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야기

우리 조상 알기

정헌의 티스토리 2009. 9. 22. 21:27

 ■  연일김씨 시조

                 

 1998년 발간한 연일김씨 대동보와 일부 인터넷 상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이 블로그상의 자료는 산청읍 병정리 가촌마을에 주 거주지를 둔 홍효자손에게 조금의 도움이 될까 하고 작성하였습니다
일부 한자를 몰라 ?표 처리한 곳도 있으니 개략적인  참고자료로 활용 하시기 바랍니다.

 

 ▷ 본관 : 연일김씨 (延日金氏)   

족보를 기준으로 파는16세 <언준>조부의 자인 17세손 <효응>할아버지는 만회공파, <효강>할아버지 는 춘암공파로 나누어 집니다. 16세손  <언걸>조부는 은한공파(隱漢公)  <언필> 조부는 정암공파(靜菴公)  대체로 晩晦公파는 차황 접남을, 春菴公파는 산청 병정으로 생각하시먼 무난할 것 같습니다. 춘암공파는 17세 <효강>할아버지에서 시작되어  21세손 <수옥> 춘암공 1파, <수생> 춘암공 2파로 나누어 지나, 21세손 <수옥> 조부의 자손이 보이지 않고 <수생>조부로 자손이 이어지기 때문에 춘암공파로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 시조 : 김서흥[金敍興]  - 족보에 의함
  

    - 김알지 ( 1세)

    - 경순왕 (28세)    

           - 4째 아들  은열 (殷說) (29세) 

           - 3째 아들   염 (濂 )      (30세)    

           - 1째 아들   ?언 (? 言)  (31세)

           - 2째 아들  순보 (順輔)  (32세)  

           - 1째 아들  세익 (世翊)  (33세) 

           - 1째 아들  봉기 (鳳麒)  (34세)

                                  : 1 숙흥(淑興), 2 서흥(敍興), 3 여흥(余興), 4 시흥(時興)  

                                  : 아래 자료에 경순왕 9세손이라 표시하고 있는데 족보상으로는 8세? ,  

                            김알지 35세손 2째 아들  서흥(敍興)  : 연일 김씨 시조   (35세) 

 

 ※ 세 (世) 와  대 (代)

     시조를 1세로 하여 차례대로 아래로 따져서 정하는 것이 世이고 자기를 뺀 나머지를 위로 따지는 것이 代이다 . 예컨대 부자의  사이가 世로는 2世 이지만 代로는 1代이다. 始祖로 부터 14世孫이 되는 사람은 시조가 13代祖이며 시조에게는 13代孫이 되는 것입니다.

 

 

시조의 유래 
    연일(延日)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동해안(東海岸)에 위치한 영일군(迎日郡)의 옛 지명으로 신라 때에는 근
오지현(斤烏支縣) 또는 임정현(臨汀縣)으로 불리우다가 고려초에 연일(延日)로 개칭되었다.

    연일 김씨(延日 金氏)의 시조(始祖) 김서흥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9세손 김봉기(金鳳麒)의 아들 4형제중
 둘째이다. 
족보에 의하면 그는 고려 인종(仁宗: 제 17대 왕, 재위기간 : 1122 ∼1146) 조에서 문림랑예빈승동정(文林郞禮賓丞同正) 에 이르러  당시에 서경(평양)의 유수(留守)들이 중앙권력에 반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난을 평정하여 관광순화위국공신(觀光順化衛國功臣)으로 勳錄이 되고 烏川君(延日)에 封祿되었음으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연일(延日)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한다.

※  문림랑(文林郞 : 종 9 품 문관의 품계)으로 예빈시승(禮賓寺丞 : 빈객의 연향을 맡아보던 관청의 종 6품 벼슬)         

    < 이상 족보 기준>


  또 다른 문헌에서는 시조 김서흥(金敍興)은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인 김굉의 7세손으로 고려 인종 때 예빈

  동정을 지내고 오천군에 봉해 졌으며, 그의 4세손 김예직이 고려 원종때 공을 세워 오천군에 봉해졌으므로

  '나주김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오천(연일)으로 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 대표적인 인물

     서흥의 증손(曾孫) 4세  예직(禮直)이 원종(元宗 : 고려 제 24대 왕, 재위 기간 : 1260 ~ 1275) 때 문과(文

科)에 급제한 후 나라에 공을 세워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으로 흥록부에 이르고,  좌우위상장군(左右衛上將軍 : 각 군영의 정 3품 으뜸 벼슬)을 역임하고 다시 오천군(烏川君)에 봉하여 지며 文叡?公의 빈?號를  받았음

 

     한편 통정대부(通政大夫) 규(珪 : 예직의 손자)의 아들 만일(萬鎰)은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와 력(經歷)을 지냈으며, 그의 손자 원감(元鑑)은 상주목(尙州牧) 판관(判官)을 역임하여 판한성부사(判漢城  府使) 우, 공조 참판(工曹參判) 흥범(興範)과 함께 이름을 날렸고, 1369년(공민왕 18) 문과(文科)에 급제한 주 (柱)는 경주부윤(慶州府尹) 겸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그 외 조선조에서 현감(縣監)을 지낸 극인(克仁 : 경주부윤 주의 아들)과 광려(光侶 : 공조 참의에 추증됨) 효강(孝江:병마절도사를 역임) 형제와 함께 대를 이어 가문을 중흥 시켰다합니다.

 

 

▷ 집성촌

      연일 김씨 집성촌은 경남 산청군 차황면 실매리 접남마을과 산청읍 병정리 가촌마을이 있다.

원래 연일 김씨들은 포항시 연일읍에 살다가 조선 때 김규(?)가 산청군 차황면 실매리로 옮겨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합니다. 
    

      1985년 통계청자료에 의하면 연일 김씨(延日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34가구, 753명,   2000년 223가구 70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 기타

      고려 인종 때부터 시작 되었지만 정확한 기록은 1600년대 임진왜란 이후 경남 산음현(산청군)의 '산음호적부'에 기록됨. 

      항렬 : 연일 김씨는 크게 2개의 계파로 나뉘는데 점남계파 (만회공파)와 병정계파(춘암공파)로 나뉜다. 

      점남계파는 응, 원, 동, 희, 재, 수, 영, 식, 열, 규 등이 있고

      병정계파는 락, 병, 환, 규,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