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흥부길
2012년 남원 아영면 일원에 흥부길이 조성되었다.
문화체육관광광부가 주관하는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공모 사업에 고전소설 속을 걷는 문학 이야기 길로 남원시 흥부길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전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아영면 사무소를 출발하여 신지마을, 일대저수지, 하성마을을 지나 위치상 가장 높은 곳의 흥부묘까지 갔다가 고인마을로 내려와 아영면사무소로 되돌아오는 약 10km. 2 : 30분 정도의 농로로서, 흥부가족이 허기져 쓰러진 고개인 허기재, 흥부를 구완한 사람에게 보은한 논 흰죽배미, 떠돌던 흥부가 정착하고 복을 받아 부자가 된 곳 고둔터, 흥부의 생가터인 발복터와 화초장바위, 노디막 거리 등 헝부전의 내용을 담고있다,
사실 흥부길은 흥부전이라는 문학이야기를 빼고나면 크게 볼 것이 없다, 시멘트 포장된 그늘없는 농로를 따라 걷는 길이 대부분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안내표지판은 낡아 읽기 어렵고, 이정표는 곧바로 서있는 것이 드물다. 안내표지판을 정비하고 몇 군데 이정표를 보완, 군데군데 널부려져 있는 각종 쓰레기 등을 제거한다면 소박한 농촌 들판 기슭을 걷는게 더욱 즐겁지 않을까 싶다.
▷ 가는 길
남원시 아영면 사무소.
▷ 탐방코스
아영면사무소 - 신지마을 - 일대저수지 - 하성마을 - 복성이재 - 흥부묘 - 오산마을 - 고인마을 - 아영면사무소. (점심시간 약 20분 포함, 이곳 저곳 조금씩 알바 포함 천천히 4시간 15분 / 2020. 4. 20. )
▷ 탐방안내도
적색실선은 2차선 차도이다.
노랑색 실선이 흥부길이다.
하성마을에서 흥부묘로 가는 길은 정확하지 않다. 하성마을에서 노랑색 실선을 따라 흥부묘로 가는 길에 생금터와 화초장바위가 있으며, 흥부우애관에서 상성마을을 거쳐 오르는 길도 있다.
▷ 탐방후에
남원 흥부길은 주변 농로가 많고 몇군데 이정표가 부족한 곳도 있다.
안내도에서 노랑색 실선이 흥부길로(일부 틀릴 수 도 있음), 4군데서 흥부길을 이탈하곤 했다.
물론 흥부길을 따르지 않아도 나쁘지는 않다.
남원시 아영면사무소 주차장에 주차한다.
어느 정도 주차 공간은 있다.
면사무소가 서향이다.
면사무소 옆이라 해야하나? 북서쪽으로 도로는 사거리를 이루며, 면사무소 북쪽의 도로와 접하는 곳에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다.
면사무소 옆 이정표,
신지마을을 쪽을 들머리로 한다.
근데 이정표 방향이 쬐끔 애매하다.
엄밀히 말해 이정표 방향은 길이 아니다, 이정표 방향의 좌측이나 우측으로 약간 이동 후 이정표 방향으로 야하는데 어느쪽으로 가리키는지 모르겠다. 좌측으로 가야하나 우측으로 가야하나 ?
면사무소 앞의 안내도이다,
낡고 글자도 작아 판독은 거의 불가능 하다.
위 이정표에서 도로 건너 맞은편 담벽에 이정표가 있다.
신지마을은 면사무소를 등지고 보았을때 우측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사실 출발시엔 이 이정표를 보지 못했다.
위 벽면의 이정표 방향으로 (면사무소에서 동쪽, 함양군 방향)으로 60~70m쯤 진행하면
조그만 하천이 흐르고 다리가 있다.
신지마을 가는 길은 보이는 하천의 우측 둑을 들머리로하여 상류쪽(북쪽)으로 잡으면 된다.
이곳 다리목에 이정표 하나쯤은 꼭 있었음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초행이라면 이곳에서 이 길이 맞을까 하고 조금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겠다.
이곳 다리목에서 맞은 편으로는 이동 표지석과,
뒷편으로 이어가는 길은 함양 병곡면으로 가는 도로이다.
