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형제의 재주

정헌의 티스토리 2010. 12. 1. 22:16

형제의 재주

 

옛날 어느 곳에 한 홀어미가 아들 둘을 데리고 살았다.
혼자 몸으로 아들 둘을 키우려니 얼마나 고생이 많겠는가?
그래도 어머니는 고생을 낙으로 삼고 삯바느질에 날품팔이로 한푼 두푼 돈을 모아 가며 아들을 잘 키웠다.
그렇게 아들을 키워서 형의 나이 열두 살, 아우의 나이 열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사내가 큰일을 하려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제 나이가 들 만큼 들었으니 집을 떠나 재주껏 공부를 하고 오너라.
 

 내 그 동안 한푼 두푼 모아 놓은 돈을 나누어 줄 터이니 그 것으로 십 년 동안 공부를 하고, 십 년 지나거든 돌아오너라』
하고 돈 꾸러미를 하나씩 내줬다.

아들들은 어머니한테 하직 인사를 하고 집을 떠나 제각기 갈 길로 갔다.
그러고 난 뒤 어머니는 혼자서 궂은일을 하면서 십 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럭저럭 십 년이 되어서 아들 둘이 돌아왔는데, 참 훤칠한 장골이 되어 가지고 왔다.
셋이서 반갑다고 얼싸안고 그 동안 잘 지냈느냐, 고생이 얼마나 많았느냐,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래, 그 동안 어디 가서 무엇을 배워 왔느냐?』
하고 어머니가 물었다.

그랬더니 형은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그 동안 배운 거라고는 도둑질하는 술수 밖에 없습니다』
하고 아우는,
『불도를 닦아 부처님의 영험하신 힘을 빌리는 재주를 배워 가지고 왔습니다』
하거든.
듣고 보니 형은 참 안 배우느니만 못한 재주를 배워 왔고, 아우는 참 좋은 공부를 해 왔단 말씀이야.

그 때가 마침 섣달 그믐이라 집집마다 설 쇨 채비가 한창인데, 이 집에는 미처 설 음식을 장만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걱정을 하니 두 아들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먼저 형이 동네를 한 바퀴 휘 돌아보고는, 그 동네에서 제일 큰 부자 양반 집 앞에 가서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하더니 가난한 집 앞에 가서 또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한다.
이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중얼중얼하고는 마지막으로 저희 집 앞에 와서 중얼중얼한다.
그러니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쌀이 없어 설 음식을 장만 못한 집에서는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쌀이 한 말씩 두 말씩 턱턱 생기고, 돈이 없어 설빔을 장만 못한 집에서는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돈이 열 냥씩 스무 냥씩 턱턱 생긴단 말이야.
형제네 집에도 쌀 한말과 돈 열 냥이 생겼다.
그러니 집집마다 일변 놀라고 일변 기뻐하느라고 야단법석이 났다.
그런데 부자 양반 집만은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어머니가 놀라서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형이 하는 말이,
『제가 방금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니 집집마다 쌀이 없고 돈이 없어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유독 부자 양반네 집만은 곳간에 쌀이 썩어나고 돈궤에 돈이 곰팡이가 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못된 술수를 조금
부려 주자 양반네 쌀과 돈을 어려운 집에 얼마간 나누어 준 것뿐입니다』
하거든.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아우는 어떻게 하는고 하니, 아우도 형처럼 동네를 한 바퀴 휘 돌면서 여기저기 살핀다.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살피더니 어느 다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염불을 막 외운다.
한참 동안 염불을 외우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더니 어머니더러,
『어머니, 제가 방금 부처님의 힘을 빌려 좋은 설 음식을 장만해 놓았습니다. 어서 솥뚜껑을 열어 보세요』
하거든.
어머니가 솥뚜껑을 열어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솥 안에 커다란 대구 한 마리가 솥이 넘치게 들어 있더란 말이야.
어머니가 놀라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랬더니 아우는,
『제가 방금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마침 한 집에 좋은 대구 한 마리가 있기에 부처님의 힘을 빌려 어머니 드리려고 여기 갖다 놓은 것입니다』
이런단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크게 야단을 쳤다.
『맏이는 비록 도둑질을 배웠다고 하나 그 재주를 옳은 일에 쓰는데, 너는 어찌 그 좋은 재주를 잘못 써서 부처님을 욕되게 하느냐? 그 대구는 부모도 없이 늙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이가 할아버지 병 고칠 약에 쓰려고 장에 가서 사 오는 것을 내가 어제 봤느니라. 그 불쌍한 아이 것을 훔쳐다가 우리 식구가 먹자는 게냐? 그런 짓을 하고도 부끄럽지 않으냐?』
그래서 아우는 제 잘못을 뉘우치고 대구를 도로 아이네 집에 돌려 줬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형제가 모든 재주를 옳은 일에만 쓰고 살았다.
그런데 부자 영감네 집에는 쌀과 돈이 얼마나 많았던지, 제 집 쌀과 돈으로 온 동네가 배불리 먹고 설을 잘 쇠었는데도 표가 안 나서 끝내 눈치를 못 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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