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여수 애양원

정헌의 티스토리 2024. 4. 7. 23:06

■여수 애양원

 

오전 일정으로 순천 세계수석박물관을 찾았다. 순천에서 중식 후 검단산성, 순천왜성, 충무사, 정유재란 역사공원과  여수의 애양원을 둘러보는 것을 염두에 두었는데 시간상으로 보니 애양원만 둘러보면 되겠다.

애양원은 인터넷상에서 자료를 검색하니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로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 지역에도 성심인애원이 있어 겸사 겸사 찾아볼 만 하다.

애양병원 주차장이나 인근에 주차하고 손양원목사 선교기념관 까지 중앙으로 난 길을 따르고, 되돌아 올 때는 좌.우 마음 내키는 도로를 따라 되돌아 오면되겠다.

 

 

 

▷가는 길

 

 

 

▷탐방코스

여수애양병원 - 마루다리 - 토플하우스 - 치유의 숲- 애양교회, 기념관 -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삼부자묘 - 애양병원 주차장 (천천히 기념관 둘러보는 시간 포함  2시간 소요  /  2024. 4. 6.)

 

 

 

▷탐방후에

 

▣ 순천 향토정

 

순천에 가면 간혹 들러는 집이다.

순천 맛집으로 찾는 분들이 많다.

 

 

 

 

 

백년가게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내부는 정갈한 편이다.

 

 

 

 

 

메뉴

순천길 절기정식 59. 계절정식 39. 남도정식 29. 정도이다.

 

 

 

 

▣여수 애양원

 

여수 애양병원이다.

한적한 곳에 위치하여 이곳 병원 주차장도 여유가 있다.

이 병원 동쪽편에도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주차료는 받지 않는다.

 

 

 

 

 

병원 입구쪽에 근대 건물이 있어 음식점이다.

전복죽, 찐만두, 떡만두국......

 

 

 

 

 

애양병원 앞쪽에 있다.

건너편 넓은 매립지까지 인도교로 연결된 마루다리이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로 열쇄를 채워놓은 것으로 보아 노후화 되어 보수가 이루어질 때까지 개방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건너 보지 못해 조금 아쉽다.

 

 

 

 

 

건너편은 매립지로 면적이 상당히 넓다.

해안을 따라  길이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애양원으로 가는 길은 애양병원을 중심에 두고 앞쪽 도로를 따라도 되고, 해안쪽을 따라도 된다.

둘다 병원 동쪽 주차장 인근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해안길을 따라 간다

벚꽃이 만개했다.

 

 

 

 

 

이 인근은 벚나무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나름 꽃구경을 할 수 있디.

주변이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 적당히 마음내키는대로 길을 따르면 된다,

 

 

 

 

 

애양병원 구관?

연산홍? 철쭉이 잘 단장되어 있다.

 

 

 

 

 

애양병원 동쪽편 주차장을 지나.

 

 

 

 

 

애양원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애양원교회 0.5km

애양평안요양소 0.5 km

역사박물관 0.5 km

치유의 숲 0.3 km

토플하우스 0.1 km

도성교회 0.7 km,  도성교회는 어디지?

 

 

 

 

 

좌측으로 '에그 갤러리' 이정표가 궁금하여 쬐끔 헷갈렸으나 애양원순교유적지는 우측편으로 화살표가 되어있다.

 

애양원 선교유적지 및 손양원목사 선교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3곳이 있다

보이는 길 우측길을 따르면 중심길이다.

좌측편 도로를 따라도 애양원 선교유적지로 이어진다. 이 경우 마을쪽으로 살짝 우회하므로 거리가 쬐끔 길다.

이곳 갈림길 못미쳐 우측 해안을 따라 가는 길도 있다. 이 길은 애양원선교유적지와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 사이로 이어진다.

따라서 우측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나중 좌.우 도로 중 하나를 선택해 되돌아 오면 무난하다.

 

 

 

 

 

 

 

 

 

 

 

 

토플 하우스

 

이 건물은

1953년 신축

1955년 한성 신학교로 사용

1962년 폐교

1967~1979년 하층 의자 제작사로 사용, 상층 창고로 사용

1986년 기독교 수양관으로 개보수

2000년 토플 하우스(topple house)로 개보수하여 기독인의 쉼터와 수양관으로 사용

 

 

 

 

 

건물 외관만 보고 지나친다.

 

 

 

 

 

 

 

 

 

 

 

 

 

 

 

 

 

 

 

치유의 숲 안내표지판이 있다.

