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안 기행 / 무진정, 서산서원, 체미정, 어려생가
함안에는 여항산, 방어산, 백이산 등이 대표적인 산이다,
여항산은 서북산, 봉화산과 같은 줄기로 이어져 있어 연계산행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여항산 둘레길 탐방길에 함안 무진정과 국북면의 서산서원, 어려 생가, 채미정을 둘러본다.
▷ 가는 길
함안 / 무진정 - (여항산 둘레길) - 함안 군북면
▷ 여행코스 (2012. 9. 15 )
무진정(함안읍에서 여항산 가는 길목에 위치) - (여항산 둘레길) - 군북면 서산서원 - 채미정 - 어려 생가
▷ 여행후에
▣ 무진정
무진정은 함안읍에서 여항면으로 향하다보면 도로변에 있다.
최근 4차선 도로가 이 인근에서 부터 내서 또는 진동방향으로 개통되어 있어
조금만 주의하면 위치를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무진정은 조삼(趙參)선생께서 후진 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하여
함안면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으신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하였다.
무진 조삼선생은 1473년(성종 4년)에 태어나시어 성종 20년(1489)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 창원, 대구, 성주, 상주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고,
내직으로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함안군청 문화관광과 자료 참조)
들머리에 부자 쌍절각이 있다.
정유재란때 적들이 조상의 묘를 파헤치자 무진정에서 북향사배하고 자결한 어려 조려선생의 6세손 조준남과
그의 아들 계선공이 1627년 정묘호란으로 전사하자 이 두 부자의 효와 충을 기려 세운 전각이다.
무진정 앞쪽엔 이수정이란 연못이 있다.
인근 검암천의 물을 끌어들여 물이 항상 흘러넘치도록 만들어 졌으며
개구리밥과 노랑어리연으로 덮여있다.
이수정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어 세운 정자를 영송루라 이름붙였다.
양쪽으로 다리를 놓아 무진정으로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영송루에서 무진정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무진정으로 오르면서 되돌아 본 영송루.
아래서 올려다 본 무진정.
동정문을 지나.
무진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76년 12월 20일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함안군청 문화관광과)
무진정 앞쪽에서 보았을때 좌측으로 재실이 있다.
함안읍에서 여항면으로 향하는 도중 도로변에 접하여 있는 곳으로
지나치시는 걸음이 있다면 둘러볼만 하다.
▣ 서산서원 / 서산서원, 채미정, 어려생가는 모두 원북마을에 있다.
다음지도를 확대하면 원북마을에 서산서원, 채미정, 어려생가가 있다,
함안 군북면 원북리에 위치한 서산서원을 둘러본다.
이곳 역시 도로와 접하고 있다.
인근에 채미정, 가까운 곳 원북마을 안쪽에 어려선생 생가가 있어 같이 둘러보기로 한다.
서원 앞쪽엔 작은 연못이 있고,
옆으로 주차장이 잘 정비되어 있다.
서산서원은 숙종 계미년(1703)에 경상도 유학 곽억령(郭億齡)등이 생육신이신 이맹전(李孟專), 조려(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등의 병향(幷享)이 사육신의 예에 따라 이루어짐이 마땅함을
국왕께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여섯분의 제향을 위하여 창립한 서원이다.
숙종 계사년(1713)에 국가에서는 제물을 내리고 서산서원의 현판을 내렸으나, 고종 신미년(1871)
서원 쳘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다.
그 후 조려선생의 후손들이 1984년에 사우(祠宇), 강당(講堂), 재료(齋寮), 문(門), 원장(垣墻) 등을
빠짐없이 갖추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원 앞 좌,우로
비슷한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아마 동재, 서재인것 같다,
서원 뒷편으로는 사당이 있다.
생육신과 관련된 비인가 보다.
▣ 채미정
원북마을 입구,
도로변에 채미정이 있다.
역시 정자 앞쪽엔 작은 연못이 있다.
채미정
조선 단종때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라고 전하며, 채미정 현판 오른편에 백세, 외편에 청풍이란 현판이 있다.
옆의 작은 동산 위엔 또다른 정자가 있다.
문풍루 (聞風樓)
청풍루............
문풍루 주변엔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문풍루에서 채미정 옆으로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건너편으론 이름 모를 사당이 운치있게 자리하고 있다.
▣ 어려생가
원북마을 도로변에서 마을안쪽으로 몇백미터쯤 들어가면 어계생가가 있다.
보호수인 은행나무와 재실 형태의 건물로 금방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어계조려(漁溪趙旅)(1420~1489) 선생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룬 뒤, 이 곳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대문채, 재실,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채는 3칸으로 가운데 문을 높여 세운 솟을대문을 두었고
양쪽은 방으로 만들었다.
재실은 一자형 평면으로 부엌없이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뒷편의 삼문을 통하면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데 비교적 크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당에는 조려선생과 부인에게 올리는 향례가 행하지고있는데 그곳에는 국왕의 하사품인 동제 향로와
그가 사용하던 죽장이 보관되어 있다한다.
평소 대문은 닫혀있으나 우측의 살림집(가정집)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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