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대구 신숭겸장군유적지. 시인의 길. 방짜유기박물관. 동화사. 대동방서예술문화관. 신무동마애불좌상. 노태우대통령생가. 송림사.

정헌의 티스토리 2023. 8. 14. 11:26

■ 대구  신숭겸장군유적지. 시인의 길. 방짜유기박물관. 동화사. 대동방서예술문화관. 신무동마애불좌상. 노태우대통령생가. 송림사.

 

대구를 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팔공산은 1980년 경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2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예로부터 신라시대에는 부악(父岳), 중악(中岳), 공산(公山). 동수산(桐藪山)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에는 공산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지금의 팔공산으로 명하고 있으며,<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일부에서는 기존 공산에 공산전투에서 사망한 신숭겸 장군등 8공신의 8을 따 온 것으로 이야기 하는 분도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1,192n) 남쪽 기슭에 동화사가 있으며, 동쪽엔 은해사, 서쪽엔 파계사 등의 고찰이 있다.

오늘은  동화사를 중심으로 이곳 저곳 하루 일정을 잡아본다,

 

 

▷가는 길

 

 

 

▷탐방코스

대구 신숭겸장군 유적지 - 시인의 길 - 방짜유기박물관 - 고향대밭골식당 - 동화사 - 대동방서예술문화관 - 신무동마애불좌상 - 노태우대통령생가 - 송림사. (2023. 8. 13)

 

 

▷탐방후에

 

▣신숭겸장군 유적지

 

신숭겸장군 유적지에 왔다.

위치는 대구시 동구 지묘동 526번지, 입구에 주차시설이 넉넉하며 입장료, 주차료 등은 없다.

 

 

 

 

고려태사(太師) 개국공신이며 평산신씨의 시조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초명은 능산(能山)이며, 신라 말기 전라도 곡성에서 출생하였다. 장군은 918년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폭군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는데 기여하였다. 공은 그 뒤 대장군이 되어 927년(고려 태조 10)에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물리치기 위해 왕건과 함께 출전하였다. 왕건이 이곳 공산전투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자신이 왕과 옷을 바꿔입고 왕건을 가장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며, 왕건은 그 틈을 이용하여 홀로 탈출하였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신숭겸이 순절한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미리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하고 토지를 내려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

1607년(선조40)에 이곳에 표충사와 표충단, 충렬비를 세워 공을 기렸고, 1672년(현종13)에  표충사는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고종8)에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진 뒤에 후손들이 재사를 지어 이곳을 지켜오던 중 1993년 표충사를 복원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충렬문

문이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반쪽만 둘러보는 것 같아 좀 아쉽다. 표충사는 개방하지 않더라도 마당은 개방해 줌이 어떨까? 

 

표충사는 선조40년(1607)에 신숭겸 장군의 외후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영남에 사는 공의 후손들과 협력하여 옛 지묘사 터에 세웠다. 그 후 사우가 퇴락하자 현종11년(1670)에 건물을 다시 짓고  현종13년에 표충사라 사액되었다. 숙종2년(1676)에 공과 함께 순절한 김락 장군을 배향하였고, 영조 2년(1726)에 다시 공의 후손 신길원 공을 함께 배향하였으나 고종 8년(1871)에 훼철되고 말았다. 그 후 1988년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중건하고 1993년에 장군의 영정과 신위를 모셨다.

 

 

 

 

태조 왕건나무

 

왕건(재위기간 918~943)은 고려 제1대 왕으로 시호는 신성(神聖)으로, 태수 융의 아들이다. 25년간 재위하면서 국가안정을 위해 호족세력을 회유하고 토지제도를 바로 잡았으며, 궁예 이래 가혹한 조세를 경감하는 등 융화정책, 북진정책, 숭불정책을 3대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특히 신라를 항복시키고 돌아가는 견훤과 이곳 공산에서 싸웠으나 크게 패하고 목숨까지 경각에 달렸을 때 신숭겸, 김락 장군 등이 자기를 살리고 자신들은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서 후에 왕건이 찬란한 고려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수령 약400년 정도의 이 팽나무는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을 기리기 위하여 태조 왕건나무라고 이름지었다.

<안내문에서>

 

대충 고려약  500년, 이조 500년이 지난 지금 400년 된 나무에 태조나무로 이름지음은 뭔가 억지로 갖다붙인 것같이 어색하다.

 

 

 

 

신숭겸 장군과 관련 유적을 알기쉽게  설명하였다.

뒷편에는 활터가 있다.