첫번째 부터 흥부길을 잘 못 들었다.
이곳은 면사무소 대각선으로 앞 사거리이다.
실제로 신지마을로 가는 길은 보이는 저 도로겠지 하고 따라간 곳이기도 하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사거리의 이정표이다.
도로를 따라 신지마을로 간다.
아영 중앙교회 앞을 지난다.
차도를 따르면서 흥부길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아 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앙교회을 지나 주변으로 시야가 트이는 차도를 따르면서 이 길이 흥부길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하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며 걷다보니 우측으로 약간의 거리 (100m쯤?)의 하천변에 이정표 같은 것이 보여 저곳이 흥부길인가 보다 하고 이곳 하천변으로 왔다.
저쪽 보이는 몇개의 탱크있는 곳에서 이곳 다리로 건너왔다.
이제 흥부길을 제대로 찾은 셈이다.
아영면사무소 앞에서 우측으로 조금 진행하다 이곳 하천변을 따라 왔다면,
바로 이 길로 왔을 것인데, 어쨌든 이제는 제 길로 들어선 셈이다.
놀로를 따라 간다.
저만큼 광주.대구간 고속도로 굴다리가 보인다.
왼쪽 굴다리는 하천이 있는 관계로 넓고, 우측(가운데)에도 작은 굴다리가 있다.
굴다리 통과,
우측의 작은 굴다리를 지나도 된다.
굴다리를 지나면 이내 사거리다.
앞쪽에 보이는 저 마을이 신지마을이지 싶다.
직진은 강둑을 따라, 우측 신지마을쪽,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야 되지 ?
우측 저만큼 고속도로 작은 굴다리를 포함하여 사거리를 이루는 곳에 이정표 같은게 보인다.
그래서 저곳으로 간다.
좌측으로 일부 보이는 마을이 신지마을이다.
위 작은 굴다리 앞 사거리의 이정표다.
뒤로 보이는 마을이 신지마을인데,
이정표의 검은색 삼각형 방향은 신지마을을 가르키지 않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위 이정표 앞의 갈림길이다.
우측은 고속도로 아래의 작은 굴다리, 좌측은 신지마을 쪽인데,
이정표의 화살표는 보이는 저곳을 향하고 있다.
일단 이정표 방향대로 가 보자,
그래서 두번째로 길을 잘 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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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옆으로 난 농로를 따른다.
계속 이 방향으로 진행하면 안되는데 하면서 농로를 따라가니 역시 다음 고속도로 굴다리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흥부길이 맞는지 안맞는지 모르지만 대충 방향은 맞아떨어지니 안심은 된다.
이 야트막한 능선은 신지마을 뒷산으로,
흥부길은 신지마을 앞길을 피해 이곳 능선으로 난 농로를 따르나 보다하는 생각을 했다.
이곳 능선은 지대가 낮아 별 힘들거나 한 곳은 아니다.
좌측 아래로 신지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이 능선은 북쪽(북서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주변 밭을 구경하며 능선을 따른다.
능선 우측으로,
사진으로 보기보다는 거대한 소나무다.
능선은 계속 북쪽으로 이어진다.
보이는 사거리에서 좌측 아래로 내려다 보니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산 기슭을 따라가는 농로에 이정표가 희미하다.
저곳 아래로 내려가 흥부길을 확인하고,
흥부길이 아니면 이곳 능선을 따라 계속 진행함도 농로보다는 나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우측으로 보이는 도로의 끝부분 고개(위 사진의 사거리)에서 이곳으로 내려왔다.
삼거리 좌측편에 보이는 저 길을 따라 하성마을쪽으로 흥부길은 계속된다.
흥부길은 신지마을 앞을 지나 이곳으로 바로왔어야 하는데, 마을 입구에서 지금까지 진행해 온 길은 정확한 흥부길이 아니었다.
그래도 흥부길 보다는 이 길을 따르길 잘 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위 갈림길의 이정표,
진행할 방향으로 하성마을을 알리고 있고,
한 쪽은 신지 마을을 가리킨다.
위 갈림길에서 신지마을 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와 안내표지판을 확인하기 위해 신지마을쪽으로 조금더 이동해 본다.
