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경북 봉화기행 1 / 유기공장, 마애여래좌상, 축서사, 오록마을, 오전약수, 각화사, 춘양 만산고택, 서동리삼층석탑,권진사댁, 한수정

정헌의 티스토리 2019. 5. 9. 21:32

          ■ 경북 봉화 둘러보기 / 유기마을, 복지리 마애여래좌상,  축서사,  오록마을, 오전약수, 각화사, 

                                     춘양 만산고택, 서동리삼층석탑, 권진사댁, 한수정.

 

              봉화는 경북의 맨 북쪽에 위치하며 강원도 태백,영월과 백두대간을 경계로 하는 오지에 속한다,

              태백산 부쇠봉을 거쳐 남진하는 백두대간의 남쪽에 접하고 있어 산세가 수려하다. 산으로는 청량산이 유명하며

              청옥산, 선달산, 문수산, 각화산 등등의 산들은 많으나 오지에 속해서인지 외지에서 많이 찾기는 어렵다.

              대체로 산지가 많으나 특별히 뛰어난 지형을 갖추고 있는 곳은 아니어서 은자들이 조용히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

              은 곳인것 같으며, 그래서인지 정자 또한  많다,

              오늘은 봉화읍에서 도로를 따라 축서사 뒷산인 문수산(1205m) 을 크게 한바퀴 도는 과정에 있는 여러 관광지룰

              둘러보고 내일은 오전 분천역과 승리역을 잇는 낙동강 세평하늘길을 걷는 것으로 일정을 잡아본다,


 

          ▷ 가는 길




          ▷ 탐방코스 (2019. 5. 5.)

              봉화 유기공장 - 마애여래좌상 - 축서사 - 오록마을 - 오전약수 - 각화사 - 춘양 만산고택, 서동리 삼층석탑,

              권진사댁, 한수정.



          ▷ 탐방후에


              ▣ 봉화 삼계마을, 유기공장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신흥경로당이다,

                                              앞에서 바라보았을때 바로 좌측에 내성유기,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성유기가 있다,







             봉화읍 신흥마을 경로당으로 왔다,



             내비에 <봉화 신흥경로당>, 또는 <봉화 삼계2리 마을회관>으로 검색하든지 아래의 <봉화 내성유기>로 겸색

             하면 유기마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비에 <봉화 유기마을>로 검색하니 삼계마을 입구로 안내한다, 그런데 이 마을엔 유기와 관련된 어느 건물도

             찾을 수 없다, 삼계마을을 한바퀴 돌아 나오니 상부쪽 도로변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유기와 관련된 이정

             표 (내성유기 아님 봉화유기 인가 싶기도 하다)가 보여,  이 이정표 방향을 따랐다, 처음 진입한 삼계 마을과는

             2~300m쯤 거리에 있는 삼계2리 마을이다,








                 마을 입구이자 신흥경로당 좌측에 내성유기 공방이 있다,



                 외관으로 보기엔 유기공방 매장외는 그저 평범한 마을이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봉화유기의 명성는 전국적으로 알려지 이곳을 '놋점거리'라고 불리기도 했단다,

                 쇠를 녹이는데 필요한 숯의 생산이 쉽고 내성천의 풍부한 물이 천혜적인 입지조건이었기 때문이란다,

                 1919년 태백산 일대의 산림벌채 금지조치와 일제말기의 시대적 변화에 이기지 못하여 쇠퇴하고,

                 현재 김선익을 비롯한 두 가구만이 옛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다,



 





               봉화군에서 관광지로 추천하는 마을인데 싶어 경로당 우측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본다,

               봉화유기공장이 있다,


               봉화유기 매장에 들러 주인에게 물어본다,

               "봉화군 관광안내서에 봉화 유기공장이 있는데 이 마을에서 무었을 구경해야 하오?"

