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보쌈

정헌의 티스토리 2013. 7. 10. 19:14

 보쌈 
 

 오실이는 남동생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청상과부다.
 시집가서 1년도 안돼 신랑이 죽자 친정으로 돌아와 아버지 병 수발을 다하고 지금은 동생을 서당에 보내고 있다.
 친정을 일으켜 세우는 게 목표라 여기저기서 혼처가 들어왔지만 오실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실이 남동생이 어느덧 열여섯 장부가 됐다.
 오실이는 동생을 장가보내 집안의 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에 매파를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부모 없이 오누이만

 산다는 게 걸림돌이 돼 혼담이 깨졌다.
 어느 날 저녁 매파가 제 발로 찾아왔다.
『좋은 혼처가 나왔네』

 

 오실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파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게 어딥니까? 색싯감은 몇살이고요?』
『동생이 아니고 자네 혼처야』
 오실이는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저는 새로 시집가지 않습니다!』
『이봐, 내 말 좀 들어 봐. 서당 훈장님 말이야, 사람 점잖지 알부자지…』
『또 그 소리!』

 

 매파는 쫓겨나듯 오실이네 집을 나와 곧바로 서당으로 갔다.
 매파는 훈장을 만나 귓속말을 속삭였다.
『내일 아침에 학동들이 오더라도 식음 전폐하고 누워 계시오.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이튿날, 학동들이 서당에 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훈장님 주위에 둘러앉을 때 훈장님의 무남독녀 달님이가

 잣죽을 들고 왔지만, 그는 단호하게 물리쳤다.

 

 그 때 매파가 서당에 와서 학동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덕배를 불러냈다.
『이 눈치코치 없는 녀석아. 훈장님은 상사병에 걸린 거야. 오늘밤에 너희가  할 일은…』
 덕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밤 삼경 무렵, 덕배와 그 일당은 소리 없이 오실이네 집 담을 넘었다.
 고양이 걸음으로 청상과부 오실이 방으로 잠입해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진 오실이의 입을 틀어막고 자루에 넣었다.

 

 건넛방의 오실이 동생은 누나가 보쌈 당하는 것도 몰랐다.
 덕배네 일당들은 개선장군처럼 오실이를 넣은 자루를 훈장 방에 넣었다.
 훈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대갈일성,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딸아이 방에 편히 모셔라』
 라고 했고, 달님이는
『어머님, 놀라셨지요. 오늘밤엔 제 방에서 마음 놓고 주무세요』
 라며 벌써 어머니 대접이다.

 

 혼기가 찬 달님이는 새엄마가 들어와야 늙은 아버지를 맡기고 마음 편히시집갈 수 있는 처지라 오실이를 누구보다

 반겼다.
 한 이불 속에서 오실이와 달님이는 서로 꼭 껴안았다.
 이튿날 아침, 매파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훈장님만 헛기침을 하고 달님이 방에서는 기척이 없어 매파가 살며시 문을 열어 보다가 기절을 하고 나자빠졌다.
 오실이 남동생이 벌거벗은 몸으로 달님이를 껴안고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사전에 보쌈 정보를 입수한 오실이는 그 날 밤 남동생을 여장시켜 자기 방에 재우고 자신은 남동생 방에 가서 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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