 

 

 

 

 

저만큼 묘지같아 보이는 곳이 있다.

 

이곳 유적은 제법의 면적에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다.

숲이 짙은 곳이 아니어서 잔디로 관리하여도 될 것 같은데 수풀이 무성하다. 신씨 문중에서 관리하다 보니 재력이 부족한가 보다.

충의사 문도 개방하면 어떨까 싶다. 표충사의 문은 그렇다 치고 마당은 둘러볼 수 있도록 함이 좋을 것 같다. 장군을 생각하고 찾았는데 대문도 닫혀있고, 수풀도 무성하고, 아래의 안내표시판도 그렇고, 참 성의없는 곳이다 싶다. 

 

 

 

 

순절단이다.

 

고려장절신공 순절지지비 (高麗壯節申公 殉節之地碑)

신숭겸장군의 순절지에 세운 비석으로 1819년(순조19)경 신숭겸의 28대손 의직이 세웠다고 한다.

철종7년(1856)에 순절비 보호각을 설치하였으며 고종9년(1872)과 1928년 두 번에 걸쳐 비각을 중수하였다.

 

 

 

 

가묘인줄 알았다.

 

순절단(Altar  for Patriotic  Martyrs)이라 한다.

고려때는 지묘사 절을 지어 향사를 모셔오다가 1607년 후손 신흠과 외손인 경상도관찰사 유영순이 신숭겸장군이 돌아가신 이 자리에 단을 쌓아 위왕대사의 정신을 기려 오늘에 이른다. <안내문에서>

 

위왕대사가 뭔말이지? 싶어 영문의 안내문을 보니  the great monk Wiwang로 표시되어 있다. monk는 승려, 스님을 나타내는 말이다. 위왕은 소리나는 대로 적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싶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자로는 爲王代死로 쓴다, 왕을 대신하여 (신숭겸 장군이) 죽은 사실을 위왕스님(대사)으로 표기한듯 싶다. 대단한 번역이다.

 

 

 

 

순절단 주변에 배롱나무들이 제법 많다.

 

 

 

 

이곳 배롱나무는 시 지정 기념물로, 보호수다.

수령 약400년,  주변엔 수풀 무성하고, 힘에 부쳐서인지 꽃의 상태가 영 신통찮다.

 

 

 

 

▣시인의 길(시비석)

 

동화사쪽으로 향하다 대구 방짜유기박물관으로 방향을 틀면  이내 도로변에 있다.

좌. 우측으로 모양새 있는 돌을 많이 모아두었다.

 

 

 

 

 

壽(수)

 

세상에

生命이 주어지고

壽命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기에

목숨 壽는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여기 岩刻의 壽는 

命을 기원하는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천목 반야거사

 

 

 

주변에 이런 바위들이 많다.

아마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모아둔 것 같다.

 

 

 

 

한쪽 도로변에는 시를 새긴 바위가 도로변을 따라 줄지어 있다.

 

 

詩人

 

        고은

 

노래하며 놀다가

노래하며 가네

 

 

 

 

바다에 누워

 

                 박해수

 

내 하나의 목숨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저문 노을을 바라본다.

설익은 햇살이 따라오고

젖빛 젖은 파도는 

눈물인들 씻기워 간다.

일만의 눈초리가 가라앉고

포물의 흘러움직이는 속에

뭇별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그냥

 

           문무한

 

그냥이란 말과 마냥

친해지고 싶다. 나는 

그냥 그냥 읊조리면

속된 것  다 빠져나가

얼마나

가벼워지느냐

그냥 그냥

또 

그냥

 

 

 

 

도로변에 많은 철모쓴 이들이 있다.

 

 

 

 

 

이 많은 것을 어디서 모았을까?

 

 

 

 

 

이 거리를 시인의 길이라 한다.

길이는 100~200m정도, 23편의 시비가 있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竹篇(죽편)

      ~여행

 

                 서정춘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를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대구 방짜유기 박물관

 

대구 방짜유기박물관으로 왔다.

위치는 동구 도학2동 방짜유기박물관으로 검색하면 된다.

주차료, 입장료 등은 없다.

 

 

 

 

문을 들어서면 양쪽에 두개의 징이 있는데 이쪽 것이 조금더 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징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단다.

이봉주 명인과 중국의 어느분과 합작품으로 징 측면에 기재되어 있으며, 앞쪽에 버튼을 누르면 징소리가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곳 박물관은 국가무형문화제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선생이 제작하고 수집한 방짜유기작품 275종, 1,489점을 대구시가 기증받아 방짜유기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2022년 12월 부터는 대구근대역사관, 대구방짜유기박물관, 대구향토역사관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여 (재)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로 새롭게 출발한다고 한다.