신지마을 쪽으로 조금 이동하여 지나온 방향을 본다.
흥부전 둘째마당,
흥부 박타는 대목
흥부가 지붕으로 올라가서 박을 톡톡 퉁겨 본즉 팔구월 찬이슬에 박이 꽉꽉 여물었구나, 박을 따다 놓고, 흥부 내외가 자식들을 데리고 박을 타는데.
"시르릉 실근 당겨 주소, 에이 여루 당기어라 톱질이야,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 말고 밥 한통 나오너라, 평생에 밥이 포한(抱恨)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기어 주소, "스그르르르르르르르르, " 큰자식은 저 리 가고, 둘째 놈은 이리 오너라. 우리가 이 박을 타서 박속일랑 끓여 먹고, 바가지는 부잣집에 팔아다가 목숨 보명 (保命) 살아나자. 에이 여루 받소." "톱 소리를 받자한들 배가 고파 못 받겠고." "배가 정 고프거든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운차게 당겨 주소."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식삭 시르겅 시르렁 실근 실근 삭삭 실근 실근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실근 식삭.
되돌아 하성마을 쪽으로 흥부길을 따라 간다.
지형상 꼭 흥부길이 아니라도 나쁠건 없다. 대충 복성이재를 넘어 장수로 넘어가는 도로를 중심에 두고 양쪽 산 기슭의 농로를 따르는게 대략적인 흥부길이다.
이정표는 없지만 우측으로 난 길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저만큼 갈림길이 보인다.
신지마을 뒷편의 나즈막한 산 능선이 북(서)쪽으로 이어가다 끝나는 곳이다.
이산 능선을 진행 방향에서 볼 때 좌측 기슭으로 난 농로를 따라 흥부길이 이어져 왔지만 능선길을 걷는 것도 좋다.
(실제 2분의 1은 능선길을 걸었다.)
이곳에 이정표가 있다.
역시 진행할 방향 <하성마을>, 지나온 곳 <신지마을>이다.
하성마을 방향으로 간다.
저만큼 저수지 둑이 길게 보인다.
저수지 둑이 저만큼 보이는 곳에서 2차선 차도를 만난다.
도로변 이정표이다.
당분간 진행할 방향은 하성마을이다.
우측으로 저 쪽,
지도를 확인하니 일대리로 나온다.
위 이정표에서 일대리 반대편으로 몇십미터 거리에 위치한 또다른 이정표이다.
하성마을 반대쪽, 글자가 보이지 않는 이정표 이면에는 신지마을로 표시되어 있다.
하성마을 이정표는 차도를 따르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헷갈린다. 즉 무심코 하섬마을 방향을 따르면 흥부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흥부길은 사진상 우측으로 보이는 농로, 즉 일대저수지 좌측편으로 올라가야 한다.
일대 저수지 가는 길,
인터넷 상에서 흥부길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구하기가 어렵다.
또한 정확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중 가장 그럴듯한 안내도 한장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갔기 때문에 수시로 갈림길에서는 안내도와 이정표 등을 확인해 가며 진행하다 보니 자연 속도 또한 느리다.
흥부전 셋째마당이 소개되어 있다.
화초장 대목에 대한 이야기다.
둘째마당은 신지마을을 벗어나는 곳에 있고 첫째 장은 보지 못했다.
일대저수지에 도착한다.
일대저수지
저수지 면적이 상당히 넓다.
저수지를 우측편에 두고 진행한다.
저수지 상류인 셈이다.
강정(江亭) 모퉁이
흥부가 가난에 굶주리고 있을때, 아내의 권유로 형 놀부에게 곡식을 얻어러 갔으나 먹을 거리를 얻기는커녕 혹독한 매질만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 같은 형의 행실을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형에게 받았다는 쌀 다섯말과 돈 50냥을 짊어지고 큰 고개를 넘어오다가 도둑을 만나 다 뺏기고 빈손으로 돌아 왔다고 거짓으로 말한다. 바로 그 곳이 강정 모퉁이다. 이 강정 모퉁이는 현재 일대저수지 서편 주변을 말한다.
일대저수지의 상류이자 서쪽편 끝 지점쯤이다.
연이어 두개의 안내표지판이 있다.
