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처녀를 두고 한 내기

정헌의 티스토리 2010. 5. 7. 21:05

            처녀를 두고 한 내기


   소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자 김 선달의 가슴은 공연히 허전해졌다.
  「올 가을에는 어디로 갈까.......」
   이런 상태로 집에 앉아 있다 가는 가슴에 구멍이 날 것만 같았다.
   어디로 걸음을 옮길까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명월이......』
   명월이는 지난 봄 한양에 갔을 때 하룻밤 정분을 맺은 기생이었다.

 

 

   김 선달이 정분을 맺은 여인이야 한두 명이 아니지만 웬일인지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면 이따금 명월이의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그래, 한양에 가서 명월이의 복사꽃 뺨이라도 실컷 어루만지고 오자」
   단지 그 생각 하나만으로 김 선달은 노자 한푼 없이 집을 나섰다.
   구수한 입담과 남의 배꼽을 빼놓을 만한 재담을 겸비한 김 선달인지라 밥 한 그릇 얻어먹고 가을 서리를 피해

   누울 수 있는 자리 하나 마련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 날 밤도 어느 주막에 들어가 술과 고기를 진탕 얻어먹으면서 그 특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웬 놈인데 이렇게 잠도 안 자고 밤을 새워 떠드는 거냐?』
   밤을 새워 이야기가 끊이지를 않는데, 옆방에 들었던 세 명의 선비들이 새벽녘이 되자 웃음소리에 선잠을 깬 듯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주인공이 김 선달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주막을 잘못 찾아 들어왔다는 식으

   로 체념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선달이라고 하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재담꾼인데,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아예 말을 걸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김 선달이 아침상까지 잘 받아 먹고 길을 떠나려는데 마침 옆방의 선비들과 동행이 되었다.
  「보아하니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선비들 같은 데 태도가 영 거만하군.  음, 이 자들을 살살 다뤄서 한양까지 갈

   노자나 벌어보아야겠다」

   김 선달은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선비들은 선비들대로 새벽 단잠을 설친 데 대한 분풀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궁리 중이었다.

 


   그들은 한나절을 서로 말도 없이 걷다가 어느 으슥한 산 아래에서 쉬게 되었다.
   그 때 선비들 중 하나가 김 선달을 꼼짝 못하게 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자기 일행들에게 소곤거렸다.
  『저기 옹달샘에서 물을 긷고 있는 처녀가 보이지?』
  『그래. 그런데 저 처녀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김 선달에게 저 처녀의 사타구니를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느냐며 내기를  거는 거야. 아무리 날고 기는 김 선달

   이라고는 해도 벌건 대낮에 어떻게 처녀의 사타구니를 보여 줄 수 있겠나? 아마 김 선달은 저 처녀에게 큰 봉변을

   당하게 될 걸세』

 


 『옳거니, 그거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일세』
   선비 일행은 저희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김 선달을 불러 내기를 걸었다.
  『내기를 하자고? 그거 좋지. 나도 내기라면 사족을 못 쓸 만큼 좋아하니까,
   하하하. 그래 무슨 내기를 하면 좋겠소?』
   김 선달은 벌써 그들의 속셈을 아는 듯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저기 옹달샘에서 물을 긷고 있는 예쁜 색시가 보이죠?』
   선비 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처녀를 가리켰다.
  『그렇소만』
  『저 색시의 사타구니를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겠소?』
  『허허, 점잖은 선비양반들이 농담이 지나치시군. 세상에 벌건 대낮에 어떻게 멀쩡한 처녀의 사타구니를

   본단 말이오?』김 선달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역시 천하의 김 선달양반도 그 일만은 못 하겠다고 꽁무니를 빼는구나.  하하하....』
   선비들은 김 선달을 조롱하듯 한바탕 웃어 젖혔다.


