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산

창원 향교

정헌의 티스토리 2024. 1. 2. 22:36

■창원향교

 

창원향교는 고려 충렬왕2년(1276)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가증(加證)할 만한 문헌이 없다. 조선 태조7년(1398)에 360개 향교를 지방에 증설할 당시 건축된 듯하다. 성종13년(1749) 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내상리)에 이건하였다가 영조25년(1749) 정월 9일에 고성상량(告成上樑)하고, 같은 해 3월 3일에 현 위치로 이교봉안(移校奉安)하였다. 1761년 풍화루(風化樓)가 창건되었고, 그 옆에 창건비와 선정비군이 세워져 있다.

창원향교는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대성전 전면에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다. 명륜당 우측편에 전사청, 헌공청, 양현재가 있다.향교 출입문에 하마비와 홍살문, 풍화루가 각각 세워져 있다. 그리고 경내에 공부자 석상을 모셔놓았다.  <현지 안내문에서>

 

 

▷가는 길

 

 

 

 

 

 

▷탐방후에 (2023. 11. 1.)

 

 

홍살문.

 

 

 

 

 

 

입구의 보호수.

 

 

 

 

 

 

풍화루

 

 

 

 

 

 

비석군

 

 

 

 

 

 

명륜당

 

 

 

 

 

 

서재

 

 

 

 

 

 

동재

 

 

 

 

 

 

전사청, 헌공청, 양현재

 

 

 

 

 

 

대성전 내삼문

문이 잠겨있어 대성전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대성전

 

향교는 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고, 지역사회의 인재 양성과 미풍양속의 교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전통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는 교육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및 동.서무는 제례 기능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창원향교의 건물배치는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례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 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건물의 놓이가 높고 규모가 큰 편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성생단(省牲壇(살필성, 희생 생,)?

 

 

 

 

 

 

서무 뒷쪽편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공부자 상

 

 

 

 

 

 

 

공부)

석전과 석채는 다 같이 차려놓는다는 뜻이지만, 석전은 생폐. 합악(樂),  헌수 등 성대한 차림이고, 석채는 빈번지류의 단조로운 차림으로 보면 되겠다.

 

우리나라 과거 국립대학 역할을 했던 기관을 보면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을 설립하였고, 신라 신문왕 2년에 국학을 설치하였다. 백제는 설립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삼국사기에 오경박사 등 명칭이 나오고, 박사 아직기와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는 성균관이 있다.

 

선사(先師)눈 전대의 휼륭했던 스승을 말하고, 선성(先聖)은 주대(周代)에는 요, 순, 우, 탕, 문왕,무왕, 주공을 한대(漢代) 이후에 공부자가 추가되었다. 당 현종이 개원27년(736)에  공자를 문선왕으로 추봉했다.

 

 

 

 

 

 

인의예지신

인인인인(人人人人) 사람이면 다 사람이나 사람짓을 하는 사람을 사람이라 하느니라.

 

 

 

 

 

 

유림회관에 교육차 왔다가 둘러본 창원향교이다.

23년 11월 1일 이곳에 들렀는데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으로 잊고 있다가 늦게나마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