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목포 근대역사관1.2관. 성옥문화재단, 강진 영랑생가. 사의재, 보성 대한다원

정헌의 티스토리 2023. 6. 9. 22:49

■목포 근대역사관1.2관(구 목포 일본영사관, 구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성옥문화재단, 강진 영랑생가. 사의재, 보성 대한다원

 

산청 선비대학의 견학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그동안 견학을 하지 못하다가 금년 전남 목포, 강진, 보성 일원을 다녀왔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1897년 목포가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각 거류지 지역이다. 조선시대 군사시설인 목포진이 있었던 곳을 중심으로 주변 해안가를 간척하여 근대시가지를 형성하였다.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대로 잘 남아있어 이 중 핵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등록문화재 718호로 등록하였다.

강진의 영랑 김윤식 선생 생가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머물렀던 사의재를 둘러보고, 보성으로 이동하여 대한 다원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구성하였다.

 

 

▷탐방코스

목포 근대역사관1관(구 목포 일본영사관) - 성옥문화재단 - 목포근대역사관2관(구 동양척식주식회자 목포지점) - 강진 중식(모란) - 영랑생가 - 사의재 - 보성 대한다원 - 순천만1번지 석식 - 귀가  ( 2023.  6.  9.)

 

 

 

▷탐방후에

 

   ▣구 목포 일본영사관(목포 근대역사관 1관)

 

목포 근대역사관1관 앞 도로변이다.

 

목포의 근대문화유산은 현지 관광안내도 구하여 지도를 보며 둘러보는 것이 좋다.

별 생각없이 지냈는데 모 국회의원의 근대가옥 매입과 관련의혹 이후 이곳을 찾아보니 구 시가지가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유달산 남쪽 지역에 근대역사관1.2관(구 일본인 영사관,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을 비롯하여, 성옥기념관, 영산로 일본식 가옥, 유달동 사진관, 구 호남은행, 구 목포화산연쇄점, 붉은 벽돌 창고 등등 국가 등록 문화재가 여럿 있고 주변에 깨끗하고 운치있는 카페 또한 많아 한나절 둘러보는데 손색이 없겠다.

저만큼 보이는 건물이 근대역사관 1관인 구 목포 영사관 건물이다.

 

 

 

 

 

앞 도로변에 국도1. 2호선 기점 기념비가 있다.

 

국도1호선은 이곳에서 광주, 전주, 세종시를 거쳐 서울로 이르는 도로로, 북한의 신의주까지 939km(판문점까지498km)로 표시되어 있고,

국도 2호선은 순천, 진주를 거쳐 부산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평화의 소녀상

일제의 잔재인 근대 건축물을 재 단장하였기에 소녀상 설치도 나름 의미가 있다.

 

 

 

 

 

근대역사관(1관)은 목포 개항(1897) 이후 일본의 영사업무를 위해 1900년 1월에 착공, 12월에 완공된 건물이다.

일본은 이곳을 거점으로 목포에서의 실권과 경제를 장악해 나갔다. 한국인 노동자와 객주 단체를 탄압하고, 일본 상인의 이권을 옹호했다.

이 건물은 일제의 목포 경제 침탈과 식민지 지방통지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명칭은 한일 관계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는데,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1906년부터 목포 이사청,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행정지명의 변화로 목표부청이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목포시청, 1974년부터 목포 시립 도서관, 1990년부터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2014년부터는 목포 근대역사관 1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이며 우두머리인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진이라 부르기도 한다.

1439년(세종 21)에 재가되어 1502년(연산군8)에 성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으로 젼해지고 있다.

1897년 고종의 칙령에 의해 부산, 군산, 인천과 달리 자주적인 개항을 한다. 이후 목포는 국내 6대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삼백(쌀, 목화, 소금)의 고장으로도 그 명성을 알리게 된다.

 

 

 

 

1897년 개항후 기독교와 천주교 그리고 일본불교인 동본원사가 전파되었고, 일본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공립심상소학교, 목포여자중학교, 조선인을 위한 문태중학교도 개교하여 종교.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문물이 전파된다.

