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2 / 바로셀로나 가우디 건축물. 성가족성당.구엘공원

정헌의 티스토리 2023. 7. 23. 00:41

■ 스페인 / 바로셀로나 가우디 건축물. 구엘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

 

스페인 2일차 일정으로 바로셀로나 시내 숙소에서 1박 후 오늘은 시내 관광이다.

세자매 지붕 뾰족한 집 앞에서 출발하여 까사 밀라, 까사 바트요, 까사 안말리에 등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 외관을 둘러보고 구엘공원으로 간다. 구엘공원 역시 가우디의 역작이다, 구엘은 상당한 사업가로 가우디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후원해 준 분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는 가우디가 1883년 건설을 위탁받아 평생을 바쳤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일정 (2023. 7. 8.)

 

세자매 지붕 뾰족한 잡 -가우디의 대표작(카사 밀라, 까사 바트요, 까사 안말리에) - 구엘공원 - 성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 - 중식 - 발렌시아 (카스테욘, 유로호텔 카스텔요 숙박)

 

 

▷탐방후에

 

CAMPANILE  BARCELONA  CORNELLA

시내 변두리 지역에 방 수를 많이 넣고 시설을 간략하게하여 비교적 저렴하게 단체 여행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호텔인것 같다.

첫날 밤이자, 외관과는 달리 허름해 보이는 숙소여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안내 데스크

 

 

 

 

 

호텔에서의 뷔페식 식사는 종류가 적어도 무난하다.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 가우디 건축물  / 까사 밀라. 까사 바트요. 까사 안말리에

 

세자매 지붕 뾰족한 집 앞에서 하차한다.

현지 가이드는 세개의 탑은 3자매를 뜻한다는 듯이 이 집에 대해 설명을 하였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도보로 가우디의 건축물 몇 곳을 보러간다.

 

 

 

 

 

카사 밀라(Casa Mila')

여기서 카사는 집이라는 뜻이라 한다. 따라서 '까사 밀라'는 '밀라의 집'으로 해석하면 된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가우디는 31살 까지는 가구 디자인 등 알바 비슷한 일을 하고 별 작품이 없었다,

그 무렵 바로셀로나에 신흥 부자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주택 건설이 붐을 이루게 된다. 이에 비센트라는 사람이 가우디에게 별장 건축을 요청하게 되고 종유석을 연상시키는 탑 등 무네하르 양식의(아라비아 타일 등 화려한 타일을 많이 사용) 독특한 건축을 하게 된다. 공사비가 상당히 올라갔지만 비센트는 당시 타일공장 사장이었고 가우디는 사장의 타일을 많이 이용하여 멋진 별장을 완성하게 된다.

 

다음은 구엘의 의뢰로 구엘 궁전을 신축하게 된다,

구엘궁전은 앞 장의 람브라스 거리 편에서 언급하여 여기서는 생략한다.

구엘 저택의 완공으로 가우스의 명성은 많이 알려지게 되고 일감도 늘어나게 된다,

 

카사 칼베트(칼베트의 집)

1898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지어진 건물로, 가우디가 설계한 다른 건축물에 비해 상당히 단순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특징적인 건물이다. 섬유업을 했던 구엘의 친구 칼베트가 의뢰한 개인 저택으로 1900년 제1회 바로셀로나 최우수 건축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후 가우다가 40대 후반으로 접어 들고, 스페인과 미국간의 전쟁으로 섬유업을 하던 구엘은 해외의 많은 투자처를 잃고 부동산에 투자를 한다. 현 구엘공원인, 바로셀로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 5만평의 부지를 구입하고 60여채의 고급 주택 건설을 추진하지만 구엘의 사망과 지역 부자들의 비 선호로 실패하게 된다.

이 부분은 구엘공원에서 잠시 언급할까 한다.

 

바로셀로나 그라시아 지구는 8월 중순이면 마요르 축제가 열리는 등 요즘말로 핫 플레이스가 된다.

