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구미 냉산

정헌의 티스토리 2009. 10. 8. 00:14

          ■ 구미 냉산  ( 491.6 m )

 

               대체적으로 육산이며 소나무 숲으로 걷는 재미가 있으나 명산의 반열에 올리기에는 부족하다.

               산 자체 보다는 도리사 절이 더 유명한 산으로 기억되며, 해동최초가람 태조산 성지 도리사는 구미시 해평면

               송곡동 태조산(냉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신라 눌지왕때 (417년)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지었다는 해동불교의 발상지라 한다 

  

           ▷ 가는 길

               구미시 - 구미시 해평면 -  해평 송곡리 도리사

 

 

 

           ▷ 산행코스

               도리사 - 좌측능선 - 냉산  - 헬기장 - 능선 - 도리사 - 주차장 ( 약 2시간 30분  / 2009.  2.   )

 

           ☞ 주차장 1에서 출발하여 산림욕장, 태조산정, 능선길, 정상, 헬기장, 도리사를 거쳐 주차장1로 하산하면

               적당한 하루 코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산행안내도

 









                   




 

                                 일선리 

                                               일부 등산로 추가 표시를 했다.

                                         일선리에서 조류생태연구소 사이, 주차장2 의 녹색및 흰색 점선은 임도이다.

 


 

 

         ▷ 산행 후에


   

           △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 가는 길이다,

               해동최초가람 태조산 도리사는 이 일주문에서 차량으로 한참 이동해야 한다.  








   

           △ 도리사 1주차장에서 도리사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제2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우측으로 임도가 있다.

               제 2주차장을 지나 좀더 올라가면 도리사 대략 300m 정도 못미쳐 작은 주차장이 있다.






 

   

           △ 2주차장 주변의 임도,

               산행후의 느낌은 태조산 주변의 임도와 산행을 적이 엮어 코스를 정함도 좋을것 같다.





 


   

           △ 도리사를 둘러본다.









   

           △ 하서 김인후


               김인후(金麟厚,1510 ~ 1560)는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전남 장성 출신으로 본관은 울산이다. 자는 후지, 호는 하서(河西), 담재(湛齋).

               김안군의 제자로 수학하였으며, 후에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이 되어 이황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1540년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에 등용되었다가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이 되었다. 1543년 홍문관박사 겸 세자시강원설서·홍문관부수찬이 되어 세자를 보필하고

               가르치는 직임을 맡았다. 그 해 부모 봉양을 위해 옥과현감(玉果縣監)으로 나갔다.

               1545년(중종 39) 중종이 죽자 제술관(製述官)으로 서울에 올라왔으나, 1545년(인종 1) 인종이 죽고 곧이어 을사사화 

               ((乙巳士禍))가 일어나자 병을 핑계로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황의 이기 일물설에 반대하였으며, 이기는 혼합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뒤 1554년까지 성균관전적·공조정랑·

               홍문관교리·성균관직강 등에 제수 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매년 인종 기일인 음력 7월 1일에는 집앞 난산에 올라 북망통곡을 하며 인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문묘(文廟)를 비롯한 장성의 필암서원(筆巖書院), 곡성 옥과(玉果)의 영귀서원(詠歸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천문·지리·의약·산수·율력에 정통하였다. 제자로는 정철(鄭澈)·변성온(卞成溫)·기효간(奇孝諫)·조희문(趙希文)·오건(吳健)

               등이 있다.

               시문에 능해 10여 권의 시문집을 남겼으며,

               저서로는 하서집(河西集),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서명사천도(西銘四天圖), 백련초해(百聯抄解)등이 있다.


                                                                     < 위키 백과 >





 

           △ 지나온 곳,










           △  천년고찰 답게 운치가 있다. 









 

           △  설선당,








   

           △ 태조선원, 도리사.
















   

           △ 극락전이다.











           △ 보물 470호로 지정된 석탑은 화엄석탑이라 부르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는 3.3m 이다.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같은 유형을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얇은 지대석을 놓고 장대석을 세운 기단을 만든위에 판석으로 갑석을 삼고 그위에 모전석탑처럼 작은 석재로

               쌓아 답신부를 구성하였으며, 윗 부분은 노반위에 연꽃이 조각돠 보주를 얹어 놓았다.

                               

                                                                      < 도리사 >


 




           △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답 시주질비(阿道和尙 事蹟碑 및 桃李寺 佛糧畓 施主秩卑)

          

      

               이 두 비석은 도리사 남쪽 비탈진 송림의 평평한 대지에 남향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아도화상 사적비는 1655(효종6)에 에운것으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을 적은 것이며 배면에는

               자운비(紫雲碑)가 음각되어있다.

               대석은 자연석이며 전면에는 쌍룡, 후면에는 4룡을 조각하고 그사이에 운용(雲龍)을 조식하여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불량답 시주질비는 도리사에 불량답을 시사한 시주와 전답량을 기록한 것으로 1712(숙종38)에 세워졌다.

               비의 전.후면에는 양각한 연봉과 줄기가 조각되어 있고. 좌.우측면에는 2단의 운조대가 있다.

               그리고 정상의 중앙에는 보주가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승통 능철의 주관하에 조성되었으며, 석수 김성원이 글씨를 새겼다. 


                                                           <도리사 홈페이지에서>


























































   

           △ 아도는 중국 위나라 아굴마의 아들로 일명 묵호자라고도 한다. 



