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함월산과 왕의 길 (함월산 584m)
추령터널 입구 모치골에서 수랫재를 넘어 기림사로 이어지는 옛 오솔길에 이야기를 붙였다,
용성국의 왕자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하던 길,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장례행차길,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문무왕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위해 행차했던 그 길을 걷는다,
이름하여 왕의 길이다. 함원산은 변두리가 되었다,
▷ 가는 길
추령재 입구 추원마을 정류장에서 출발했다,
▷ 탐방코스
모치골 - 수렛재 - 함월산 - 불령(봉포)- 용추폭폭 - 기림사
( 점심시간 약 1시간 포함 천천히 5시간 10분, 207. 11. 25 )
▷ 탐방안내도
▲ 수렛재 - 550 - 함월산 - 481 - 불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비교적 선명한 편이다,
함월산에서 내려오다 481봉 직전의 안부에서 좌측 계곡을 거쳐 삼거리로 내려오는 길을 추가하였다,
이 길도 선명한 편이다,
▲ 수랫재 - 494봉 - 550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중 494봉에서 90도쯤으로 꺾여 진행되지 않고 능선은 그의 직진 방향이다,
안내도가 조금 과장된것 같다,
▷ 탐방후에
△ 경주쪽에서 추령터널을 통과하기 직전이다,
이정표에 왕의길 표지가 큼지막 하다,
△ 들머리를 찾지못해 20분여 귀한 시간을 보냈다,
직진 도로는 추령터널, 우측 도로는 추령재로 오르는 길이다,
왕의 길 이정표를 따라 추령재로 올라섰다.
추령재로 오르는 중간에 모치골로 진입하는 좌측 작은 길을 보지 못하고 추령재까지 올라섯다,
대형 관광버스로의 이동으로 회차할 곳이 마땅 찮아 추령고개를 넘어갔다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오는데
아까운 시간만 20분여 지났다,
△ 이집 여주인장이 멋지다,
안내도를 보면
이곳 주변 추원마을, 추원마을 입구(주차장) 등등이 표시되어 있다,
근데 이곳은 휑한 도로변의 공터로 마을은 없고 포장마차 하나만 있다,
아주머니께 왕의길 들머리를 물으니 이곳에서 추원마을, 또는 산머루 펜션쪽으로 가라한다,
손수 밖으로 나와 친절히 방향을 알려준다,
하산길이라면 소주라도 팔아 줄텐데.............
△ 되돌아 본,
추원마을 버스정류장,
△ 추원마을로 간다,
왕의길 들머리 교통표지판을 더럽게도 해놓았다고 구시렁거리면서..................
△ 모치골로의 대형 버스진입은 곤란하다,
겨우 지날수 있을런지 몰라도 노폭이 좁다,
좌측으로 두어집? 직진한다,
우측엔 터널 입구가 보인다,
△ 첫번째로 만나는 마을?
이곳에 추령 못미쳐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이 있다,
△ 추령재로 오르다 중간에서 좌측으로 빠지는 샛길이 이곳으로 연결된다,
이 길을 따라 왔다면 들머리 왕의 길 이정표가 맞다,
추령으로 오르는 중간 이곳으로 오는 들머리를 지나치는 바람에 좀 헤맸다,
그곳 갈림길에도 눈에 띄게 왕의 길 표시를 해 놓지.........
못봤는지 모르면서도 궁시렁 궁시렁,
△ 이후 부터는 이정표가 양호하다,
△ 마을?을 지나,
△ 들머리 추원버스정유장 들머리에서 12-3분,
추원사 갈림길 앞을 지난다,
△ 일행에서 이탈하여 추원사를 둘러보러 간다,
거리는 1-200m쯤,
△ 추원사,
외형은 정갈하나 고유의 절집 모양에서는 조급 벗어났다,
△ 미타전,
△ 요사?
