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떡자루와 돈자루

정헌의 티스토리 2011. 12. 10. 20:53

떡자루와 돈자루


 옛날에 돈 많은 부자 양반과 그 집에 머슴 사는 총각이 있었다.
 부자는 돈 모으는걸 낙으로 삼고 커다란 자루에 돈을 넣어 두고 허구한 날 돈만 들여다보고 살았다.
 돈자루에 돈이 점점 불어 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입만 떨어지면「돈,돈」하고 눈만 떨어지면 돈자루부터 찾고, 행여

 누가 훔쳐 갈세라 잘 때도 돈 자루를 베고 자고, 이러면서 살았다.
 이렇게 돈,돈 하면서 사니까 자연히 인색할 수 밖에 없다.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별의별 짓을 다한다.


 

 머슴에게 밥을 준다는 것이 쌀이 아까우니까 강냉이로 떡을 만들어 주는데,그것도 많이나 주나.
 하루에 딱 세 개, 아침에 하나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씩 주고 만다.
 더러 머슴이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하는 날에는 그나마 안 준다.
 이러니 머슴은 강냉이떡에 목을 매고 그저 그것 아니면 죽는 줄 알고 살았다.
 부자가 돈 모으는 것처럼 강냉이떡을 모으는데, 끼니때마다 떡부스러기 떨어지는 것을 주워서 볕에 바짝 말려 가지고

 자루에다 넣어 뒀다.
 부자가 그러는 것처럼 잘 때도 떡자루를 끼고 자고, 눈만 떨어지면 떡자루를 들여다보면서 자루에 떡부스러기가 점점

 모이는 걸 낙으로 삼고 살았다.


 

 부자는 머슴이 떡부스러기를 모으는 것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비웃기를,
『이 어리석은 놈아, 그깟 떡부스러기를 모아서 어디에 쓰겠다는 거냐?
  그것 한 자루 다 채워야 돈 한푼만 하겠느냐?』
 한다. 그러나마나 머슴은 떡부스러기를 모아서 한 자루를 다 채웠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비가 참 많이 왔다.
 많이 와도 이만 저만 온 게 아니고 아주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왔다.
 한 달 이레를 내리 비가 쏟아 붓는데, 처음에는 논밭이 물에 잠기더니 다음에는 길이 잠기고  그 다음에는 집이 물에

 잠겼다.


 

 이렇게 되니 온 동네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피난을 갔다.
 물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집을 떠메고 갈 수가 있나?
 집집마다 제일 귀한 것 하나씩만 메고 지고 갔다.
 부자와 머슴도 피난을 갔는데, 부자는 돈자루가 제일 귀하니까 돈자루를 짊어지고 가고, 머슴은 떡자루가 제일 귀하

 니까 떡자루를 짊어지고 갔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물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사흘 나흘이 지나도 그대로다.
 그러니 당장 급한 게 먹을 것이다.


 

 머슴은 떡자루에서 떡부스러기를 한 줌씩 꺼내어 맛나게 먹는데, 부자는 돈자루에서 돈을 꺼내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이니 딱하기만 하다.
 부자는 머슴 옆에 앉아서 떡부스러기를 한 줌 나누어 주기를 기다렸지마는, 머슴이란 놈은 주인이 배를 곯는걸 아는

 지 모르는지 저 혼자만 먹는단 말이야.
 그것 좀 달라고 하자니 주인 체면이 깎일 것 같고, 그래서 배고픈 걸 참고 견뎠다.
 그런데 한 닷새 지나니까 부자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하고 눈앞이 흐릿흐릿해 지는데,  이러다가는 굶어

 죽을 것 같단 말이지.
 옆에서는 머슴이 떡자루를 끼고 앉아 떡부스러기를「얌냠」소리까지 내어 가며 먹는데, 그걸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

 이다.


 

 이 지경이 되면 체면이고 뭐고 차릴 것이 없다.
 실없는 웃음까지 슬슬 흘려 가며 머슴한테 빌붙었다.
『얘, 그 떡부스러기 한 줌만 다오』
 그랬더니 머슴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한다는 소리가,
『아, 영감님 같은 양반님도 이런 걸 다 잡수십니까요? 이런 것은 천한 우리나 먹는 줄 알았는데요』
 하고는 줄 생각을 않는다.
『양반이라고 못 먹는 것이 있다더냐? 그러지 말고 좀 다오. 내 떡값으로 돈 닷 푼을 주마』
 그래도 머슴은 줄 생각을 않는다.
『돈이 적어서 그러는 게로구나. 옛다, 한 냥을 주마. 떡부스러기 한 줌에 돈 한 냥이면 그게 어디 적은 돈이냐?』
 그래도 머슴은 거들떠볼 요량조차 하지 않는다.
『좋다, 좋아. 내 큰맘 먹고 닷 냥을 주마』
 그래도 머슴은 못 들은 척, 떡부스러기만 얌냠 먹고 있다.
『그러면 열 냥이면 되겠느냐?』
 그래도 묵묵부답.
『그러면 오십 냥. 논 한 마지기 값이다』
 그래도 묵묵.
『그러면 백 냥』
『그러면 천 냥』
 그래도 대답이 없다.
 천 냥을 준다는 데도 싫다니 무슨 방도가 있나. 할 수 없이 쫄쫄 굶으며 온 하루를 더 보냈다.


 

 그 다음 날이 되니 부자는 참 더는 못 견딜 지경이 되었다.
 배는 고플 대로 고파서 창자가 뒤틀리고 눈앞에 헛것이 왔다갔다 하는데, 이러다가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거든.
 그런데 옆에서는 머슴이 입맛까지 다셔 가며 떡부스러기를 얌냠 먹고 있으니 이건 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그래서 부자가 돈자루를 통째로 머슴에게 갖다 안기면서 싹싹 빌었다.
『아이구, 얘야. 이 돈자루를 다 줄 테니 제발 그 떡부스러기 한줌만 다오』
 그제야 머슴이 못 이기는 척 돈자루를 받고 떡부스러기를 집어 주더래.
 제 입으로 돈 한푼보다 못하다고 한 떡부스러기 한줌하고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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