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의 산

강화도 둘러보기 / 진봉호, 동막해변, 석모도자연휴양림, 보문사,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강화 고려궁지,

정헌의 티스토리 2020. 1. 27. 19:52

■ 강화도 둘러보기  / 진봉호, 동막해변, 석모도자연휴양림, 보문사,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강화 고려궁지

 

여러해 전 화도에서 출발하여 마니산 등산과  동막해변, 초지진, 전등사, 정수사를 둘러본 적이 있다.

봄철 진달래로 유명한 고려산, 석모도 해명산 낙가산등도 가볍게 산생하기에 좋은 곳이지만, 오늘은 석모도 주변과 강화읍내를 둘러보기로 한다. 

손녀보러 서울갔다 귀가하는 날 친구와 찾아본 강화도이다.

 

 

▷ 가는 길

 

 

 

 

 

▷ 탐방코스 (2019.  1. 16.)

진봉호 - 동막해변 -외포항 - 석모도자연휴양림 - 보문사 -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 강화 고려궁지.

 

 

 

▷ 탐방후에

 

강화 초지대교를 건너 해안을 따라간다. 동막해안과 중간 점심식사 장소를 찾기 위해서다.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진봉호라는 상호의 음식점에 들렀다. 주로 회와 해물 위주의 음식점이다.

조금 이른 중식후 동막해안을 거쳐 석모도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동막해안은  해수욕장으로 옛 기억과는 달리 해변 소나무 숲과 펜션, 음식점 들이 여럿 있다.

 

 

 

▣ 석모도 자연휴양림.

 

 

 

석모도 자연휴양림으로 왔다,

가벼운 산책 코스가 있다면 걷기 위함이다.

 

 

 

 

 

 

 

 

 

 

 

 

 

 

 

 

 

 

 

 

 

 

 

자연휴양림 윗쪽이다.

상봉산쪽으로 오르는 산책로와 임도 갈림길이 있다.

두 길은 윗쪽 전망대서에 서로 만나게 된다.

두 길다 크게 걷기 좋은 길이다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임도를 따라 올라본다.

저만큼 커브가 우측으로 심하게 돌아가는 곳에 수목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삼산면 소재지 방향,

다음 지도를 확대하여 상봉산과 석가산, 석모도 수목원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마음에 가나 산책코스로 아주 좋다 싶은 생각은 들지않는다.

적의 윗쪽 팔각정까지만 갔다온다.

 

 

 

▣ 석모도 보문사.

 

 

 

보문사로 왔다.

아래 주차장에서 약간 오르막의 발품을 팔아야 한다.

주차료는 시간 관계없이 2,000원, 문화재 관람료 또한 어른 1인당 2,000원이다.

보문사는 예로부터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해수관음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문사 극락보전

 

보문사의 중심에 자리한 극락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내부 60평 규모로 1972년 정수스님이 중수하였다,

법당 내부에는 상단에 아미타부터님과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과 신중탱화가, 하단에 영가단이 모셔져 있다,

 

 

 

 

 

 

 

법음루(法音樓) 편액을 달고있다,

 

 

 

 

 

 

 

석탑 뒷쪽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와불전과 향나무 뒷편 거대한 바위아래 석실이 있다.

 

 

 

 

 

 

 

오백나한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 이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명이 앉을 수 있다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다.

오백나한은 2009년 와불전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되었다. 진 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이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문사의 오백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나한님의 좌대에는 봉안에 동참하신 분둘의 이름을 새겼다,

           

 

 

 

 

 

 

 33관음보탑.

 

 

 

 

 

 

 

오백나한전 앞에서 바라본 극락보전,

 

 

 

 

 

 

 

 

 

 

 

 

 

 

 

보문사 석실앞에 향나무가 있다.

 

보문사 석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기묘한 형태를 지니며,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17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3.2m정도이다, 생긴 모습이 마치 용이 용틀임을 하고 있는 듯하여 기묘한 느낌을 주고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6.25전쟁 중에는 죽은 것 같이 보였으나 3년 후에 다시 살아났다한다. 