층층정(層層亭)
층층정은 지금의 일대저수지 근방에 있던 정자로 예전에 신작로가 나기 전에 삼례에서 통영으로 가던 통영별로(統營別路)가 지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층층정은 2층으로 된 정각으로 한일합방 당시까지도 있었으나, 1945년 일대저수지가 조성되면서 지금은 물에 잠기었다. 당시 근처에 있는 짓재, 방죽가생이에도 주막이 있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주요 거점이었다. 지금까지도 저수지 주변에서 절구, 돌구시, 우뭍터 같은 살림자료가 종종 발견되고 있다.
낚시장소로 그만이겠다.
구름다리(雲橋.윤교) 장터,
구름다리 장터는 아영면 하성(下城)마을 북쪽에 있는 들판에 자리하고 있으며,
옛 대로(大路)인 통영별로가 지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주막거리와 시장이 서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 이 장소에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일대저수지가(日臺貯水地) 자리잡고 있다.
야트막한 언덕위로 오르면,
갈림길이 있다.
위 갈림길의 이정표,
하성마을 방향으로,
흰죽배미
배가 고파 허기재에 쓰러져 있던 흥부를 마을 사람이 발견하여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구하였다.
훗날 흥부가 부자가 된 뒤 그 은인에게 보답으로 주었다는 논을 일컬어 '흰죽배미'라고 한다.
'이신유 창본?'이나 '정명기본' 에서는 흥부 부부가 박을 타기 전에 흥부 아내가 배가 고파 쓰러지는 대목이 있다.
그 때 이웃 김부자집에서 밥(흰죽) 한 그릇을 갖다가 입에 넣으니까 살아나, 흥부 아내가 기운을 차리고 슬근슬근 박을 타서 부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성마을 0.4km,
이곳 이정표의 방향도 길이 아닌 곳으로 가리킨다.
방향 무시하고 보이는 길을 따르면 된다.
허기재?를 넘는다.
허깃재를 넘는 곳에 갈림길이 있으며 허기재 안내문이 있다.
허기재.
어렵게 살던 흥부가 어디를 다녀오다 허기를 참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성리마을 앞 고개의 이름이 허기재이다. '허깃재', '허목' 이라고도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허기재, 허기논 등의 이름이 종종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궁핍했던 백성들의 삶이 도처에 퍼져 있었음을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고개를 넘어가면,
이내 하성마을이다.
하성마을 경로당 앞을 지나.
하성마을 앞 광장을 지난다.
별 준비없이 흥부길을 찾다보니 단순한 곳인데 이곳 저곳 헷갈리는 곳이 더러 있다.
성리는 흥부길의 중심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성리에 상성마을이 있고 하성마을이 있다.
이곳이 하성마을이고 서쪽 인근에 상성마을이 있다.
하성마을앞 차도변에 이정표가 있다.
이곳 이정표,
지나온 신지마을 2.4km를 알리고 있고,
좌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흥부우애관 0.3km,
우측 언덕을 넘어가는 방향으로 망제단 1.8km를 가리킨다.
저만큼 비교적 근년에 신축한 건물이 보인다.
줌으로 당겨본다.
아마 저 건물이 흥부우애관인것 같다.
하성마을앞 이정표 주변에서
준비해 간 지도를 유심히 살펴 보지만 도저히 모르겠다.
안내도상 흥부우애관에서 흥부묘로 가는 길을 감잡을 수 없고,
에라,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망제단으로 표시된 방향이자, 안내도상 연계코스로 가늠되는 봉화산 등산로 들머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망제단.
제단은 제단인것 같은데 뭐하는 제단이지 ?
하성마을 뒷편 고개를 넘는 곳에 주차장이 있다.
웬 고개에 주차장? 지역 주민들의 농기계 보관용 주차장인가 ?하고 지나쳤지만,
공원인 듯도 한, 조금은 궁금한 곳인데 그냥 지나친다.
하성마을 뒷편 고개를 넘으니 도로 좌측편에 바우누리, 태성농장(공장석) 등의 안내표지판과 우측 도로변에 망제단 이정표가 있다.
탐방 후 뒤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태성농장 방향의 농로를 따라도 망제단에 갈 수 있다.
