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역의 산

옥천 구읍 한바퀴

정헌의 티스토리 2021. 8. 18. 21:58

■ 옥천 구읍 한바퀴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예보되어 있다.

당초 고흥 팔영산편백치유의 숲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충청지역은 비가 소강상태라 일정을 변경하여 옥천으로 향한다.

금산휴게소를 지나니 비가 멈추고 날이 차츰 개인다.

옥천 구읍에 위치한 정지용문학관과 육영수 생가 등 몇 군데를 둘러 보고, 평소 마음에 두고있던 화인산림욕장을 걷는 것으로 일정을 잡는다.

정지용 문학관에 근무하는 직원이 '옥천구읍 한바퀴'에 대해 설명하고 안내도를 준다. 친근감 있는 태도에 감사하다. 옥천 전통문화 체험관의 문화관광해설사님의 간략한 설명이 인상깊고 도로변 까지 따라나와 교동저수지 방향 길을 안내해 준다. 기대 이상의 친절에 또한번 감탄한다.

옥천구읍은 여러해 전 둘러본 곳이어서 대충 길은 알고 있지만 이들 두 분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 가는 길

 

제일먼저 만나는 곳이 정지용 생가이다. 따라서 생가주차장에 주차한다.

 

 

 

 

▷ 탐방코스

 

정지용 생가 및 문학관 - 옥주 사마소 - 옥천 전통문화체험관 - 옥천향교 - 육영수 생가 - 교동저수지 - 지용문학공원  ( 약 3km, 천천히 2시간 10분 소요  /  2021. 8. 14. )

 

 

 

 

▷ 탐방안내도

 

1.옥천전통문화체험관,  2.육영수 생가,  3.옥천향교,  4.교동저수지, 5.지용문학공원, 6옥주 사마소, 7,정지용 생가 및 정지용문학관.

 

 

 

 

▷ 탐방후에

 

 

맨먼저 정지용 선생 생가로 왔다.

바로 옆에 크지 않은 주차장이 있고, 생가앞 개울 건너편에도 주차징이 있어 주차에 불편함은 없다.

주차료 입장료 등은 없다.

 

 

 

 

 

 

문학관 앞 마당.

실물을 보면 별로인데 사진으로 보니 제법 그럴 듯 하다.

 

 

 

 

 

 

정지용 선생의 생가를 먼저 둘러본다.

정지용(음 1902. 5. 15 ~ ? 1950년 6.25 전쟁 중 납북되었고 사망한 것이 통설이다.) 선생은  이곳 옥천 출생으로 본래 생가는 1974년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집이 들어 섰으나, 1996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였다 한다.

 

 

 

 

 

 

생가와 인접하여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선생은 천재적 기질과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향수>, <고향>, <호수> 등 주옥같은 시를 발표하였다.

 

 

 

 

 

 

향수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문학관 관람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문화관광 해설사의 설명을 들어가며 감상하는 것이 좋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신정, 설, 추석 휴관)

관람료 없음.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고 바로 옆 도로를 따라 육영수여사 생가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이 초행이라면 옥천구읍 골목투어 안내도를 한장 구하는게 편하다.

 

 

 

 

 

 

옥주 사마소.

주 도로변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이정표가 있어 자연스레 찾을 수 있다.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정치, 지방 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그러나 점차 압력단체로 변하여 폐단이 컸으므로 선조36년(1603)애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구 폐단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옥주 사마소는 효종5년(1654)에 의창(곡식을 저장하여 두었다가 흉년이나 비상 때에 가난한 백성들에게 대여하던 기관)을 뜯어다가 지었다. 당(堂)안에는 '관성사마안', '향악계안', '옥천군향약계규약' 등 지방문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고문서들이 어려 편 있다.

정면5칸, 측면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앞면 4칸에 툇마루를 두고, 그 뒤에는 오른쪽으로 마루, 왼쪽으로는 온돌방, 부엌을 두었다.

 

<현지 안내표지판에서>

 

 

 

 

 

 

오늘은 안사람, 두분 제수들과 함께했다.

