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달통한 서예가 이삼만

정헌의 티스토리 2014. 3. 31. 23:12

                        달통한 서예가 이삼만(李三晩)

 

 조선 후기 전주지방에 이삼만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의 호는 창암(蒼巖)이었다.
 창암은 서도가를 뜻하여 대성한 사람인데 당시 대가인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으로, 지금도 그의 글씨를 볼 수 있다.

 


 이삼만은 늦게 서예에 도통하였기에 학문에 늦어 일만(一晩)이요, 장가가 늦어서 이만(二晩)이요, 친구

 사귀기가 늦어 삼만(三晩)이라고 하였다는 이름 풀이가 전한다.
 대기만성이라니까  그의 삼만은 어쩌면 인생의 큰 그릇이 되는 과정을 적실(的實)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만하다.

 


 이삼만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뱀에게 물려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래서 이삼만은 뱀만 보면, 보는 족족 회초리로 때려서 죽였다.
『이놈의 살부지수(殺父之讐)야,  불공대천지원수야』 이렇게 호통을 치면서 뱀을 죽이니,  영물인 뱀이

 어찌 이삼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요?
『어떤 우리 뱀동포가 하필 저자의 아버지를 물어 죽여서  이리 우리를 고생시키나?  하여간  살고  보는

 데는 삼십육계가 제일이니 어서 도망가자』
 이렇게 뱀들이 이삼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먼저 알고 도망가 숨어 버렸다.

 


 이삼만의 발자국뿐인가?
 그가 쓴 글씨에도 하늘에 미치는 아버지 잃은 한이 있고 독이 서려 있기에 뱀이 범접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삼만의 병풍을 가진 사람은 집에 뱀이 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뱀에 한을 품은 이삼만인지라  뱀 사(巳)자 글자를 쓴다치면  더더욱 독해져서  정말  이  글자를

 대하면 뱀이 사지를 제대로(물론 사지가 없지만) 쓰지 못하였던 것이다.

 


 뱀사(巳)자에  이삼만이라는  이름 석자만 나란히 있으면  아예  한해 내내 그것을 써 붙인 집안에 뱀이

 들어가지 아니하였기에 전북지방(부안지역)에는  뱀입춘(巳立春)이라 하여  정월 대보름에 기둥에다가

 뱀 사자를 써서 거꾸로 붙이고 이삼만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왜 거꾸로 붙였을까?
 여기 나타나기만 하면 이삼만에게 잡혀 죽어서 거꾸로 매달릴 것이니  죽고 싶으면 어서 오라는 엄청난

 위협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옛날에 뱀을 죽였다는 중국의 적제자(赤帝子)의 전설을 이용한 것 인데 적제자 대신 이삼만으로

 치환이 된 것이라고 본다.
 기둥뿐 아니라  담벽이나  우물가에 써 붙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써 붙이면 과연 뱀이 잘 나타나지 아니

 하여서 효과를 본다는데야  타지(他地) 사람들이 어찌 고개를 갸우뚱할 것인가?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고 믿을 일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이삼만이 그르지 아니하다면  이 뱀 사(巳)자 거꾸로 붙이기 효과도 그르다고

 하지 말진저.
 이삼만은  당시에 종이가 귀한 때이고  가난하였기에  베에다가 붓글씨를 쓰고 나서는 빨아서 다시 쓰고

 또 빨아서 쓰고, 천이 흐물흐물 더 이상 쓸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이 버렸던 사람이다.
 옛날 어렸을 때  신문지  한 장에다  수없이  붓글씨 연습을 해 본 사람은  조금이라도  이 분의  서예정진

 (書藝精進)을 알 것이다.

 


 나뭇잎에다가 글씨를 썼다는 선인의 예도 이삼만에게 물론 해당이 될 것이며,
 사판(沙板)이라 하여서 모래를 평평하게 만든 후에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쓴 일도 물론 있었다.
 베가 닳아지도록 글씨 연습을 한 사람이니까 벼루인들 오죽하였을까?
『모름지기 일 년에 벼루를 세 개나 구멍을 내서 서예를 정진할 일이니라』
 이렇게 작심하고 실천하였다.

 


 벼루에 구멍이 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벼루에 먹을 갈고 또 갈고, 글씨를 쓰고 또 쓰다가 보니까 벼루가 닳아지고 또 닳아져서 마침내 우묵하게

 파이고 파이다가 못 견딘 벼루가 구멍이 뻥 뚫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 년에 세 개나 된단다.
 벼루가 이럴진대 붓인들 오죽하였을까?