 

 

 

 

 

치유의 숲으로 내려서 본다,

 

 

 

 

 

 

 

 

 

 

 

 

치유의 숲으로 표시된 구역인데.....

군데 군데 옛 석조 건물은 리모델링하여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집들이 군데군데 있어 이 건물이 뭐하는 집이지 싶다.

펜션?

 

 

 

 

 

과거 이곳에 나환자가 거주한 곳인가? 싶기도 하다.

 

 

 

 

 

치유의 숲을 둘러보고 중심으로 난 도로를 따라 계속 이어간다.

 

 

 

 

 

길가의 집

 

 

 

 

 

 

 

 

 

 

 

 

애양원은 한국 최초의 한센병 치료 병원으로 애양병원, 여수(구)애양원교회, 애양원 역사박물관,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등에 그 역사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1928년 2층 규모로 준공된 여수(구)애양원교회는 1934년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35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이 석조 건축물은 종탑이 하나 있는 평면 장방형 형태로서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여수에서 보기 드문 건물 형태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된 교회 건축으로서 근대 한국 선교사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 등록문화재이다.

 

애양원 역사박물관은 병원 본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1926년 이 교회와 함께 2층 석조 건축물로 지어졌다. 1953년 양쪽 부분이 증축되었고, 발코니를 가진 현관은 해체되었으나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1967년에 현대식 병원이 세워진 후 양로원으로 사용되다가 1999년에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박물관에는 의료 선교 기관의 역사를 보여 주는 각종 의료 기구와 사진 자료 등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어 한국 한센병 치료 역사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여수의 근대문화

 

애양원은 20세기 한국 한센병사를 중언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 안에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던 한센병 환자들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인간다운 존엄성을 회복해 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기독교와 함께 전해진 근대 의료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1909년 선교사들이 작은 규모로 꾸려나가던 한센병 환자 치료소인 광주에 있던 한센병원을 모태로 하며, 1925년에서 1928년에 걸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새롭게 터전을 잡았다. 1935년들어 '사랑으로 기른다'는 뜻의 애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의 한센병 환자 수용 시설 중에 가장 체계적인 인력육성과 선교 사업을 수행한 곳으로서 한센인들의 자활을 돕는 자립형 공동체였다. 특히 애양원은 한센인을 위해 헌신하다가 6.25전쟁때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의 순교 성지이기도 하다. 손양원 목사는 여순 사건 때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와 함께 근대 교회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장천교회, 조선식산은행 건물이었던 제일은행 여수지점, 사설 철도 회사의 역사로 가치가 있는 율촌역, 여수 젊은이들의 항일 운동 근거지였던 여수 (구)청년회관, 일제 강점기의 군사용 터널이었던 마래 제2터널 같은 등록 문화재들은 여수 지방의 근대 역사를 보여준다.그 밖에 만성리 학살지와 그 주변의 형제묘는 여순 사건의 비극을 보여 주는 유적지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애양원교회

 

 

 

 

 

애양병원

 

애양병원은 1909년 미국인 의료 선교사 포사이트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센병 환자를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한센병원이다. 1926년 광주에서 옮겨와 비더울프 나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35년 새 이름을 공모하여 채택된 이름인 '애양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건물은 광주에서 옮길 때에 지은 것으로 1972년부터 양로원으로 사용하다가 2000년부터 애양원 역사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내부 구조가 전시 공간을 위해 다소 변형되기는 하였으나 외관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물을 지은 사람이 서양인으로 여수에서는 희귀한 건물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한센병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국 한센병 의료 선교 기관의 역사를 보여 주는 각종 의료 기구와 사진 자료 등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한센병 자료관

 

1926년 광주로부터 옮겨 온 R. M.Wilson 원장은 이 언덕에 한센병을 위한 병원을 세우고 명심대라고 하였다. 병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므로 병을 고치려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 후 2000년 6월에 병원의 발전과 선교사들의 사역을 기념하는 역사관으로 개축하였으며, 2014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의 도움으로 한센병의 역사와 변천을 알 수 있는 자료관을 신축하였다.

 

이 새 기념관을 통하여 우리나라 한센병의 추이와, 하나님이 이 병원과 한센병 환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른 알 수 있다.

 

이 아름다은 건축물을 설계한 김종규 교수와 시공사인 삼협의 김연홍 사장, 잘 어울리는 조경을 만든 정연선  선생께 감사를 드린다. 또 작품을 기중하여 특별실을 만들게 한 배병우님께 감사 드리며 특히 한센 환자를 사랑하여 주신 주승용 의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4. 5.18. 사단복지법인 애양원

 

 

 

 

 

애양원역사박물관 앞에서 바라본 애양교회

 

 

 

 

 

기념관으로 들어선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문화재이다.