               신라 19대 눌지왕때 19세의 나이로 어머니 고씨도령의 명에 따라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몰래

               들어왔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는 이미 불교가 전파된지 오래이나 오직 신라만은 고유의 신앙과 왜래 문물에 배타적 이어서

               불교 포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까닭이다. 

               그는 묵호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군 도개면 도개동에 와서 모례의 집에 숨어 낮에는 우곡에서 
소와 양을 기르

               는 목동이 되고 밤에는 많은 사람을 모아 불법의 자비로운 진리를 강론하기를 3년이나 계속하였다.

               그때 중국 양나라에서 사신으로 하여금  신라에 향을 예물로 보내 왔으나  그 사용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모례가 아도에게 물으니 그것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 하기가 이를데 없고 소원을 말하면

               반드시 영혐이 있는 법이다. 신성이란 참에 지나는 것이 없다.

               삼보란 불타, 달마, 승가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시라고 일러 주었다.

               그때 나라에서는 성곡 공주가 큰 병이 들어 여러 의원을 불러 온갖 약을 써 보았으나 효험이 없고 날이 갈수
록 병은

               더해갔다. 마지막으로 아도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는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들였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공주는 병이

               완쾌 되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아도에게 큰 상을 내리고 흥륜사 등 일곱개의 절을 지어 주었다 한다.

               그러나 왕이 승하한 후 불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 아도는 금수굴(金水窟)이라는 것에 들어가 숨었다.

               이 굴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굴이었으나 아도가 들어간 후 불가에서 불공을 드리는 날이면 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고 한다. 비록 아도의 포교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 공적은 크다.


                                                                   <도리사홈페이지에서>







   

           △ 도리사. 극락전, 화엄석탁,








   

           △ 적멸보궁으로 이동한다.









    

           △ 도리사 좌측 뒷편으로 적멸보궁. 



                새로 건립된 석가여래사리탑은 높이 560cm에 폭 390cm로서, 그 형태는 고려시대 팔각부도(八角浮屠)를 본따

                1987년에, 그리고 불사리 예배소인 적멸보궁(寂滅寶宮)은 1982년에 주지 법등화상(法燈和尙)에 의하여 각각

                건립 되었으며,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총 19평이다.


                                                        <도리사홈페이지에서>







   

           △ 사리탑,

               적멸보궁 뒷편에 있다.











 

            △ 팔정도,

                심오한 뜻이야 다 알겠냐 마는.....

 




























          △ 도리사에서 이곳 저곳 약 50분여 소요하였다.







          

 

   

           △ 태조산(냉산)에 오르기 위해

               적멸보궁 인근에서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 초반 소나무 숲길이 좋다.

               나름 기대가 된다. 






 











  

           △ 등산로는 정상으로 바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산사면을 따라 좌측 능선으로 돌아오른다.







 

           △ 특이함을 기대해 보지만 별 볼게 없다.







 


         △ 작은 산이라도 올를때는 힘든다.






 

 



          △  북쪽,

               건너편 청화산 능선이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  냉산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올랐습니다. 









  

           △ 능선길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 잠시 쉬기도 하고,







































          △  이름없는 봉우리에 올랐다.


















 

          △ 정상이 가까워 졌다.






 












      △  정상 부근에서 출발 지점인 도리사가 아래로 보인다.  

 










 


               

 




     

           △ 도리사에서 천천히 약 40분,

               냉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표지석은 없지만 다녀간 많은 흔적은 남아있다.







          △  특별한 조망이 있거나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곳은 아니다.

 



                

 


 

 

     

           △ 정상의 삼각점과 주변.






 

    

           △ 정상 인근 바위가 귀한 산이라서,



































 

          △ 동쪽 능선을 따라 이동한다.





  


 











 

            △ 능선상 돌무더기.

                봉화대도 아니고,.......... 
















   

           △ 냉산 정상에서 10분여 조금더.

               널찍한 헬기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동쪽 능선을 버리고 남쪽 도리사 주차장  방향 작은 지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 헬기장 바로 아래에서 쉬었다 간다. 





 

 

  









          △ 소나무 숲길이 제법 경사가 있다. 











    



   




 

           △ 이 능선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 외에 우측으로 약간 희미하지만 등산로가 열려 있다.

               차량을 도리사 바로 아래 주차해 두었기 때문에 능선을 버리고 우측 도리사 방향으로 산사면을 따라 진행한다.

               특별한 이정표는 없다.







     

           △  도리사 등산 안내도에 헬기장 아래 능선에서 도리사로 잇는 붉은색 점선의 길입니다.  

  







     

           △ 너덜겅을 건넌다,








        

           △ 대체로 평탄한 길로 바뀌었다.


 

               이 길을 따라 진행하다 보면 제법 넓은 임도를 만나고 이내 길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측 방향 도로를 따라 약간 올라가면 아래 사진으로 이어집니다.

               좌측 길을따라 조금 진행하면 넓은 길은 끊어지고 한두사람 지나간 아주 희미한 흔적만 있다. 





 

 

            △ 이곳은 탑이 있는 극락전 뒷편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왔다.



 

 




           △ 정상에서 약 50분 조금더,

               헬기장에서 약 40분여 소요되어 도리사로 내려온다.

               깨끗하게 다음어진 담장을 돌아 나오면 극락전이다.

                  경내를 지나  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가 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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