그중 카타팔츠의 작품이 큰 화제가 되었고, 바트요의 요청으로 바로 이웃하여 카사 바트요(바트요의 집)을 건축하게 된다. 카사바트요의 집은 아래 카사밀러 사진 아래에 언급되어 있다.

 

 

 

 

 

이 집은 까사바트요의 집을 짓고 난 뒤에 지은 집이다.

6만개의 봉우리를 가진 몬세라트 산에 빛이 일렁거리는 것을 형상화하였다고 하는데 후세인의 해석이 아닌지 모르겠다.

 

 

 

 

 

특유의 곡선과 미역을 널어 놓은 듯한 발코니

내부와 옥상 구조도 양식이 특이하다 하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했다(못했다)

 

 

 

 

 

이 카사 밀라는 돌이 건축의 포인트다.

직선은 표준화가 가능하지만 곡선은 하나하나 다른 모양이어서 건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가우디 본인이 완벽주의여서 돌을 다듬는 장인과 다투게 되고 울리기까지 하였단다. 

 

이 건축물은 5~6년 만에 완공되지만, 밀라 부부와 많은 불화가 있었다 한다. 이 건물 중 기둥 하나가 남의 땅(시의 땅?)에 박혀 있어 시에서 철거를 요청했고, 가우디는 무시하고 건축을 진행해 많은 벌금을 물어야 했다. 또한 건물 정면의 장식물 때문에 밀라부부와 큰 다툼을 하였다고 한다. 당초 계획에 성모마리아 상을 세우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밀러 부부는 개인 주택이어서 성모마리아 상을 세우는 것을 반대했다. 이게 싸움의 발단이 되어 가우디는 건축에서 손을 떼고 설계비 잔금을 받기위해 7년간의 지루한 법정소송이 진행된다.  결국 가우디가 승소했지만 많이 지쳐 이후에는 개인 주택을 짓지 않았다 한다.

 

 

 

 

 

당시 이 건물은 완공 후 많은 악평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 만평에 어린이와 엄마가 같이 이 건물앞을 지나다가 아들이 하는 말 .....

"엄마, 여기 지진낫나요?"라고 묻는 만평이 있었다고 한다.

 

 

 

 

 

주변의 건물과는 달리 곡선으로 설계되어 특이하기도 하지만 곡면으로 다듬어 붙인 벽체는 볼 수록 정교하다.

 

가우디 작품에 대한 가이드 설명이 기억나지 않아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음백과에서 이렇게 소개한다.

"밀가루로 반죽한 듯한 구불구불한 외형과 척추동물의 몸속에 들어온 듯한 실내, 가우디의 건축물에는 직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건축사조에도 속하지 않았던 가우디에게 스승이 있다면 그건 자연이였다,

사실 과학기술은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자연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왔다.  자연은 단순한 재료, 단순한 방식으로 가장 효과있는 결과물을 얻어낸다"

 

 

 

 

 

밀라의 집을 둘러보고 바트요(발료)의 집을 보러 간다.

 

 

 

 

 

길가의 벤치도 가우디 작품이란다.

같이 사진을 찍고싶다고 했더니 선듯 응해준다.

 

 

 

 

 

이런 가우디 벤치가 두어곳 있다.

 

 

 

 

 

까사 바트요(바트요의 집)을 건너다 본다.

이 건물은 전설속의 용을 물리친 기사 산 조르디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고 한다.

지붕을 보면 어쩜 용의 비늘 같기도 하다.

옛날 성질 고약한 용이 있었고 해마다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어느해 공주가 제물로 바쳐졌고 조르디 기사가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출해 내는 이야기란다. 

바로 좌측 옆집이 카다팔츠 작품의 집이다.

 

 

 

 

 

이 건물을 보기위해 찾은 분들이 많다.

단연 주변 건물에 대해 특이하다.