               "예전엔 이 마을 전체가 유기공장이었는데 지금은 두 집만 남아있소,

                마을 입구의 내성유기와 이곳 봉화유기 두 곳 뿐이오"







                봉화유기 매장을 둘러본다,



                주인장, 유기 그릇의 가장자리를 두드려 맑게 울려펴지는 소리를 들려준다,

                정교하게 만든 여러 그릇도 멋있어 보이지만 가격도 만만찮다,

                유기공장은 유기매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끝낸다,





                ▣ 지림사 마애여래좌상











             북지리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을 찾아간다,

             산기슭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일까? 하는 선입관과는 달리 지림사 경내에 있다,








               일반적으로 절이 산속에 위치하는 것과는 달리,

               산 기슭 평지(농지)에 위치하여 접근하기엔 좋다,








               크지않은 대웅전 앞뜰에서 부처님오신날 봉축음악회가 열릴려나 보다,








                부처님전에 인사만 하고,








              앞에서 보았을대 대웅전 좌측편에 극락전을 신축하였다.








               지림사 남쪽편에 북지리 마야여래좌상이 있다,



                믿음의 등, 정성의 등

                부처님의 공덕 바다 다함이 없으며, 큰 광명 시방세계 널리 비추시니 중생의 소원따라 체워 주시옵니다,

                저희들이 누리에 가득 한 자비 광명을,  탐 진 치 삼독에 눈이 가리어 하많은 세월을 윤회하면서

                갖가지 인연으로 자신을 얽어 산 같은 죄업을 쌓았나이다,

                이제 제가 조그마한 등불 하나 보시하여 칠흑같은 어둠을 소명하고자 합니다, 죄업을 참회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등, 정성의 등으로 받아 주옵소서,

                해는 낮에 빛나고 달은 밤에만 빛이 납니다,

                그러나, 제가 바치는 이 지성의 등불은 언제나 꺼지지 않은 영원한 빛으로 남게 하소서.

                저와 저의 가족 지키는 수호등 되게 하시며  정법을 벗어나 헤매는 이 길잡이 되어 부처님 법으로 인도하는

                등대가 되게 하시며 임의 도량 밝히는 법등으로 길이 남게 하소서.

                부처님, 제가 밝히는 이 연등의 인연으로 세세생생 모든 이웃 모든 중생들과 함께 지혜의 횃불을 얻어

                부처님 법에 편안히 머무르기 소원입니다,

                저희 모두 부처님의 광명을 얻어 온갖 죄악을 깨뜨리며 자신 속의 부처 성품 바로 보기 원하옵니다,

                저희 모두 열반의 미묘한 광명을 얻어 진실로 불국토에 태어나기 원입니다,

                천 개의 해가 떠서 비추듯 한없이 깨끗하고 맑으신 부처님

                저희 낱낱으로 모아 올린 기도와 발원의 등을 하나 되게 하시어

                마음 속 간절한 소원을 이루게 하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봉화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국보 제 201호, 1980. 9. 16.)



                        이 마애불은 자연 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다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

                        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써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입은 옷은 가

                        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 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까지 덮고있다, 손모

                        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

                        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머리광배

                        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제 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 안내표지판에서>







                 오랜 세월이 흘러서 곳곳에 보수한 흔적이 보이고 불상의 좌측 뒷머리쪽으로 마멸이 심한것 같다,

                 이 불상은 1947년 수월암(현 지림사) 부지 정리중 발견되었으며,

                 본 불상의 보존관리를 위하여 1892년경에 목조 맞배 보호각을 신축하였으며, 1983년 보호각에 단청을 입혀

                 현재에 이르고 있다한다,








                  마애불 앞쪽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요사,






              ▣ 이몽룡의 고향 계서당(溪西堂)




                                              들머리 가평교차로 인근에 축서사 들머리가 있다,








                   계서당이 있는 마을에로의 진입로는 승용차 한대 다닐 정도로 좁다.