서두의 안내도에 흰색 실선으로 조금 진하게 표시하였다.
위 도로변의 이정표,
뱡향은 양쪽 차도변을 가리킨다.
하성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약 0.5km 지점이다.
이곳 도로변에 하성마을을 알리는 버스승강장이 있고 조금 윗쪽에 직진 복성이재를 넘어 장수군 번암으로 넘이가는 도로와 우측 구상마을로 진입하는 도로의 갈림길이 있다.
근데 이곳 하성버스승강장 주변에는 마을이 없다.
승강장 뒷편으로 멀리 뛰엄 뛰엄 보이는 몇 농가를 위한 승강장이지 싶다.
승강장 앞쪽의 도로변에 깨어지고 찌그러진 망제단 이정표가 있다.
근데 하성마을은 지나온 방향이 맞는데 망제단 방향이 승강장 뒷편의 골짜기를 가리킨다.
수차 이곳 이정표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도 있는 차에 낯선이를 만난다.
등산객 차림은 아니나 산행을 온 분이란다. 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 인근의 사치재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을 따라 진행하다 이 인근으로 내려와 구상마을로 가서 버스를 타고 아영면으로 나갈거란다.
나름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나 흥부길과 망제단은 잘 모른다.
망제단,
문득 봉화산 자락의 철쭉 군락지 상부에 제단이 있어 이를 망제단이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위 이정표 옆에 노디막거리 안내문이 있다.
이곳은 글자 훼손이 너무 심하여 알아 볼 수 없다.
세번째로 흥부길이 아닌 길을 가다.
나름 망제단을 봉화산 자락 철쭉 군락지 상부의 제단이라 오판하고,
아직은 철쭉이 피지않아 망제단? 탐방은 생략하고, 이곳까지 온 김에 봉화산 들머리를 지나 복성이재까지 갔다가 조금 내려와 건너편 산 기슭을 따라 내려오는 것 까지를 흥부길 연장선으로 보고, 그 다음에 흥부길을 찾아보기로 한다.
여기서 흥부길에 대한 3번째 오류가 생겼다.
사실 흥부길을 찾는다면 위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입해야 옳다.
봉화산 주차장을 지나.
주차장.
아직은 철쭉 철이 아니어서 이곳을 찾은 등산객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비석이 특이하다? 쯤으로 넘어간다.
봉화산 등산로 들머리를 지난다.
복성이재 조금 못미쳐서 임도를 따르면 흥부(박춘보) 묘가 있다.
인근에 박공원도 있고,
흥부묘만 찾으면 흥부길을 따라 아영면으로 되돌아 가면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계산댄다.
복성이재로 가는 도중 두번째 주차장을 지난다.
주차장은 크지 않으며, 봉화산 주차장의 보조주차장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주차장 가의 안내표지판도 본다.
발복집터(고둔터)
어느 한 도승이 가난에 찌들어 살던 흥부에게 찾아와 명당 집터를 잡아 준다.
흥부는 도승이 잡아 준 명당 집터로 집을 옯기고 난 뒤에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고쳐주고 발복하게 된다.
바로 이 집터가 발복집터 또는 고둔터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고둔'이라는 지명은 곳집(창고)이 모인다는 터, 즉 부자가 된다는 터이다.
아영면 성리의 입지로 보아 부잣집의 커다란 곳간이 있엇던 곳으로 추정된다.
발복집터 주변엔 주택은 이집 한 곳?과
도로 아랫쪽으로 축사인지 농장 관리사인지 몇개의 창고형 건물이 있다.
위 주택을 지나면 이내 아랫쪽으로 내려서는 농로가 있다.
바로 아랫쪽에 축사인가? 아님 농장의 관리사인가 건물이 여러동 있으며, 이곳을 거쳐 성리 또는 지나온 하성마을로 내려가는 농로가 있다. (정확히는 노디막거리 안내문과 그 앞의 하성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과 직선으로 연결된다.)
봉화산 들머리를 지나 올라온 차도 보다는 지름길인 셈이다.
여차하면 나중 이 길을 따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눈여겨 본다.
복성이재 방향으로 조금 더 오르면,
보이는 조형물과 아막성 농원을 알리는 팻말이 있다.