 

 

 

 

 

 

 

 

 

 

 

 

버림받은 소녀

 

한 소녀가 밖에 서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한 채

작은 문둥이 소녀가 버림을 받았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나는 문지기를 찾아

아주 하찮은 돈을 지불하였다.

이 돈으로 아이를 위해 천국을 샀고

나는 더 큰 천국을 얻었다.

그 아이가 문을 건너 들어오면

나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천국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이 작은 문등이 소녀가.

 

아더 핸슨 / 윌슨 원장의 친구로 상하이 화이자 회사 근무

 

 

 

 

 

 

 

 

 

 

 

 

 

 

 

 

 

 

 

 

 

 

 

 

 

 

 

 

 

 

 

 

 

 

 

 

 

 

 

 

 

 

 

 

 

 

 

 

 

 

 

 

 

 

 

 

 

 

 

 

 

 

 

 

 

 

 

 

 

 

 

 

 

 

 

 

 

 

 

 

 

 

앞쪽의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뒷문으로 나가면 뒷편에 또 다른 건물이 있다.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휴님의 작품이다.

 

 

 

 

 

 

 

 

 

 

 

 

역사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찬란하다.

이십세기 성자 고 손양원 목사님의 크신 공적이여 !

양울 위해 살으시다 양을 위해 죽으신 선한 목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는 하늘의 지시를 받으사 순정(殉情 /따라죽을 순)을 안고 한국교계에 나타나셨던 혜성이셨으며 애국애족의  붉은 피를 강산과 계례 위에 쏟아 주셨던 희생의 제물이셨다.

...................

 

 

 

 

 

교회 내부도 둘러본다.

 

 

 

 

 

교회 내부

 

 

 

 

 

손양원목사 선교기념관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길 외 도로도 있다.

 

 

 

 

 

인근에 도로가 지난다.

 

 

 

 

 

용서의 길

 

 

 

 

 

추모 상징탑, 손양원목사 순교 기념관, 삼부자 묘가 서로 인근에 있다.

 

 

 

 

 

진행방향에서 볼 때 좌측으로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손양원목사순교기념탑

 

산돌 손양원(1902~1950) 목사님은 오로지 성경의 말씀대로 살고 실천하다가 거룩한 순교룰 하셨습니다. 이곳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며 사랑의 복음을 실천했습니다. 아들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아 하나남 품으로 인도하는 초월적 사랑을 통해 성자 현신의 인간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두 아들들 역시 총탄에 맞아 순교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 복음 12:24)하신 말씀대로 목사님과 두 아들은 밀알로 거듭났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이 부활하여 온누리를 밝혔듯이 이들 세 부자는 순교를 통해 세상을 밝힐 세 알의 밀알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죽음의 끝에서 새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다시 땅에 떨어져 또 수많은 열매를 맺어 복음으로 온세계로 동심원적 파문을 그리며 퍼져갈 것입니다. 우리 전국 기독교인들은 손양원 목사님과 두 아들 손동인, 손동신 성도의 고귀한 순교와 복음 전도의 밀알로 거듭난 영광을 축복하는 뜻에서 성의를 모아 여기 순교기념탑을 세웁니다.

2012.  5.

 

이 조형물은 노회 (SYNODS) , 교회(CHURCHES), 단체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노회(SYNOD / 시노드)라는 말이 낯설어 찾아본다.

협의나 의결을 목적으로 한 그리스도교 교회 대표자들의 공식회으로 다음백과에서 설명한다.

 

 

 

 

 

사랑과 용서

김대길 作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손양원 아들의 세째 아들인 손동길목사님이 장황한 안내를 한다. 애양원과 뭔가 갈등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

유튜브에서 <손양원 기념관>으로 검색하면 손동길 목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한다.

 

 

 

 

 

우측에서부터

신사참배와 손 목사와 교회의 수난, 일제강점기 가족의 수난, 옥중생활과 그 이후

 

 

 

 

 

손동인, 동신을 죽인 안재선을 형장에서 살려내 양 아들로 삼음

안재선은 소문과 달리 죽기 전까지 애를 많이 먹였다한다.

 

 

 

 

 

진품은 아니라고 하든가?

손동길 목사님 말이 너무 빨라 금새 잊어먹었다.

