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의성 둘러보기 / 조문국박물관. 조문국사적지. 탑리 오층석탑. 산운생태공원과 산운마을. 수정사. 빙계계곡

정헌의 티스토리 2021. 5. 7. 23:24

■ 의성 둘러보기 / 조문국박물관. 조문국사적지. 탑리 오층석탑. 산운생태공원과 산운마을. 수정사. 빙계계곡

 

의성군의 주요 관광지는 의성읍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에 고운사와 사촌마을을, 남동쪽 지역으로 금성면의 조문국 유적. 오층석탑. 산운마을, 사곡면의 산수유마을. 가음면의 빙계계곡을 들 수 있겠다. 중앙고속도로 서쪽 지역엔 안계면을 중심으로한 여러면에 산재 해 있는 소소한 관광지도 한번쯤 찾아볼만 하겠으나 인터넷으로 의성 가볼만한 곳을 검색해보면 주요 관광지로 꼽히는 곳이 별로 없다.

오늘은 오전 일정으로 고운사와 고운사 천년숲길을 걷고, 오후엔 주로 의성면 남쪽인 금성면 일원을 중심으로 몇 군데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아본다.

 

 

 

 

▷ 가는 길

    주로 금성면 일원과 그 주변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 탐방코스

 

조문국박물관- 조문국사적지- 탑리리 오층석탑- 산운생태공원과 산운마을- 수정사- 빙계계곡  (2021. 4. 24.)

 

 

 

▷ 탐방후에

 

▣ 의성마늘한우프라자

 

 

의성 고운사 주변에는 식당을 비롯한 상가는 없다.

제법 유명한 곳이라 어느 정도 식당은 있지않을까? 추측했었는데 아예 한 곳도 없다.

고운사 탐방후 의성읍내로 이동했다. 몇몇 집을 찾았으나 어느집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영업을 마쳤고 어느 집은 토요일이어서인지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집도 있다.

 

 

 

 

 

 

의성한우프라자는 고기 구입과 상차림 비용을 구분하여 운영되는 집이다.

고기는 자기 맘에 드는 부위를 구입하면 되겠고, 상차림 비용은 별도 1인당 3,000원? 인가 받는다.

 실내 분위기는 고급스럽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여타 지역에 비해 조금 저렴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 의성조문국박물관

 

 

의성읍 남쪽  금성면에 조문국 박물관이 있다.

조문국 물관과 조문국 사적지는 가까운 거리에 서로 마주보고 있지만 입구?는 다르다.

의성읍에서 금성면으로 접어들어 조문국 박물관의 거대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약 1km 거리에 의성박물관이 있다.

위 삼거리에 설치된 커다란 조문국박물관 이정표와 주변 공터로 인해 이곳이 박물관 예정지인가?하고 잠시 헷갈릴수 있으나 도로를 따라 좀 더 진행하여야 한다.

조문국 박물관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주차료와 입장료는 없다. (물놀이장과 상상놀이터 입장료는 있음)

 

 

 

 

 

 

조문국은 고대 의성지역에 있었던 초기 국가형태(읍락국가)의 나라로, 대동지지와 읍지에 현재의 경북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금성면 일대'에 조문국이 있었다고 전하고, 삼국사기에 '벌휴 이사금이 조문국을 정벌하였다'는 내용이 짧지만 강하게 기록되어 있다한다.

이로써 조문국은 삼한시대 의성지역에 번성했던 국가였고 벌휴이사금대인 185년 신라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층 전시실을 둘러본다.

 

 

 

 

 

 

 

 

 

 

 

 

 

 

 

 

 

 

 

 

 

 

2층 전시실로 이동하였다.

의성지역 여러 사찰의 탱화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경관이다.

 

2013년 4월 문을 연 의성조국박물관은 박물관뿐만 아니라 주변 상상놀이터와 물놀이장(7.8월만 운영)이 소공원 형태로 가꾸어져 있어 가족끼리 찾아 한나절 보내기 좋겠다.

상상놀이터와 물놀이장은 각각 별도로 요금을 지불하여야 한다.

 

 

 

 

 

 

금성산 방향으로 하천 건너편에 위치한 조문국 사적지를 줌으로 살짝 당겨본다.

 

 

 

 

 

 

박물관 주위에는 소소한 공원으로 만들었다.

 

 

 

 

 

 

또한 민속유물전시관이 별도로 건립되어 있어 같이 둘러보면 된다.

 

 

 

 

 

 

  

 

 

 

 

 

 

 

문익점은 고려말 산청 출신의 인물이다.

당시 삼베.모시옷으로 겨울을 나다가 무명으로의 의복에 대한 획기적 변혁을 가져왔을 인물을 이곳에서 조명해 주고있으니 반갑다.

 

 

 

 

 

 

의성지역에서 전승. 보존되고 있는 가마싸움, 연날리기, 의성 씨름등 의성의 민속놀이를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과 주변을 둘러보는데 1시간여 소요되었다.