                   도로변에 계서당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들머리에 승용차 주차장(대형버스 진입 불가)이 조그만하게 정비되어 있으며 이곳까지 거리는 1~200m쯤,








               봉화 계서당 종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71호)



               계서당 종택은 조선 중기 때의 문신 계서 성이성(성이성 1595~1664) 선생이 살던 집으로 광해군 5년(1613)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생은 남원부사 등을 지낸 부용당 성안의(1561~1629) 선생의 아들로, 인조5년(1627)애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

               목사 등 5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암행어사에도 4번이나 등용되었다,  근검. 청빈. 강직. 직언으로 이름이 높아

               훗날 청백리(곧고 청렴한 벼슬아치)에 녹선되기도 하였다,








               이 고택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비교적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중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랑채인 계서당 (정면3칸, 측면3칸)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사랑채의 오른쪽 뒤편으로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른 사당이 있다,








          안채의 경우는 다른 고택에 비해 규방을 많이 둔 점이 특징적이란다,



          또한 사랑방의 경우 대부분 홑집으로 구성되는데 비해 겹집으로 만들어져 안채의 날개집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체적으로는 경북 북부지방 'ㅁ'자형 주택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현재 정자1동, 방앗간 1동 등은 허물어져 그 터만 남아있고, 그의 13대 후손 성기호씨가 관리. 생활하고 있으며 내부엔

          잡다한 살림살이로 복잡하다,  







             이 건물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17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므로,

             주인 마음대로 수선 할 수 없으니 나름 불만일 수 있겠고,

             지원해 줄 예산이 없는지 지붕은 일부 천막으로 가려있고. 부엌 등 출입문의 보수 흔적도 조잡해 보인다.









          어수선한 주변과 달리 마루에 앉으니 그 느낌은 아담하고, 포근하다,



           성이성 선생 (1595 ~1695)

           호 계서, 본관 창녕

           1595(선조28년)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 또는 동면 문단리) 외가에서 판서공 성안의의 3자로 출생

           1613년(광해군 5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계서당 건립

           1627년(인조 5년) 문과 급제

           관직은 사간원사간, 홍문관 교리 응교 역임.

           다섯 고을 선치(善治)

           어사를 네번 지냄(경상도 진휼어사(43세), 호서 암행어사(43세),  호남 암행어사(46세), 호남암행어사(46세)

           1664년(현종5년) 졸, 향년 70세

           증통정대부 홍문관 부제학

           1695(숙종 21) 청백리에 녹선








             비교적 근년에 (2001년12월) 전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의 연구논문과 보도자료를 보면

             성이성 선생이 춘향전의 중심인물인 이몽룡의 토대가 되는 실제 인물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이 고택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설교수는 99.11. 3일과  23일 일본 및 국내에서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라는 주제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99년도에 조선일보, 매일신문, 대구일보, 시사저널, KBS TV 역사스페셜 등에서 이몽룡은 실존인물로 보도하였다.








               설교수의 말에 따르면,

               춘향전의 전반 인물은 당시 유행하던 민간 설화나 판소리에서 따온 듯하나 후반부의 이몽룡어사의  출현 출도는

               작가(산서 조경남)이 "계서 성이성 어사"를 모델로 한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 근거로 성이성의 현손인 성 섭(成涉)의 교와문고에 준향전의 어사출도 장면과 똑 같은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우리 고조께서 수의어사로 호남지방을 암행하여 한 곳에 이르니, 호남 12읍 수령들이 큰 잔치를 베풀어 술판이 낭자하고

               기생의 노래가 한창이었다, 수의어사가 걸인 행색으로 들어가............ 지필을 달라하여

               樽中美酒千人血  (준중미주천인혈,  술통 준)        동이의 술은 천사람의 피요

               盤上佳肴萬姓膏  (반상가효만성고 안주효,기름고)  소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성의 소리 높더라 ..................

