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순천 송광사, 천자암, 천자암봉

정헌의 티스토리 2012. 12. 12. 22:51

           ■ 순천 송광사, 천자암, 천자암봉  (천자암봉 755m )

 

               송광사에서 출발하여 쌍향수로 유명한 천자암을 둘러보고 천자암봉을 오른 후, 송광굴목재를 거쳐 송광사로

               되돌아 오는 코스이다,  여차하여 시간이 되면 굴목재 아래 보리밥집에 들를려 했는데 당일 시간이 부족하여

               들러지 못했다. 산행코스 내내 소나무에 참나무 등 잡목과 산죽이 섞여있어 그다지 등산로 주변 경관이 좋다

               고 할 수는 없만 굳이 매력을 따진다면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천자암봉 조망 등을 꼽을 수 있겠다.


                

           ▷ 가는 길

               송광사 주차장

  

 



 

           ▷ 산행코스

               송광사 주차장 - 송광사  - 천자암 / 쌍향수 - 천자암봉 - 송광 굴목재 - 송광사 - 주차장 

               (점심시간 제외 눈길로 인하여 천천히 약 4시간 50분 소요  /  2012. 12. 9 )

 

 

           ▷ 산행안내도

  

               윗 안내도는 천자암과 천자암봉 주변 등산로가 정확히 표시되어 있고,

               아래 부산일보사에서 제공하는 안내도는 조계산 전체 부분이 잘 정리되어 있다.


 

 


 

 

 

 

  

 

 

         ▷ 산행후에




             송광사 주차장에 주차 후 1~2분 거리에 있는 매표소를 지난다.

             현 문화재 관람료는 3,000원 / 어른1인이다.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승보종찰 송광사 표지석이 있다.


 

 






               청량각 앞 계곡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산책로가, 우측으로 차도가 있다. 








               인도와 차도 아무길이나 올라도 된다.








               중간,

               소규모 편백?  삼나무? 숲도 지나기도 한다.



 

 




            송광사 가는 길,

            입구 주차장 또는 매표소에서 송광사까지는 도보로 넉넉잡아 약 15분여 소요된다.




 




              일주문을  들어선다.

 



 




               송광사 경내는 나중 하산시 들러 보기로 하고,








              보이는 이정표 방향으로 등산로를 따른다.



 

 




                송광사를 지나 조금 오르면 제법의 농지가 있고.

 


  





                이곳 농지가 있는 곳에 조계산(선암사)과 천자암  갈림길이 있다.

           


 





                이곳 갈림길 이정표,

                선암사 6.5km를 알리고 있고, 천자암은  3.4km를 알린다,

                오늘은 이곳에서 우측 천자암으로 오른 후, 나중 좌측 송광 굴목재에서 이곳으로 내려 올 원점회귀 산행이다.

             







              농로를 따라 오르면, 

              제법 넓은 공터?가 있다. 눈에 덮에 무슨용도인지 모르겠다, 

 







             천자암 가는 탐방로가 시작된다.



 

 












               저만큼 운구재.

               송광사에서 약 45분,  입구 주차장에서 약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곳 운구재 이정표.

               송광사에서 1.4km 지점이다,

           







             운구재에서 부터는 초반 대체로 능선을 따르게 된다.



 

 




















                소나무, 참나무 등  등산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편은 아니다.

 





 


            중간 대체로 우측 산사면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운구재에서 2km,  

                약 55분쯤 소요되어 천자암에 도착한다.  








               물론 천자암을 쉽게 오르는 방법은 송광면소재지를 거쳐 차도로 오르는 길이다.

               천자암 바로 아래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천자암은 아래 쌍향수로 인해 더욱 유명하다.










                천년기념물 제 88호로 지정된 쌍향수(곱향나무)는

                고려시대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돌아 올때 짚고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자라게 되었다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무의 모습이 한나무가 다른 한나무에게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태내는 모습이라 합니다.

 



 




                              두나무가 서로 인접하여 엿가락처럼 꼬여 있으며,

                             자세 또한 약간 비스듬하여 사진의 태가 잘 나지 않는다.

 







                         이곳 쌍향수 아래에서 때늦은 간식으로 점심을 때운다.

                         이곳에 오신 보살님으로 부터 따뜻한 커피도 대접받았다.

 

  























































              쌍향수 우측으로 나한전과, 








             산신각을 뒤로하고 천자암봉으로 향한다.