 

 

 

 

 

 

개항 후 목포에는 목포극장(1920년), 평화관(1927)이 건립되어 근대 영화를 상영하며, 다양한 공연활동, 자선음악회, 가극공연, 연극대회  대중가요 등 문화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 진다.

 

 

 

 

 

 

 

 

 

 

 

 

 

 

 

 

 

 

 

 

 

 

 

 

 

 

개항 이후 가장 활발하게 외국 문물을 받아 들인 목포에는 다양한 근대 건축물이 세워진다.

특히 중심지인 오거리 주변의 동본원사, 호남은행, 양동교회, 일본영사관, 일본인 가옥 등이 또 하나의 목포 개항 모습을 연출한다,

 

 

 

 

 

근대역사관 뒷편으로 돌아가면 방공호가 있다.

근대역사관만 보고 이곳을 안보면 아쉬워 할 곳이다.

 

 

 

 

 

안내문을 보면 구 목포부청 서고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방공호를 안내하고 있는데 서고는 어디를 말함인지 잘 모르겠다.

이곳은 일제 말기 조성한 대형 방공호이다. 조선 총독부가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면서 공중 폭격에 대비하여 대피장소로 만든 방공호이다.

전체 길이는 72m, 중앙 출입구가 있고 좌우에 별도의 출입구가 연결되어 있다한다.

현재  입구는 양쪽에  하나씩 보이며 이 문으로 들어가 옆쪽에 있는 다른 문으로 나오면 된다.

 

 

 

 

양 옆으로 굴이 나눠져 있으며 몇 모형들을 설치하였다.

 

 

 

 

 

 

 

 

 

 

 

 

 

 

 

 

 

 

 

출구

특별히 입구. 출구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는 것 같으며, 한쪽 문으로 들어가 다른 쪽 입구로 나가면 된다.

굴의 입구간 거리는 10~20m쯤,

 

 

 

 

 

▣성옥 문화재단

 

일행들이 목포역사관 1관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 성옥기념관으로 간다.

유달산 탐방시 멋진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집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지나는 길가의 카페,

 

1층 능소화 (brunch & restaurant)

2층 무가보 (dessert & coffee)

 

 

 

 

이곳은 가비 1935

가비 수제 양갱 빙수 현수막이 걸려있다.

 

 

 

 

 

적당히 방향을 잡아 이훈동 정원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훈동집 입구.

육중한 대문이 닫혀 있고, 정원은 개방하지 않으므로 관람이 불가하다,

 

 

 

 

 

이 정원은 원래 1930년대에 목포에서 활동한 일본인 우치다니 만페이(內谷萬平)가 만든 일본식 정원이다.

입구 정원, 안뜰 정원, 임천(林泉)정원,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남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인 정원이다. 정원에 있는 나무의 종류는 113여 종인데, 한국 야생 종 37종, 일본 원산 종 39종, 중국 원산 종 25종, 기타 12종이며, 이중에서 상록수는 69종으로 전체의 61%이다.

정원수 중에서 현관 앞에 있는 일본 원산 향나무 암수 한 쌍은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화산 폭발 때에 향나무 씨가 목포까지 날아와서 싹을 틔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한 저택과 정원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인데, 현재 저택 내부는 한국식 거실과 서양식 응접실로 개조되었지만 외형은 일본식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입구 부분과 앞뜰 부분이 변형되었지만, 정원의 모습은 대부분 조성 시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조경 문화 부분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정원은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드라마나 영화 촬영 명소이자 목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광복 후에 해군 헌병대에서 관리하다가 해남 출신의 국회의원 박기배 씨에게 넘어갔다가 1950년대에 목포의 향토 기업인 조선내화의 이훈동 회장이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성옥 이훈동 정원은 개방하고 있지 않지만, 앞쪽에(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음) 성옥문화재단을 조성하여 일반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보이는  길을 중심으로 좌. 우 양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좌측은 기념관? 우측은 미술관?