               이어 서리의 어사출도가 외쳐지고 당일 파출수령 6인이고 그밖 6인도 서계올렸다,

               이는 모두 세도가의 자제였다..........호남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라 말하였다,>

               춘향전 줄거리의 절반은 역사적 사실인것 같다. 


                                                                 - 설성경 교수 -








               문간채를 나서,








             우측편에 사당과 굽은 소나무 한그루가 눈에 띈다,


            

             성이성 선생 유적, 유물로는 계서종택, 사당 외,

             묘와 묘비 :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뒷산에 있다,

             계서초당(계서정) : 영주시 이산만 신암리에 소재하며 계서공이 만년에 은거하던 초당으로 방 2칸 툇마루로 겸손한 초당이다,

             사선(紗扇) : 계서공이 조정으로 부터 암행어사(4번) 명을 받고 암행어사 출두시 얼굴을 가리고 직분을 행했다는 얼굴가리개.

                              후손에 의해 보관 관리되고 있다,

             어사화 : 인조5년,1627에 치러진 식년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임금이 직접내린 어사화(종이꽃)를 그 꽃받침과 함께 보관하고 있다,

                         어디에?

             청백인정비(淸白仁政碑) : 다섯고을(합쳔현감, 담양부사, 창원부사, 진주목사, 강계부사를 지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청백인정비가 합천을 제외한 4곳에 있다, 비명이 문집에 전하고 진주비는 지금도 진주성내에서 볼 수 있다,








               보호수

               수령 약 500년, 수고 10m, 흉고나무둘레 1.7m

               성이성 선생이 유년시절 함께 보낸 나무로 고택의 은은함과 소나무의 정정함이 잘 어우러지는데 무게를 두었다,




             ▣ 문수산 축서사










                 물야면 가평교차로에서 약 7km,

                 문수산 서남쪽 중턱의 축서사에 왔다,

                 축서사 이름은 (독)수리 축(鷲),  깃들서(棲), 즉 독수리가 사는 절이란 뜻으로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지혜는

                 바로 큰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님을 뜻한다기도 하고,

                 또 다른 가설로 험준한 뒤쪽 산세가 풍수리리학상으로 독수리 형국이므로 축서사라 명명했다고 보는 이도있다,

                







                 계서당에서 만난 성이성 선생의 후손분은 축서사 물맛이 좋다한다,








                 축서사 앞뜰 주차장에서 바라본 경관이다,

                 해넘어 갈 무렵 이곳을 찾아도 좋을것 같다,








                          물맛을 본다,

                          무엇보다 시원하다.








                    보탑성전을 지나 오른다,








                       사리보탑.

                       고풍스런 멋은 없지만 화려하고 정교하다,








                   이 탑은 불기2549 (2005)년  9월 20일에 세워졌으며,

                   대웅전 계단아래 심검당과 선열당 사이의 마당에 위치하고 있다,









                        탑의 모양은 5층 아(아)자형 한옥식 석탑이고, 기단 길이는 7.3m, 높이는 15.5m이다,

                        조성자는 충남 논산시 광성면  자광불교연구소 김광열씨라 한다,









                  대웅전쪽을 바라보았을때 탑 우측 건물이 선열당,

                  좌측 건물이 심검당이다.








               대웅전 계단으로 오르면서 내려다 본 탑과 보탑성전,








              섬세한 단청이 아름다운 축서사 대웅전,








              대웅전에슨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하고,

              왼쪽으로는 문수보살상,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차리하며 괘불탱화도 함께 모셔져 있다.








                 대웅전 좌측 상부에 삼존불을 조성하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삼존불 앞

                        양쪽으로 석등 또한 섬세하다,








                 삼존불 앞 마당에서 내려다 본 축서사,



                 앞쪽에 보이는 대문 아랫쪽에 강의동이 있고, 좌측 건물이 심검당, 우측 건물이 안양원이다,

                 뒷편 마주하고 있는 건물은 범종각.