△ 추원사에서 왕의 길로 건너가는 길이 있나 기웃거려 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다시 추원사 들머리로 나왔다,
대충 빨리 추원사를 둘러보고 되돌아 오는데 6분쯤 소요되었다,
△ 추원사는
외형상으로 볼때 특별함이 있는 절은 아닌것 같다,
구태여 들럴 필요없이 왕의 길을 따르면서 건너다 볼때 더 아담하다,
△ 도로변의 펜션,
△ 중간,
왕의 길 주차장이 있다,
들머리 추원마을 버스 주차장에서 중간 추원사 둘러보고 나오는 시간 6분여를 제외하면 17-8분 소요되었다,
상, 하로 주차장만 조성되어 있을 뿐, 화장실 등 편의시설은 하나도 없다,
오늘은 토요일 현재시간은 12시를 넘고있고 주차된 차량은 한대도 보이지 않는다,
△ 황룡약수터 백숙집 앞
노거수 몇 그루와 공터가 있다,
△ 이곳에 황룡약수터가 있다,
시설이 허잡하여 그냥 지나칠려다가 물맛을 본다,
어라!
쏴? 한 맛에 물맛이 다르다,
초정약수? 오색약수? 만큼 진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맛이다,
△ 게속하여 골짜기를 따라 오른다,
군데 군데 잘 지어진 펜션이 없다면 시골도 이런 시골이 없지 싶다,
△ 저만큼 조그만 마을이 있다,
△ 인자암,
△ 보이는 인자암 앞 좌측으로 돌아서면,
신문왕 호국행차길을 알리는 큼지막한 표시판이 있고,
앞쪽에 화장실도 있다,
△ 들머리 이정표,
용연폭포 3.9km,
수랫재 1.4km를 알린다,
참고로 추원마을 입구출발지에서 이곳까지는 약 2.7km 거리이다,
△ 이제부턴 산책로다,
△ 겨울이지만
가을의 잔재가 남아있는 듯,
날씨조차 걷기에 딱 좋다,
△ 보불로 삼거리 - 덕동호 (또는 토함산) - 추령터널 - 모차골 - 수렛재 - 불령봉표 - 용연폭포 -
기림사 - 감은사지 - 이견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되어 신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의 장례길이었으며,
신문왕이 부왕을 추모하게 위해 대왕암으로 행차했던 길이기도 하다,
△ 또한 돌아가신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내리는 보물을 받기위해 행차하였고,
용이 전해준 만파식적과 옥대를 받아 환궁했던 길로
곳곳에 충과 효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 신문왕은 삼국통일 직후 문무왕의 뒤를 이어 681년 신라 제3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국가제도를 정비하여 새로운 통치 기반을 마련하고,
내부의 난을 종결하여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신문왕 이후 통일 신라는 국가의 전성기와 문화적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 신문왕 이후 만들어진 우수한 문화재를 보면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경덕왕이 발원하여 771년 혜공왕때 완성한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 29호)이 있고,
불국의 세계를 옮겨놓은 것으로 재상 김대성이 짓기 시작해 774년 혜공왕때 완성한 불국사(사적 제 502호),
신라 불교예술의 최고 걸작이며 과학과 문화 역향의 총합체로 재상 김대성이 짓기 시작해 774년 혜공왕때 완성한
석굴암(국보 제24호)가 있다,
△ 만파식적(萬波息笛)
돌아가신 문무황과 김유신 장군이 두 가지의 보물, 대나무와 옥대를 내리시니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자 바람이 멈추고, 거센 물결이 평온해 졌도다.
(삼국유사 권2 기이 만파식적조)
피리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률처럼 삼국 통일후 전쟁에 지친 백성을 위로하고 화합과 평화의 새 시대를
열고자 했던 신라인의 염원과 의지가 담겨있다,
△ 보물을 얻은 이견대 (利見臺)
대왕암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이견대는 681년 신문황이 세웠으며,
부왕을 추모하기 위해 자주 찾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82년 신문왕은 이곳에서 산처럼 생긴 바위섬이 바다에 떠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한다,
섬에는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고 하며 며칠후 왕은 나라에
이익이 되는 보물을 얻게 된다,
△ 모차골에서 0.4km지점이다,
수랫재 1.0km, 용연폭포 3.5km,
△ 모차골 0.9km,
수렛재 0.5km, 용연폭포 3.0km,
△ 길가의 노거수 아래에서,
△ 잠시 쉬었다 간다,
△ 살짝 고도른 높이는 곳에,
△ 수랫재가 있다,
△ 수랫재
모차골 1.4km,
용연폭포 2.5km,
여기서 모차골은 맨 마지막 마을 인자암 들머리를 말한다,
추령앞 추원마을 입구에서는 2.7km+ 1.4km = 4.1km쯤 된다,
△ 현위치 수랫재.
