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말도 아닌 말

정헌의 티스토리 2011. 1. 26. 13:59

말도 아닌 말

 

 옛날에 남의 집 머슴으로 억척같이 일해서 살림을 좀 일군 사람이 있었다.
 이십 년 머슴살이에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모은 돈으로 논도사고 밭도 사고 해서 제법 살 만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살림이 좀 있다니까 고을 원이 가만히 두질 않는다.

 

 어떻게든 재산을 빼앗아 보려고 이 사람을 잡아다 생트집을 잡는데,
『네가 남의 집 머슴 살던 주제에 웬 살림을 그리 모았느냐? 분명 남의 재산을 훔쳐서 부자가 되었겠다?』
 이러고 속 뒤집어지는 소리를 한다.
『아이고, 사또.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밥 한 술씩 덜 먹고 논밭 한 뙈기씩 사 모은 것이지, 남의 재산을 훔치다니

  요. 당치도 않습니다』

 

 아무리 사정 이야기를 해도, 생트집으로 남의 재산 빼앗으려 드는 데야 당할 재간이 없다.
『네가 그래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관장을 속이면 어떤 벌을 받는지 알기나 하고 그러느냐?』
『어찌 저더러 속인다고만 하십니까?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일입니다』
 고을 원이 들어보니 아무래도 순순히 재산을 내놓을 것 같지 않단 말이지.

 그래서 아예 억지를 쓰기로 작정을 하고,

『네가 살려거든 이렇게 해라. 낮도 아닌 밤도 아닌 날에 옷도 아닌 옷을 입고, 말도 아닌 말을 타고 선물도 아닌 

 선물을 가지고 오너라. 그걸 못 하면 재산은 물론이고 목숨도 살려 두지 않겠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그리고 사흘 말미를 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기가 막힌다.
 원 그런 어거지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
「아이고, 사또. 잘못했습니다」하고 재산을 반쯤 뚝 떼어 바치면 아무 탈이 없을 줄 알지만, 그러기는 싫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버렸다.
 밥도 안 먹고 내리 사흘을 누워서 끙끙 앓는 거다.

 까짓것,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지 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한테 열세 살 먹은 딸이 하나 있었다.
 이 딸이 보니 아버지 모습이 말이 아니다.
 왜 그러시느냐고 물으니 이러저러해서 이제는 꼭 죽게 됐다고 그런다.

 딸이 한참 생각하더니 무슨 수를 냈는지 얼굴에 생기가 돈다.
『아버지, 어서 일어나 진지 잡수세요. 좋은 수가 있습니다』
『네까짓 것이 무슨 좋은 수를 내』
『염려 마시고 어서 기운을 차리세요.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그래 무슨 수냐 하고 물으니까 딸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일러 준다. 들어보니 그럴듯하다.
 그래서 딸이 시킨 대로 어디서 누더기를 하나 주워 걸치고, 당나귀를 빌려탔다.
 그리고 참새를 한 마리 잡아서 소매 속에 넣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

 

 날이 어스름 저물 때에 고을 원 앞에 썩 나갔다.
『사또가 하라는 대로 다 해 왔습니다』
 잘못했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러 올 줄 알았는데 하라는 대로 다 해 왔다고 떵떵거리니까 원이 떫은 감 씹은 얼

 굴이 되었다.

『그래, 뭘 어떻게 해 왔느냐?』

『지금이 저녁나절이니 낮은 다 지나가고 밤은 아직 오지 않았지요? 그러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날이지요』
 이치에 맞는 말인지라 원이 할 말이 없었다.
『그래, 그 다음은?』
『보시다시피 누더기를 걸쳤으니 옷도 아닌 옷이지요』
 그 또한 틀리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당나귀를 타고 왔으니 말도 아닌 말이지요』
 또 할말이 없다.

『선물도 아닌 선물은 어디 있느냐?』
『여기 있지요』
하고 소매 속에서 참새를 꺼내 놓으니 포르르 날아가 버린다.
날아가서 안 보이니 선물도 아니다.

원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
『그럼 나 갑니다』
이 사람은 돌아와서 잘 살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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