노수신), 

              1631년(인조9) 유서애(유성룡),

              1635년(인조13) 정우복(정경세) 선생을 배향하고 묘우(廟宇)의 이름을 도정사라 칭하고 죽남 오준(吳竣)선생이 현판 글씨를 쓰다.

              2005년 이창석(이준)을 추가 배향하였다.






  

           △ 전사청(典祀廳)


               사당에서 제사 지낼때 제물을 차리던 건물이다.

               건물의 배치가 도정사쪽을 향해야 하는데 잘못 되었다한다,







  

           △ 낙강범월시(洛江泛月詩)


               상주의 옛 선비들이 낙동강에 달 띄우고 뱃놀이를 겸해 대을 이은 시로 시회(詩會)와 시집(詩集)을 아루른 말로

               백운 이규보가 낙동강 시를 남긴 뒤로 시회를 통해 171년 동안 같은 공간(낙가예에서 같은 제재(뱃놀이 시회)로

               대을 이으며 창작해 온 작품들을 한 책자에 기록한 상주 시인들의 공동시집다.

               지금도 그 전총은 도남서원에서 매년 개최는는 낙강시제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 글은 전 도남서원 원장 조순(전 부총리)을 글씨이다,







  

           △ 도남서원 앞,

               경천섬과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가까이 있다.




 



  

           △ 도남서원에서 가까운 곳,

               이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 경천대


  

           △ 중식후 경천대로 이동하였다,





 


  

           △ 이야기 길 안내도,





 


  

           △ 정기룡 장군상







  

           △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간다,







  

           △ 이색 조각공원이라 이름 붙어있다.




 



   

                       △ 복,







   

           △ 기도,







   

                         △ 휴식.







   

           △ 인연,







   

           △ 낚시.







   

           △ 상념,







   

           △ 안식,







   

           △ 소리 (쉿)







   

           △ 이색 조각공원을 거쳐 경천대로 간다.

























 

           △ 무우정,




 






              무우정은 우담 채득기(1604 1646)선생이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을 예견하고 숭명(崇明)의 의리를 지켜

              은거하여 자연에 귀의하러 지은 정자이다.

              무우(無雩, 기우제 雩)란 춤을추며 비를 빈다는 뜻이요, 정자도 기우제터 우담위에 세워졌으나 선생은 자연을

              벗삼아 도(道)를 즐긴다는 풍호영귀(風乎詠歸)의 뜻을 취하여 그 이름을 삼았노라 밝이었다. 무우정은 국난에

              목숨바쳐 신하의 도리를 다하리라 맹세한 충신연주지사 <봉산곡, 일명 천대별곡>의 신실이요 청의 볼모가 된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의 주치의로 특채된 재학지사(才學之士)로서 망국의 한을품은 왕자들과 7년의 생사

              고락을 함께한 충신 우담선생이 천추에 고절(高節)을 세운 유서깊은 현장이다.

              그러기에 정음 김상현, 택당 이식, 계당 유주목 등이 기문을 지어 강산이 절사를 만나 무게를 더하였다 기리었

              거니와 후대에는 경천대 무우정이 낙강시회의 중심이 되어 문향 상주를 전국에 알리는 종루가 되기도 하였다.

              무우정은 옛 것을 지켜 새것을 창출하려는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1758년에는 상주목사 이협이 중건하였고

              1948년과 2005년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으며 먼 뒷날에도 상산낙수 거느리고 늘 여기 지켜섰을 것이다,








  

                        △ 현 선비대학에서 대학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이다.

                            차근차근 조리있게 강의하셔서 멋지다.







             

           △ 경천대 (驚天臺, 일명 自天臺)


               하늘이 지은 절경이라 자천대로 일컬어졌으며,

               대 밑에 기우제터에 우담(雩潭)이 있어 상산(商山)의 신성지였다.






             

           △ 소연분, 관분, 약분?

















           

           △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



               우담선생은 충절가의 후예로 학문에 뛰어나 빙고별좌에 제수된 징사(徵士)요, 신묘한 침술로 국난에 특채된 명의였다.

               1937년 세자와 대군(소현세자, 봉림대군)등이 청의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잡혀갈때 재학지사로 천거되어 왕자들의 몸을 

               보호하란 명을 받았으나 그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사양하다가 도리어 유배되었다.