 

 

 

 

   

▣ 조문국사적지

 

 

 

금성면 고문군으로 왔다.

조문국 박물관과는 서로 건너다 보이는 근거리에 위치하며 도로변에 넓다라고는 할 수 있지만 주차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곳 역시 주차료. 입장료 등은 받지않는다.

 

 

 

 

 

 

입구는 주차장에서 고분군쪽을 바라보았을때 좌측편에 있다.

대충 한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조문국의 고분

대부분 원형의 봉토분으로 봉토를 이루고 있는 흙은 이 지역의 흙색과는 다른 순수한 점토하 한다.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 왔으리라 판단되는데, 그에 따르는 막대한 노동력은 통치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단다.

고분의 발굴조사는 1960년부터였다. 그리고 금동관, 금동 관장식품, 금동제귀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무기류,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초기 국가 형성기의 대표적인 정치 집단이 이 땅에 존재했다는 증거였다고 안내하고 있다.

 

 

 

 

 

 

 

 

 

 

 

 

 

 

 

 

 

 

 

 

 

 

1호 고분 경덕왕릉(景德王陵)

신라의 경덕왕릉이 아니라 조문국의 경덕왕릉으로 고분 전시관 뒷편에 위치한다. 안내표지판과 상석이 놓여있어 쉬이 알아볼 수 있다.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이던 조문국(召文國)이 이곳에 도읍하여 신라 벌휴왕2년(185)에 신라 문화권에 병합되기 전까지 인근 고을의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조문국의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 봉 아래에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먼 옛날 외밭이었던 묘역을 발견하고 수호하게 된 데에는 의성 현령의 꿈에 의하여 벌견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음을 조선 숙종때 편간된 허미수의  문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해마다 봄철이 되면 한 번씩 관민 일동이 여기서 춘계향사를 지내고 있다.

 

분구의 둘레가 74m,높이가 8m이며, 능의 전면에는 가로 42cm, 세로 22cm, 높이 1.6m의 비석이 있다.

 

 < 현지 안내문에서>

 

 

 

 

 

 

고분 전시관

 

 

 

 

 

 

옛 무덤이 첩첩히 쌓여 얼마인지 알 수 없고 그 중 한 분(墳))이 가장 큰 무덤으로 마을사람들이 남몰래 몇 번이나 그 속을 파헤쳐 보려함에 이웃에 사는 오극겸(吳克謙)이 이것을 보고 놀라 꾸짓고 다시 수축하였다. 그날밤 극겸의 꿈에 의복치장이 매우 이상스러운 한분이 시 한절을 제상 정녕하게 알려주었다.

 

'聞韶王事與誰論 千載猶存景德墳 飛鳳曲亡人不見 召文琴去香難聞' / 문소왕사여수(누구 수)론  천재유존경덕분 비봉곡망인불견  소(부를 소, 대추 조)문금거향난문

문소고을 과거사를 누구와 의논하랴

천년이 지난 오늘 경덕분만 남았도다

비봉곡조 없어지고 사람도 볼 수 없고

조문의 거문고 가버린 지금 그 소리도 묘연하다 하였다.

 

위의 전설은 조성 영조대 전국 읍지를 종합 정리하여 편찬한 <여지도서> (1760년) 고적(古跡)조에 경덕왕릉으로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다. 현재 대리리 고분군에는 경덕왕릉이라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 속 고분 1기가 대리리 2호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상부에서 내려다 본 고분군 전경이다.

 

 

 

 

 

 

 

문익점선생 면작(綿作) 기념비.

 

 

 

▣ 탑리리 오층석탑

 

 

금성면 소재지내 탑리리에 위치한 오층석탑을 둘러보고 간다.

시간이 된다면 탑 주변의 마을도 둘러보면 되겠다. 근현대의 시골스러움이 제법 남아있다.

 

 

 

 

 

 

국보 제77호로 지정된 탑리리 오층석탑.

 

통일신라시대 5층 석탑으로 높이는 9.6m이다, 각부의 석탑재가 그의 완전하며, 접탑(전탑)의 수법을 모방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 석탑양식의 발달을 고찰하는 데 귀중한 유례가 되는 탑이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교체부재.

 

   

 

 

 

▣ 산운생태공원과 산운마을

 

 

 

금성산 입구에 위치한 산운생태공원에 왔다.

도로변에 주차장을 잘 조성하였다.

 

 

 

 

 

 

산운 생태공원은 옛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전시실과 회의실, 사무실 등으로 꾸미고,

 

 

 

 

 

 

운동장엔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하고, 건물 뒷편 숲에는 공룡 등으로 소공원을 꾸몄다.

 

 

 

 

 

 

생태공원 건물을 앞에서 바라보았을때 좌측 뒷편 근거리(약 100~200m)에 산운마을이 있다.

한옥마을로 깨끗이 정비되어 있다.

 

 

 

 

 

 

의성 점우당(漸于堂)

점우당은 죽파 이장섭이 1900년 무렵에 지었다고 전한다. 점우당은 영천 이씨들이 모여사는 산운마을 입구에 있는 일반 살림집으로,  안채, 사랑채, 헛간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점우당.

