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가짜 산신령

정헌의 티스토리 2011. 10. 24. 14:31

         가짜 산신령

 

           옛날 어느 산골에 남편 잃은 홀어미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본디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는데,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니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다.

           삯바느질과 날품팔이로 하루하루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사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하루는 이 마을에 참 용하다는 풍수쟁이가 왔다.

 

           용해도 보통으로 용한 게 아니라 명풍수 중에 명풍수라고 온 나라에 이름이 떠들썩한 사람이 왔다.
           풍수쟁이라는 게 본래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집터니 묘 터니 좋은 자리 찾는 사람이다.
           이 사람도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명당을 찾는데, 이 모자가 사는 집에 떡 와서 보더니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한다.
          『야, 이 집터야말로 명당 중에 명당이로구나!』

 

           주인 홀어미가 그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어서,
          『아이고, 지관님. 그런 말씀 마세요. 이 집터가 명당 중에 명당이라면 왜 우리 모자가 이렇게 박복하게 살까요?』
           했다. 그랬더니 풍수쟁이가 하는 말이, 이 집터가 정승 판서에다 만석꾼이 날 자리인데 집을 앉히는 방향이 틀어져서 복이

           들어오다 도로 나간다고 그런다. 그러면서,

 

          『이 집을 헐고 새 집을 짓되, 동남으로 돌아 앉혀 지으시오. 그러면 십 년 안에 정승 판서에다 만석꾼이 날 거요』
           이런단 말이야. 그런데도 홀어미는 그 말에 귀를 주지도 않고,
          『남편 잃고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 홀어미가 무슨 복에 정승 판서에다 만석꾼까지 바라겠어요? 두 식구 입에 거미줄이나

           안 치면 호강인 줄 알고 살아야지요』하고 말았다.


           그런데 마침 그 때 이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 양반이 옆을 지나다가 그 말을 들었다.
           부자가 들어보니 저 가난뱅이가 사는 집터가 정승 판서에다 만석꾼까지 날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그러거든.
           그만 슬그머니 욕심이 동했다.
           저 집터만 차지하면 지금보다 몇백 배 더 부자가 될 것 같고 높은 벼슬도 할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며칠 뜸을 들이다가 가난뱅이 홀어미를 찾아가서 슬슬 구슬렸다.
          『내 돈을 후하게 쳐 줄 터이니 이 집을 나한테 팔게나. 내가 뭐 다 찌그러져 가는 이 집이 탐이 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네 모자가 어렵게 사는 것이 딱해서 그렇다네』
           그래도 홀어미는 선뜻 말을 안 듣는다.

          『생원님 말씀은 고맙지만 이 집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이라 팔 수 없습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구슬려 보았지만 꼼짝을 않는다.

           그래서 부자가 어떻게 하면 저 집을 손에 넣을꼬 밤낮으로 끙끙 앓다가 참 희한한 꾀를 냈다.
           무슨 꾀를 냈는고 하니, 캄캄한 밤중에 홀어미네 집 감나무에 올라가서 산신령 흉내를 내기로 했다.

           목소리를 산신령처럼 꾸며 가지고 이사를 가라고 호통을 치면 제아무리 벽창호라도 말을 듣겠지 싶다.
           이 부자가 그 날 밤 이슥하기를 기다려 홀어미네 집에 살금살금 들어갔다.
           가서 마당가에 있는 감나무에 기어올라 갔다.
           올라가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호령하기를,

 

           『듣거라. 나는 이 마을을 지키는 산신령이다.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운이 다했으니 어서 팔아 넘기고 딴 데 가서

           살도록 해라. 만약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큰 화를 입으리라』
           하고 그럴 듯하게 꾸며 댔다. 주인 홀어미가 들어보니 이것 참 야단났네.
           아닌 밤중에 난데없는 산신령님이 나타나서 집을 팔고 딴 데로 가라고 그러니 기가 막힌다.

 

           그래서 걱정이 늘어졌는데, 그 다음날 밤에 또 산신령이 찾아와서 호령을 한다.
          『어서 집을 내놓고 딴 데로 가라고 일렀거늘 왜 말을 듣지 않는고?  기어이 너희 모자가 황천길로 가고 싶은 게냐?』
           부자는 이 참에 아주 겁을 주어서 고분고분 말을 듣게 만들겠다고 그러는 거다.
           그걸 모르는 홀어미는 감나무 밑에 가서 정화수를 떠다 놓고 엎드려 빌었다.

 

          『영험하신 산신령님, 제발 비오니 우리 모자를 불쌍히 여기시어 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 집을

           떠나면 우리 불쌍한 모자가 어디 가서 살겠습니까? 저 어린것이 글공부를 마칠 때까지 만이라도 굽어 살펴 주옵소서』
           이러고 참 애간장이 타게 비는데, 그걸 이 집 어린 아들이 숨어서 봤다.              
           아들이 보니 저희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다 놓고 빌고 들어간 다음에 감나무에서 시커먼 것이 훌쩍 내려오더니 어디론

           가 가거든. 가만히 뒤를 밟았다.

 

           그랬더니 시커먼 것이 부자 양반네 집으로 썩 들어간다.
           『오라, 저 영감탱이가 우리 집을 빼앗으려는 수작이로군.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이렇게 되었다.
           그 이튿날,부자는 오늘로 아주 뿌리를 뽑겠다고 일찌감치 나무에 올라가 숨어 있다가 밤이 이슥해지기를 기다려 벼락

           같이 호통을 쳤다.

 

          『너희가 감히 산신령의 말을 어기려는 게냐? 왜 아직도 집을 내 놓지 않는냐? 
           내 오늘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고 왔으니 지금 당장 보따리를 싸지 않으면 요절을 내리라』
           그래 놓고 이만하면 겁을 먹었겠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지 뭐야.

           『네 이 놈.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명을 내렸느냐? 집터를 빼앗으려는 흑심을 품고 가난한 모자를 괴롭히다니, 그러

           고도 네가 진정 산신령이란  말이냐? 내 하늘에서 모래비를 뿌려 너의 죄를 다스리리라』
           하고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아닌게아니라 머리 위에서 우두둑 쏴 하고 모래비가 쏟아진다.
           그러니 부자는 혼이 다 빠져 나갔다.

 

          『아이쿠 옥황상제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머리를 감싸 쥐고 나무에서 뛰어내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갔다.
           뭐 별 수가 있나.
           그러니까 이 집 아들이 부자보다 먼저 감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숨어 있다가, 부자가 옥황상제 어쩌고 하자마자 호통

           을 치고 모래를 한 줌 뿌려서 혼을 빼 놓은 거다.

 

           그래서 이 집 모자는 집을 안 빼앗기고 잘 살았는데, 풍수쟁이가 용하긴 용했던지 십년뒤에는 참말로 아들이 과거에

           급제를 해서 나중에 벼슬이 정승판서에까지 오르고 만석꾼 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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