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의 산

남원 혼불문학관과 서도역

정헌의 티스토리 2020. 10. 11. 21:05

■ 남원 혼불문학관과 서도역

 

사실 소설 <혼불>을 읽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최명희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다.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에 혼불문학관이있다. 외형상 한옥으로 깔끔하게 지어진 건물과 주변 단장도 말끔하다.

관촌 사선대에서 처가쪽 형제자매들과 점심을 먹고 귀가길에 잠시 시간을 내어본다. 청명하게 맑은 날 구 서도역과 함께 둘러본 혼불문학관이다.

혼불문학관의 노적봉 안내도가 맞는다면 혼불문학관에서 출발하여 노적봉,  삼계석문과 평강원,  서도역으로 한바퀴 돌아도 될 것 같으나 발길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 가는 길

 

 

 

 

 

 

 

▷ 탐방후에  ( 2020.   10.   5. )

 

 

▣ 서도역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구 서도역은 남원 또는 전주에서 혼불문학관으로 진입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곳 구 서도역 앞을 지나게 되어있다.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 철도 이설로 신역사를 준공, 이전하였으며 이곳은 1932년 준공 당시의 모습을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역으로, 현재는영상촬영장으로 옛 추억을 되새기는 문화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도역은 <혼불>의 중요한 문학적 공간이며 혼불문학마을의 도입부이다. 매안마을 끝 아랫몰에 이르러, 치마폭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논을 가르며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점잖은 밥 한 상 천천히 다 먹을 만한 시간이면 닿는 정거장, 서도역은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곳이며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니면서 이용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  안내문에서  >

 

 

 

 

 

 

도로변에서 역으로 들어서면 역사 우측편에 노거수 한그루 우뚝하고,

 

 

 

 

 

 

좌측 아랫쪽으론 소공원을 만들어 여러 철제조형물들에 혼불 이야기를 더했다.

 

 

 

 

 

 

안쪽에서 바라본 서도역 역사.

 

 

 

 

 

 

나들이나온 한팀의 가족들이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뜻밖에 주변 경관이 좋다.

 

 

 

 

 

 

 

 

 

 

 

 

 

서도역에 들어서 우측편으로는 저쪽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끝나는 곳 인근이 경계쯤이다.

 

 

 

 

 

 

 

 

 

 

 

 

 

 

 

 

 

 

 

 

 

 

 

 

 

 

 

 

 

 

 

 

 

 

 

 

 

 

 

 

 

아랫쪽으로도 가 본다.

 

 

 

 

 

 

 

 

 

 

 

 

 

 

 

 

 

 

 

 

(혼례)

"아직이 머시여? 인자사 열다섯 살이랑만

앞으로도 창창허지머 ? "

뒤에서 탄식처럼 낮은 소리가 터진다.

목소리를 눌렀기 대문에 그 심장이 더욱 간절하게 들린다.

"하이고오, 신랑 좀 보소. 똑 꽃잎맹이네.

 

(혼불 1권  185~194쪽)

 

 

 

 

 

 

 

 

 

 

 

 

 

 

 

 

 

 

 

 

              (꿈꾸는 강모)

 

 

 

 

 

 

 

 

 

 

 

 

 

 

 

 

 

 

 

 

 

 

 

 

 

 

 

이곳은 구 역사의 남쪽? 끝 지점쯤이다.

 

 

 

 

 

 

벚꽃이 활짝 필무렵이면 이곳 또한 포토존이 될 것 같다.

 

 

 

 

 

 

서도역에서 이곳 저곳 둘러보며 25분여 소요한다.

 

 

 

 

▣ 혼불문학관 

 

 

 

서도역에서 약 1.8km거리에 위치한 혼불문학관으로 왔다.

 

 

 

 

 

 

아담하게 꾸며진 주차장엔 해질녘의 공허함만 남아 있다.

 

 

 

 

 

 

주차장 가 노봉 농산물 직판장의 마당엔 코스모스 가득하다.

뒷편으로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 저수지(청호지)가 있으나 보수 중인지 물은 없다.

 

 

 

 

 

 

주차장에서 문학관으로 오르는 계단길.

 

 

 

 

 

 

여러 소원과 기원이 가득하다.

 

 

 

 

 

 

작가 최명희의 부친은 이곳 노봉마을에서 살았다.

후에 전주로 이사를 하고, 1947년 전주에서 최명희를 낳았다. (호적에는 이곳 노봉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작가 생전에 이곳 노봉마을에 자주 드나들며 소설 '혼불'의 소재를 발굴하게 된다.