이곳에서 함월산에 오른후 불령으로 내려와 기림사로 갈 것이다,
△ 이곳에서 함원산 정상으로 간다,
△ 초반,
얻듯 갈림길(좌측 길은 희미함)이 보이지만 우측 능선을 고집하며 오른다,
△ 함월산 정상까지는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개를 넘어야 한다,
산 자체의 규모가 낮아 크게 힘든 곳은 아니다,
△ 첫번째 무명봉에 오른다,
△ 살짝 내려서 두번째 봉우리로 향한다,
△ 두번째 봉우리이다,
정상에 두엇 소나무 고사목이 있고,
△ 이 봉우리를 넘어서자 바로 전망 좋은 곳이 있다,
△ 전망바위로 살짝 내려서 주변 조망을 본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크게 높이가 있거나 특징있는 산이 아니어서 어디가 어디쯤인지.............
△ 3번째쯤 무명봉이다,
옆으로 살짝 돌아가는 길이 더 선명하다,
△ 위 봉우리,
△ 능선을 이어간다,
△ 함월산 정상쯤으로 추측되는 밋밋한 봉우리가 조망되는 곳이다,
11시 55분을 넘긴 시간에 출발하였며,
지금 시간이 1시 45분경,
점심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자, 산행시작 2시간쯤 소요되었다,
△ 이곳에서 약 1시간,
때늦은 점심시간을 갖는다,
△ 중식후 산행을 이어간다,
저만큼쯤 정상이다,
△ 무명 묘지를 지나,
△ 조금 오르면 정상 직전에 갈림길이 있다,
좌측 길은 함월산 정상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무장산쪽 능선으로 이어가는 것 같다,
우측 능선길을 따르면 이내 정상이다,
△ 함월산 정상,
수랫재에서 중간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천천히 37-8분 소요되었다,
정상은 밋밋한 봉우리로 주변 나무로 인해 조망은 없다,
일부 산행기를 보면 건너편 어느 봉우리에 함월산 정상표지석이 있는 봉우리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등산지도에는 이곳이 함월산 정상으로 표시되어 있다,
△ 잠시 정상에 머물다 불령(불령봉포) 방향으로 내려간다,
△ 초반 대체로 완만한 능선을 따른다,
△ 사진으로 보기에는 밋밋해 보이지만.
앞쪽에 제법 오똑해 보이는 봉우리(481봉)가 있다,
불령은 저 봉우리를 넘어가야 하나? 아님 아래 보이는 고개(안부)에 있나?
△ 481봉 직전 안부에 갈림길이 있다,
좌측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직진 능선을 따라 481봉을 넘어가는 길보다 더 선명하다,
이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용연폭포 상부 안내도상 삼거리로 표시된 곳으로 이어진다,
완만하니 길의 상태는 양호한것 같다,
대부분 회원들이 이곳에서 계곡으로 내려섰다,
이곳 계곡길도 좋아 보이지만 최대한 왕의길을 걷기 위해 능선을 따라 불령으로 간다,
△ 481봉으로 오른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제법 경사가 있다,
△ 481봉에 오르면 북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 지나 내려온 함월산 능선,
△ 저쪽 어디쯤이 억새로 유명한 무장산일 것이다,
△ 481봉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어느 묘지에서 조망이 좋다,
△ 쬐끔 주의 !