               1639년에 방면되어 재차부르니 나라위해 목숨바칠 결연한 각오로 충신연주지사 <봉산곡>을 짓고 섣달에 심양으로 달려

               갔다. 그곳에서 봉림대군(효종)과는 군신 이상의 지기로서 사생을 같이하며 망국민의 굴욕과 울분, 복수일념의 忠憤義氣

               를 시로 주고받아 한국 시사(詩史)에 희귀한 시첩 <군신언지록,君臣言志綠>도 남기었다,

               1645년 환국한 뒤 봉림대군의 만류에도 굳이 경천대로 돌아왔음은 초지일관 하려는 신하의 뜻이었고, 충신의 사는 곳이

               나마 보고싶어 화사를 보내어 자천동 28경을 그려 갔음은 임금의 뜻 둠이었다.

               실로 경천대야 말로 지사의 은거지로서 그 입구에 선생의 손때가 묻은 소연분(연을 기르는 그릇), 관분(세수대야), 약분

               (약을 제조하던 그릇)이 고스란히 남은 유적지요 가사문학의 산실이며 충신의 입절지요 효종의 은택지로서 자연과 인문

               이 조화의 극치를 이룬 낙강제일경 상주의 국민관광지이다.    































































  

           △ 봉산별곡,

            

               가노라 玉柱峯아

               잇거라 驚川臺야

               ...................

               이 怨讐(원수)를 못갑푸면

               어늬 面目 다시들꼬

               닛거라 가노라

               가노라 잇거라






            ▣ 상주박물관










 

           △ 상주 박물관으로 왔다,







 

           △ 입구,
















   

           △ 오늘의 해설사님,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종가에 대해서 설명이 있다.








           △ 기획전시실

                "종가"







 

           △ 1부 학문으로 뿌리내리다  /  文

                  

                상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책을 늘 가까이 하며 유학의 바탕인 효제충서 (孝.悌. 忠. 恕)를 실천하고자 배우고 익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의 학문은 상주목사로 부임한 서애 유성룡을 만나 한층 깊어졌고,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학문으로 이름 높인 학자가 많이 나오면서. 상주학맥을 이루었더, 상주의 대표적인 종가들은 이렇게 학문으로 뿌리 내

                릴 수 있었다. 
















   

           △ 종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택리지







   

           △ 종가는 조상을 위하고, 제사를 받드는 그런거지.

               제사는 마땅히 해야 될 일이지.

               종가에 왔으니, 암만 고달파도 해야 되는 게 제사지.


                         윤갑묵(1944뇬샹), 흥양이시 창석 이준 종가 13댜 종부





             


   

          






    

           △ 2부 마음으로 섬기다.  /  孝, 悌

            

               종가에서는 사람의 도리 가운데 효제를 으뜸으로 여겼다,

               종가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와 돈돈한 우애를 나누며,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자손들과 함께  성심껏 제사를 받을며 종가를 대대로 지켜 나갔다.

               그 중심에는 불친위 조상이 계신 사당을 중심으로 윗 사람들을 받들고, 아랫 사람을 위하여는 섬김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효 : 대대로 받들다

               제 : 우애를 다지다.




                3부 나눔으로 실천하다  / 충(忠), 서(恕)


                 종가에는 남에게 덕을 베풀고자 하는 나눔의 정신이 스며있다.  종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남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언제든지 반갑게 맞이하고,  나라와 고을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앞장서서 안팍의 사람들을 잘 보듬었다.  나아가 그들은 향촌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종가와

                 서로 힘을 합해 학교나 의료시설을 세우는 등이웃과 더불어 살아갔다,

                 충 : 충심을 다하다.

                 서 : 배려하며 살아가다.







  

           △ 전시실,







 

           △ 상주 운평리 구상화강암(尙州 云坪里 球狀花崗岩)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에 있는 지질지형이다. 1962년 12월 7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었다.

               구상암(球狀岩)이란, 공처럼 둥근 암석으로 특수한 환경 조건에서 형성되며, 대부분 화강암 속에서 발견된다.

               운평리 구상화강암은 공모양의 섬록암 덩어리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2억 3천만년 전 한반도의 지각이 변동될 때 지구

               안의 마그마가 땅 밖으로 솟아 올라 오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상주 남동쪽으로 약 8km에 있는 운곡리

               계곡 바닥에서 8개의 덩어리로 발견되었는데, 6개는 흐르는 물 속에 잠겨져 있고 2개 만이 물 위에 나타나 보인다.

               지름은 5∼13cm이며, 가장자리는 검은색을 띠고 있다. 모양이 거북이등과 같아서 이 마을에서는 ‘거북돌’이라고도 부르며,

               이러한 종류의 암석은 세계적으로 100여 곳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운평리 구상화강암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희귀하고 특이하며, 암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위키 백과 >
































































































 

           △ 상주 박물관과 나란히 농경문화관이 있다.






 

 

           △ 박물관 앞쪽에 박물관 까페가 아담하다,

               잠시 쉬었다 가도 좋겠다.