                 탑 앞쪽에 보이는 건물이 보탑성전이다,








               좌측 사면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 앞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보광전이 있다,





      



                 이 보광젠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문무왕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광배의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보물 995호)이 모셔져 있다,

                 현 불상 뒤에 목조광배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목조광배은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 돌로 만

                 들었던 광배는 현재 윗부분만 남아있다,








                         보광전 앞쪽에 지방문화재자료 158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등이 있다,


                         이 석등은 고려시대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대석은 방형으로 각면에 2구씩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 팔엽의 복연대를 만들었는데 각 모서리에 귀꽃을 세우고 상면에는 4단의 곡

                         형과 각형의 괴임을 만들어 화사석(火舍石)을 받도록 하였다,








                보광전 뒷편 언덕위에 적묵당(적묵당 / 문수선원)이 있다,

                현재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안거기간 동안 수좌 스님들이 정진하는 선원이다,

                이 적묵당 앞에 축서사 삼층석탑이 있다,







                                                              축서사 삼층석탑








                 응향각

                 큰 스님께서 주석하는 공간이란다,








            응향각 옆마당에도 샘이 있다,








              되돌아 나와,








             안양원쪽으로 내려선다,








                  범종각,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이 있다,

                  축서라를 둘러보고 오록마을로 향한다,




                  ▣ 오록전통문화마을












               오록문화마을은 물야면소재지 동북쪽 근거리에 있다,

               이곳 또한 내비에 오록문화마을로 검색하면 나타나지 않는다,

               물야초등학교 앞에서 윗쪽으로 몇백미터 오르면 된다,















              학교 앞쪽에 오계서곡이란 제목의 시비가 있다,



               오계의 산과 물은 기이하고 심오하다,

               산은 높디높고 물는 절로 맑았구나,

               굽이굽이 풍광은 그윽하고 절경일세

               어부들의 저녁노래 메아리쳐 들리네,

 






               오록문화마을 역시 어디있는지 몰라서 물어서 왔다.

               물야초등학교 앞쪽으로 계속 따라오름을 기억하면 쉽겠다.








              외견상 느껴지는 이곳 전통마을은 한옥이 고급스러워 보이고,

              마당 정원이 대체로 잘 가꿔져 있다,








              주마간산격으로.

              마을을 차량으로 한바퀴 돌아본다,
















               장암정(藏庵亭)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50호,








                 일명 만축정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은 장암 김창조(1581~1637)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경종 4년(1724)에 

                 풍산김씨문중에서 건립한 정자로 지방에서 강학과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다,

                 선생은 선조 38년(1605)에 사마시에 합경하여 의금부도사를 지냈으며 병자호란시에는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의병들에

                 게 봉미를 보내어 군량을 도왔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오량가의 팔작지붕으로 촤측에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우측에 대청을 두었는데

                 우측방을 좌측방보다 조금 뒤로 물려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마당 앞에 작은 연못을 두었다,




                ▣ 오전 약수탕










              오전약수탕 관광지로 왔다,

              입구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들머리 안내도가 있는 이곳에서 약수탕까지는 200m,

                  좌측으로 보이는 도로를 따라 약수터 인근까지 차량으로 오를수도 있다,








                        외씨버선길 안내표시판이 보인다,

                        외씨버선길은 경북 청송 주왕산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영월까지 잇는 길로 이 곳을 거쳐서 간다,



                        외씨버선길 10구간 약수탕 길 (약 13km, 구간 난이도 중,)

                        백두대간수목원 후문 - 주실령 -  박달령 임도 - 박달령 - 오전약수터 - 물야저수지 - 상운사

                        (백두대간 수목원이 조성된 구간내 약수탕길 통행여부는 확인을 요함,  조선 제일의 약수라는 두내약수탕과

                        오전약수탕을 지나 옛 보부상등이 지나다녔던 길을 따라 강원도로 넘어가는 준비를 하는 구간이다.

