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천년묵은 지네

정헌의 티스토리 2010. 9. 18. 19:52

    천년 묵은 지네
 
     옛날 어떤 산골에 약초 캐는 총각이 살았다.
     날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 가지고 장에 내다 팔아 근근이 먹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이 서른에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살았다.
     어느 색시가 약초나 캐는 가난한 총각한테 시집오려고 해야 말이지.
     하루는 이 총각이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약초를 캤는데, 약초 캐는데 정신이 팔려서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르고

     약초를 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어둑어둑한데, 서둘러서 산에서 내려온다는게 점점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산 속을 헤매다 보니 저 멀리서 불빛이 아른아른한다.
 얼른 불빛을 따라 찾아갔다. 가서 보니 오막살이 초가가 한 채 있는데,집주인을 찾으니 웬 색시가 나온다.
『산중에서 약초를 캐다가 날은 저물고 길을 잃어서 곤란하게 되었으니 하룻밤 묵게 해주시오』
 하니까 서슴없이 들어오라고 한다.
 방에 들어가니까 더운밥 지어서 저녁상을 한 상 잘 차려 준다.
 그걸 먹고 하룻밤 잤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까 색시가 조반도 한 상 잘 차려 주기에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까 색시가 하는 말이,
『약초를 캐면 몇 푼이나 벌며, 딸린 식구는 몇이나 됩니까?』하고 묻는다.
 그래서,
『약초 팔아서 입에 풀칠이나 하니 몇 푼 번다고 할 수도 없고, 아직 혼인을 못했으니 딸린 식구도 없소이다』했다.
 그랬더니 색시가 반색을 하면서 하는 말이,
『그렇다면 나와 함께 삽시다. 무싯날(無市날:정기적으로 장이 서는 동네에서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마당이나

 쓸고,  장날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에 가서  보고 들은 것을 나한테 이야기해 주기만 하면  돈 열 냥씩 드리
 리다』한다.


 가만히 듣고 보니 그보다 더 좋은 돈벌이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장가 못 간 노총각이 예쁜 색시까지 얻을 판국이니 마다할 까닭이 없다.

 그래서 그러자고 하고 거기서 색시와 함께 살았다.
 무싯날에는 마당이나 쓸고 놀다가, 장날만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장터에 나가 여기저기 눈동냥

 귀동냥을 해서, 그걸 죄다 색시한테 알려 주었다.


 그러면 색시는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듣기만 한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삼 년이 후딱 지나갔다.
 삼 년이 지난 뒤에, 하루는 이 남편이 장에 갔더니 한 초립동이가 나귀를 타고 지나가는데, 초립에 방울을 달아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간다.
 나귀 목에 달 방울을 제 초립에 달았으니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색시한테 그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장에서 참 우스운 꼴도 다 봤소』
『무엇을 봤기에 그러세요?』
『멀쩡하게 생긴 초립동이가 글쎄, 초립에 방울을 달고 딸랑거리며 지나가지 않겠소?』
 그랬더니 색시 얼굴이 확 달라진다.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고는,
『다음 장날 또 그 초립동이를 만나거든 반드시 뒤를 밟아서 어디에 사는 지 알아 오세요』한다.


 그 다음 장날이 되서 장에 갔더니, 아닌게아니라 그 초립동이가 또 방울을 딸랑거리면서 지나간다.

 가만가만 뒤를 밟았다.
 따라가 보니 이 초립동이가 장터를 벗어나서 산으로 들어간다.
 산으로 들어가서 어디로 들어가는고 하니, 컴컴한 동굴 속으로 쑥 들어간다.
『햐, 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멀쩡한 사람이 나귀를 타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다니』
 하면서 동굴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아! 초립동이가 동굴에서 다시 쑥 나온다.
 나와서 하는 말이,
『당신은 필경 웬 색시 부탁으로 내 뒤를 밟은 것이지요?』
 다 알고 묻는데 뭘 어떻게 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지금 당신과 함께 살고 있는 색시는 사람이 아니고 천년 묵은 지네요. 오늘 저녁에 돌아가면 당신은 지네

 한테 잡아 먹힐 거요』이런다.


 삼 년을 함께 산 색시가 천년 묵은 지네라니 선뜻 믿어지지 않지만, 제가 잡아 먹힌다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그럼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나?』하고 물었다.
 초립동이가 하는 말이,
『장에 가서 독한 담배를 한 발 사 가지고 온몸에 담배진을 바르고 가시오. 그리고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서

 문구멍으로 들여다 보시오. 지네가 보이 거든 담배연기를 문구멍으로 뿜어 넣으시오.  그러면 지네는 죽고

 당신은  살 거요』이런다.
 이 사람은 초립동이 말대로 장에 가서 독한 담배를 한발 사 가지고 담배진을 내어 온 몸에 잔뜩 발랐다.