 

 

 

 

 

다음 백과에서

 

가우디 건축은 인간이 만든 어떤 기하학적인 건축보다 동물의 건축에 가까워 보인다,

<생물의 건축학>의 저자 '하세가와 다카시'는 가우디 건축과 동물의 둥지가 연결되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한다.

하나는 동물의 둥지를 닮은 내부와 외부다. 동물의 둥지는 자연에서 재료를 끌어모아 조립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옹색하고 기이한 모양이지만 내부는 둥지 주인의 생활과 재난 대비에 알맞은 공간이다. 가우디의 건축물 역시 겉모습은 낯설고 기이한 것과는 달리 내부는 온화하고 쾌적한 느낌을 준다.

 

 

 

 

 

내부는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지나고 보니 실내에도 들어가 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CASA  BATLLO (카사 바트요) / 가우디

 

옥상 지붕이 용의 비늘을 형상화 하여 별명이 용의 집이다. 그래서인지 해골모양, 뼈모양(창문의 기동), 건물 내부의 계단 난간 또한 용의 척추 모양을 형상화 한 것  같다고 한다.

내부는 파랑색 타일을 많이 사용해 바다 물결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단다.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트요 바로 옆집인 이 집도 가우디 작품인 까사 아마트에르(Casa Amatller /안말리에)로 들었는데,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카다팔츠 작품이다.

화려한 외관과 벽면의 섬세한 장식이 특징이다,

이 집을 보고 바트요가 샘이나 이보다 더 멋진 집을 가우디에게 요청했고, 그래서 지은 집이 카사 바트요란다.

 

 

 

 

 

바트요 집 인근에서 스페인 소녀들과 한 컷

 

 

 

 

 

대형버스가 지나간다.

되돌아 간다.

 

 

 

 

 

되돌아 가는 길에.

이것도 가우디 작품?

 

오늘 탐방한 건축의 만든 순서를  보면 가로등 - (까사 비센트) - (구엘저택) - (까사 칼베트) - 구엘공원 - (카다팔츠의 까사 아마트에르) - 까사 바트요 - 까사 밀라 - 성가족 성당의 순서인것 같다.

(정확히는 모름)  

 

 

 

 

▣ 구엘 공원

 

가우디 건축물 몇 점을 보고 구엘공원으로 왔다.

 

 

 

 

 

저만큼 매표소.

구엘공원은 넓이가 상당하며 억지로 나눈다면 광장지역과 공원지역  2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 하다. 

광장지역 요금은 어른 8€?아님 10€?쯤 하는 것 같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이 당시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그래서 부동산 투자 쪽으로 눈을 돌리고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하여 바로셀로나의 부유층을 위한 전원주택단지를 만들고자 계획했던 곳이라 한다.

 

 

 

 

 

1900년 부터 약 14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60채 이상 분양되어야 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구엘이 사망하면서 2채만 분양되고 미완성 단지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이 경사가 심하기도 하고, 변두리이고, 주변 여건(빈촌)도 좋지않아 마차를 가진 부유층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분양받은 2채중 1채는 구엘의 변호사가, 다른 한채는 가우디가 구입하여 아버지, 조카와 함께 살았다고 전한다,

 

 

 

 

 

둥근 돌들이 보인다.

 

 

 

 

 

이 건물은?

 

 

 

 

 

당시의 가우디의 고민은 경사와 돌이 많아 이 언덕을 어찌할 것이냐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지나니 이렇게 표현한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미를 추구하는 가우디의 철학은 이 길에도 확연히 드러난다.

자연 그대로를 설계에 담기위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지 않고 구불구불하게 길을 만들었으며, 마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신기하게 이어져 있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구엘공원은 중앙 광장과 윗쪽 공원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앙 광장 쪽으로 내려섰다.

 

 

가이드가 이곳 구엘공원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벤치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광장 둘레를 따라 죽 이어붙인 타일벤치다.

마치 누워있는 용이나 바다의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이어져 있는 이 타일벤치는, 오목한 곳에 앉으면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도 있다.