       

 

 

 

 

 

 

보문사 석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였으며 입구에는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문을 만들었다.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와불전,

 

 

 

 

 

 

 

 와불전의 석와불 규모가 상당하다.

촬영을 금한다는 표시가 있어 아래 사진으로 대한다,

 

 

 

 

 

 

 

 

 

 

 

 

 

 

 

극락보전 옆으로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석불좌상은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웅과 부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것이다.

 

 

 

 

 

 

 

마애석불좌상은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은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정병 (淨甁 :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들고 있으며,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앞 바다 경관이다.

 

 

 

 

 

 

 

 

 

 

 

 

 

 

 

 

 

 

 

 

 

 

 

석조여래좌상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보문사 탐방을 마무리 한다.

 

 

 

 

 ▣ 용흥궁


 

 

용흥궁, 용궁리 강화읍내 강화성당 앞쪽에 대형과 소형으로 구분된 주차장이 있다.

현 대형주차장은  폐쇄하여 주차를 금하고 있으나 소형주차장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이곳 주차장에 주차하고 용흥궁으로 왔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된 용흥궁은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이라 한다.

 

 

 

 

 

 

 

원래는 민가였던 모양이나 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1853년(철종4) 강화유수 정기세가 현재와 같은 건물을 세우고  용흥궁이라 이름하였다. 그 위 1903년 이재순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  잠저구기비각 1동 등이 있다.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조형되어 질박학 느낌을 주고 있다.

 

 

 

 

 

 

 

용흥궁 뒷편 언덕 위에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 있다.

 

 

 

 

 

 

 

 

 

 

 

 

 

 

 

 

본 성당은 고요한(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 공사는 궁월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중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물양식은 한국 정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당 뒷쪽의 건물이다,

 

 

 

 

 

 

 

뒷쪽으로 후문이 있다.

 

 

 

 

 

 

 

후문쪽에서 바라본 강화초등학교,

고려궁지는 사진상 초등학교 건물 좌측 뒷편에 있다.

 

 

 

 

 

 

 

 고려궁지 앞에 조그만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앞쪽에 강화성당 건물이 근대적 느낌을 약간 보여주고 있다.

 

 

 

 

 

 

 

고려궁지 입장료 어른 900원,

주차료는 없다,

 

 

 

 

 

 

 

강화고려궁지는 글자그대로 고려 시대 궁궐이 있던 곳이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19년(1232)에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길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전하여 환도(1270)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

사진상 건물은 강화유수부 동헌이다,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 책임자인 유수가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다. 인조 16년(1638) 유수 김신국이 수리하었고, 영조 45년(1769)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顯允觀이라 하였다. 명위헌明威軒이라는 현판은 영조때 명필인 백하 윤순이 쓴 것이다. 건물 구조는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의 단층집으로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 사업으로 정비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왕이 행차 시에 머무는 행궁 외에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장녕전, 만녕전 등을 건립하였으나  이 또한 병자호란과 병인양요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1964년에 사적 제 133호로 지정 되었고, 1977년 강화 전적지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조선 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 등이 남아있다.

 

 

 

 

 

 

 

외규장각.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강화도가 보장지처(保障之處)로 크게 주목 받게되고 궁왕과 왕실 기록물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정조 6년(1782)에 건립하였다. 왕립 도서관 역할을 하였으며, 왕실과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 등의 서적과  왕실물품을 보관하였다.  병인양요(1866)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과 여러 건물들을 파괴하여 서적을 약탈하였다.1995년부터 2001년에 걸쳐 발굴조사를 통해 2003년에 건물을 복원하였다.

 

 

 

 

 

 

 

 외규장각 내부,

 

 

 

 

 

 

 

 

 

 

 

 

 

 

 

 

 

 

 

 

 

 

 

 

강화부 종각,

고려궁지를 둘러보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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