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도 보길도
거리가 멀어 접어 두었던 곳. 8월말 군입대를 앞둔 아들과 함께 보길도 여행을 한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 선생(1587 - 1671)으로 인해 더 의미가 깊다.
그의 나이 51세때(1637, 인조 15년) 왕이 청나라에 항복하자(병자호란) 이를 욕되게 생각하고 평생 은거할 곳을 찾아 제주도로 가던중 이 섬을 발견하고 터 잡았다 한다.
8월 휴가철, 화흥포항의 그 많은 인파와 차량이 보길도로 들어서면 다 어디로 갔는지 많이 보이지 않는다.
노화도와 보길도간은 다리로 연결되어 여행이 한층 편해진것 같다.
▷ 가는 길
완도 화흥포항 - 노화도 동천항 - 노화읍 - 보길도 대교 - 보길도
(화흥포 뱃시간 완도군청 문화관광 교통정보 참조, 소요시간 40분, 편도 승객 운임 6,000원 승용차 17,000 원 )
참고,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길도행 배편 있음.
섬내 대중교통도 있지만 교통편의를 위해 승용차를 가지고 갈려면 노화도와 보길도간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노화도로 가는 배편을 이용하면 배삯이 절약할수 있다.
▷ 여행 코스
◐ 첫째날 (2008. 8. 15)
강진 영랑생가 - 완도 화흥포항 - 노화도 동천항 - 보길도 대교 - 공룡해변 - 전망대 - 중리 해수욕장
◐ 둘째날 (2008. 8. 16)
송시열 글씐바위 - 예송리 해수욕장 - 부용동 - 격자봉 산행 - 세연정 - 완도 정도리 구계등
◐ 셋째날 (2008. 8. 17)
완도읍 - 신지도 드라이브 - 청해진수석공원 - 해신 촬영지 - 다산초당 - 백련사 - 장흥토요시장
▷ 여행 안내도
▷ 여행 후에
▣ 영랑생가
강진에서 점심을 먹고 영랑 생가를 둘러본다.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이곳 강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다. 영랑은 그의 아호이다.
영랑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모란이 피기 까지는" 등 80여 편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 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라 한다.
영랑 생가를 둘러보고,
완도 화흥포 항으로 향한다.
▣ 완도 보길도
완도 화흥포 항이다.
승용차로 완도대교를 건너 우회전하여 해안을 따라 가다가.
대략 완도항 가기전 약 8키로정도 ? 에서 화흥포항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조금만 더가면 있다.
8월 15일 휴가철 성수기는 벗어나고 있지만 챠량들 줄지어 있는 거리가 만만찮다.
화흥포항 주변,
보길도로 향한다.
화흥포 항이 점점 멀어진다.
노화도로 향하다 보면 우측 횡간도?
사자바위가 눈길을 끈다.
뒤로 노화도 동천항이 보인다.
소안도와 둘러쌓여 있는 노화도 동천항 주변은
물결하나 없이 잔잔하다.
소안도 쪽,
완도 화흥포항에서 약 40분,
노화도 동천항에 도착한다.
동천항에서 승용차로 10여분,
노화읍을 지나 보길도로 향한다.
노화읍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보길도와 연결되어 있으며 행정구역 단위로 읍이다.
여러 시설과 음식점 슈퍼등등이 있다.
희미하나마 다리 뒷편으로 노화읍이 보인다.
보길대교를 건너 우측 해안을 따라 땅끝전망대와 보옥리 공룡알 해변으로 향한다.
도중 아주 편안해 보이는 해안 풍경이다.
땅끝 전망대는 보옥리 조금 못미쳐 도로변에 있지만 먼저 공룡알 해변을 둘러본다.
보옥리 공룡알 해안이다.
청명석이라고도 불리는 크고작은 갯돌이 공룡알을 닮았다.
뒤로 뾰족산.
저곳으로 등산로도 있다.
해안가 동백숲이 울창하다.
보옥리에서 보는 풍광은 남녘의 섬임을 실감나게 한다.
뒤로 격자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아주 포근해 보이며 격자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있다.
땅끝 전망대,
보옥리 못미쳐 도로 가에 있다.
오늘 숙박예정지인 중리 해수욕장으로 이동하면서 잠시 둘러본다.
오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 하고,
숙소 마련을 위해 중리 해수욕장으로 이동한다.
숙박은 야영이다.
새로이 구입한 텐트를 처음으로 사용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