                        현 두내약수터 주변은 폐쇄되었는지 통행을 금지하는 줄이 이곳 저곳 쳐져 있다.)

                 






               약수탕 관광지,

               약수터와 주변 음식점(주로 약수로 끊인 백숙)이 밀집된 곳으로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약수터 가는 길,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은 별로 없다,

















              오전약수탕



              오전 약수탕은 두 곳에 있는가 보다,

              현 위치보다 윗쪽에 또 하나의 약수터가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또다른 사진을 보면.

              <오전은 쑥밭의 한자 표현이다,  이 약수는 오런리 후평장과 춘양 서벽장을 오가던 곽개천이라는 장사꾼이 쑥밭에

              누워자다 만병통치의 약수가 있다는 꿈을 꾼 후 옆을 보니 약수가 솟고 있어고 이 샘이 오전약수이다> 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다,








              이곳 약수는 탄산성분이 많아 톡쏘는 맛이 강하며 주요 성분은 유리탄산, 망간 ,철분등으로 피부와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설악산의 오색약수, 봉화의 또다른 다덕약수 등등 그의 비슷한 맛이다,








              樂山樂水 人生不老 (요산요수 인생불로)

              주세붕선생의 글씨라 한다,




                    "청량산 육육봉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뿐이로다"했던가
                     한 마리 백구 되어
                     훨훨 김생굴에 앉아보니
                     여기가 선생의 도 닦던 곳

 

                     하늘 아래 구름 밑
                     병풍을 접어 놓아
                     깎아지른 절벽
                     안개인가 구름인가

 

                     태백산 줄기 계곡 따라
                     오전 약수로 내려오니
                    "요산요수 인생불로(樂山樂水 人生不老)"
                     산 좋고 물 좋은 곳 인생 늙지 않으리.

 

                                   이지영 시인의 작품 : 청량산







              오전약수탕이 소재한 지역의 자연부락명은 물집마을이라 불려지고 있다,

              이 약수터는 조선시대에 어떤 보부상이 발견하였다고 해서 보부상을 조각해 세웠나 보다,

              조선조 제 9대 성종대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되었으며,

              조선조 11대 중종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 선생이 즐겨 이 약수를 찾았다 한다,

              찬양시 4편이 전해지고 있다.








              약수터 주변에는 여러 음식점들이 있고,








              윗쪽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둘러보러 간다,








               약수정을 지나 오른다,








            주상절리 모형과 가운데 인공 폭포를 만들었으나 정교함에서는 부족하다,

            윗쪽이 공원이다,








           공원으로 올라본다,
























                마을내 낡은 디딜방아,




                ▣ 두내약수탕,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오전 약수탕에서 주실령을 넘어간다,

                     두내약수터로 추정되는 곳에 이곳 저곳 통행을 금하는 줄이 쳐져 있다,

                     둘러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친다,

                     조금 내려오면 국립 백두대간수목원 후문을 지난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아시아 최대의 수목원이란다,

                     매주 월요일과 1월21일, 설연휴, 추석연휴에는 휴관하며 입장시간은 하절기에는 5시까지 이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중,고등학생) 4,000원, 어린이 3,000원이먀 무료, 할인 단체할인 있다,


                    


                ▣ 각화사









                         각화사에 왔다,

                         뒷산은 각화산인데 편액은 태백산 각화사이다,

                         아마 태백산 사고지가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월영루 우측으로 요사가 있다,








                대웅전,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문은 닺혀있다,








            태백선원.



            태백산 사고지가 있다는 말만 듣고  아무 사전준비 없이 각화사에 들르다 보니

            이곳 각화사에 사고지 건물이 있는 줄 알았다.