 그리고 집으로 갔다.


 초립동이 말대로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서 문구멍을 뚫고 들여다 보니, 아닌게아니라 용마루 같은 지네가 방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허, 그것 참.
 자, 이제 색시가 사람이 아니고 지네인 걸 알았으니 담배연기를 뿜어서 죽여야지. 안 그러면 제가 죽을 테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그걸 못하고 있다. 왜 못하는고 하니 삼년 동안이나 함께 살면서 신세도 지고 정도 든 색시를

 차마 죽일 수 없었다.
 아무리 징그러운 지네라 해도 말이야.


『저 지네를 죽이는 건 차마 못할 일이로다. 에라,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이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가만히 나왔다.
 개울에 가서 담배진을 다 씻어 낸 다음, 이번에는 앞문으로 들어갔다.
 앞문으로 들어가니 색시가 반겨 맞아 주는데, 아무리 뜯어봐도 이 색시가 어떻게 그 징그러운 지네란 말인지,

 참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제 눈으로 똑똑히 본 다음에야 안 믿을 수도 없다.
 이 사람이 한숨을 쉬면서,
 하고 물었다. 색시는 깜짝 놀라더니,
『내 비록 미물이지만 왜 까닭없이 당신을 잡아 먹겠어요?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할 터이니 들어 보세요』
 하고는 지나온 일을 죽 이야기 한다.


『당신이 장에서 본 초립동이는 사실은 사람이 아니고 천년 묵은 지렁이랍니다.  전에 내 남편이 그놈과 싸우다

 가 그놈이 내 남편을 죽여서, 그 원수를 갚으려고 산중에 숨어 살면서 때를 기다렸지요.  이제 그놈이 사는 곳을

 알았으니 내일은 찾아가서 원수를 갚으려고 합니다. 당신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나와 삼년 동안 인연을

 맺고 살아온 정리를 생각해서 날 좀 도와 주세요』
『어떻게 도우면 되겠소?』
『내일 그놈과 한창 싸울 적에, 무서워 말고 고함을 크게 질러 주기만하면 그놈이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볼 것이니,

 그 틈에 죽이겠어요』
 이렇게 약속을 하고, 이튿날 색시는 천년 묵은 지렁이와 싸우러 갔다.


 색시가 지렁이 굴 앞에 이르러 재주를 크게 세 번 넘으니까 용마루같은 지네가 되었다.
 그러니까 굴 속에서 커다란 지렁이가 스르르 기어 나와 둘이서 싸움이 붙었다.
 그런데 그 싸움이 어찌나 사나운지, 이 사람이 구경하다가 그만 소리도 못 지르고 까무러쳐 버렸다.
 지네와 지렁이는 한참 동안 싸우다가 지쳐서 더 못 싸우고 헤어졌다.
 지네가 다시 색시가 되어서 이 사람을 흔들어 깨워 가지고 집으로 갔다.
 그 날 밤에 색시는, 내일 싸울 때는 꼭 고함을 크게 질러 달라고 단단히 부탁을 하였다.
 이 사람은 그러마고 다짐을 하긴 했는데, 그 이튿날 싸움판에 나가 보니까 어찌나 무섭던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목에서 소리가 안 나온다.
 그래서 또 고함을 못 지르고 말았다.
 그래서 그 날도 결판을 못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에 색시는,
『이 싸움은 사흘만에 결판이 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또 삼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놈이 당신

 부터 잡아먹으려고 할 터이니, 부디 내일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꼭 고함을 질러 주세요』
 하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 다음날은 이 사람이 참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싸움터에 갔다.
 지네하고 지렁이가 맞붙어 싸우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둘이서 공중으로 붕붕 떠오른다.
 공중에서 한창 뒤엉켜 싸울 적에 이 사람이 젖 먹던 힘을 다 내어,
『저놈 잡아라!』
 하고 크게 고함을 질렀다.
 지렁이는 한창 싸우다가 갑자기 벼락같은 고함 소리가 나니까 깜짝 놀라서 땅을 내려다봤다.
 그 틈을 타서 지네가 지렁이 목을 물어서 죽여 버렸다.


 지네는 다시 색시 모습으로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나는 이제 한을 다 풀었으니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은 이 길로 우리가 살던 집에 가세요.

 가 보면 궤짝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돈이 들어 있으니 그걸 가지고 가서 잘 사세요』
 하고는 연기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 사람이 산 속 살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울도 집도 온데간데없고 쑥대밭이 되었는데 거기에  큰 궤짝이

 하나 있다.
 그 속에 돈이 가득 들어 있어서, 그걸 가지고 잘 먹고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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