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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정원이야기, 기강 댑사리 축제, 입산문화마을과 설뫼충효테마파크

정헌의 티스토리 2024. 10. 14. 23:19

■의령 정원이야기, 기강 댑사리축제, 입산문화마을과 설뫼충효테마파크

 

식물이 좋아, 바위가 좋아 한평생 정원을 가꾸는 분들이 있다. 요즘 시간나는 대로 이들 정원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당 도에서 민간정원으로 지정하고 홍보를 해 주니 입장료를 받거나 아님 카페를 운영하여 소요 비용의 일부를 충당하는 곳이 차츰 늘어난다. 오늘은 의령 카페 정원이야기를 찾아왔다. 이곳 정원을 둘러보고 기강 나루터를 둘러볼 생각이다. 마침 기강댑싸리 축제가 열리고 있다. 넓은 강변과 그만큼 많은 꽃과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의령 부림면에 위치한 입산문화마을은 탐진안씨 집성촌이다. 문화예술과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한 정신문화의 고장으로 백산 안희제생가 등과 폐교를 리모델링한 입산문화역사관 등이 있는 설뫼충효테마파크 등 볼 거리가 있다.

 

 

▷가는 길

 

 

 

▷ 탐방코스 

의령 유곡면  정원이야기 - 지정면 호국의병의 숲, 기강 댑사리 축제 - 유곡면 입산문화마을과 설뫼충효테마파크 - (합천 특별한 정원)  /  (2024. 10. 13)

 

 

▷탐방후에

 

▣카페 정원이야기

 

정원이아기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 518~2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카페 입구에 몇 대의 주차공간이 있고. 도로가 커브진 곳의 도로변에 약간의 주차 여지는 있다.

 

 

 

 

 

정문,

 

 

 

 

 

카페 정원이야기.

 

 

 

 

 

입구에 들어서면 카페 건물이 보인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어느 부잣집 안채 앞의 돌확 생각이 난다.

 

 

 

 

 

정원이야기는 유곡천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상당량의 흙을 복토하여  만든 평평한 지형의 토지이다.

또한 정원의 면적은 그리 넓지않아 편히 둘러볼 수 있다.

 

 

 

 

정원의 중심부인 셈이다.

 

 

 

 

 

철원이라든가?

어디 외지에서 가지고 온 돌로 중심부를 꾸몄다고 한다.

 

 

 

 

 

 

 

 

 

 

 

 

이곳 저곳 정원을 둘러본다.

넓지않은 면적이므로 이곳 저곳 발길 가는 대로 다니면 되겠다.

 

 

 

 

 

유곡천이 휘어져 흐르는 곳 건너편은 암벽이다.

하천변에 여유공간이 남아있어 그늘을 보완하면 쉼터가 될 수도 있겠다.

 

 

 

 

 

카페 건물을 중심으로 앞쪽이 주 정원이다.

 

 

 

 

 

 

 

 

 

 

 

 

 

 

 

 

 

 

 

 

 

 

 

 

 

 

 

 

 

 

 

 

 

 

 

 

 

 

이곳은 정원이야기 북쪽 경계 밖의 구역이다.

공터로 남아 있고  텐트 두어동이 보이는데 운영의 주체는 어디인지 모르겠다.

 

 

 

 

 

 

 

 

 

 

 

 

 

 

 

 

 

 

 

 

 

 

 

 

 

 

 

 

 

 

 

 

 

 

 

 

 

 

 

 

 

 

 

 

 

 

 

 

 

 

 

 

 

 

 

 

 

 

 

 

 

 

 

 

 

 

 

 

카페의 앞쪽은 비교적 화려?하게 암석과 수목의 배치에 조화를 꾀했고, 뒷편 정원에도 제법 면적의 정원수들이 식재되어 있다.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카페로 왔다.

 

 

 

 

 

 

 

 

 

 

 

 

 

 

 

 

 

 

 

 

 

 

 

 

 

 

이게 무슨나무든가?

정원이야기였다.

 

 

 

▣호국의병의 숲 친수공원, 기강 나루터

 

친수공원은 낙동강과 남강이 서로 만나는 기강나루터의 넓은 강변에 꽃과 핑크뮬리, 댑싸리 등을 심어 멋진 공원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꽃이 만개하는 때쯤 댑싸리 축제를 열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주차장도 3곳에 만들어 주차난을 해소했다.

이 공원으로의 진입은 지정면 소재지를 거쳐 가는 길을 따르는 게 좋다. 박진교 인근에서 꼬불꼬불 산을 넘어가는 길도 있지만 상당부분이 시멘트 포장의 중앙선 없는 임도수준의 길이다. 따라서 주변 지형을 구경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정면소재지 앞으로 난 도로를 따르는게 낫다.