또한 이 벤치의 딱딱함을 보완하고 편안하게 하기 위해 옷을 벗긴 사람을 앉혀서 사람의 본을 뜬 형태로 각도를 맞추고 돌기와 라인을 설계했다 한다,

 

 

 

 

 

중심 광장이 상당히 넓다.

이 광장을 내추럴 스퀘어(The Natura Square)라 하는것 같다. 

광장 가를 따라 죽 이어져 있는 타일 벤치에는 많은 관광객이 차지하고 있다.

 

 

 

 

 

광장 뒷편으로는 언덕이다.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으나 일정상 가이드는 광장 주변과 실질적 정문 역할을 하는 주변만 둘러보길 권한다.

많은 인파 때문인지 안내원들이 지나간 곳을 되돌아 가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어 저곳을 조금 둘러볼려고 했으나 둘러 볼 수 없었다.

 

 

 

 

 

광장 주변.

 

 

 

 

 

광장 앞쪽으로 나가면,

이곳은 Carrer  d'Olotdp 에 있는 구엘공원 정문인 셈이다. 가까이 2채의 특이한 건물과 바로셀로나 시내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이공원을 건설할 당시만 해도 주변은 서민층이 사는 변두리여서 과연 재력과 지위가 있는 층에서 이곳 전원주택에 대한 거부감도 많았다 한다.

 

 

 

 

 

이곳이 구엘공원의 정문?.

입구에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던 2채의 집이 있는데 마치 동화속의 나오는 건물같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가 주차장 등 주변의 여유가 있어 현재의 정문인지 모르겠으나 과거 실질적인 정문은 이곳 같다.

이곳에도 두 건물 사이에 출입문이 있어 이 문을 나가면  공원밖으로 나간 셈이 되어 다시 들어올 수 없다.

 

 

 

 

 

타일벤치에도 앉아본다.

 

 

 

 

 

광장 저쪽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건?

주변의 돌과 흙을 사용하여 기둥을 만들고(바깥은 돌, 안쪽은 흙),곡선으로 설계하여  무게 중심을 맞추었다한다. (상부에 나무를 심어 나무 뿌리가 이 기둥속으로 뻗어 있다고도 한다)

 

 

 

 

 

경사는 이렇게 극복한 셈이다.

 

 

 

 

 

 

 

 

 

 

 

 

이곳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삼은 시장이란다.

La  Sala  Hipo'stila  (살라 아포스틸라) 룸,  중앙 광장의 정문쪽 가장자리 아래인 셈이다.

기둥은 모두 86개라 하며 기둥의 실질적 기능은 위층인 광장을 지탱하는 역할이 될 것 같다,

 

 

 

 

 

이 기둥 사이에 서니 그리스에 와 있는 느낌이다.

 

 

 

 

 

천정은 타일조각으로 모자이크처리를 했다.

 

 

 

 

 

 

 

 

 

 

 

 

시장은 문쪽으로 이어진다.

 

 

 

 

 

 

 

 

 

 

 

 

알록달록 타일 조각으로 옷을 입은 도마뱀 분수도 있다.

윗 광장 등의 물이 뒷편 기둥속에 배관을 통하여 저장고를 거쳐 이 도마뱀 입으로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다.

 

 

 

 

이 곳의 계단.

도마뱀 분수등. 히포스타일 룸 등과 어울려 사진 촬영하기 좋은 곳이라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트랜카디스 기법

이 기술은 풍부한 색감으로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 가우디가 사용한 양식으로 모자이크와 같은 개념이나, 각 조각들이 좀더 크고  불규칙한게 큰 차이점이라 한다. 유리병 조각, 버려진 타일 등을 재활용했다.

 

 

 

 

 

실질적 정문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우측의 건물로 들어가 본다.

 

공원 입구의 이 두 건물은 관리실과 경비들의 숙소로 사용예정이었다 한다.

역시 가우디의 건축물이나 만큼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협소한 편이며 현 기념품 판매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위 건물 2층에서 바라본 입구이다.

