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산

의령 남산 둘레길

정헌의 티스토리 2024. 2. 28. 19:43

■의령 남산 둘레길

 

2014년에 찾았으니 그의 10년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당시 충익사를 들머리로 하여 남산 정상에 오른후 만천분기점으로 내려선 후 둘레길을 따라 원점회귀 했다.

오늘은 충익사를 출발하여 체육공원까지 오른 후, 남산 정상으로의 길이아니라 남산 둘레길을 걸어 보기로 한다. 초행이라면 중간의 만세곡 고개에서 임도를 따라햐 한다는 것만 주의하면 둘레길을 걷는데 어려움은 없겠다. 들머리에서 체육공원으로 오름길이 조금 오르막이지만 여타 그의 평탄한 둘레길로 걷기 좋다.

창원에서 차량 엔진오일을 교체하고 귀가길 잠시 둘러본 남산 둘레길이다.

 

 

 

▷가는 길

초행이라면 충익사를 들머리로 함이 무난하다.

 

 

 

 

 

▷탐방코스

충익사. 의병박물관 - 수월사. 고분군 - 체육공원 - 남산 둘레길 - 구름다리 -충익사 주차장

(약 9km, 충익사. 수월사 등 이곳저곳 탐방 포함, 보통 걸음으로 3시간 소요   /   2024. 2.28.)

 

 

 

▷탐방안내도

 

 

 

 

 

 

 

 

의병박물관 기점으로 둘레길을 합하면 8.5km로 나온다.주차장에서 의병박물관까지, 구름다리 주변을 더하면 9km쯤 되겠다.

 

 

 

▷탐방후에

 

 

충익사에서 출발한다.

초행이라면 이곳에서 시작함이 무난하다.

충익사, 의병박물관, 구름다리 등이 있어 같이 둘러보면 된다.

이 의병탑은 임진년(1592) 4월 왜군의 침입으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의병장과 휘하 17장수의 호국.충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72년 건립하였다.

 

 

 

 

 

 

충익사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충의문으로 들어간다.

 

이 곳은 1592년 임진왜란 떼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망우당 곽재우(1552~1617)장군과 그 휘하 17장수 및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충의각

 

곽재우 장군은 명종7년인 1552년 외가인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출생했다. 1585년(선조18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의 내용이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가 있다하여 파방되자 과거를 포기하고 은거하며 자연과 더불어 시를 지으며 초야에서 지냈다.

1592년(선조25) 4월 13일 왜군이 침입하자  4월 22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기강에서의 전투를 비롯하여 정암진, 현풍. 창녕, 영산 , 화왕산성 등에서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 왜군의 보급물자 차단과 전라도 진격을 저지함으로써 왜군의 전쟁수행에 대한 막대한 차질을 안겨주었다.

이곳 충의각에는 곽재우와 17장군의 이름, 본관, 호, 벼슬등을 기록한 명판을 보관하고 있다. 원래 이 건물은 1910년 합천이씨 문중에서 의령읍 동동리의 관찰사를 지낸 이중하를 기리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72년 재부산 향우회에서 이를 매입하여 충익사 인근으로 옮겨왔고, 1978년 충익사 정화사업을 하면서 이곳에 자리잡았다.

건물은 앞면 2칸, 옆면 1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붕 아래에 달린 목재 구조물의 높이가 매우 높고, 지붕의 면적도 넓다. 극락세계에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상여 모양을 본떠 지은 건물로, 장식성과 예술성, 그리고 기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료 평가된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壬亂唱義十八將諸位(임란창의18장제위)

방명芳名(꽃다울 방), 本貫, 號, 증직贈軄(줄증, 직문직)

郭再祐    玄風   忘憂堂   兵曹判書

尹   鐸     坡平   龜   山   兵曹參判

............................

朱夢龍    新安    龍  岩    刑曹判書

 

 

 

 

 

 

약 500년생 모과나무

원래 가례면 수성마을의 당산나무였으나 1978넌에 충익사 정화 사업을 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심었다한다.

 

 

 

 

 

 

언듯 보면 한반도 지형의 좌우를 바꾼 모습이다.