 

 

 

 

제1주차장(임의로 붙였다 처음 만나는 주차장이다.)에 주차후 공원으로 간다.

 

 

 

 

 

 

 

 

 

 

 

황화코스모스?

 

 

 

 

 

 

 

 

 

 

 

코스모스

 

 

 

 

 

 

 

 

 

 

 

 

 

 

 

 

 

이곳은 핑크뮬리

 

 

 

 

 

 

 

 

 

 

 

 

 

 

 

 

 

 

 

 

 

 

 

 

 

 

 

 

 

 

 

 

 

 

 

 

 

 

 

 

 

 

 

 

 

 

 

 

 

 

 

 

 

 

 

 

 

 

 

 

 

 

 

제2, 3주차장은 공원의 가운데쯤 위치하며  두 주차장이 비교적 가까이 있다.

 

 

 

 

 

2,3 주차장을 지나서도 넓은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넓은 낙동강변에 잡초를 제거하고 이렇게 꽃밭을 가꾸기가 쉽지 않을 곳인데 꽃을 잘 가꾸었다.

 

 

 

 

 

넓은 강변을 공원 상류로 간다.

강 건너편은 남지 마분사능로 강변으로 개비리길이 좋다,

 

 

 

 

 

 

 

 

 

 

 

 

 

 

 

 

 

 

 

 

 

 

 

호국의병의 숲 안내표지판이 있다.

이 숲은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낙동강 희망의 숲> 사업으로 조성되었으며, 아름다운 수변생태공간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고,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곽재우 장군의 기강전투를 기념하고 군민의 자금심을 고취하고자 지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성되었습니다.

2011. 4. 5

<현지 안내문에서>

 

한쪽에는 호국의병의 숲 타임캡슐이 뭍혀져 있다.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후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숲 조성에 참여한 분들의 추억과 사연을 이곳에 담아 두었다.

 

 

 

 

 

10여년이 조금 지난 세월이어서 현 숲의 상태는 큰 그늘을 만들어 주거나 생육상테가 왕성하지는 않다.

 

 

 

 

 

꽃과 갈대

 

 

 

 

 

입구 제1주차장에서 꽃밭 조성이 끝나는 곳까지는 대충 1.3km쯤 될 듯 한다. 따라서 왕복하면  2.6km쯤 거리가 되는 셈이다.

 

 

 

 

 

 

 

 

 

 

 

 

 

 

 

 

 

 

 

 

 

 

 

 

 

 

푸르게 보이는 것도 화초이다.

늦게심었는지 아님 개화 시기가 늦는 품종인지 모르겠으나 이제 막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꽃밭은 이곳까지

되돌아 간다.

 

 

 

 

 

호국 의병의 숲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둑방길을 따른다.

 

 

 

 

 

낙동강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둑방길을 따르다가 2, 3주차장 쪽으로 내려왔다.

 

 

 

 

 

댑싸리와 황화코스모스

 

 

 

 

 

축제장으로 되돌아 왔다.

 

 

 

 

 

 

 

 

 

 

 

 

이곳은 기강나루터 데크

 

 

 

 

 

 

 

 

 

 

 

남강과 낙동강이 이곳에서 합류한다,

강건너 좌측편은 남지로 수변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넓은 강변을 개간하여 싱싱하게 꽃을 가꾸는 노고가 상당했을 것 같다.

덕분에 기대 이상의 꽃구경을 하고 주차장으로 되돌아 와 1시간 30분여 진수공원탐방을 마친다.

진수공원의 꽃은 지금이 가장 절정이다.

 

 

 

▣입산문화마을 / 수파정, 탐진안씨종택, 안준상고택, 안병준고택, 백산안희제생가. 상로재, 설뫼충효테마파크

입산마을에 왔다.

 

마을 입구에 입산마을을 빛내신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헌 안기종 : 임난 의병활동

수파 안효제 : 1984 홍문관 수찬

백산 안희제 : 백산상회 설립, 사립학교 설립, 대동청년단 창설,  협동조합운동전개 등등 

송은 안창제 : 1883 옹양휘 사과

근산 안준상 : 항일독립운동, 체헌의원

한뫼 안호상 : 철학박사, 초대문교부장관

자평 안   균 : 낙동강 농민조합조직, 초대민선군수

 

 

 

 

입산마을 소개

 

의령군 부림면에 있는 입산마을은 앞쪽에 유곡천이 흐르고 뒤로는 장백산으로 둘러싸인 배산임수형 전통마을입니다.