 

 

 

 

 

 

방과 마루는 문으로 서로 통해있으며, 좌측은 방. 우측은 마루임을 볼 수 있다.

현재 사마소는 옥주사마소(옥천), 청안사마소(괴산), 경주사마소(경주) 3곳만 남아있다 한다.

 

 

 

 

 

 

되돌아 나와 육영수 생가방향으로 향한다.

주변 몇 곳 까페와 음식점이 정겹다.

 

 

 

 

 

 

옥천 전통문화체험관으로 왔다.

 

 

 

 

 

 

전통문화체험관은 비교적 근년에 카페, 옥천관(체험동), 관성관(전시동), 식당, 고시산관(숙박동), 전통놀이마당 등을 조성했다.

 

 

 

 

 

 

다른 건물들은 외관으로만 본다.

카페, 식당 등이 깔끔하다.

 

 

 

 

 

 

전시동인 관성관으로 왔다.

관성관은 식당과 이웃하여 있으며, 여러 건물 중 대충 감으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보부상 관련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정읍사(井邑詞, 악학궤범 권 5)

 

달아 높이 높이 돋으시어

어기야차 멀리 멀리 비춰 주소서

어기야차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저잣거리에 계십니까?

어기야차 위험한 곳을 디딜까봐 두렵습니다.

어기야차 어강됴리

 

어느 것에다 놓고 계시는가

어가야차 내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 변할까 두렵습니다.

어기야차 어강됴리

 

아르 다롱디리

 

벽에걸린 정읍사가 보부상과도 잘 어울리는 시인것 같다.

 

 

 

 

 

보부상 관련 물건, 당시 생활상을 대표하는 물품을 현대적으로 깔금하게 마련한 작품들이 갖고 싶은 마을을 들게 한다.

 

 

 

 

 

 

옥천 전통문화체험관을 둘러보고 앞쪽의 도로로 나오면 옥천 교동리 비석군을 볼 수 있다.

 

이곳 구읍(舊邑) 지역은 조선시대 옥천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1917년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는 옥천읍 삼양리로 군청을 이전하면서 구읍이 되었다. 교동리 비석군은 조선시대 옥천군을 다스렸던 군수 및 관찰사 등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16기가 보존되어 있다.

 

 

 

 

 

 

위 비석군(뒷편에 유아원? 유치원? 어린이집?)과 커피타임 카페 사이로 난 길을 따르면 지용문학공원과 교동저수지 가는 길이다.

전통체험관의 문화관광해설사님, 말없이 이곳까지 따라 나와 길을 안내해 주신다.

그러고 보니 이곳 방향 이정표가 없어 초행이면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이지 싶은 생각이 들 수 있겠다.

 

 

 

 

 

 

옥천 향교도 둘러본다.

전통문화체험관에서 육영수 생가방향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옥천향교은 문외한이 보아도 일반적인 향교와는 다른 특이함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일반적으로 건물을 전학후묘(前學後廟/ 앞쪽은 학문공간, 뒷쪽은 제향공간) 로 배치하며, 앞에는 유교 교육을 위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누각이 있다. 중간에는 내삼문을 두었고, 그 뒤편에는 문묘인 대성전이 있어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실시되자 점차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문묘의 제사만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천향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 건물이 별도로 있지않고, 휴식공간 2층 누각에 바로 명륜당을 만들어 휴식공간을 없앴다. 

 

 

 

 

 

 

2층의 명륜당 양쪽 방에는 이런 온돌시스템을 구축했음이 다른 향교에서 보기 어렵다.

 

 

 

 

 

 

    내삼문 안쪽으로 대성전과 동무(東廡/집 무). 서무(西廡)가 있다.

 

 

 

 

 

 

서재인 홍도당.

 

 

 

 

 

 

동재는 없고, 자주문 밖에 고직사(관리인의 거처)가 보수 공사 중이다.

 

 

 

 

 

 

옥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다. 명륜당은 세종 22년(1440)에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후에 다시 세웠다.