 

 

 

 

성옥 기념관

 

 

 

 

 

성옥 이훈동 회장 (1917.11.25~2010. 10. 30)

 

1947.05.15  朝鮮耐火(주) 건립.  / 耐자는 <결딜 내> 자이다.

1964~1985  목포상공회의소 회장

1971~2004  韓國耐火物組合 이사장

1978~1982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977.11.21  聲玉(성옥)문화재단 설립

1983~1989  대한?업회 회장

1987.10.12  전남일보사 설립

 

 

 

 

기념관 로비.

 

 

 

 

 

한 켠에 이런 광물을 배치했다.

 

 

 

 

 

몇 칸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입구에 안내인이 있다.

첫번째 방에는 각종 도자기류를 보관하고 있다.

 

 

 

 

 

 

 

 

 

 

 

 

또다른 방에는 병풍류,

 

 

 

 

 

이런 탁자도 있다.

 

 

 

 

 

 

 

 

 

 

 

 

 

 

 

 

 

 

 

미술관으로 이동한다.

 

 

 

 

 

 

 

 

 

 

 

 

 

 

 

 

 

 

 

많은 수량은 아니나 정갈하고 고급스럽게 배치했다.

 

 

 

 

 

 

성옥 기념관? 앞쪽에 또다른 건물이 있어 친절하게도 이곳도 둘러보라 한다.

 

 

 

 

 

김명하님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앞쪽 마당.

 

 

 

 

 

미술관으로 들어가 본다.

 

 

 

 

 

 

 

 

 

 

 

 

 

 

 

 

 

 

 

 

 

 

 

 

 

 

우주공간-행복

72.7×53.0cm

 

 

 

 

 

꽃이지고

53.0× 41.0cm

 

바쁘게 둘러본 성옥 문화재단이었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목포 근대역사관 2관)

 

일행의 단체 행동에서 벗어낫기에 대충 둘러보고 근대역사관 2관으로 향한다,

 

 

 

 

 

처음엔 목포문화관 2관이 구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인줄 몰랐다.

 

 

 

 

 

 

 

 

 

 

 

근대 역사관 2관이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인데 1층의 대형 금고를 보지 못해 조금 아쉽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토지와 농산물 등 강제수탈을 위해 세운 국책회사이자 착취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拓殖(척식)의 척자는 넓힐 척, 불릴 식 자를 쓴다. 따라서 척식이란 '식민지 개척'을 말한다.

일본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모두 남의 나라 토지와 자본을 수탈하고 경영하고 장악하기 위해 만든 식민회사다,

 

 

 

 

일본은 1908년 서울(경성)에 동척 본점을 세우고,  부산. 목포. 이리. 대전. 대구. 원산. 평양. 사리원 등 건국 주요 농업지역과 교통 요충지에 지점을 설치했다.

1917년엔 본점을 도쿄로 옮기고 중국과 내몽고, 동남아 각국에도 지점을 두어 착취 범위를 넓혔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인의 이주 지원, 식민지 지주 육성, 농장관리, 금융 등이 주요 업무였으며, 목포 지점은 본래 나주에 있던 출장소를 1920년에 목포로 옮긴 것이며 건물은 1921년에 신축한 것이다.

 

 

 

 

 

해방 이후 이 건물은 해군기지로 사용하였으며  후 해군목포 경비부,  해군 제3 해역 사령부 헌병대로 사용하였다.

이후 헌병대가 영암군으로 이전해 감에 따라 1999년까지 약 10년간 빈 건물로 방치하여 철거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달라는 시민 사회와 학계의 요구에 따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이후 내부 보수를 거쳐 2006년도 부터 근대 역사관(현재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충 근대역사관 2관을 둘러보았다.

 

 

 

 

 

주변 카페,

행복이 가득한 집

 

 

 

 

 

목포 1897에서

 

 

 

 

 

유달동의 로망

 

 

 

 

 

어문당

 

군산의 근대골목처럼 목포의 이곳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이곳저곳 둘러보면 좋다.