            주변 두어 건물이 사고 형태를 하고 있는듯 하였으나 직감적으로 아님을 알 수 있다,


 






               봉화 태백산사고지 (사적 제 348호)는 각화사 경내에 있지 않다.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산 126-5번지,

               각화사 뒤편에 ‘사고지골’에 위치한다.『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해 오던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가 있던

               자리로 조선시대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이 사고(史庫)는 1606년(선조 39)에 건립(建立)하여 1913년까지 약 300여 년

               간『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하여 왔었다.
               이곳에 보관되어 오던『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후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경성제국

               대학으로 이관되었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에 보관 중이다.
               본 건물은 왕조실록 이관 후 약 30여 년간 방치상태로 있다가 해방 전후의 시기에 방화로 인하여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산사태와 잡목으로 유구들이 매몰되어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1988년 8월에 발굴정비계획에 따라 대구대학교 박물관이 건물의 유구를 발굴하였다.
               이 건물은 실록각(實錄閣), 선원각(璿源閣), 폭쇄각, 근천관(近天館) 등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록각은 중층으로

               아래층이 정면 4칸, 측면 4칸, 위층이 정면 2칸, 측면 2칸이며 선원각은 중층으로 아래층이 정면 4칸, 측면 3칸, 위층이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



                                                             < 봉화군청 문화관광과>








                며칠 않있어 초파일인데,

                연등 수가 많지 않다,
















                 태백산 각화사 편액을 달고있는 해탈문 이면에는 월영루(月影樓) 편액을 달았다, 









                         월영루 옆에 삼층석탑이 있다,

                         대체로 대웅전 앞쪽에 있는데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대충 둘러본 각화사이다.

              조금 아랫쪽에 부도탑 군락이 있으나 차창으로만 본다,




              ▣ 춘양면 만산고택



                                      춘양면 소재지 내에 만산고택, 춘양성당, 권진사네, 서동리3층석탑(춘양중학교내)에 있다,








                 춘양면소재지 내에 위치한 만산고택으로 왔다,















                   만산고택은 조선 후기 때의 문신 만산 강용(1846~1934)선생이 고종15년(1878)에 건립한 집이다,

                   선생은 중추원 의관과 도산서원장 등을 지냈다. 1910년 이후에는 망국의 한을 학문으로 달래면서 마을 뒷산에

                   망미대를 쌓고, 그곳에 올라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를 읋었다고 한다,








              이 고택은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가 있고, 가운데에 솟을 대문이 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정면에 측면출입형의 'ㅁ'자형 본채가 있다,

              사랑마당 왼쪽으로 서실을 두고, 오른쪽에 토석 담장을 두른 별당인 칠류현이 있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만산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서실,

             건물의 짜임새는 낯설게 느껴진다,








                 서실(書室)

                 좌측편의 한묵청연 현판은 영친왕의 친필이라 한다,








                  마당가 대추나무 한 그루,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되어보인다,








              측면 출입문을 통해 안채를 보고,








              별당 칠류헌을 둘러본다.








             칠류헌 현판이 걸려있다,








             별당으로 별도의 담장을 가지고 있고, 화장실, 놀이(투호)마당도 있다,








              사랑채 마당으로 되돌아 나왔다,

              다육실물을 비롯한 여러 화분을 볼 수 있다,

              이집 안주인은 이러한 식물가꾸기, 성당, 봉사활동으로 여생으로 보내고 있다한다,

   







              숫자도 많고.

              관리도 힘들겠다,








               안채 좌측편 작은 문을 들어선다,

               안채와는 편의상 신발을 벗고 다닐수 있도록 은박매트를 깔고,








              연결 되는 곳은 야외 찻집이다,








                옆집 같은 이웃집으로 연결된다,

                한집이면서 다른집 같다,








               이 집도 대단하다,

               저쪽이 또다른 대문간쯤 되어 보인다,








              본채.
















                이 건물도 'ㅁ'자형이다,















                마당 가.