이곳에서 카카오 지도로 확인하니 내려갈 방향으로 임도가 있다.
조금후 복성이재까지 갔다와서 이곳에서 농로? 임도?를 따라 하성마을이든 상성마을 방향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곳 어디쯤에 흥부묘를 만나 흥부길을 찾아볼 심삼이다.
복성이 재로 향한다.
위 아막골 농장 갈림길에서 복성이재까지는 200~300m 쯤의 거리로 가깝다.
저만큼 복성이재가 가늠된다,
복성이 재에 왔다.
광주 - 대구간 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 인근의 사치재까지 7.2km를 알리고 있고, 봉화산을 넘어 함양 백운산을 오르기 전 중치까지 12.1km를 알리고 있다.
몇 년 전 중치에서 봉화산을 넘어 이곳까지 온 기억과 아영면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시간이 빠듯해 지역민 트럭을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이곳 복성이재에서 20분여 휴식과 중식시간을 갖는다.
아막성 농원(800m)을 알리는 갈림길로 되돌아 왔다.
바닥에 떨어진 간판에는 강소농 지리산 한결농장으로 표시되어 있다.
맞은편 한켠에
산제당을 알리는 이정표도 비스듬 하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간다.
어느 농가를 지난다.
저 집의 끝에 '上복성골 산신당'으로 가는 표지석이 있는데 이곳 산신당이 들머리 산제당으로 표시된 곳일까? 하면서 그냥 지나친다.
상부로의 오르막이 제법이고, 가 봐야 별게 아닐것이다 라고 자조하면서.
저만큼 갈림길이 있다.
직진으로 보이는 윗쪽길 저쪽에 보이는 건물이 아막골 농원이었다.
어느 길을 가야 하나?
윗쪽 ?
아랫쪽?
여차 하여 내려가는 것은 쉬우니, 윗쪽 길을 따라가 보자.
직진한다.
이내 아막골 농원이다.
아막골 농원을 지나 조금 진행하니.
저만큼 정자가 보인다.
우측으로 임도와 접하여 묘지가 있다.
박공춘보선덕비(朴公春甫善德碑)
반갑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흥부길을 찾은 셈이다.
흥부묘에서 앞 전경을 본다.
박춘보 묘,
마을에서 박춘보 (홍부)의 묘라고 추정되는 임세강묘이다. 연소혈이라 부르는 곳에서 비석이 1991년 12월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임세강의 묘비를 보면 전면에 '절충장군 임세강지묘' 라고 쓰여 있고, 후면에는 비문을 세우게 된 내력이 밝혀져 있다. 그 당시 묘가 많이 파괴되어 확실치 않으나, 다섯 기의 묘가 함께 있었다.
춘보제는 연소 혈 방향(북쪽)을 향하여 망제(望帝)를 올렸고, 1999년 11월 현재의 위치로 묘를 옯겼다.
흥부묘
흥부묘라 추정하는 임세강 묘는 연소혈이라 부르는 곳에서 비석이 1991년 12월에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망제를 올리고 1999년 11월에 현재 위치로 묘를 옮김.
이곳 정자 앞의 이정표,
근데 하성마을 방향이 임도쪽이 아니다.
흥부길은 하성마을의 이정표에도 망제단 1.8km로 표시되어 있으며, 하성마을에서 차도를 따라 고개넘어 노다막거리와 그 앞의 하성 버스승강장 뒷편으로 난 길을 따라서 이곳으로 왔다는 소리인데.............
이정표 하성마을 방향은
정자 앞쪽의 임도가 아닌 이곳으로 나 있다.
기존 임도가 아니라 아랫쪽 상성마을 또는 하성마을쪽과 가까운 거리쪽으로 흥부길을 내면서 새로낸 탐방로 같은 느낌이다.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
진행할 방향을 가늠하기 위하여 100m쯤 내려가 본다.
이만큼에서 방향을 가늠해 본다.
주변의 산세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진상 좌측으로 보인는 지능선이 중간에 하성마을이 있다. 자세히 보면 하성 경로당이 보인다.