 







              천자암 옆,

              임도수준의 넓은 길을 따라 송광굴목재  /천자암봉으로 향한다.

              천자암에서 송광굴목재까지의 거리는 1.6km를 알리고 있다.

 

 


 

 











              송광굴목재로 가는 길이다.








             우측으로 넓은 헬기장 옆을 지난다.




 

 









 


             쬐금 특이한 바위도 보인다.

 

 



 



             천자암에서 0.8km, 약 35분쯤 오르면

             송광굴목재 0.9km,  (보이지 않는쪽) 배도사대피소 0.8 km를 알리는 갈림길이 나온다.

             천자암봉으로 오르기 위해 송광굴목재 방향으로 향한다.

             두길 다  등산객이 다닌 흔적은 비슷해 보인다. 



 




               갈림길을 지나면  약간의 고산다움을 보여준다.

 

 

           


 



                아래 배도사 대피소 갈림길에서 7-8분,


                등산로 우측으로 전망좋은 곳이 있다.





 



















                아래 송광굴목재,





 



                  우측 멀리 높게 보이는 봉우리가 조계산 장군봉이다,








                사진상 한 가운데쯤 계곡 주변에 보리밥집이 있다.

                그 뒷편으로 선암 굴목재이다.




 




               약간 남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고동산 방향이 조망된다.




 




             조금 이웃하여,



 


 



              천자암봉으로 향한다.



 


 




               천자암봉 정상.

               위 전망좋은 곳에서 1분여 거리에 있다.

               별다른 표지석이나 조망은 없어  대부분 그냥 지나쳐 내려간다.

 








               송광굴목재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간다.
























               천자암봉에서 약 15분쯤,

               송광굴목재에 내려선다.

 

 



 



             이곳에서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까지는 4.4km를 표시하고 있다.

 








               천자암봉 755m,  굴목재 720m,

               천자암봉 정상과 굴목재 고도차이가 35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육안으로 보기엔 좀더 차이가 나야 할 것 같다.








                   굴목재 잠시 휴식후 송광사쪽으로 내려간다,







   

               송광굴목재에서 송광사 방향으로 초반엔 제법 경사길을 내려서면,

               이내 조그만 대피소가 있다.

 

 

 





             길은 많이 평탄해졌다.

 

 

 













             등산로변에 자주 눈에 띄는 작은 단풍나무에서 겨울이지만 가을을 잔재를 느낄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조계산 장군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다.








               위 갈림길 인근이다.

 







              여러 사람들의 흔적 때문에 한번더 되돌아 본다.





 



               선암사/ 장군봉 갈림길에서 2분쯤 내려오면, 등산로변에 <보소의 전설>이란 안내표지판이 있다.



               "보소"는 이곳 절벽 아래 (토 다리 삼거리 약 70m못미쳐) 있는 소의 이름으로, 대들보 褓자에 늪沼를 쓴다.

               대들보 늪이란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름으로 불린 사연의 전설 속에는 조선시대 척불로 핍박받던 송광사

               스님들의 절절한 해환과 항변의 단면이 서려 있다,

               조선시대에는 척불 정책이 취해졌지만 초기인 세종, 성종 조 가지는 비교적 심한 시기가 아니었다, 연산조에 들

               어 본격정인 탄압이 시작되어 명종때에는 고려 말 이후 승려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보우선사를 유폐시키는등 박

               해가 심해졌으며 영.정조때 극에 달하게 된다. 이때 승려들은 팔천(8가지 천민)에 해당되어 노예와 다름없이 공

               역을 해야 했으며, 특히 송광사 승려들의 조계산 산중 노역은 하루도  그칠날이 없었다 한다,  이 때 보소라는

               이름이 생겨난 일화와 전설이 송광사와 인근 마을에는 다음과 같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느날 송광사 승려들이 관아에 사용할 대들보를 운반하다 이곳에서 잠시 쉰다.  한 스님의 눈짓으로 낭떠러지

               소에 대들보를 밀었더니 소로 빨려들어간 대들보가 영영 사라지게 된다.  나무가 없어진것을 알게된 감독이 시

               치미를 때고 돌아와 있는 스님들을 상대로 아무리 조사해도 증거를 찾지 못하자 스님들을 괴롭히며 찾아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견디기 힘든 스님들이 기원하자 며칠이 지났을 때 10리 밖 동강 곡천다리 밑 삼밧

               소에 대들보가 떠올랐다 한다. 그러자 스님들을 괴롭히던 감독은 두려운 마음에 어디로 떠나고 이때부터 대들보

               가 빠진 소라 하여 보소라 부른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등산로변 에서는 보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








               선암사/ 장군봉 갈림길에서 10분쯤 내려오면,

               주등산로에서  좌측으로 약 10m거리에 비룡폭포가 있다.