도마뱀 분수등과 시장, 윗쪽으로는 타일벤치가 있는 광장인 셈이다.

 

 

 

 

 

내려다 볼 때 좌측의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는 인파가 우측 건물보다 많아 오르는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하며, 분위기는우측의 건물과 비슷하다고 가이드는 귀뜀한다.

 

 

 

 

 

위 건물을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이다.

경비들의 숙소로 예정된 건물이라 추측해 본다.

 

 

 

 

 

입구 우측의 동굴같은 저곳은 마차 대기소,

마차가 내부를 한바퀴 돌아서 나갈 수 있도록  내부는 원형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들어온 매표소쪽으로 아랫쪽 다른 길을 따라 간다.

 

 

 

 

 

 

 

 

 

 

 

 

이런 돌을 재활용하여 경사를 완만하게 했다.

 

 

 

 

 

 

 

 

 

 

 

 

 

 

 

 

 

 

 

참 특이한 공원이다.

그만큼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 되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

'신이 지상에 머물 유일한 거처'. '미완성인 상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

1882년에 착공해 여전히 공사중이고 언제 완공될지 기약도 없다.

<다음 백과에서>

 

 

 

 

 

성가족 성당은 여전히 건축 중.

외견상 색상으로만 보아도 뒤에 건축된 부분을 가늠할 수 있다.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Antomi  Gaudi y Cornet / 1852.6.25~1926.6.10)

구엘의 전원주택 단지 조성은 구엘의 사망으로 중단된다.

이후 가우디 부친의 사망(93세), 가우디 자신의 부루셀라 병(현기증, 염증, 이명 등이 동시에 나타남), 조카의 병사(36세)등으로 가우디는 한동안 거지같은 외모, 앙상 수척하고 비루한 생활을 하게 된다.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별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F. de P. 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 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였다. 젊은 건축가에게 맡기면 공사가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교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떼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당시 건축비는 기부와 헌금으로 충당하였으며 그의 전 재산(카사밀라 건축당시 승소금 수억원 포함)을 이곳에 희사하고 직접 자금 모금도 했다. 또한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 건축에 몰입했다. 그러나 1926년 6월 10일  자신의 일터이자 작품인 성가족 성당 바로 앞길에서 전차에 치여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말년의 가우디는 돈이 없었다. 이발과 면도도 제때 하지 못하고 건축 중인 성당 내에서 먹고자는 등 아주 허름한 생활이 비극의 방아쇠가 되었다. 매일 그는 산책을 하였고, 전차에 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택시기사도 그를 부랑자라고 생각하고 승차를 거부하고, 병원에서도 제대로 치료를 하지않고 한쪽 구성에 방치하였다 한다. 명성에 비해 허름한 행색으로 인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고 3일 뒤인 1926년 6월 10일 그는 사망한다. 당시 나이 74세 였다.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원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사서 허가해 준 것이다.

 

 

 

 

그의 사후,

회의 끝에 건축은 계속 진행하기도 결정하였다.

가우디는 설계 도면을 남기지 않았다. 모든 일은 현장에서 조율하여 결정하였다 한다.

성당 완공의 모형도는 있었지만 스페인 내전 과정에서 이마져 사라져 버렸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한 7명의 후배 건축가들의 기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역으로 추정하여 성당의 건축은 계속되었다.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공사 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1882년 착공하였으니 142년째 건축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는 알 수 없다,

 

 

 

 

 

 

사그리아 파밀리아 성당의 가장 높은 첨탑은 세계 최고의 높이로 설계되어 있으며 현 가장 높은 독일 울름 대성당 탑 162m보다 11.5m 높게 계획되어 있다.

172.5m로 계획한 이유는 바로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의 높이가 173m여서 신성시 하는 이 언덕의 높이보다는 0.5m 낮게 설계했다한다.

