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원숭이가 준 보물

정헌의 티스토리 2010. 5. 14. 18:59

       원숭이가 준 보물


 옛날 어느 곳에 자식도 없이 단둘이 사는 내외가 있었다.
 자식은 없어도 금실 좋고 인심 좋고 살림살이도 그만하면 남부러울 것 없이살았다.
 그런데 하루는 이 집에 웬 거지 아낙이 밥을 얻어 먹으러 왔다.
 그래서 밥을 한 그릇 퍼다 주고서 가만히 보니, 이 아낙의 배가 남산만하네그려. 만삭이 다 됐단 말이야.
 그런 몸으로 여기저기 빌어 먹으러 다니는 걸 보니 참 안됐다.

 

『보아하니 홀몸도 아닌 것 같은 데, 대체 가장은 어디 있기에 혼자서 그 러고 다니오?』
 하고 물어 봤더니,
『저와 남편은 본래 혈혈단신으로 만나 단둘이 살았는데, 과거 보러 떠난 남편이 일 년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기에

 남편을 찾으러 나섰다가  길을 잃고 이 꼴이 되었습니다』
 하거든. 참 딱하지.
 그래서 주인 내외는 의논 끝에 거지 아낙을 제 집에 두기로 했다.
 몸 풀 때까지만 이라도 여기서 쉬라고 하고, 그 날부터 방 하나를 치우고 거기서 묵게 했다.

 

 거지 아낙은 고마워서 절을 열두 번도 더하고 그 집에 눌러 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지 아낙이 아이를 낳았는데, 참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턱 낳았다.
 주인 내외는 자기 일처럼 좋아서 사방에 금줄을 치고 아이와 어미의 바라지를 지극정성으로 했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궂은일이 따르게 마련인가, 아이 낳은 지 이레 만에 아낙이 그만 산독으로 죽고 말았다.

 

 주인 내외는 슬퍼하며 후히 치상을 하고, 아이는 마땅히 보낼 데도 없는지라 자기들이 맡아서 기르기로 했다.
 자식 없는 집에 비록 남의 아이라 해도 복덩이 같은 아들이 생겼으니 경사라면 경사다.
 주인내외는 온갖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웠다.

 

 동네방네 업고 다니며 동냥젖을 얻어 먹이고 밤낮으로 어르고 달래며 고이 고이 키웠다.
 그런데 아기가 내뱃짓을 그만두고 걸음마를 할 무렵, 뜻밖에도 안주인에게 태기가 있더니 달이 차서 아들을 턱

 낳았단 말이야.
 자식없는 집에 아들 하나만 생긴 것도 감지덕지할 판인데, 한꺼번에 둘을 얻은 셈이니 얼마나 좋아.
 따지자면 하나는 남의 자식이요, 하나는 내 자식이니 정이 더 가고 덜 가는 차이가 있음직 하건마는, 워낙 심덕이

 후한 사람들인지라 조금도 차이를 두지 않고 두 아들을 하나같이 정성 들여 키웠다.

 

 아이들도 커 가면서 절로 부모 마음을 닮는지, 형님 아우 하면서 우애가 극진하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서 두 아들은 장골 사내가 되고 주인내외는 백발노인이 되었다.

 덕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옛말이 맞는지, 그 동안 네 식구가 부지런히 일한 덕분인지 집안살림도

 아주 넉넉해졌다.
 (積善之家에 必有餘慶이요 積不善之家에 必有餘殃이라  선을 쌓는 집에는 경사로운 일이 넘치고 선을 쌓지 않는 집에는

 재앙이 넘친다 그랬다)

 

 하루는 주인 내외가 서로 의논하기를,
『우리가 이제 죽을 날도 멀지 않았으니 아이들에게 사실을 다 말해 주고  재산도 물려주는 것이 어떻겠소?』
『그럽시다 그런데 재산은 어떻게 나누어 줄 참이오?』
『어느 집이든지 맏이가 할 일이 많으니 맏이에게 다 물려주고 둘째에게는 먹고 살 만큼만 넘겨 주도록 합시다』
『내 생각도 그래요』