 

  「역시 겉보기에도 건방지더니만 내기를 하자는 것도 저질로 노는구나.
   어디 이 놈들 한 번 당해봐라」
   김 선달은 속으로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는 듯 결심을 굳혔다.
  『좋소.그럼 내가 저 처녀의 사타구니를 보여 주면 어떻게 하겠소?』
  『그렇게만 해 주면 백 냥을 주겠소』
  『알겠소』

   딱 잘라 대답을 한 뒤 김 선달은 처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봐라, 어서 냉큼 나를 따라오거라!』
   김 선달은 처녀를 보자마자 우선 고함부터 질렀다.
   다소곳이 물을 긷던 처녀는 화들짝 놀라 김 선달을 올려다보았다.
  『누구신데.... 어디로 따라오라는 말입니까?』
   처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한양에서 온 포도대장인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너처럼 그것이 두 개 달린 계집들만 잡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수십 명이나 잡아 봐서 이제는  얼굴 생김새만 봐도 환히 알고 있으니 나를 속일 생각은 마라』
  『예? 세상에 망측해라.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김 선달이 얼굴을 험상궂게 찌푸리며 호령을 하자 처녀는 기가 죽어 목소리까지 기어 들어갔다.
   처녀는 처음에 이 사람이 진짜 포도대장인가 하는 의심을 했으나 그 뒤쪽으로 세 사람의 선비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필시 암행포졸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던 것이다.

   김 선달은 기세를 몰아 더욱 다그쳤다.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너처럼 엉덩이가 펑퍼짐하고 허리가 수양버들처럼 나긋나긋하며 뺨이 붉고 콧날

   이 오똑한 계집은 열이면 열 모두 그것이 두 개였다. 자, 시간이 없으니 어서 따라오거라!』
   처녀는 기가 막혔다.
   세상에 그렇게 생긴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자기 하나뿐인가 하는 생각이들어 이렇게 말했다.
  『제 친구 성심이, 곱단이, 옥녀도 지금 포도대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생겼지만 그것은 하나인데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뭐라고? 그럼 그것을 증명해보아라』
  『네?』
   처녀는 깜짝 놀라 가슴이 철렁했다.

 

 

   결국 대낮에 그것을 보여 달라는 말인 동시에, 아무리 포도대장이라고는 해도 그것을 볼 사람은 외간남자가 아니던가.
  『시간이 없다는 데도 이러는구나. 자 빨리 결정해라. 나한테 끌려가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그것을 보이겠느냐,

   아니면  여기서 나한테만 그것을 보이겠느냐?』
   처녀는 망설여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떡하나..... 그래, 끌려가서 뭇 사내들에게 그것을 보여 주느니 아예 여기서 눈 딱 감고 한 번 보여 주고 말자」
   그렇게 결심한 처녀는 눈을 질끈 감고 치마를 번쩍 걷어 올렸다.
   그리고는 치마로 얼굴을 감싼 채 속고쟁이까지 내리고 사타구니를 보여주었다.

  『자, 이래도 저를 의심하시겠어요?』
   처녀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래, 내가 처음으로 실수를 했구나. 이젠 됐으니 어서 옷을 갖춰 입어라』
   김 선달은 그렇게 말해놓고 선비들에게로 갔다.
  『자, 어떻소? 저 처녀의 사타구니를 보았으니 약속대로 백 냥을 내놓으시오』
   선비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 도대체 저 처녀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갑자기 사타구니를 쩍 벌린단  말이오?』
   선비 하나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허허, 내가 그것까지 가르쳐 줘야 하오? 그럼 열 냥만 더 내시오. 그  방법을 가르쳐 드리리다』
  『아, 아니오. 그것까지 알려고 하다간 우리 노잣돈도 모자라겠소. 옛소,  백 냥이오』
   선비들은 팽개치듯 엽전 꾸러미를 던져 놓고 바쁘게 길을 떠났다.
  『하하하, 다음에 또 내기를 할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시오』
   김 선달은 그들의 뒷덜미에 대고 호쾌하게 웃었다.


 

   거금 백 냥을 손에 쥐게 된 김 선달은 다시 처녀에게 가 오십 냥을 건내 주며 말했다.
  『내가 실수를 해서 미안하게 됐소. 나도 사람이다 보니 이럴 때가 있소.
   그래서 지금처럼 이렇게 실수를 했을 때는 열 냥씩을 위로금을 주기로 되어 있는데, 내가 지금 저 사람들에게

   말을 잘 해서 쉰 냥을 얻어 왔소.
   이걸 가지고 나중에 시집갈 때 혼숫감이나 장만하도록 하오』
   이 위로의 말에 감격했는지 엽전 꾸러미를 받아 든 처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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