우리마을에 오시면  호국역사와 전통문화 그리고 농촌다움을 함께 보전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만날 수 있답니다.

탐진 안씨가 1,600년 초에 한 고승의 예언을 쫓아 길지로 알려진 입산으로 이주하여 10대로 종가(宗家) 천석지기 부자 집안으로 대를 이어온 탐진 안씨의 집성촌입니다.

우리 마을에는 문화예술과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한 정신문화의 고장으로 항일 애국지사이신 백산 안희제 생가, 항일독립 정신의 배양소였던 사립 창남학교, 지역의 인재들을 배출한 고산재가 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가 5곳이나 지정되었을 정도로 역사적 문화재가 잘 보전 되어 있는 유서깊은 마을입니다.

그리고 폐교를 리모델링한 입산문화역사관에 가보시면, 입산마을에 대한 전시관도 있고,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사용하실수  있는 현대식 시설로 된 체험관, 숙박시설과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우리 입산마을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호국 의벼우둘레길

백산 안희제를 말하다 

 

이곳 의령 입산마을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불같이 살다간 백산 안희제(1885~1943)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백산은 1905년 일제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로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자, "나라가 망해 가는데 선비가 시대에 맞지 않은 옛 책만 읽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나라를 위한 길로 들어섰다.

산학문을 통해 실력을 양성한 백산은 국권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부산 구포에 구명학교와 의령군 의령읍에 의신학교, 고향이 이곳 입산리(설뫼)에 창남학교를 열어 애국 청소년들을 양성하였다.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의 60% 이상을 조달하였으며, 기미육영회를 조직하여 장학사업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그리고 중외일보를 발행하여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과 만주 동경성에 발해농장을 설립하여 독립투쟁의 해외 근거지를 개척하였다. 1943년 일제에 의한 탄압과 고문으로 순국하는 그날 까지 백산의 삶 자체는 오롯이 독립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해방이 되고 고국으로 귀국한 백범 김구선생이 가장 보고 싶어했던 사람, 민족사상의 고취자, 민족 교육의 선각자, 민족자본의 육성자, 민족언론의 선구자이면서 독립투사였던 백산 안희제, 우리를 그를 카이제르 콧수염을 기른 멋진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기억한다.

<현지 안내문에서>

 

 

 

 

 

마을 구경 겸 안길을 따른다.

 

 

 

 

 

그리 높지않은 토담에 콩을 말리고 있다.

 

 

 

 

 

수파정에 왔다.

 

 

 

 

 

의령 수파정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의령 수파정은 수파 안효제를 기리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안효제는 경남 의령 부림면 입산에서 태어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고종 20년(1883)에 관직에 올랐다. 무녀의 궁중 출입에 대한 폐해와 부패 등에 대한 글을 임금에게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추자도로 유배되었다. 고종32년(1895)에 내린 단발령에 반대하였고,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일본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으나 굴하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수파정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일반적인 재실과 달리 마루와 방을 교차하여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으며,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근대 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수파정

 

 

 

 

 

대문이 닫혀있어 담 너머로 외형만 본다.

 

 

 

 

 

수파장 앞쪽의  어느 분 주택

체목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이 집은 건물은 볼품없지만 정원을 나름 꾸몄다.

 

 

 

입산마을 탐방은 마을 앞 길을 따르면 된다.

송은정(독립유공자 안창제) 표지석이 있다.

 

 

 

 

 

위 표지석 앞쪽의 건물이다.

문패엔 안찬달(安贊達)  이기연(李基緣)로 적혀있다.

 

 

 

 

 

이 건물이 송은재인지 모르겠다.

 

 

 

 

 

한뫼 안호상 박사 생가(초대 문교부 장관)

 

 

 

 

 

이 집의 특이점은 아랫채의 반(곳간)은 담장안에, 반(사랑방)은 담장밖에 있다.

 

 

 

 

 

 

 

 

 

 

 

 

 

 

 

 

 

 

의령 안호상 고택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안호상 고택은 1911년에 지어진 주택이다.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6.25전쟁 때 사랑채와 대문채가 화재로 사라졌고 현재은 안채만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 있는 아래채와 협문(작은 문)은 화재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안채는 앞면 5칸, 얖먄 1.5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왼쪽에서부터 방, 큰 마루,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각 방마다 좁은 마루를 두었다. 왼쪽의 좁은 마루는 난간을 두른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로 그 아래 항실아궁이(부뚜막이 없이 불길이 바로 방을 데울 수 있도록 만든 아궁이)가 있다.

안호상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마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냈다.