그 후 여러 차례 수리하여 오다 오늘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육영수여사 생가 앞쪽에 연꽃 공원이 있다.

 

 

 

 

 

 

2021 옥천 야 문화재 ?

축제도 아니고.......

 

 

 

 

 

 

이미 진 꽃들도 있고,

 

 

 

 

 

 

지금 피고 있는 꽃들도 있다.

연꽃이 적당한 키에 단아한게 다른데서 보기 어려운 깨끗함이 있다.

 

 

 

 

 

 

육영수여사 생가를 둘러본다.

옥천 전통문화체험관, 향교, 연꽃공원등과 서로 근거리에 있다.

 

 

 

 

 

 

사랑채.

육여사 초상화가 있어 대문밖에서도 보인다.

 

 

 

 

 

 

    안채.

    정교하게, 정성을 들여 지은 집이다.

 

 

 

 

 

 

육영수 여사가 거처하던 방도 엿본다.

 

 

 

 

 

 

여러 사진들을 진열하였다.

 

 

 

 

 

 

가슴 짠하다.

 

당신이 그리우면

 

    1974년 9월 30일  박 정희

 

당신이 이곳에 와서 고이 잠든지 41일째

어머니도 불편하신 몸을 무릅쓰고

같이 오셨는데

어찌 왔느냐 하는 말 한마디 없오

잘 있었느냐는 인사 한마디 없오

아니야

당신도 무척 반가워서 인사를 했겠지

다만 우리가 당신의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야

 

.................................

 

 

 

 

 

 

윗채도 둘러 본다.

공간 구성이 안채와 비슷하다.

뒷편 후원도 올라본다.

육영수 생가는 1925년에 태어나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며 흔히 교동집이라 불려졌던 옥천지역의 명문가다.1960년대부터 삼정승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도지역 상류주택의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 1918년 육 여사의 아버지 종관씨가 매입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는데 각기 독립된 아랫집, 큰집, 윗집, 사당의 영역으로 구획하고 담장, 협문, 부속건물로 적절히 배치하였다, 1969년 본래의 모습과 다른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하여 사용되어오다 오랫동안 방치하여 퇴락 되었고 1999년 철거되었다. 2002. 4. 26일 이 생가터가 충북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수 차례의 발굴과 자문회의 등 고증을 거쳐 2010년 5월에 안채. 사랑채. 윗채. 사당 등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앞쪽으로 되돌아 나와,

커피타임 커피숍과 교동리 비석군 사이로 난 도로를 따르면 교동저수로 간다.

 

 

 

 

 

 

도로 좌측편엔 지용문학공원을 두고 조금 더 진행한다.

 

 

 

 

 

 

전통문화체험관에서 5분여 거리에 교동저수지가 있다.

 

 

 

 

 

 

교동 저수지.

그렇게 크지 않은 저수지로 둘레로 난  1.5km의 산책로를 따라 한바퀴 도는데 10~20분정도면 충분하다.

 

 

 

 

 

 

여러해 전 이곳을 찾았을때 그 조형물이 정겹다.

 

 

 

 

 

 

저수지 둑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저수지와 지용문학공원은 서로 접해 있다.

저수지쪽이 지용문학공원의 후문이 되는 셈이다.

 

 

 

 

 

 

교동저수지 쪽에서 지용문학공원으로 진입하여 공원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정문으로 내려설 것이다.

 

 

 

 

 

 

지용문학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 쯤 된다.

 

 

 

 

 

 

공원 이곳 저곳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박두진, 박용철, 조지훈, 도종환 등 유명시인 13편의 시비가 조성되어 있고 정지용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해 놓은 가벽과 시비광장, 생태연못 등으로 꾸며진 공원이다.

 

 

 

 

 

 

중앙 지용광장

 

 

 

 

 

 

 

 

 

 

 

 

 

 

지용문학공원 주차장은 좁다,

차량 몇 대 주차 공간 밖에 없다.

이곳 지용문학공원 정문에서 정지용 생가까지는 도보로 5~6분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