군데 군데 시선을 끄는 카페와 음식점이 있어 쉬어가기도 좋다.

 

 

 

 

▣ 강진 / 한식집  모란

 

강진의 여러 한정식집 중 이 집을 택했다.

 

 

 

 

 

내부

 

 

 

 

 

이집 메뉴,

한식집으로 1인당 30,000 ~50,000원 선이다.

참고로, 차림표의 보리굴비특선은 15,000원이  아니라 18,000원으로 인상되었다.

 

 

 

 

 

▣ 강진 / 영랑 생가

 

들머리 탑골 샘

 

 

 

 

 

앞쪽 시문학파 기념관이 있고,

영랑생가 뒷편에 모란공원이 있어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같이 둘러보면 된다.

 

 

 

 

 

영랑생가는 과거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다.

 

 

 

 

 

김영랑 본명은 김윤식, 영랑은 아호.

 

1915년 강진 보통학교 졸업

1917년 휘문의숙 입학 / 홍사용, 안석주, 박종화 등의 선배와 정지용, 이태준 등의 후배, 동급반의 화백 이승만이 있어서 문학적 안목을 키움.

휘문의숙 3학년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룸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중학부를 거쳐 같은 학원 영문과 진학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광복후 은거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에 적극 참여하며 강진에서 우익운동을 주도, 대한독립촉성회에 관여하여 강진대한청년회단장 등을 지냄.

시작 활동은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등과 시문학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등 6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

이후 문학, 여성, 문장. 조광. 인문평론. 백민, 조선일보 등에 80여편의 시와 역시 및 수필, 평문 등을 발표

<이상 다음백과에서 발췌>

 

 

 

 

안채.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 본 안채

 

 

 

 

 

한켠의 장독대도 여전하고,

 

 

 

 

 

모란공원으로 오르는 길도 낯익다.

 

 

 

 

 

안채 주변을 둘러보고 앞쪽의 문간채를 지나,

 

 

 

 

 

사랑채로 간다.

 

 

 

 

 

사랑채

 

 

 

 

 

사랑채 옆 정원의 은행나무,

 

 

 

 ▣ 사의재

 

사의재 앞쪽에 聽潮樓(청조루/ 들을 청, 조수 조)가 있다.

청조루는 현감 우순종(1491~1495 재임)이 건립했다. 강진만의 푸른 물을 굽어보고 노젓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닷가에 자리하여 이름을 이렇게 붙였나 보다.

여러차례 소실과 중건을 반복하였으며 이 건물은 2018년 재건하였다.

 

 

 

 

 

청조루 안쪽에 이런 건물들을 세웠다.

사의재 관광명소화 사업의 일환으로 청조루와 함께 건립하였듯 하다.

 

 

 

 

 

앞쪽 동문샘 뒷편으로 한옥으로 건립된 카페가 있고, 좌측은 초가 정자(동천정)가 있다.

사진상 보이진 않지만 좌측편에 사의재가 있다.

 

 

 

 

 

동문샘

 

 

 

 

 

주변

보이는 정자는 동천정.

 

 

 

 

강진은 여러번 다녀간 곳인데 사의재는 처음 와 본다.

달랑  주막하나 있나? 했는데  주변 경관도 좋고 볼거리도 있다.

 

 

 

 

 

사의재 입구,

동천정 쪽에서 진입하는 길도 있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을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하면서 사의재라 이름 지었다.

사의재는  '네가지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한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마땅이 이 네 가지를 바로 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언어)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주막이 있어 실제 영업을 하고 있다.

음식과 주류를 판매하고 있어 탁주 한잔 한 곳이기도 하다,

함교수가 쐈다.

 

 

 

 

좌측으론 화장실, 장독대.

 

 

 

 

 

앞쪽 마당가에 주모 像도 만들었다.

 

 

 

 

 

사의재에서 바라본 동천정쪽,

조그만 연못이 있어 한층 더 운치있다.

 

 

 

 

 

동천정 주변엔 한옥의 카페와 <올모스 홈스테이 강진> 한옥건물이 여럿 있다.