 

 

 

 

 

 

마을앞쪽 우측 골목이다.

 

 

 

 

 

 

자암종택이란 안내표지판이 있다.

자암 이만환의 종택으로 건립연대는 미상이다. 안채는 당초 마을 앞 솔밭에 있던 것을 입향조인 학동 이광준이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라 전한다.

 

 

 

 

 

 

의성 운곡당

운곡당은 조선 후기 의성 지방 양반의 집으로 안채, 사랑채, 고방채로 되어 있다.

상량문에 순조 3년(1803)애 윤곡 이희발이 지었다고 되어있다.

 

 

 

 

 

 

운곡당 사랑채

 

 

 

 

 

 

소우당 고택

소우당은 조선 후기 의성 지방의 양반집으로, 살림채와 별당에 해당하는 안사랑채의 두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살림채는 대문채, 안채, 사랑채, 중문채로 되어 있다. -자형 대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사랑채, 중문채가 합쳐서 천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중심 영역의 서쪽에 별도의 토담을 둘러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별당으로 불리는 집을 지었다.

당일 사랑채 앞에서 안채를 기웃거리니 여주인인 듯한 분이 샛문을 통해 별당을 둘러보라 한다.

 

 

 

 

 

 

별당 앞에 작은 연못을 조성하고, 여러 나무를 싶어 숲을 만들었다.

 

 

 

 

 

 

별당.

양반가에서 높은 담을 두른 별도의 정원을 보기는 쉽지않다.

이곳 별당에서 민박을 하나 보다.

 

 

 

 

 

 

대충 마을을 반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아보는 셈이다.

 

 

 

 

 

 

산촌생태공원이 한나절 어린이들이 놀만한 장소라면 이웃한 산촌마을은 아이들과 손잡고 아님 어른들 만이라도 가볍게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여느 한옥촌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곳으로 40분여 소요되었다.

 

 

 

▣ 수정사

 

 

금성면에 위치한 비봉산과 금성산 가운데 위치한 수정사를 잠시 둘러보기로 한다.

이들 비봉산과 금성산은 여러해 전 찾아본 곳이다.

저수지 아래의 비봉산. 금성산 등산로 들 날머리 주차장에 주차후 시간이 되면 천천히 걸어봄직도 한 수정사를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여 차량으로 오른다.

 

 

 

 

 

 

절 바로앞까지 차량이 진입하므로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을 요하지는 않는다.

 

 

 

 

 

 

본 건물은 대광정 편액을 달고있다.

 

 

 

 

 

 

 

대광전, 요사 등등

 

 

 

 

▣ 빙계계곡

 

 

역시 시간이 여의치 않아 차량으로 한바퀴 둘러보는 빙계계곡이다.

사진은 빙계서원.

 

 

 

 

 

 

 

 

 

 

 

 

 

빙계계곡 풍혈과 빙혈에 얽힌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

 

신라 무열왕의 둘째 따님인 요석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지아비 원효대사를 찾아 이곳 빙산원(빙계계곡의 옛이름)에 이르렀을 때는 유월염천 유두가 막 지난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공주일행이 서라벌을 떠나 보현산을 거쳐 조문국 경내에 다다르자, 궁궐터와 임금이 쓰시던 우물인 어정이 있었다. 동네 어귀에서 원효대사의 거처를 물었더니 빙산사 빙혈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빙혈를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나오는 풍혈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소.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공주는 좁은 굴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 하였다. 발이 미끄러지는 곳은 얼음판이었다. 얼마를 들어갔을까? 굴이 넓어졌다.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 공주는 크게 소리쳐 불러 보았다.  <아바바(여보)!> 굴속이 웅하고 울렸다. 울리는 소리가 마치 큰쇠북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스러졌다. 중략..............

 

 -춘원 이광수 작 원효대사(하) 중에서

 

춘원선생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먼 옛날 이 계곡은 거대한 동굴이었다고 한다. 대지진으로 동굴이 무너지면서 풍혈, 빙혈 구멍이 지금같이 좁아졌으나 지하는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런지 신비하기만 하다.

 

 빙계계곡 연사 문학 연구 보존회

 

 

 

 

 

 

저곳인가?

계곡 중간 마을이 한 곳 있고, 그 마을에서 좌측으로 석탑이 있는 곳 어디쯤 빙혈. 풍혈이 있다.

 

 

 

 

 

 

중간 어디쯤 야영장도 있었는것 같은데........

빙계계곡 상부에서 다시 되돌아 내려올 생각으로 중간 석탑과 풍혈을 지나쳤는데

계곡 상부에 제법 넓은 농지(일반적인 산지)이고 길 또한 그곳으로 이어져, 생각을 바꿔 그대로 진행하였다.

빙계계곡 상부로 깊은? 골과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빙계계곡물은 맑지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다시 의성을 찾는다면 찬찬히 빙계계곡을 둘러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