 

 

 

 

이곳 박물관은 2000년 11월 박물관 건립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2007년 5월 개관하였다.

본관 1층은 유기문화 전시실, 영상교육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실을 둘러본다.

 

 

 

 

 

유기란 놋쇠로 만든 器物로 ,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 : 22 비율로 녹여서 만든다고 한다.

이봉주 장인(현 97세)과 그의 아들 이형근은 경북 문경 출신으로 문경에 납청요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구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이 기계장치는 유기제품의 맨 마지막 광택을 내는 기계인 것 같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재현실, 수장고 등이 있다.

모형인물이 유기 제작과정을 재현하고 있다.

 

 

 

 

이곳은 별관 기획전시실.

이웃하여 방짜유기 판매장이 있는 건물이다.

 

 

 

 

어반 스케쳐스(Urban  Sketchers)

 

화가들이 자신이 살고있는 또는 여행을 간 도시, 읍, 마을을 현장에서 그리는 세계적인 단체이다. 어반 스케쳐스 운동은 2007년 가브리엘 캄파나리오 기자가 플리커에서 시작하였다. 캄파나리오는 2009년 비영리기구를 설립하였다.<위키백과>

 

전세계 260개국이 넘는 나라에 USK 챕터가 있고, 각 나라마다 1~수십개(미국은 200개 이상)의 챕터가 있다고 한다. 국내에는 8개 공식 챕터가 있으며(인천. 서울. 수원. 대구.경주.울산. 부산.제주), 21개의 비공식 챕터가 있다. 그 중에서 대구도 공식 챕터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려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고향차밭골 식당

 

고향 차밭골 식당

전에부터 유명했는지?

아님,  MBC테마기행 길/ 대구 팔공산편 방송에서 소개되어서인지 손님이 많다.

 

 

 

 

테마기행 대구 팔공산 편에 나온 식당을 방짜유기박물관에 근무하는 문화관광해설사님에 물었더니 모르고 있다.

몇 몇 지인에게 전화를 하더니 이 집임을 알려준다.

감사하다.

 

 

 

 

룸은  3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곳은 가장 작은 룸이다.

 

 

 

 

 

반찬 수는 14~15가지 정도? 아님 그 전후.

명인이 만들었다고 음식이 더 귀한것 같다.

 

 

 

 

주 메뉴는 차밭골 정식

금액을 감안하면 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식단으로 그 정도다.

 

 

 

 

▣ 동화사

 

팔공총림동화사.

입구에 매표소가 있으나  지난 5월 언제부터인가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않는다.

보이는 문을 들어서기 직전 주변에 크지않은 주차장이 있으며 무료이다.(저기 보이는 문을 통과하면 주차료를 받고 있음)

 

 

 

 

비로봉은 과거 두어번 올라본 적이 있으며,

동화사 역시 둘러 본 적은 있으나 참 오래 전이다.

 

 

 

 

 

신 사천왕문인 셈이다.

 

 

 

 

 

 

부토탑 쪽으로 살짝 돌아가는 데크로드도 만들었다.

 

 

 

 

 

터널을 지나 조그만 소류지를 지나면 동화사 주차장이 있다. 이곳은 유료 주차장으로 팔공총림 사천왕문에서 주차료를 징수하고 있다.

 

 

 

 

 

동화사로의 진입로는 두 곳 있으며, 이쪽으로의 진입은 처음인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화사 봉서루를 지나오르면,

 

 

 

 

 

백중기도를 드리는 분들인가?

 

 

 

 

 

대웅전이 있다.

 

 

 

 

 

측면에서 본 대웅전이다.

 

 

 

 

 

대웅전 좌측 뒷편으로 오르면 산신각이 있고,

 

 

 

 

 

조사전과

 

 

 

 

 

칠성각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주변을 둘러보고 약사여래대불을 보러 내려간다.

 

 

 

 

 

동화사 사적비?

극락전, 금당선원쪽도 둘러볼까 하다가 템플스테이 위주의 구역인것 같아 둘러보지 않았다.

 

 

 

 

 

이 길은 봉황문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과거에는  이 길을 이용했으나 지금은 측면 동화문을 거쳐 들어오면 더 가깝고 쉬워 한적한 길이 되었다.

천천히 산책하며 걷기에는 이 길이 더 좋다.