 

이곳은 동쪽 파사드 '예수탄생'

사진상 동쪽의 파샤드이다 .가이드는 상 하나하나 설명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총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있는데 각각 '예수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고, 이 중 동쪽의 '예수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킨 것이다.

서쪽의 예수수난 파사드는 1976년 완공되었고, 마지막 남은 남쪽의 '영광의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3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는 등 총 18개의 탑이 계획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예수의 종탑이 172.5m의 높이로 세워질 것이나, 현재까지는 11개의 종탑만 완공되었다.

 

 

 

 

동쪽 탄생의 파사드를 자세히 보면  수태고지. 아기예수의 탄생. 동방박사의 찬양 등 예수의 탄생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게 빛난다.

 

 

 

 

 

가우디의 건물 내부에는 동물의 뼈, 야자수, 곤충, 해골을 연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성가족 교회 본당 회중석 천장은 식물 줄기를 차지하는 잎사귀에서 모티브을 얻은 것이다. 타일로 장식된 화려한 외관은 집을 지은 뒤 조개껍질로 인테리어를 하는 정원사 새를 닮았다. 그는 아무리 아름다운 돔이라도 해골의 내부에 비할 수 없고, 산이 가진 완벽한 안정성을 따라갈 건물은 없다고 여겼다.

 

<이상 다음 백과에서>

 

 

 

 

 

현 내부가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미사를 여는데 지장이 없다.

 

 

 

 

 

종탑은 걸어서 오르거나 유료 엘리베이트를 타고 오를 수 있다한다.

 

 

 

 

 

 

 

 

 

 

 

이 문은 남쪽문인 영광의 파사드로 이어지는 문이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남쪽 파사드는 현 미완의 상태다.

 

 

 

 

 

 

 

 

 

 

 

동문 파사드 '에수탄생' 문으로 들어와 서쪽 파사드로 나왔다.

 

 

 

 

 

서쪽의 퍄사드 '예수 수난'이다.

1976년 가우디 제자가 완성했다. 가우디가 완성한 동쪽 파샤드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상부

 

 

 

 

 

좌측

 

 1      14    14      4

11       7      6      9

 8      10    10      5

13       2      3    15

 

가로 세로의 합이 33, 

 

 

 

 

 

 

 

 

 

 

 

 

서쪽 문 앞이다.

많은 분들이 서쪽 파사드를 바라보고 있다. 

남쪽 영광의 문이 완성되고 나면 세 문만 한바퀴 돌아도 성경을 읽은 느낌이 들겠다.

 

 

 

 

 

약간 측면에서 바라본 서쪽 파사드

서쪽 파사드 나오자 좌측 아래로 내려가면 화장실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전시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여러 모형들을 볼 수 있고,

 

 

 

 

 

스페인의 유면한 건축물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작업실.

 

 

 

 

 

공학적으로 더욱 중요한 또 하나의 특징은 가우디의 거대 건축물에 적용된 중력에 대한 고민이다, 인류가 만들어온 건축물은 다양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운뒤 지붕을 얹는 방법이다.하지만 동물의 건축은 이렇게 일으켜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 늘어뜨리는' 방법을 택한다.야자수와 바나나에서 섬유를 빼내 집을 뜨개질하는 베짜기새의 둥지가 대표적인 예, 가우디의 건축물에도 이런 늘어뜨리기 기술이 적용돼 있다.

 

가우디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지 교회의 매달린 사슬 형태를 만들기 위해 설계에만 10여년의 시간을 바쳤다.

강철이나 시멘트 등의 공업화된 건축재료와 복잡한 구조학 계산 방식도,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 가우디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힘은 모형을 이용한 구조실험에 있었다,

 

가우디 건축물에는 아치형 다리가 거꾸로 매달린 듯한 형태가 보인다. 그는 쇠사슬을 묶는 고정점과 길이, 무게라는 3가지 요소를 고려해 가장 능률적인 아치 형태를 거꾸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천장에 매달린 쇠사슬이 늘어지고 서로 연결돼 하중을 버티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모형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찾았다.