 

 

 

 

 

 

작가는 1972년 전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4~1981년에는 서울 보성여고에서 근무하다  1981년 혼불집필을 위해 보성여고에서 사임하고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 제 1부가 당선된다.

1985년 장편 <제망매가> 전통문화 연재 중단 후 '혼불' 집필에 전념하고, 1988년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를 시작으로 1995년 제5부까지 만 7년 2개월을 연재하여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를 기록한다.

 

 

 

 

 

 

이쪽 건물은 사무실용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

 

 

 

 

 

 

소설 혼불은 1930년대 남원 매안이씨 집안의 종부 3대가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어 가고 있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이씨 집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그리고 허약하고 무책임한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전통사회의 양반가로서 부덕을 지켜내는 보루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엔 치열하게 생을 부지하는 하층민의 '거멍굴 사람들'이 있다.

특히 양반계층을 향해 서슴없이 대거리하는 옹구네와 춘복이, 당골네인 백단이가 강력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 이상 안내문에서 >

 

 

 

 

 

 

새암바위 안내문이 있다.

 

최명희님은 "왠일인지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온갖 정성으로 쓴 <혼불>이 새암을 이뤄 위로와 해원의 바다가 되기를 바라는 최명희 님의 뜻을 담아 이 바위를 새암바위라 한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송두리채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解寃)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 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어쩌면 장승은 제 온몸을 붓대로 세우고, 생애를 다하여, 땅 속으로 땅 속으로, 한 모슴 새암을 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마을,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그 먼 바다에 이르기까지.........."

 

< 현지 안내문에서 >

 

 

 

 

 

 

근무하는 직원에게 무엇이 주로 진열되어 있냐고 물었더니 디오라마 10장면 이야기를 한다.

안내 팜플릿을 보니 효원의 혼례식, 강모 강실의 소꿉놀이, 효원의 흡월정, 액막이 연날리기, 인월댁 베짜기, 강수 영혼식, 쇠여울네 종가 마루찍기, 청호저수지 고갈, 춘복이 달맞이, 청암부인 장례식이다.

외에 소설 혼불소개 매직비젼, 작가 최명희 집필실 재현, 혼불 배경지 키오스크 (3D 영상물), 작가 유품으로 취재수첩, 육필원고, 만년필, 상장 및 상패등과 기타 혼불사건연보, 작가의 생애,신문연재 스크랩 등이 전시되어 있다.

 

 

 

 

 

 

호석 표지석이 있다.

 

 

 

 

 

 

이 호석은 노봉마을에서 출토된 괴석으로 호랑이 형상을 닮은 희귀한 돌이다.

혼불 정신선양을 위해서 낮에도 밤에도 최명희 혼불 문학관을 영원히 지키리라.

 

 < 삭령최씨 문중에서 >

 

 

 

 

 

 

 

 

 

 

 

 

 

 

 

 

 

 

 

 

혼불문학관 외형만 둘러보고,

 

 

 

 

 

 

윗쪽 근거리에 호성사가 있어 둘러본다.

 

 

 

 

 

 

짝퉁 호성사?

 

호성암은 마을 뒤 노적봉에 있는데, 한때 수도하던 승려가 20~30명이나 되던 절이다. 이 절은 6.25때 소실되었고 현재는 바위에 새겨진 석불만 남아있다. 호성암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매안과 고리배미, 거멍굴 여인들이 공양미와 불전을 챙겨들고 찾아곤 곳이다.

호성암 도환스님과 강호는 본사 법련사를 가는 길에 사천왕상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원의 개념 동남 서북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호성암은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전래지고 있고 문학관 산책로를 이용 약 30분 거리면오를 수 있으며 비산비야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호성암이 아닌 호성사를 둘러본다. 

 

 

 

 

 

 

 

 

 

 

 

 

 

 

 

 

 

 

 

 

호성사에서 내려다 본 노봉마을쪽,

 

 

 

 

 

 

호성사를 둘러보고 되돌아 간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노적봉에 올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혼불문학관에서 노적봉 들머리를 찾아본다.

 

 

 

 

 

 

혼불문학관 뒷편이다.

 

 

 

 

 

 

주변에 이정표가 하나도 없다.

 

 

 

 

 

 

혼불 문학관 주변을 한바퀴 돌았지만 마땅한 들머리와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 안내도를 보면 이곳 혼불문학관에서 혼불쉼터,  삼계석문 이정펴를 지나 벼슬봉, 노적봉까지 갔다가 삼계석문,  평강원을 거쳐 이곳으로 되돌아 오면 한나절 코스가 될 것 같은데 마땅한 이정표는 찾아볼 수 없다.

호성사 옆으로 임도수준의 길이 보이는데 이 길이 등산로로 연결되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