 


  몽당빗자루가 있다더니 몽당붓이 그에게는 많았으리라.
  이만한 서예에 대한 공력은 그의 글씨 쓰는 손 힘에도 나타났다.
「모름지기 붓글씨를 쓸 때는 붓대롱 위를 망치로 내리쳐도  종이에 점을 찍을 만큼  붓을 내리찍어서는

  안 되느니라」
「붓에 고삐를 매단 황소가 끌어당겨도 붓이 기울어져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뿐인가?

 


 일설에 이하면 그가 전주 풍남문(豊南門)의 현판 글씨를 쓰는데, 밑에서 사다리를 받쳐 주던 사람이

 사다리 위에서 이삼만이 글씨를 쓰고 있는 것을 깜박 잊고 사다리를 치웠더니, 아! 글쎄 대롱대롱 천장에

 매달려서 현판을 쓰고 있더라지 뭔가?

                        사람이 공중에 떠 있을 정도로  도가 달통한 서예가라는  과장된 이야기인 줄은 알겠으나  그저 우습다고

 치부도 할 수 없는 진지한 이야기가 아닌가?

 


『선생님, 글씨를 배우러 왔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이러면 이삼만은 두말 없이 받아서 가르쳐 주었다.
『자, 글씨는 점 하나 획 하나가 중요하니라. 여기에 점찍기를 하여라.  기한은 한 달이다』
『아이구, 점 하나 찍는데 한 달이나 걸립니까?』
『그렇다. 한 달도 적은 것이다. 어디 힘들 것 같은가?』
『그보다 빨리 끝낼 수는 없습니까?』
『없다네. 없고 말고. 그러니 자신이 없으면 어서 물러가게나』이렇게 물리쳤던 것이다.

 


 평생 붓을 들 사람이,  평생 획과 점을  운용할 사람이  평생의 몇 십분지 일,  몇 백분지 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공을 못하겠다는 말이냐고 한 것이다.
『선생님, 몸이 이리 편찮으시니 글씨를 그만 쓰시지요』
 이렇게 제자가 병중에 있는 이삼만을 만류하면 아픈 중에도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였다.
『죽는 날까지 글씨를 쓰기로 하였는데 아직 나는 죽지 아니하였으니 써야 할 것이 아니냐? 글씨를 쓰는

 것이 곧 산 것이요, 병을 이기는 길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꼭 천자문만 쓰시나이까?』

 


『천자문부터 서당에서 배우고 그리고 평생 천자문에 든 오묘한 천문지리 인간사를 배우다가 마치는

 것이니까, 내용이 그러할진대 글씨도 천자가 제일 아니겠느냐? 기초가 든든해야 무엇이든 성할 것이다.

 또 천자문은 우리의 선조인 한석봉(韓石峯) 같은 분도 우선하여 쓰셨지 아니한가?  이렇듯 기초를 소중

 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하느니라』
 이렇게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어느 여름날 바람을 쐬러 정자에 나갔다가  부채 장수가 더위를 못 이겨서 부채짐을 받쳐 두고  네

 활개를 벌리고 잠자는 것을 보았다.
「쯧쯧, 오죽 고단했으면.... 내가 저 사람을 시원하게 해주리라」
 이렇게 마음먹고  집에 가서 필묵을 갖고 나와  부채짐을  헐어서  아무 것도 쓰지 아니한  하얀  부채에

 바람 풍(風), 서늘할 량(凉), 찰 한(寒)의 한문을 써놓고 물이 흐르는 산수화도 시원하게 그려 놓았다.

 


 이런 연후에 옆에서 쉬고 있는데  부채장수가 잠에서 깨어나더니 왜 자기 장사를 망쳤느냐고 항의하자,
『어서 전주부중(全州府中, 전주시내)에 지고 가서 팔아 보시오.  이 부채는 순식간에 비싼 값으로 팔릴

  테니까. 그래도 못 팔면 저기가 우리집이니까 찾아오시오. 내가 변상하여 주리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부채장수는 큰 돈을 벌었다.
 이삼만의 작품인데 전주사람이 그냥 부채 값으로만 샀겠는가?


 나중에 부채장수가 술을 받고 돈을 마련하여 이삼만을 찾아와, 주려고 하니까 이삼만은 이렇게 말하였

 다.
『술은 목말라서 마시겠으나  돈은 필요없소.  나도 글씨 쓰고  당신은 돈 벌게 해준 것으로  피서를 잘

 했으니까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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