               별다른 안내 표지판이 없으며 폭포 상부쪽으로 길이 나 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편으로  무심코 지나치시면 못 볼수 있다.

 



  




            비룡폭포 상부 경관이다.



 


 




             송광사로 그의 내료온 지점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천자암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있는 곳이다.

 















             송광사로 내려간다.








               송광사를 경내를 둘러본다.

 




 



















                송광사 대웅보전 이다.       


 

                참고로 몇몇 절엔 00 총림 00사란 말을 쓴다.

                총림(總林)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선종에서, 승려가 좌선 수행하는 도량을 말하며 선원과 강원 (승가대학 또는 승가대학원),

                율원(율학승가대학원) 및 염불원을 갖춘 사찰을 말한다.  현재 조계 종단의 총림은 가야총림 해인사, 조계총림 송광사, 영축

                총림 통도사, 덕숭총림 수덕사, 고불총림 백양사 등 5대 총림이 있다.








               총림은 최고 웃어른인 방장이 법과 수행의 상징으로 대중의 수행을 지도 감독하는 종합 수행 도량이다.

               따라서 방장은 총림을 대표해 대중 수행을 지도, 감독하는 한편  본사 주지, 선원장, 율주, 염불원장 등

               총림 주요 소임을 추천. 임명할 권한을 갖는다.

 







               제9교 본사 동화사, 13교구 본사 쌍계사, 4교구 본사 범어사가 2012년 10월 총무원 종무회의에 추가로

               총림지정을 신청함에 따라 현재는 총 8군데의 총림이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공산(지금의 대구 팔공산) 거조사에서 정혜결사(훗날의 수선사) 라는 신앙 공동체를 조직하고,

              이 운동의 선언문인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使文)」을 발표했다. 여기서 지눌은 왕실과 권력에 빌붙어 세속화되고

              타락해 가는 기존 불교계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세속을 떠나 산림에 묻혀 지내며 신앙 생활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지눌의 뜻에 공감하는 신도들이 몰려 장소가 비좁게 되자 수선사는 송광산의 길상사로 옮겼다. 1205년 송광산은 왕명에

              따라 중국 선종의 발상지인 조계의 이름을 따 조계산으로 이름이 바뀐다.

              지눌의 불교 개혁은 그동안 교종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고려 불교계를 개편하고, 선종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러나 정혜결사는 무신 정권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앙 정치 세력과 연결돼 점차 보수화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정혜결사는 180년간 16명의 국사를 배출해 ‘승보사찰(僧寶寺刹)’의 명예를 얻었다. 

 

                                                                           <  다음 백과에서 >
















              성보 박물관.



 


 



                          능견난사이다.


                          원감국사가 원나라에서 가져온 바루(놋쇠로 만든 밥그릇)로 처음 500개였으나 임진왜란때 왜군이 대부분 가져가고  

                          지금은 29개만 남아있다 한다. 수작업으로 만든 그릇인데 위로 포개도, 아래로 포개도 그 크기가 딱 들어 맞는다.

                          조선 숙종이 전국의 장인을 불러 모아 똑같이 만들도록 하였으나, 만들기는 똑같이 만드는데  포개보니까 한줄로

                          포개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눈으로 볼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구나>라며 원감국사의 바루에 능견난사라는 이름

                          을 붙였다 한다.

 







               비사리 구시.


               1724년 남원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에 쓰러진것을 옮겨와 만들어 졌다고 하나,

               사실은 보성 문덕면에서 옮겨온 느티나무(귀목)라 한다.

               용도는 국가 제사시에 대중을 위해 밥을 담아두는 것으로 쌀 7가마(4천인분) 밥이 들어간다 한다.

               송광사 3대 명물로  비사리 구시와 능견난사, 쌍향수가 있다.

 

          






               우물.

 





























              징검다리를 건너 일주문으로 나선다.






















               대충 송광사를 둘러보고,




 









 


               주차장 윗쪽에 위치한 매표소를 나선다.

               오늘 산행길 내내 눈길이어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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