 

 

 

 

 

 

충익사(忠翼祠/ 날개익)

 

 

 

 

 

 

가운데 忠翼公忘憂堂芭?山郭先生再祐神位函(충익공 망우당 파?산 곽선생 신위 함)

좌,우  壬亂唱義無名義兵諸位 神位函 (임란창의무명의병제위함)

 

 

 

 

 

 

기념관

 

 

 

 

 

 

기념관엔 충익공 곽재우 장군 연보와 신도비문 탁본, 그림 몇 점 등이 걸려있다.

 

 

 

 

 

 

충익사를 거쳐 의병박물관 앞으로 왔다.

 

 

 

 

 

 

의병박물관 좌측 뒤편으로 수월사로 오르는 도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른다.

 

 

 

 

 

 

수월사 축대 아래 도로가 커브진 곳에 구름다리 갈림길이 있다.

남산 둘레길을 걷고 이 길을 따라 구름다리로 내려갈 것이다.

 

 

 

 

 

 

수월사 갈림길에서 수월사를 보고 간다.

 

 

 

 

 

 

수월사를 창건하신 분들일 것이다.

 

 

 

 

 

 

 

 

 

 

 

 

 

 

 

 

 

 

 

 

대웅전 내부.

 

 

 

 

 

 

용왕각

뒷쪽에 삼성각이 있다.

외견상 절은 절다워야 운치가 있는데 편의상 달아낸 여러 조립식 건물들과 함석지붕 등에서 깨끗하다. 아담하다. 등의 기운은 느끼지 못함이 아쉽다.

보살님이  따뜻한 목소리로 커피 한 잔 드린다고 했는데 사양했다.

 

 

 

 

 

 

되돌아 나와 임도를 따라 오른다,

이 임도(탐방로)는 위 체육시설이 있는 봉우리까지 연결된다.

 

 

 

 

 

 

이내 중동리 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군은 남산 정상에서 서쪽(의령읍내쪽)으로 뻗은 능선상에 4기의 큰 무덤이 있는 유적이다.

1호부터 3호는 서로 접하여 있고, 4호분은 80m 정도 상부의 능선상에 있다.

1993년 1호분과 4호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1호분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 세울 수. 시신을 위에서 수직으로 넣도록 옆으로 트인 입구 없이 돌로 네 벽을 짠 무덤),  4호분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깬돌로 널을 안치하는 널방을 만들고 외부로 통하는 널길을 만든 뒤 흙으로 씌운 무덤)으로 밝혀졌다. 1호분은 동서 17m, 남북21m, 높이 3.6m 정도로 큰 규모의 무덤에 속하며, 2호분과 3호분도 1호분과 크기가 비슷하다. 다만 위쪽에 떨어져 있는 4호분은 규모가 약간 작은편이다.

유물은 도굴로 인해 그의 남아 있지 않으나 1호분의 딸린 무덤(한 무덤의 옆에 딸린 조그마한 무덤으로, 순장 혹은 껴묻거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 많은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을 통해 대략 6세기 초반에서 중반(가야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고분군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지역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인다.

<현지 안내문에서>

 

 

 

 

 

 

3기의 고분을 둘러보고 윗쪽으로 오른다.

고분 상부에 둘레길 갈림길이 있다.

 

 

 

 

 

 

오늘 둘레길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볼 것이다.

따라서 이곳은 나중 출구가 된다.

 

 

 

 

 

 

도로를 따라 오른다.

조금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계단이 보이고 4호 고분이 있다.

1호 고분과는 80m거리라 한다.

 

 

 

 

 

 

4호 고분으로 위  3고분에 비해 규모가 조금 작다.

 

 

 

 

 

 

 

 

 

 

 

 

 

 

 

 

 

 

 

 

탐방로를  살짝 벗어난 지점에 정자를 세웠다.

 

 

 

 

 

 

 

 

 

 

 

 

 

주 능선상으로 오르면 체육공원이 가까워 졌다.

 

 

 

 

 

 

체육공원은 남산 정상에서 의령읍쪽(서쪽)으로 뻗은 능선상의 어느 봉우리에 조성되어 있다.