 

 이렇게 의논을 하고, 두 아이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하고 재산물리는 약속도 했다.
 이러이러해서 맏이가 우리 자식이 되었노라 하고, 맏이는 핏줄을 타고난 자식이 아니지마는 정리는 털끝 만치도

 헐함이 없으니 재산을 맏이에게 물려주겠노라 했다.
 그러니 맏이가 얼마나 놀랐겠나. 저는 여태 부모가 친부모인줄 알고 살아 왔는데 알고 보니 친부모가 아니거든.
 게다가 친자식도 아닌 저한테 재산을 다 물려주겠노라 하니 더 놀랄 일이다.

             맏이는 며칠 동안 끙끙 앓다가 집을 떠나기로 작정을 했다.

 

 

 저는 남의 자식이요 아우는 친자식인데, 저 때문에 아우가 푸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거다.
 차라리 저 하나 없으면 아우가 맏아들 대접을 받고 재산도 다 물려받을 것 아니야?
 그래서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 나왔다.

 

 이튿날 아침에 식구들이 일어나 보니 없고 편지 한 장만 달랑 남아 있거든.
 편지를 읽어보니 구구절절 그 동안 키워 주신 은혜를 고마워하면서, 자기는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어 집을 떠나노라,

 이렇게 쓰여 있단 말이야.
 부모가 놀라서 그 길로 맏아들을 찾아 나섰다.
 집을 떠난 맏이는 정처없이 갔다.

 

 가다 보니 바닷가에 이르게 됐는데, 바다 맞은편 벼랑 위에서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
 뭐가 저러나 하고 가만히 보니, 원숭이 새끼들이 벼랑 위에서 바다 쪽을 보면서 마구 시끄럽게 울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바다 쪽을 보니 어미 원숭이가 바위 끝에 엎어져 있는데, 게 수십 마리가 집게발로 원숭이를 집어서 바다로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다.

 어미 원숭이가 먹이를 구하러 바닷가에 내려간 것을 게란 놈들이 덮쳤나 봐.
 그걸 보고 맏이가 달려가서 게를 쫓고 원숭이를 구해 줬다.
 그러니 원숭이들이 좋다고 치 뛰고 내리 뛰고 하더니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맏이가 바위에 앉아 쉬고 있으려니까, 아까 그 어미 원숭이가 다시 벼랑 위에 나타나서 이리 핼끔 저리 핼끔 살핀다.
 그러더니 벼랑을 타고 쪼르르 내려와서 옆에 놓아 둔 보따리를 냉큼 집어 가지고 달아나 버리지 뭐야. 뭐 손쓸 겨를도 없었다.
 원숭이 몸놀림이 좀 빨라야지. 맏이는 어이가 없어서,
『저런 못된 놈의 짐승을 봤나. 저를 살려 준 은공을 갚지는 못할망정 남의 보따리를 채 가다니』
 하고 탄식을 했다.

 

 보따리에는 헌 옷가지와 짚신 두어 켤레가 들어 있을 뿐이지마는, 그게 없으면 먼 길을 못 간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아까 그 원숭이가 또 벼랑 위에 나타나서 핼끔거린다.
 그러더니 또 벼랑을 타고 쪼르르 내려와서, 이번에는 아까 가져간 보따리를 도로 갖다 놓고 가 버리네.
 무슨 놈의 원숭이가 남의 보따리를 훔쳐 갔다가 돌려줬다가 쓸데없이 장난을 치는지 몰라. 
 어찌 됐든 보따리를 도로 찾았으니 됐지 뭐.
 보따리를 막대기에 꿰어서 어깨에 둘러메고 길을 떠났다.