조금 내려오다 보면 능선상의 야트막한 봉우리를 보이는 곳 주변에
살짝 우측 사면으로도 길이 있고, 봉우리를 넘는 쪽으로도 길이 있다,
작은 봉우리이고 크게 사면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서 이내 만나는 길이려니 했는데
봉우리를 넘어서면 길의 방향이 달라진다,
좌측 봉우리를 넘어가는 길이 더 선명하고 또한 불령(불령봉표)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심코 우측 길을 따르면 왕의 길을 만나기는 하겠지만 불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닌것 같다,
△ 불령으로 내려가는 능선,
매우라 할수는 없지만 소나무 숲길이 좋다,
△ 조망이 트이는 곳,
△ 지나 내려오는 능선과 맥을 갇이한다,
저 능선을 따르다 보면 기림사 주차장 아래 마을로도 갈수 있다,
△ 후미기준 아주 천천히 함월산 정상에서 약 1시간
불령으로 내려선다,
△ 불령 봉표(佛嶺封標)
延慶墓 香炭山因 啓下 佛嶺封標 (연경묘 향탄산인 계하 불령봉표)
연경의 묘에 쓸 향탄(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
조선 순조(제23대)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묘(묘호 연경)에 사용할 제수 경비를 마련하고자 했던 문자기록이다,
조선 후기 어지러운 정세속에 부정부패를 개혁하고자 했던 효명세자의 슬픈 운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용연폭포로 간다,
0.9km,
△ 낙엽 무성한 길을 걷는다,
△ 혼자 걸어도 좋고,
여럿 같이 걸으도 걷기좋은 길이다,
△ 경사 또한 완만하다.
△ 불령에서 약 10분,
주 계곡 가까운 곳에 갈림길이 있다,
△ 이곳 삼거리 이정표에 표시는 없지만 계곡 상부쪽으로 길이 넓고 선명하다,
용연폭포 0.2km,
실제로는 200m보다 훨씬 더 되는것 같다,
△ 걷기 좋은 길은 계속된다,
△ 주 계곡을 건너,
△ 계곡을 우측에 두고 내려간다,
△ 수량은 적지만 물이 맑다,
△ 용연폭포,
큰 규모는 아니지만,
대문처럼 앞쪽의 바위가 감싸고 있는 특이한 폭포이다,
△ 폭포를 둘러보고 기림사로 간다,
△ 기림사쪽 신문왕 호국행차길 표지판,
△ 기림사로 간다,
길은 임도수준이다,
△ 중간 농로? 사거리에선 직진한다,
직진은 기림사로 바로 가는 길,
좌측 강변쪽으로 내려가면 몇몇 주택을 지나 기림사 일주문쪽으로 간다.
△ 저만큼 기림사가 있다,
기림사는 천축국(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고 불렀다,
그후 신라선덕여왕 12년(643) 원효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한다,
△ 기림사 경내로 들어왔다,
사진상 명부전 좌측 옆,
저 길이 왕의 길로 오르는 들머리자 날머리다,
물론 기림사 경내를 거치지 않고 가는 길도 있지만 구태여 그 길을 갈 필요는 없다,
△ 삼천불전 (三千佛殿)
목조 건물치고 거대하다,
△ 유물전시관,
탱화, 서적 등이 주류를 이룬다,
△ 종각,
△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셔놓은 법당을 가리킨다,
이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전한다, 그후 여러차례 고쳐지었다한다,
△ 진남루,
대적광전 앞쪽 건물로 기능이나 용도는 명확하지 않다한다,
△ 기림사는 오래전 와 본 곳인데 기억에 남아있는게 없다,
가람 배치도 여느 절과는 좀 다른 것 같다,
△ 천왕문으로 나왔다,
△ 매월당 김시습 영당,
선생은 세종17년(1435) 서울에서 태어나 단종 3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불교에 귀의하여 전국을 유랑한다,
세조 10년(1465)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 기림사만 둘러 본다면,
사진상 우측의 천왕문쪽으로 들어가 대적광전, 약사전, 응진전, 진남루 등을 둘러보고
윗쪽으로 올라가 삼천불전, 삼성각, 명부전, 성보박물관, 매월당 영당을 둘러보고 좌측으로 나오면 되겠다,
△ 주차장으로 간다,
△ 일주문을 나선다,
△ 일주문앞 하천변,
굴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는 오리?
살았나? 모형이냐?
△ 상대적으로 작은 주차장을 지나,
△ 기림사 주차장,
저쪽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 어른 3,000원, 어른 단체 할인은 없다,
주차료 별도로 받는것 같다,
△ 기림사 주차장에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
점심시간 1시간 포함하여 천천히 5시간 10분여 소요되었다,
왕의 길 늦가을 아니라 사철 걸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