             ▣ 우복종택

 

                    우복 정경세 (1563 1633)


     

                    본관은 진주, 자는 경임, 호는 우복(愚伏)이다.  유성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6년(선조19)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1593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군의 소모관으로 활약하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정언. 교리. 정랑. 사간에 이어 1598년 (선조31) 경상도 관찰사가 되엇다. 1623년(인조1) 인조반정으로

                    부제학에 발탁되어 1629년(인조7) 이조판서 겸 대제학에 이르렀다.  이듬해 겸지춘추관사로서  광해군일기

                    편찬을 담당하였다. 성리학에 밝았고 이기설(理氣說)에 있어 이황의 설을 계성하고 이이의 설을 수용하였다.

                    예학에도 조예가 깊어 김장생 등과 함께 예학파(禮學派)로 불렀다.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장

                    (文莊)이다.  상주의 도남서원, 대구의 연경서원, 강릉의 퇴곡서원 등에 배향되었다.




             

                                               






  

           △ 상주군 외서면 우산리 193-1 (채릉산로  799-46)에 위치한다,







  

           △ 저만큼 초가집이 보인다,






 

  

           △ 우복종가는 이곳에서  1-200m 떨어져 있다.







  

           △ 도존당?

               이곳은 우복 종가를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둘러볼 것이다,







  

           △ 제법의 느티나무 아래 비가있다.





 


  

           △ 우복종택으로 왔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英祖)가 우복 정경세 선생의 덕을 기려 하사한 땅에 5세손 정주원이 175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옥이다,

                우산동천 좌측편 넓은 산등성의 중턱에 동향으로 앉아 잇다. 1988년에 복원한 5칸 대문채 가운데 나있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편에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튼ㅁ 자"를 이루면서 앉아있고, 그 뒷편 오른쪽에 우복 선생을

                모신 불천위(不遷位)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사랑채 앞쪽에 네벌대 석축을 쌓고 뒤로 조금 물린 곳에 다시 네벌대 기단을 축조하여 않였기 때문에 이색적으로 높다.

                사랑채에서 대문채 너머 뛰어난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어 산수헌(山水軒)이라 했다,








  

           △ 건물의 배치는 트인 사각형이다,

               보이는 2단으로 기단을 쌓은 위에 사랑채를 앉혔고, 뒤로 ㄱ자형 안채가 있다.




             



  

           △ 우복 종가엔 14대손이 살고있다.

               한참 고추장을 담그고 있다.







  

           △ 안채 옆에 사각형을 이루는 행랑채가 있다.







  

           △ 사랑채 마루를 통해 본 대문채,





 


  

           △ 대충 둘러보고 나온다.

               좌측 사랑채, 우측 행랑채, 뒤로 쬐끔 보이는 건물이 안채인 셈이다,








           △ 사당.

               종택을 올려다 보았을때 우측 뒷편에 있다.







  

           △ 사랑채에 앉아






 

  

           △ 우복 종택을 둘러보고 들머리 도존당, 대산루로 내려간다.















  

           △ 이 초가집은?
















  

           △ 대산루와 부 계정 (對産樓와 附 溪亭)







  

           △ 대문이 닫혀있어 내부로 들어갈수 없다.

                보이는 건물이 대산루인데 부속 건물인 계정은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






  

           △ 대산루

               對山樓 대할 대, 뫼 산, 다락 루,





             ▣ 흥암서원











   

           △ 상주시 연원동 대림해가마을 타운 하우스.

               일종의 전원주택단지로 보면 되겠다.







   

           △ 위 해가마을 입구에 흥암서원 이정표가 있다.

               승용차라면 흥암서원 앞까지 진입 가능하다.








   

           △ 흥암서원은 1702년(숙종28)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준길(송준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05년 흥암(흥암)이라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경내 건물로 흥암사, 진수당, 집의재, 의인재, 어필각 등이 잇다.








   

           △ 진수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있으며,

               정면 5칸,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 뭐라고 그랬는데 모르겠다,

               좀은 보기 힘든 구조이다.
















   

           △ 진수당 뒷편으로 간다.






 

   

           △ 흥암사,

               사우인 흥암사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으며 송준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 집의재,






 

   

           △ 의인재

               집의재와 의인재는 동재와 서재로 유생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 어필비각으로 왔다.







   

           △ 어필비각은 1716년 숙종이 하사한 어서(御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각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경북 기념물 제 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 어필비각 원경,







   

           △ 어필비각과 흥암서원은 서로 이웃하여 있다.






 

   

           △ 흥암서원을 둘러보고 오늘 일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