 

 한참 가다 보니 뒤에서 왁자지껄 소리가 들리는데, 돌아보니 말 탄 군사 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게 섰거라! 당장 거기 서지 못할까?』
 그래서 섰다. 군사들이 와서 맏이를 빙 에워싸더니,
『그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서 끌러 보아라』한다. 보따리에 들어 있긴 뭐가 들어 있어.
 헌 옷가지와 짚신 두어 켤레뿐일걸.

 

 그런데 끌러 노고 보니 이게 무슨 놈의 조화인지 보따리 속에 번쩍번쩍하는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 있지 뭐야.
 그걸 보고 군사들이 대뜸 맏이에게 오라를 지우고 호통치기를,
『이 천하에 몹쓸 도둑놈 같으니라고,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이웃나라에서
  우리 나랏님께 바치려고 실어오던 보물이다. 그런 귀한 걸 훔치고도  살기를 바랐느냐?』이런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원숭이들이 저희 딴에는 은공을 갚는다고 보물을 훔쳐서 제 보따리에 들어 있던 물건과 바꾸어 넣어 놓았나 봐.
 그러나저러나 그 때문에 큰 도둑으로 몰렸으니 탈났다.

 

 맏이는 하릴없이 군사들에게 이끌려 관가에 갔다.
 관가에서는 나라의 보물을 훔친 도둑을 잡았다고 난리법석을 떨면서 문초도 제대로 안 하고 죽이려 든단 말이야.
 아무리 울부짖으며 전후 사정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하기야 원숭이가 보물을 훔쳤다 줬다는 말을 누가 믿겠나?
 이렇게 해서 맏이는 애매하게 도둑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는데, 큰 도둑을 처형한다는 소문이 나니 온 고을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올게 아니야?

 

 그런데 마침 이 때 맏아들을 찾아 헤매던 늙은 내외도 소문을 듣고 그 자리에 오게 되었다.
 구경꾼들 틈에 섞여 형장에 끌려 나오는 죄인을 가만히 보니, 아 그게 바로 자기네 맏아들이거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맏아들이 도둑질을 할 사람이 아니거든.
 부모는 자식을 다 아는 법이지.

 

 저건 틀림없이 누명을 쓴 것이다, 이렇게 짐작을 하고 사또 앞에 나가 애원을 했다.
『사또, 저 아이는 우리 아들이온데 절대 도둑질을 할 아이가 아닙니다.
  부모가 수천 금 재산을 물려주려는 것을 받기 싫어서 집을 나간 놈입니다』
 하고서 그 동안 일어났던 일을 죄다 털어놓았다.
 거지 아낙을 거두어 아이를 얻은 일부터 시작해서 두 아들이 커 온 내력과 재산을 물려주려 했다가 집을 나간 일까지

 세세하게 아뢰었단 말이지.

 

 그랬더니 사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을 한다. 그러더니,
『그 때 그 거지 아낙이 혹 자기가 어디 사는 누구라는 말은 하지 않더냐?』하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나는지라 아무데 사는 아무개라 하더라고 일러 주었다.
 그랬더니 사또가 깜짝 놀라면서 그만 두 눈에 눈물을 줄줄 쏟는구나.

 

  알고 보니 천만 뜻밖에도 이 고을 사또가 바로 그 거지 아낙의 남편이다.
  사연인즉 그 때 과거 보러 갔다가 급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만 급병을 얻어서 쓰러졌는데, 병이 나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 년이 지났더래.

              집을 찾아가니 아내는 벌써 자기를 찾으러 떠나고 없다.

 

 그 뒤로 아내를 찾으려고 원이 되기를 자청하여 이 고을 저 고을 옮겨 다니며 수소문을 했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맏이는 바로 이 고을 사또의 아들이란 말이지.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도둑이라고 죽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효자라고 상을 줘야 할 일이거든.
 그래서 누명도 벗고 친아버지도 만나고 해서 참 일이 다 잘 풀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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