 

 

 

 

약사여래불 쪽으로 간다.

 

 

 

 

 

이곳은 통일기원대전 건물과 약사여래 대불 등의 스케일이 대단하다.

 

 

 

 

 

통일기원대전 앞으로 난 편한 길을 따르니 오래되어 낡고 거대한 북과 구시가 있다.

 

 

 

 

 

지하 구조물을 포함하여 규모가 상당하다.

 

 

 

 

 

약사여래대불

 

 

 

 

각도를 조금 달리하여,

 

 

 

 

 

약사여래대불을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우측에 십이지신상이 있고,

지하로 법화보궁 가는 입구가 있다.

 

 

 

 

법화보궁 주변을 둘러본다.

 

 

 

 

 

여러 행사 관련 사진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한바퀴 돌아 중앙의 방으로 오르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볼 수 있다.

사진촬영금지로 표시되어 있어 사진에는 없다.

 

 

 

 

 

통일기원대전에 올라본다.

1층?  반지하?에 성보박물관이 있는데 문이 닫혀 있다.

 

 

 

 

 

살짝 당겨본다.

 

 

 

 

 

옹호문(사천왕문)으로 되돌아 올라와 동화사 탐방을 마무리 한다.

주차장 아랫쪽에 비로전이 있는데 가지 않았다.

 

 

 

▣대동방 서예술문화관

 

대동방서예술문화관에 왔다.

3층의 건물에 1층은 식당, 가게 등이 들어서 있고, 2층과 3층이 전시실이다.

우측에 약간의 나지가 있어 그곳에 주차했다.

 

 

 

 

팔공서맥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64폭 세계최대 반야심경

사실 율산 리홍재 선생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TV테마기행 길에서 살짝 본게 다이다.

 

 

 

 

찻사발이라고 해야 하나?

전시와 판매도 같이 한다.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수많은 글자로 부터 엄청 정성을 느낄 수 있고,

또한 1,200만원 가격표가 붙어있어 (백만단위인지 천 단위인지 헷갈림) 더욱 보는 재미가 있다.

 

 

 

 

리홍재 선생에 대해 아는바가 없어 인터넷 이곳 저곳을 뒤지다 보니 경북매일에 시인 손경찬님이 쓴 글이 있다.

 

한국예술문화명인 율산 리홍재

 

김천 감문면 우야리 출생,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독학으로 한자쓰기에 취미를 붙여,

1976년 죽헌선생의 사숙에서 안진경 서체 등 모든 서체 섭렵하고 전각과 문인화 등 붓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독학.

1976년 필방 주인 김진구씨를 만나  1979년 그의 주도하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율림서도원 원장으로 취임 (23세), 1년 후 24세에 첫 전시회 개최하고 77점의 작품을 꽤 높은 가격으로 판매.

그후 불혹 들어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가 됨

1997년 울산에서 예술로 승화시킨 타묵 퍼포먼스 본격 시작

2000년 봉정사 법요식에서 삭발을 하고 휘호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며 타묵퍼포먼스의 작가로 입지 굳혔다.

 

 

 

 

 

여러 초대작가의 찻사발 전시 및 판매도 이루어 지고 있다.

 

 

 

 

 

그림? 을 자세히 보면 큰 글자와 작은 글자의 조합이다.

붉고 푸른 배경은 큰 글자와 같은 작게 쓴 무수히 많은 글씨이다.

이걸 만자행(萬子行)이라 한다.

만자행의 萬은 많음을 뜻한다 한다.  붓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작은 글씨로 화폭을 가득 채우는 방식이다.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여토명시(如兎明視)

400만원

 

 

 

 

선생이 사용하는 각종 붓

이보다 더 큰 붓도 있다.

 

 

 

 

다른 전시실로 왔다.

 

 

 

 

 

 

 

 

 

 

 

타묵행

8,000(8백만원?)

 

 

 

 

테스 형

 

아! 테스형

어쩌다가 한바탕 턱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져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은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

 

 

 

 

 

 

 

 

 

 

불(佛)

1,600만원

 

 

 

 

 

 

 

 

 

 

좌 忠(충) 만자형, 5백만원 

우측 ?  8백만원

 

 

 

 

 

 

 

 

 

 

 

 

 

 

 

 

이곳은 2층이다.

 

 

 

 

 

특별한 느낌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여려 수백억원어치를 단숨에 보았다.

1층에 각종 소품을 저렴하게 파는 매점이 있어 구경하고 색상이 고와 도자기 3점을 샀다.