우측 쭉쭉 곧은 나무들 뒷편으로 흥부 우애관이 있다,
하성마을에서 서쪽 방향으로 마을 뒷편을 지능선을 따라 주능선 쪽과 만나는 중턱쯤에 흥부묘가 있는 셈이다. 거리도 몇백미터 정도로 멀지 않아 보인다.
하성마을쪽 지능선 좌측으로,
가운데 청색건물 뒷편에 하성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고 망제단 이정표 방향 때문에 한동안 어정거린 곳이다.
저곳에서 망제단 이정표 방향으로 따르다 보면 보이는 앞쪽 어느곳을 거쳐 이곳으로 오르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흥부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정자로 되돌아 와 고인마을로 방향을 잡는다.
정자앞 이곳이 공구재?
임도 양쪽에 안내표지판과 이정표가 있다.
망제단(望祭壇) 안내문이 있다.
망제단은 성리마을 뒤 고개마루인 공구재 위에 있는 박춘보의 제단을 말한다.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 당산제를 모시고 난 후 별도의 제수를 차려놓고 마을에 선덕을 베푼 흥부의 추모제를 지내는 곳이다.
정월이라 눈이 많이 내려 예전에는 묘소까지 가지는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묘소를 향하여 춘보제를 거행하였다. 이 제사는 1940년 무렵 중단되었다가 1992년부터 부활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괜히 쑥스럽다.
철쭉동산 봉우리에 철쭉제를 지내는 망제단이 있나 추측던 생각은 영 틀려먹었다,
망제단이 정자옆의 이 고목 아래에 있나? 싶어 올라보지만 제단은 없다.
그럼 망제단은 흥부묘 앞의 제단인가?
이장한 묘지의 신설된 제단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아 그냥 통과한다,
망제단 안내문 앞쪽에 아막성 0.6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왕복 1.2km,
뒤쪽의 산 정상? 능선?에 있는 성이지 싶은데 갔다올까 망설이다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흥부묘에서 내려오면 이내 (200m정도?),
주차장이 있다.
이 산중턱에 웬 주차장?
흥부전을 소개하는 안내문이 있고,
제법 넓은 주차장과,
계단 상부에 공원을 만들었다.
흥부마을의 중요한 테마인 박을 소재로 공원 내에 전통놀이 체험공간과 박 트랠리스 파고라 조형물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여러 종류의 박을 식재하여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트랠리스(trellis)를 사전으로 찾아보니 (덩굴성 식물을 뻗게하는) 격자 시렁이라 되어 있고, 파고라(pergla)는 휴게시설의 일종으로 사방이 트여있고 골조가 있는 지붕이 있어서 햇빛이나 비를 가릴 수 있으며 앉을 자리가 있는 시설물을 말한다라고 적혀있다.
저것을 트랠리스라고 하는 구나.
흥부길을 조성하면서 기존의 농로와 임도를 사용하였기에 이정표를 제외하면 별 돈이 들어가지 않았을것 같고, 이곳 박꽃공원을 조성하는데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갔을 것 같다.
주차장의 용도와 이용율도 그렇고,
잘 꾸며 가꾸는 공원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듯............싶은 생각을 해본다.
박꽃공원을 지나면 이내 성리 상성마을, 즉 상성마을을 지나 하성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이곳 갈림길에 안내문과 이정표가 있다.
빈 집터
사람이 살다가 어떤 연유로 말미암아 집터만 남아 있는 곳을 가리켜 '빈집골' 이라 하는데,
흥부가 형 놀부에게 쫓겨나서 들어와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리마을(상성마을, 하성마을)에서는 빈집골 보다는 '빈시골' 또는 '빈지골'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
이곳 갈림길 이정표,
망제단 (0.3km)쪽에서 내려왔다.
흥부우애관은 바로 아래 보이는 상성마을을 지나내려 가면 하성마을 입구에 있다.
고인마을 3.4km방향으로 간다.
이정표의 제비머리 방향을 보거나, 기둥의 현위치 번호아래 화살표 방향을 참고한다.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다.
흥부빈시골 농원 앞을 지나.
이곳에서 잘못 되었나?
엄밀히 말해 네번째 잘 못 들어선 곳이다.
흥부묘 앞쪽에서 아막성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데, 오늘 일정에 아막성은 넣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도 아막성으로 가는 길이 있구나 하고 무심코 직진하였다.