 

 

 

 

 

손양원 목사의 생애

 

1902.6. 3. 부친 송종일 장로와 모친 임은수 집사의 장남으로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685에서 출생

1914.4. 1. 칠원 공리보통학교 입학

1919.3.24.칠원 공립보통학교 졸업

1919.4 서울 중동학교 입학

1920.4.3. 부친 손종일 장로의 독립만세 운동으로 구속, 서울 중동학교 자퇴

1921~1923 일본 동경 스가모 중학교 졸업

1924.1.17.정양순 여사와 결혼

 

 

 

 

 

1924.10.23 칠원읍교회 집사 피선

1926. 3 경남 성경학교에 입학 부산 감만동교회 외지 전도사로 부임

1930. 9.18 차남 동신 출생(동신은 1948년 10월21일 여순사건때 순교(18세)

1935~1938 평양신학교 졸업

1939. 7.14 여수 애양원교회 부임

1940. 9.25 신사참배 거부로 여수경찰서에 검속

1940.11.17 광주형무소에 수감, 1940.11.17 광주형무소 수감, 1943.10.8 정주보호교도소 이감

1945. 8.17.  8.15해방으로 석방

1945. 9.10~10.15 애양원 임시 원장 겸임

1946. 3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 받음

1948.10.21 여순사건으로 동인. 동신 형제 순교, 두 아들을 죽인 원수(안재선)를 살려 양아들로 삼음

1950. 9.13.  6.25동란으로 공산군에게 검속

1950. 9.28 여수 둔덕동 617-10 (당시 과수원 골짜기)에서 순교함(당시 여수 덕향교회 조상학 목사외 여러분 함께 순교하심)

1993. 4.17 손양원목사 순교 기념관 개관

1995.8.15국가독립유공자로 선정 건국훈장 애족장 수상

2012. 기념관 리모델링 개관

 

 

 

 

 

여순사건 두아들 순교

 

 

 

 

 

예수중독자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인해 죽게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위해 살면 주같이 부활돤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하자.

 

 

 

 

 

순교기념관을 둘러보았다.

6.25 동란중 여수 둔덕동 과수원골짜기 학살현장에 대한 자료가 조금 보완되었으면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없다.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손양원목사 상

주변의 인물에 대해선 자세히 보지 못했다.

손양원목사의 순교시 같이 당한 분인가?도 싶은데 손양원목사 일대기에 안내문에 나오는 순교자의 숫자와는 맞지않다,

 

 

 

 

손양원 연구에 대한 몇 가지 보충

 

-두형제의 비문 중 식민지 부분

6년 박해 때 애양원의 원장은 일본인이었다. 따라서 애양원교회는 가족을 도울 수 없었다. 가족을 돕던 몇 명은 가족과 6년을 쫓겨났다. 해방 후 두 아들은 당시 교회 입장을 품었다.

불과 3년 만에 아들들은, 깨끗하게 순교했다. 아버지는 교회가 잘 길렀다며 묘비를 적었다. 묘비를 읽으며 모든 교인들은 한 없이 울었다.

 

-손양원은 통합 교단이 아니라는 증언

손양원은 한국 교단들이 분열하기 전 순교했다. 손양원은 분열하기 전의 초기 고려파 신앙이다. 현재 고신, 합동, 통합 교단에 소속되지 않았다.

 

-손양원은 동상을 반대했다는 증언

동상을 만들면 우상으로 갈 위험성이 많아진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것은 우상을 반대한 것이다. 신앙인의 문서는 신앙의 자료로 연구할 수 있다. 그래서 유가족은 유품들을 무척산에서 소각하고 문서처럼 연구 자료들만 애양원에  맡겨 놓았다.

 

-나환자의 고름을 빨았다는 증언

나환자의 고름을 빨아 냈다는 말은 늘 많았지만 실제 본 사람은 없고 그럴 일도 아니었다 한다. 전기 전기는 잘 적으려고 강조를 좀 지나치는데 당시를 아는 분들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으로는 그러고도 넘칠 분이라 한다,

<현지 안내문>

 

묘지앞의 안내문이다,

오타없이 그대로 옮겼는데  일부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있다.

 

 

 

 

 

손목사와 두 아들의 묘지

 

 

 

 

 

되돌아 간다.

 

 

 

 

 

 

 

 

 

 

 

 

애양병원 주차장으로 되돌아 왔다,

어디선가 들었나? 애양병원이 관절 전문병원이라고.

가고, 오고, 둘러보는데 천천히 2시간 소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