 

 

 

 

 

<올모스트 홈스테이 강진>으로 검색하면 되겠다.

 

 

 

 

 

강진에 여러번 왔으면서 왜 여태 이곳 사의재를 둘러보지 않았을까 싶다.

 

 

 

 

▣보성 대한다원

 

오랫만에 보성의 대한다원을 둘러본다,

주차료는 없지만 입장료는 있다.

 

 

 

 

들어가는 길의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인상적이다.

 

 

 

 

 

입구.

좌측에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단체 할인은 3,000원이다.

 

 

 

 

 

매표소 뒷편으로 대밭가는 길이 있고.

입구를 지나 잠시 메타세쿼이아길을 더 걸어올라 간다.

 

 

 

 

 

어떻게 보면 대한다원은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곳에서 직진하는 녹차밭 구역과 좌측 골짜기로 진입하여 비자나무와 대나무 숲이 있는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차밭으로 간다.

 

 

 

 

 

녹차 판매장

 

 

 

 

 

이곳은 카페 및 기념품 판매장

 

 

 

 

 

차밭내 중앙광장으로 오르는 길

 

 

 

 

 

우측으로 완만한 길도 있다.

오랫만에 왔고, 상부까지 한바퀴 둘러볼 요량으로 우측 완만한 길을 따라 크게 한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가운데 숲은 중앙광장이 있는 곳이다.

 

 

 

 

 

우측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저만큼 출입을 막았고.

 

 

 

 

 

능선 너머쪽으로 향나무 군락지가 있다.

넓은 면적은 아니다.

 

 

 

 

 

차밭전망대, 바다전망대 가는 길 이정표가 있다.

 

 

 

 

 

차밭전망대 방향으로 가장자리로 난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서 바라본 차밭이다.

 

 

 

 

 

 

 

 

 

 

 

 

 

차밭전망대로 오른다.

우측의 뒷편 산길을 따라 바다전망대로 오를 수도 있다.

 

 

 

 

차밭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참고로 차밭 전망대로 오른 후 반대편으로 내려서는 길은 좁고 경사가 심한 편이므로 되돌아 내려가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반대편으로 좁은 길을 따라 내려섰다.

 

 

 

 

 

우측 골짜기쪽으로 폭포가는 길 이정표가 있어 이 길을 따라 본다.

 

 

 

 

 

폭포라고 할 것도 없다,

이곳에도 바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있다.(차밭전망대를 거쳐 바다전망대로 오르는 길도 있다.)

바다 전망대는 차밭 상부의 산꼭대기로 생각하면 될 듯.

 

 

 

 

 

되돌아 내려와,

 

 

 

 

 

중앙 전망대로 오른다,

 

 

 

 

 

저만큼 중앙 전망대

 

 

 

 

 

 

중앙전망대에서 바라본 주변 차밭.

 

 

 

 

 

중앙 전망대

 

 

 

 

 

 

 

 

 

 

 

 

차밭을 둘러보고 입구쪽으로 내려간다.

 

 

 

 

 

시간적 여유가 조금있어 비자나무 숲과 대나무 숲을 둘러보러 간다,

차밭이 우측 골짜기라면 비자나무숲은 좌측 골짜기 이다.

 

 

 

 

 

 

 

 

 

 

 

비자나무 숲

수령은 아직 어린 편이어서 큰 운치가 없다.

 

 

 

 

 

상부쪽으로 계속 오르면 대나무 숲으로 가는 길인데,

일행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되돌아 간다.

참고로 이 길을 계속 따르면 대나무 숲을 지나 매표소 앞으로 내려서게 된다.

 

 

 

 

 

되돌아 내려가 보성 대한다원 탐방을 마무리 한다.

 

 

 

 

 

이곳은 순천만 습지 주차장 앞에 위치한 식당이다.

이곳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꼬막비빔밥이었던가? 남명기념관에 근무하는 분이 사비로 계산했다. 감사하다.

회원 각자가 갹출한 회비가 많이 남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