                각종 소품들과 다양한 식물로 인해 둘러보는 재미가 쏠솔하다,

                고택체험도 겸하고 있으므로 하룻밤 유숙도 운치있을 것 같다,





                 ▣ 서동리 삼층석탑





                춘양중학교로 왔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춘양 중학교 교정안에 있다,

           








                           이 삼층석탑은 보물 제 5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동탑 높이 3.9m,  서탑 높이 3.97m이다,



                           이곳 삼층 석탑은 동탑과 서탑의 쌍탑형식인데 신라고찰이었던 람화산(람화사)의 옛 터로 알려져 있다,

                           이 탑은 신라식 일반형 석탑으로서 상.하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형성하였는데 각부의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신라 하대 9세기경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에 이 탑을 해체 복원하였는데 당시 서탑은 사리함을 넣었던 사리공만 남아 있었고, 동탑에서는 사리병

                           과 함께 99개의 작은 토탑(土塔)이 발견되어 현재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서쪽탑,








                           동쪽 탑,








                   삼층석탑을 둘러보고 나니

                   시간은 오후 6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해가 많이 길어져서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 성암고택 (권진사 댁)




















                 이 집은 성암 권철연 (1874 ~1951) 선생이 살던 집으로 1880년경 건너 마을인 운곡에서 이곳으로 정착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만석봉을 뒤로 두고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9칸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마당 좌측에는 3칸의 서실이 있으며 대문채와 마주하여 ㅁ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족 허리부분에는 토담을 좌우로 뻗어 내외 마당으로 공간부분을 하고 있으며 동향건물임에도 툇마루

                 를 설치하는 등 남측면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평면 구성이 돋보이는 주택이다,


                                                          <안내문에서>








                서실이다,








                                       표 창 장


                                                               고.  권상경


                 위는 숭고한 애국정신을 발휘하여 조국의 자주독립운동에 헌신 노력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이에 표창함


                              2005. 11.17

                 

                                             대통령 노무현


                                                  이 증을 대통령 표창부에 기입함


                                             행정자치부장관 오영교








                  권상경 (1890.9. ~ 1958. 7. 호 석당,  성암 권철연의 장자)


                  1919년 파리평화 회의 '독립청원서'의 대표 면우 곽종석의 수제자로 '독립청원서' 서명 운동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였으며, 1926년 유림단사건시 심산 김창숙의 독립자금 모집시 거액을 제공하고 김창숙 선생을 은익

                  하는 등 독립운동에 가담하므로써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 감옥에서 장기간 옥고를 치룸.








               정침 허리부분에서 토담을 좌측으로 뻗어 내외 마당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안쪽 공간에서 바라본 안채,








               안채를 살짝 들여다 본다,








                마당으로 되돌아 나온다,








                         면암 고택에 오래된 대추나무가 있다면,  

                         이 집에는 수령 수백년의 희양목(도장나무)가 있다,





                 



                우측으로 돌아가 본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 외에 역시 토담을 쌓아 내외 마당을 구분하였다,








                    안채쪽,








                      무슨 나무일까?



 

                      ▣ 봉화 한수정




                 신,구 춘양교 인근에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선조 41년(1608) 충제 권벌(1487 ~ 1617)을 추모하기 위하여

              손자인 석천 권래(1652 ~ 1617)가 세운 정자이다,








               충재는 조선 중종때의 문신으로 예조판서를 지냈고 사후 영의증에 추증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충재가 세운 거연헌(居然軒)이 있었으나, 화재로 인해 없어지자 이 정자를 세우고,

               찬물과 같이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하여 한수정(寒水亭)이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주위에는 와룡연이라는 연못과 초연대라는 넓은 바위와 보호수로 지정된 400여년 된 회나무가 있다,








               숙소를 춘양면 소재지의 여행자 숙소로 정했다,

               저녁 먹으러 간다,

               주인에게 적의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억지 춘양시장 내에 있는 동궁이라는 식당을 추천해 준다,








              춘양시장 내,


























               이 지역에서는 맛집으로 통한다.

               혹 춘양면을 지난다면 이 집을 들러도 후회하지는 않을 집이다.

               오늘은 바쁘게 돌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