<현지 안내문에서>

 

 

 

 

 

안채 뒷편에 노거수 돌배나무가 있다.

 

 

 

 

 

대종가 탐진안씨 헌납공파 표지석이 있다.

 

 

 

 

 

의령 탐진안씨 종택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탐진안씨 종택은 안영제가 1906년에 지은 탐진안씨 헌납공파의 종가이다. 

건물의 배치는 안채를 중심으로 앞쪽에 사랑채, 왼쪽과 오른쪽에는 곳간채와 중사랑채를 두어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안채의 뒤쪽에 사당을 두었으며, 사랑채 앞에는 대문채가 있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뜰)이 있고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에도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안채는 앞면 7.5칸, 옆면 3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왼쪽에서부터 작은방, 큰 마루, 안방, 부엌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작은방은 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두고 그 아래 항실아궁이를 만들었다.

입산마을에 대대로 살고 있는 의령 탐진안씨 종택은 전통적인 상류 주택의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공간 구성을 통해 사용자의 편의를 배려한 점에서 1900년대 초반의 남부 지역 한옥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이상 현지 안내문에서>

 

 

 

 

 

안채를 앞에서 바라보았을때 좌측에 곳간채가 있다.

 

 

 

 

 

 

 

 

 

 

 

 

안채 좌측 뒷편으로 오르면 사당이 있다.

 

 

 

 

 

안채 뒷편

과거 대숲이었는데 대나무를 제거하고 정원을 만들었다.

 

 

 

 

 

중사랑채

현 종손이 거거하는 듯,

 

 

 

 

 

 

 

 

 

 

 

 

이 집을 지키는 종손 부부님 오늘 바쁘다.

문칸채 화장실을 고치는 중이다.

이 집을 방문하시는 분들에 맨입으로 보내지 않는다고 하며 커피라도 내어놓을려고 하는 것을 극구 사양하고 나왔다.

고마운 분들이다.

 

 

 

 

탐진안씨 종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안범준 고택이 있다.

대문이 닫혀있어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의령 안범준 고택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이 고택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대문채 등 4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사랑채, 오른쪽에 곳간채를 ㄷ자 모양으로 배치하엿으며, 사랑채의 맞은편에 대문채를 두었다. 이 중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지어진 시가가 분명한 것은 사랑채로 1916년에 지었다.

 

 

 

 

 

 안채는 앞면 4.5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왼쪽에서부터 작은방, 큰 마루, 안방,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부엌 위쪽에는 다락을 두었다.

사랑채는 앞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왼쪽에는 사랑마루가 있고 오른쪽에는 사랑방과 작은방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의령 안범준 고택은 건물 배치에 있어서 남녀의 생활공간을 명확하게 나누지 않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근대 남부지방 부농 주택의 특장을 잘 보여 준다,

<현지 안내문에서>

 

 

 

 

 

안준상 고택으로 왔다. 

 

 

 

 

 

대문과 안채만 덩그러니 있다.

 

 

 

 

 

안준상 고택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이 고택은 1903년에 지어진 근대 한옥이다. 부속 건물과 대문채는 사라지고 지금은 안채 1동만 남아 있다.

안채는 앞연 5.5칸 규모로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왼쪽에서 부터 작은방, 큰 마루, 안방,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앞면과 큰 마루 뒷면에는 둥근기둥을 사용했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한준상 고택은 현재 입산 마을에 남아 있는 옛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방을 덧붙여 구성한 평면과 앞면에만 둥근기둥을 세워 정면을 강조한 점, 창호의 형식과 함실아궁이 등이 근대 초기 경남 지방에 있었던 부농 주택의 건축 형식을 잘 보여 준다. 대체로 이 마을의 부농 주택은 안준상 고택의 평면 형태와 구조, 위장 수법을 참고하여 지었다.

안준상은 백산 안희제의 집안 조카로 1919년 3월 1일 의령에서 기미독립서언서를 옮겨 써 나누주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초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지 안내문에서>

 

 

 

 

 

뒤주가 반쯤 뭍혀있다.

 

 

 

 

 

안준상 고택의 앞 마당은 현재 이런 모습이다.

 

 

 

 

 

백산 안희제 생가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고 공중화장실도 깨끗하게 신축되어 있다.

 

 

 

 

 

안희제 생가를 둘러본다.

 

 

 

 

 

언희제 생가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안희제 생가는 1885년 안희제가 태어난 곳이다. 안희제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등 3동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규모의 초가 건물로 안채와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안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두 건물은 모두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남쪽으로 1칸 크기의 마루를 두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또 별도의 건물을 두지 않고 한 건물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여러 방을 둔 조선 시대 후기 민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대문채 앞쪽 우물인가?