 

 

 

 

 

 

들머리 주차장에서 충의사, 수월사등을 둘러보고 이곳 체육공원까지 오르는데 약 1시간 10분 소요되었다.

 

 

 

 

 

 

체육시설에서 남산 정상쪽으로 짧게 살짝 내려서면,

 

 

 

 

 

 

안부에 둘레길 갈림길이 있다.

 

 

 

 

 

 

만세곡(서남마을) 표지판이 있어 이 길이 둘레길 맞나? 싶은 생각을 했다.

만세곡 방향 이정표나 기둥에라도 작은 둘레길 표시를 부착시켜 주면 외지인의 초행자에게는 도움이 되겠다.

 

 

 

 

 

 

위 갈림길에서 조금 급하게 살짝 내려서면 길은 이내 완만해 진다.

 

 

 

 

 

 

 

 

 

 

 

 

 

 

 

 

 

 

 

 

 

 

 

 

 

 

 

 

 

 

 

 

 

 

제법 사면길을 따르다 서남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이내 임도를 만난다. 이곳이 만세곡으로, 옆에 고압선 철탑이  위치하고 있다.

체육공원에서 25분여 소요되었다.

 

여기서 잠시 망설였다.

둘레길은 어느 길이냐? 남산 정상쪽이냐? 이정표상 구룡사 쪽이냐?

구태여 큰 돈 들일 필요 없이 이곳에도 구룡사쪽 방향으로 작은 둘레길 표시라도 해 줌이 좋겠다.

구룡사쪽 임도를 따른다.

 

 

 

 

 

 

여기서 부터 한동안 임도를 따라간다.

 

 

 

 

 

 

 

 

 

 

 

 

 

 

 

 

 

 

 

 

만세곡에서 임도를 따라 15~6분 정도,

임도가 급하게 휘어져 내려가는 곳에 정자가 있다.

 

 

 

 

 

 

이곳엔 안내도가 있어 도움이 된다. 현 위치 만천분기점이다.

그러니까 만세곡에서 만천분기점 까지는 임도인 셈이다.

 

 

 

 

 

 

위 만천 갈림 길에서 남산쪽 능선으로 오르면 이내 둘레길 갈림길이 있다.

 

 

 

 

 

 

들레길을 따른다.

 

 

 

 

 

 

 

 

 

 

 

 

 

 

 

 

 

 

 

 

 

 

 

 

 

 

 

 

 

 

 

 

 

 

 

 

 

 

 

 

 

 

 

 

 

 

 

 

 

 

 

 

 

 

 

 

 

 

 

 

 

 

 

 

 

 

 

 

 

 

 

 

 

 

 

 

 

 

 

 

 

 

 

전망대

 

 

 

 

 

 

의령 읍내가 요만큼 보인다.

 

 

 

 

 

 

 

 

 

 

 

 

 

고분군 상부로 돌아 왔다.

만천분기점에서 고분군 또는 수월사 입구까지 약 50분 정도 소되었다.

 

 

 

 

 

 

고분군을 지나.

 

 

 

 

 

 

수월사 아랫쪽으로 내려오면 구름다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지그재그 경사가 제법 있다.

 

 

 

 

 

 

구름다리로 내려왔다.

 

 

 

 

 

 

의령박물관쪽,

 

 

 

 

 

 

 

 

 

 

 

 

 

 

 

 

 

 

 

 

구름다리를 둘러보고 의병벅물관쪽으로 간다.

 

 

 

 

 

 

데크로드를 따라.

(우측 계단은 수월사로 오르는 길이다.)

 

 

 

 

 

 

3.1독립운동 기념비

 

1919.3.1일 서울지역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의령 지역에서는 장날이었던 3.14일, 2천여명의 군중이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5일과 16일에도 군민과 의령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많은 사림들이 고문과 옥고 등을 겪었다.

 

 

 

 

 

 

수월사 입구에서 구름다라를 둘러보고 의령박물관 앞으로 되돌아 오는데는 16~7분 정도 소요하여 남산 둘레길 탐방을 마무리 한다.

총 거리 약 9km,  3시간쯤 소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