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부자가 오래 사는 법

정헌의 티스토리 2015. 1. 6. 19:18

          ■ 부자가 오래 사는 법


                옛날 어떤 곳에 부자가 하나 살았다.
                하나가 살았기에 망정이지 여럿이 살았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다.
                부자 하나가 열 사람의 가난을 바탕으로 생긴다는 말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 부자는 떵떵거리며 으스대며 잘 먹고 잘 살기는 하는데 자기가 이렇게 오래오래 장수할지, 이것만은

                자신이 없었다.

 

                복을 가지되 수명이 짧다면 그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리하여서 좋다는 것은 이것저것 다 먹었다.
                인삼 녹용에다가 요즘 같으면 무슨 벌레에다가 뱀에다가 물개 자지에다가, 결국 동물을 살생해 가면서

                그 동물의 명을 자기에게 잇고 힘만 세겠다는 것인데 그래도 나이 쉰이 되어 가니까 기운이 전만 못하였다.

 

                사람이 천년 만년 살 것 같아도 때가 되면 아무리 부귀를 누리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갈 곳으로 가는 법이다.
                하여튼 이 부자는 차츰차츰 장수병에 걸렸다.
                어찌하면 오래 살까, 어찌하면 건강하게 살까?
                무슨 짓을 해서라도 행복을 오래오래 누리고 살자는 그 소원이 결국 병이 된 것인데, 약만 먹어도 궁금하니까

                이번에는 용하디 용한 점쟁이를 찾아갔다.

 

               『나, 점 한 장 쳐 주게. 복채는 톡톡히 낼 것이구먼』
                그러자 그 명성있는 점쟁이가 산가지를 산통에 놓고 짤래짤래 흔들더니 탁 펼치는데,

                입을 짬짬하게 다시고 있었다.
               『왜 입만 다시고 있는가? 어디 안 좋은가?』
               『...........』
                점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다시 흔들흔들 짤래짤래 하더니만 탁,
               『음, 다시 해 볼까요?』
                다시 탁,
               『..........』

 

               『아니, 속 시원하게 말하게. 내년에나 내가 죽는다는 말인가?』
               『예, 맞습니다. 마흔아홉 살이 액운 나이인데 올해 가까스로 넘겨도 내년 쉰 살에는 료(了)올시다. 종(終) 올시다』
               『료라니? 종이라니?』
               『끝난다는 종료(終了)올시다. 허 참, 이럼 점을 칠 때는 꼭 괴롭다니까요.   꼭 내가 염라대왕이나 저승차사가 된

                것 같아서 말이외다. 부자 어른!』

 

               『아, 부자가 이 마당에 무슨 필요가 있는가? 오래 살아 보았자 내년에 죽는다는데.....

                아, 인생이 이리 허무할 줄이야. 수(壽)가 누가 길게 있기를 바라랴? 나는 겨우 요(夭)를 면하기도 힘이 들구나!』
                그러면서 탄식을 했다.
                요는 요절이니 쉰 살이 못 되어서 죽는 것을 말한다.
                부자는 실로 낙심을 하고 갔다.

 

                가서는 그 동안 자기가 돈을 악착같이 벌기 위해서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을 뉘우치고 여러 사람에게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있는 재산을 기민(飢民)하고 적선하고 동정하는 데에 썼다.
               『죽어 저승에 재산을 가지고 간다더냐?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을!』
                그러면서 그는 재산을 죄다 흩어서 남에게 적선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제 그의 수중에는 일 년 정도 먹으면 그만인 재산만 남아 있었다.
                그것이면 족하다고 여기고 그는 아주 흥겹게 살았다.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하루하루가 가치가 있었다.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남을 원망할 겨를도 없었고 남과 시비할 마음도 없었고 남을 울릴 일이 없었다.
                그럴 경황이 없었다.

 

                웃고 웃고 또 웃어도 부족한 세월이 일 년, 반 년, 다섯 달, 넉 달, 석 달, 두 달, 한 달로 줄어 들어갔다.
                이제 그는 죽을 날이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두 달, 반 년이 지나고 죽을 날이 지났는데도 이상한 일이 없으니 실로 이상하여

                그 점쟁이를 다시 찾아갔다.

 

                점쟁이 왈,
               『하늘이 당신의 적선과 선행을 굽어보고서 감동한 나머지 이십 년을 보태서 일흔 살에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아! 재산을 풀어 명을 얻었구먼. 앞으로 남은 스무 해도 온 정성을 다해 살아야겠구먼.  좋은 교훈을 주어서

                고맙네. 잘있게나!』

 

                이렇게 부자는 떠나고 점쟁이는 본디 처음부터 일흔 살에 죽을 부자를 크게 가르쳐 놓았던 것이다.
                그러면 누가 속고 누가 속였는가?
                이런 속임에는 뭔가 남다른 것이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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