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사람을 구해 주었더니

정헌의 티스토리 2010. 10. 20. 22:33

                   사람을 구해 주었더니

 

   옛날 옛적 어느 곳에 한 농사꾼이 살았는데, 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 큰 강이하나 흐르고 있었다.
    한 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서 큰물이 났다.
    큰물이 나면 강물이 많이 불어나서 흙탕물이 마구 내려온다.
    하루는 장사꾼이 강가에 나가 보니, 노루 한 마리가 강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둥둥 떠내려 오고 있단 말이야.
    아마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갑자기 불어서 내려오는 흙탕물에 휩쓸렸던 거다.
   「저 노루도 한 세상 살려고 태어났을 텐데 저렇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이렇게 생각하고 긴 장대로 노루를 건져 줬다.
    물을 많이 먹은 것을 토하게 하고 집으로 데려다가 잘 보살펴 줬다


그 다음날 또 강가에 나가 보니, 이번에는 뱀 한 마리가 흙탕물에 휩쓸려 둥둥 떠내려 오고 있다.
「비록 징그러운 뱀이지만 목숨은 다 같이 중한 것이니 어찌 보고만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뱀도 건져 줬다.
오랫동안 떠내려 오느라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을 집에 데려다가 짚더미 속에 넣어 두고 보살펴 줬다.  
그 다음 날 또 강가에 나가 보니, 이번에는 사람이 물에 빠져 떠내려 오면서 살려 달라고 소리를 친단 말이야.
말 못하는 짐승도 건져 줬는데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얼른 건져다가 집에 데리고 와서 미음도 쑤어 먹이고 옷도 갈아입히고 극진히 보살펴 줬다.

 


며칠이 지나자 비도 멎고 강물도 줄어들었다.
구해 준 노루, 뱀, 사람도 모두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되찾았다.
그래서 셋을 보고 이제는 저마다 제 갈 길로 가서 잘 살라고 했다.
그랬더니 노루와 뱀은 어디론가 가 버렸는데, 사람은 돌아갈 집도 없고 함께 살 식구도 없다면서 가지를

않는다.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할 터이니 여기서  살게 해주시오,  이렇게 부탁을 하기에 그러라고 하고  그

사람을 한 식구처럼 여기고 데리고 살았다.

 


구해 준 사람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는데, 몇 달이 지나서 하루는 노루가 농사꾼을 찾아왔다.
『너는 그 때 물에서 건져 준 노루가 아니냐? 참 반갑구나.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다시 찾아왔느냐?』
그랬더니 노루가 농사꾼의 소매를 물고 끌면서 따라오라는 시늉을 한다.
노루는 산으로 산으로 자꾸 들어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 발로 땅을 파는 시늉을 하는데, 가만히 보니 거기에

산삼이 많이 있다.
캐 보니  어린아이 몸뚱이만한 동삼이더란 말이야.
노루가 가리키는 곳마다 산삼이 나오는데, 다 캐니 몇 십 뿌리나 된다.
산삼이라는 게 값이 좀 많이 나가야지.
그걸 내다 팔아서 이 농사꾼은 금새 부자가 되었다.


산삼 판 돈으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기와집도 짓고, 이렇게 아주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부자로 잘 살게 되니까 같이 사는 사람이 일을 안 한다.
일만 안 하면 좋겠는데 돈을 달라고 해서 마구 펑펑 쓴단 말이야.
술 먹고 노름하느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갖다 쓴다.
보다 못한 농사꾼이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
『여보게, 이렇게 돈을 마구 쓰다가는 얼마 안 가서 살림이 거덜나겠네. 이제부터는 꼭 쓸 데가 아니면 돈을 안

줄 터이니 그리 알게』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돈을 달라고 해도 꼭 쓸 일이 아니면 안 줬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농사꾼 몰래 돈을 훔쳐다가 또 마구 펑펑 쓰지 뭐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농사꾼이 이 사람을 쫓아냈다.


『내가 물에 빠진 자네를 건져 준 것은 이러자고 한 일이 아니었네.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함께 못살겠으니 이

집을 나가게. 날 원망하지 말고 어디 가든지 부지런히 일을 해서 살게나』
그랬더니 이놈이 그만 앙심을 품고 거짓으로 관가에 고자질을 했다.
저를 구해 준 농사꾼이 도둑질을 해서 부자로 잘 산다고 고을 원에게 고해 바쳤단 말이야.
농사꾼은 억울하게 도둑누명을 쓰고 관가에 잡혀 가서 옥에 갇혔다.
옥에 갇혀서 가만히 생각하니 참 억장이 무너진다.
물에 빠진 짐승과 사람을 건져 놨더니, 짐승은 보은을 하고 사람은 배반을 하는구나 싶어서 한숨만 나온다.


그러고 있는데, 하루는 옥 문으로 뱀 한 마리가 스르르 기어들어 온다.
가만히 보니까 전에 제가 구해준 그 뱀이다.
「옳지, 이 뱀이 내가 곤경에 처한 걸 알고 구해 주려고 왔나 보다」
하고 반가워하는데, 아 글쎄 뱀이 스르르 기어와서 농사꾼 발목을 꽉 깨물어 버린다. 그래 놓고는 다시 스르르

기어 나가 버린다.
뱀에게 물려 놨으니 어떻게 되겠어? 발목이 퉁퉁 부어 오르다가 나중에는 독이 온 몸에 퍼져서 살이 시커멓게

죽어 간다.
「몹쓸 놈의 뱀 같으니라고. 죽을 목숨을 살려 줬더니 되레 나를 죽이는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사람뿐

인 줄 알았더니 짐승까지도 그럴 줄이야」


이렇게 한탄을 하면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 그놈의 뱀이 다시 스르르 기어 들어오지 뭐야.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온 게 아니라 무슨 풀잎사귀를 하나 물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아까 제가 문 상처에다 풀잎사귀를 턱 갖다 붙인다.
아, 그러니까 거짓말처럼 상처가 아물고 부기도 가라앉더란 말이지.
그게 뱀독을 풀어내는 약초인가보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바깥이 떠들썩하기에 가만히 듣자니 이 고을 사또가 간밤에 뱀한테 물려서 다 죽어

간다고 그러거든.


「옳거니. 그 뱀이 어제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까닭을 이제야 알겠구나」
농사꾼이 얼른 옥사쟁이를 불러서, 자기를 사또에게 데려다 주면 당장 고쳐 보겠노라고 그랬다.
옥사쟁이가 사또에게 그 말을 고하니 사또가 농사꾼을 부른다.
농사꾼은 풀잎사귀를 상처에 붙여서 사또의 목숨을 살려 놨다.
사또는 농사꾼에게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농사꾼을 옥에서 풀어 주고 누명 씌운 사람을 도로 옥에

가두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짐승은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아는데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뭐, 사람이라고 다 그럴라고. 더러 짐승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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