  

 

 

 

▣ 신무동 마애불 좌상

 

지나치는 길에 신무동마애불좌상 이정표가 있어 둘러보러 왔다.

언듯 이정표를 보면 도로를 기준으로 윗쪽(대구교육원 팔공산 수련원 쪽)에 위치할 것 같지만 도로 아랫쪽 구룡사 경내에 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도로가 좁으므로 내비에 <신무동마애불좌상>으로 검색하면  안내한다.

구룡사 앞에 차량 몇 대 주차공간이 있다.

 

 

 

 

팔공산 구룡사

 

 

적멸보궁.

 

 

 

 

 

땅위에 노출된 커다란 바위 우측 상단에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바위면에 감실 모양으로 얕게 파고 그 곳에 돋을새김한 좌불이다.(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재18호)

불상은 상투모양의 머리카락이 있으며 풍만하면서도 길쭉한 얼굴을 하고 있다.

큰 기대는 않고 지나는 걸음이라면 잠시 둘러봐도 좋을 듯 싶다.

 

 

 

▣13대 노태우대통령 생가

 

노태우 대통령 생가에 왔다.

동화사에서 팔공산 자연공원으로 이어지는 도로변 중간에서 아랫쪽 약400m거리인 용진마을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으나 심심찮게 지관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생가 앞쪽엔 특별히 주차장이 없고 노변 조금 넓은 곳에 주차해야 한다,

 

 

 

 

 

용진마을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도시라고 있는 듯하며, 용의 머리에 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용진마을이라 한다.

앞마당에서 보면 왼쪽의 응봉산, 중앙의 응해산, 오른쪽에 도덕산이 자리하고 있어 조망이 일품이라 하나 여름철 나무가 무성하여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그렸을까?

위성지도를 보아도 감이 안잡히는 곳인데 기막히게 그렸다.

 

 

 

 

입구 우측의 건물은 소마구,

 

 

 

 

 

안채

공사중이다.

 

 

 

 

안채에 ㄱ자 형태로 아랫채가 있다.

 

 

 

여러가지 한 일. 업적 등을 기록하였다.

 

 

 

 

세월 무상이다.

 

 

 

 

안채 뒷편으로 돌아가면 이런 바위가 있고, 거북바위라 이름지었다.

 

 

 

▣ 송림사

 

집안에 상을 당해 그냥 지나칠려다 에라~ 둘러보고 가자고 온 곳이다.

도로변 주차장이 있어 이곳에 주차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송림사 안쪽에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팔공산 송림사.

 

 

 

 

 

무설전 뒷면

 

 

 

 

 

법종각

아랫층은 사찰문화해설 및 신행상담실로 사용되고 있다.

참 어색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첫 인상은 참 깨끗하다.

 

 

 

 

 

송림사 오층 전탑  / 보물

벽돌로 만든 통일신라의 탑으로 우리나라에 몇 기 밖에 남아 있지않은 전탑이다.

 

 

 

 

무설전

 

 

 

 

 

대웅전

건물은 작지않은데 지붕의 높이가 낮아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보는 위치 때문인가 보다.

 

 

 

 

대웅전 우측 뒷편에 위치한 응진전

 

 

 

 

대웅전 측면이다.

들어가는 문이 뒷쪽에 있다.

측면 3칸 중 가운데 칸에 부처님을 배치하고 뒷 1칸은 빈 공간으로 두어 앞쪽공간이 매우 좁은 것이 특이하다.

 

 

 

 

산영각

아주 조그만 건물이다.

 

 

 

 

송림사 대웅전(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으로 경상도에 조성된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 중 가장 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세워진  사찰 건물들이 대부분 정면3칸, 측면 3칸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당시 송림사는 다른 사찰보다 특별한 지위를 누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은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로 구성된 석가 삼존 형식으로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조선 효종 9년(1657)에 제작되었으며 도우를 비롯한 8명의 조각승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탑

 

 

 

 

대웅전 좌측에 부도탑 등이 있다.

맨 산골짜기에 위치한 절만 보다가 주변이 탁 트인 평지여서 뭔가 다른 느낌이다.

 

 

 

 

 

 

 

 

 

 

삼천불전

 

 

 

 

 

송림사 주차장이 별도로 넓직하니 있다.

이곳에 주차 할 걸......

 

 

이곳 송림사 아랫쪽에 동명저수지가 있다.

상부쪽에 주차장과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이곳에 주차후  주변을 한바퀴 둘러봐도 되겠다.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