 

<다음 백과에서>

 

 

 

 

 

가우디는 긴 와이어로프의 마디마디에 모래 자루를 달아 옆으로 당겨 그 견디는 힘의 구조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 모양을 건물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했다. 모래 자루의 무게로 인해 로프가 늘어지는 모양(이를 현수선 또는 신의 곡선이라 한다.)에 따라 건물 전체의 구조가 결정됐고, 그 형태에 대한 압력과 하중을 계산해 기둥의 위치와 숫자를 정해 나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험 모델을 180도 뒤집으면 이 구축물의 윤곽선(현수선 아치)이 가우디가 그린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 스케치와 유사하다.

<다음백과에서>

 

그림

그의 실제 작업 모델은 스페인 내전 중 소실됐다.

사진은 가우디의 늘어뜨린 모델을 재현한 것이라 한다.

 

 

 

 

"모든것은 자연이 써 놓은 위대한 책을 공부하는 데서 태어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작품은 모두 이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이 책은 전 인류에게 주어졌 있으나, 이것을 읽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며 또 노력을 기울이기에 합당한 책이다."

 

<가우디가 남긴 말>

 

 

 

 

 

▣중식 및 카스테욘 숙소로 이동

 

바로셀로나 시내의 항구 주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왔다.

 

 

 

 

 

현지 셰프 "맛있어요"를 연발한다.

가이드도 짜지 않도록 특별히 주문했단다.

그래도 짜다며 사양하는 분들이 많다.

야채 샐러드에 빵이 여지없이 나오고 이 음식이 나온다. 이름이 "빠야"라고 들은 것 같다. 쌀에 해물이 들어간 독특한 맛이다.

스페인엔  이런 음식이 대중적인가 보다. 몬세라트에서의 중식도 면이냐? 쌀이냐?에 따른 차이가 있어도 맛과 향은 비슷한 것 같다.

 

 

 

 

 

바로셀로나에서 일정을 마무리 하고 중식 후 발렌시아 방향으로 이동한다.

내일 그라나다 일정과 맞추기 위해 최대한 그라나다 방향으로 가는 중 어느 휴게소에 들렀다.

 

 

 

 

 

 

 

 

 

 

 

 

느낌으론 현지인들은 오고 가며 주로 식사를 하기 위해 들러는 것 같으며,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교하면 한산하고 규모도 작다.

 

 

 

 

 

발렌시아 인근의 카스테욘이란 조그만 도시이다.

유로호텔 카스텔요, 오늘 숙박 장소이다.

 

 

 

 

 

호텔에서의 석식이다.

고급은 아니지만 나름 이정도면 괜찮다 싶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뷔페식 식사 또한 정갈하다.

 

 

 

 

 

섬머타임이 실행되고 있어서인지 저녁 9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하여 구글지도로 주변을 검색하니 인근 멀지 않은 곳에 공원이 있다.

 

 

 

 

 

역시 이곳에도 광장의 문화가 있다.

 

 

 

 

 

 

 

 

 

 

 

 

백화점? 쇼핑센타?

도시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크다. 정문을 통해 본 내부도 고급스럽다.

 

 

 

 

 

도로를 가로질러,

 

 

 

 

 

 

도심속의 공원에 왔다.

지도를 보면 사각형의 도심 한가운데 계획된 공원이다.

 

 

 

 

 

 

 

 

 

 

 

 

 

 

 

 

 

 

 

 

 

 

 

 

 

 

 

 

 

 

 

 

 

반상회인가?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인파가 반장인 듯한 분으로 부터 설명을 듣고있다.

내용은 모르지만.

 

 

 

 

 

 

 

 

 

 

 

 

 

 

 

 

 

 

 

물이 탁하다.

 

 

 

 

 

저녁 식사후 산책삼아 둘러본  발렌시아의 이웃 소도시 카스테욘 중앙의 공원이었다.

1시간쯤 둘러본 후 숙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