 

 

 

 

 

사랑채는 초가로 정갈하게 지어져 있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이며 팔작지붕 기와 건물이다.

 

 

 

 

평면 건물의 배치는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큰 마루, 방, 부엌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장독대

 

 

 

 

 

안채 뒷면이다.

툇마루가 있다.

 

 

 

 

 

안채 측면,

 

안희제는 1914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백산상회는 단순한 개인 기업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 거점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의 60% 이상을 지원하였다. 또 민족 교육과 민족 언론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독립투사로 헌신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이상 현지 안내문에서>

 

 

 

 

백산 안희제 선생의 고택은 이 마을에서 가장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상로재에 왔다.

솟을대문엔 이필문(二必門) 현판을 달고 있다.

 

 

 

 

 

 

 

 

 

 

앞쪽 연못이 있으나 경칫돌로 마감하여 운치가 없고 물 또한 탁하다.

 

 

 

 

 

상로재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의령 상로재는 탐진 안씨의 조상을 기리기 위한 제사용 건물이다.

상로재 중수기에 따르면 이슬과 서리가 내릴 때 조상의 산소를 돌보고 조상에 대한 추모의 정을 가지며 군자의 도리로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뜻에서 상로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가운데 2칸의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양쪽에 작은 지붕을 달아내고 아래에 방을 두었다.

조성 경종 2년(1722)에 처음 지어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다가 1922년에 크게 고쳐 지엇다. 1908년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백산 안희제가 이곳에 창남학교를 세워 인재를 키워낸 역사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현지 안내문에서>

 

 

 

 

 

뒷편 사당

 

 

 

 

 

상로제에서 설뫼충효테마파크 쪽으로 간다.

노거수 몇 그루 아래 정자가 있다.

 

 

 

 

 

고산재  가는 길

거리는 0.4km,  둘러보지 않았다.

 

고산재는 1778년 설산재 안여석(1717~1787)이 입산마을 뒷산 중턱에 고산재를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제실 겸 서당으로 겸용되었으나 1804년 증수하면서 고산서당이라 이름 하였다, 동쪽을 습사(習舍) 서쪽을 강정(講亭)이라 하고 편액은 관찰사 이병모가 썼으며 1820년에 다시 쪽방 두개를 지어 서책을 갈무리 하는 곳으로 삼았다.

그 후 1866년 조정에서 척화의 분휘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각 고을에서 강회를 개최토록 하였는데 이 때 안휴로가 인근 6~7개 마을 자제들을 모아 매월 깅회를 열고 이 내용을 <高山講錄/고산강록>이라는 책으로 편찬하였다. 당시 관찰사가 이 중 일부를 조정에 보고하기 위해 가져갔고, 한권은 성재 허전이 서문을 쓰기 위해 가져 가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7년 입산미을이 문화역사마을로 지정되면서 중수 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설뫼충효테마파크

 

설뫼충효테마파크에 왔다,

입장료 등은 없다.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둘러본다.

 

 

 

 

 

항일 고난체험 1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옥고를 치뤘던 감옥체험

 

 

 

 

 

 

 

 

 

 

 

 

항일 고난체험 2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했던 고문기구 체험시설이 있다.

상자고문, 주리틀기, 태형, 감옥 포토월 등이 있다.

 

 

 

 

 

시묘살이 체험

옛 선조들이 효 사상을 대표하는 시묘살이 체험공간도 재현했다,

 

 

 

 

 

백산 안희제 기념관으로 왔다.

문이 닽혀있어 내부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앞쪽에는 연못을 조성하였고 사철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안희제 기념관 주변에 야영 텐트가 많이 쳐져 있다.

 

이 인근은 과거 초등하교 자리였다고 하는 것 같다.

백산 안희제 기념관 뒷쪽에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입산문화역사관이 있으며, 입산마을대 대한 전시관, 현대식 시설로 된 체험관, 숙박시설과 다양한 체험.학습프로그갬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당일 백산 안효제 기념관 문이 닫혀있기도 하고, 뒷쪽에 입산문화역사관이 있는즐 몰라 둘러보지 못했다.)

 

 

 

 

풀장도 있다.

 

 

 

 

 

 

 

 

 

 

 

이곳 테마파크의 면적은 제법 상당하다.

입산마을 문화역사관,  백산 기념관을 비롯하여 연못과 몇 체험시설, 메타세쿼이어 숲, 둘레길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미리  텐트를 미리 쳐 놓아 임대도 가능 할 것 같다.

마을을 둘러보는데 1시간 20분여 소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