현 위치 번호 55번,
망제단 방향은 적색 삼각형으로, 사진으로 보니 아막성 방향으로 검은색 삼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 같다.
정확한 흥부길은 이곳에서 아막성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고인마을 방향으로 좌회전 해야 하는 것 같다.
위 아막성 갈림길에서 무심코 직진하니 마을로 내려선다.
낡은 우물도 보이고,
도로변으로 내려서니 오산마을 회관이 산뜻하다.
회관옆 도로변 정자도 단정하다.
오산마을 회관앞이다.
저곳 할머니 한분이 걸어가고 있는 곳이 지나내려온 곳이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지만 흥부길을 알리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뭐가 잘못 되었나?
차도를 따라 면소재지 방향이자 노인마을로 간다.
차도 중간, 장자골 안내문이 있다.
장자골의 '장자'란 부자를 가리키는 다른 말이며, 장자골은 흥부가 형 놀부와 같이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
노승에게 나쁜 짓을 하여 결국 망하게 되는 심술 궂은 놀부와는 대조적으로, 흥부는 후하게 대접하여 이후
노승(老僧)으로 부터 발복집터를 얻어 부자가 됬다고 전해진다.
인월송 한식뷔페,
기회가 된다면..............
위 오산마을 회관앞에서 6~7분,
저만큼 도로변에 이정표가 보이고,
도로 우측에 이런 시설물이 있다.
정화조?
이곳에 망제단 이정표가 있는데 오산마을에서 지나온 차도변이 아니라.
90도 꺽이는 농로쪽을 가리킨다.
이크 또 잘못 들었구나.
추후 확인해 보니 오산마을 뒷편 아막성 갈림길 밖에 없다.
아막성 갈림길에서 차도변이 아니라 기슭의 농로을 따라 왔어야 하는데 잘못 되었다 싶다.
오산마을 방향과 일대리 방향, 신지마을로 가는 갈림길로 내려왔다.
주변 노거수와 낡은 월산 정미소.
하나는 세월이 흘러 운치가 있고,
다른 하나는 낡아 볼품이 없다.
고속도로 굴다리 아래를 통과하면 바로!
우측으로 고인마을을 가리킨다.
고속도로 옆으로,
고속도로 조그만 굴다리가 있는 곳에,
봉분의 상부가 편편하여 커다란 찐빵같이 생겼다.
처음엔 고분이란 생각이 들지않았으나 남원 월산리 고분군이란 안내표지판이 있다.
월산고분군은 현 두 기만 복원되어 있다.
한쪽 고분 상부에 이건 뭐지?
고분 천정을 내부가 훤히 내려다 보이도록 유리로 마감했다.
고분 입구가 진행하는 방향의 반대편에 있어 보이지 않으므로,
호기심 많은 사람은 억지로 봉분위로 오를 수도 있다.
내부,
월산고분 앞에서 직선으로 쭉 ~
농로를 따라 고인마을고 간다.
고인마을과 고인돌에 대한 이야기다.
많이 낡아 전체 해독은 어렵다.
고인돌이 있어 고인마을인줄 알았는데 고인이라는 장수가 살았단다,
마을 안,
혹시 고인돌?
한자로 보니 高印 (고인)마을이다,
이 마을은 신라사대 고인이라는 장수가 관장했던 모산현(母山)에 속하였다는 이야기와
마을 입구에 3기의 남방식 고인돌이 있다한다.
마을 입구의 숲이다.
고인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저 위에도 고인돌이 있을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농장에 오르기 위해 이런 계단길을 만들었을까?
아영중학교 앞을 지나.
면소재지 내 중심도로로 내려선다.
지리산노인복지센터 건물이 깨끗하다.
고인마을 입구는 위 지리산노인복지센터나.
아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소방대 앞쪽에 이정표가 있다.
소방대 건물이다.
몇십년 전에는 잘 지은 가정집인데
약간 개조를 해 까페로 꾸몄나 보다.
아영면 사무소에 도착하여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
몇 군데 제 길이 아닌곳을 다녔지만 소담스런 농촌 들판을 큰 매력없이 조용히 찾을 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