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도 보길도 1 /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 세연정과 옥소대, 보옥리 망끝전망대와 공룡알해변
보길도는 섬의 중앙 권역으로 세연정과 옥소대,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을 들 수 있고, 서쪽 보옥리 주변에 망끝전망대, 공룡알 해변, 보죽산을 들 수 있다.섬의 동쪽으로 예송리해변과 통리, 중리, 송시열 글씐바위가 있다. 여기에 적의 격자봉 등산로를 더하면 추가하면 보길도를 그의 둘러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다음에 다시찾는다면 예송리를 출발하여 격자봉에 오른후 보옥리로 내려서 해안길을 따라 예송리로 오면(또는 역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여러해전 보길도를 다녀온 적이 있다. 자연경관이야 예나 지금이나 바뀔게 없지만 도로와 주차시설, 주변 건물 등이 쬐끔씩 바뀌었다.
지난해 지인들과 함께한 보길도 여행이었는데 빼먹고 있다 지금올려 본다. 공룡알 해변에서 예송리로 이어지는 해안길과 등산로에 눈길이 자주가나 일정상 오르지 않았다.
노화도는 보길도와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특별한 경관을 보이는 곳은 없으나 건너편 소안도는 경관이 좋아보이나 가보지 못했다.
▷ 가는 길
▷ 탐방코스
동천석실 - 낙서재 - 곡수당 - 세연정, 옥소대 - 망끝 전망대 - 보옥리 공룡알해변 (2020. 11. 24.)
▷ 탐방 안내도
등산로는 아래지도에 보완하여 카카오지도를 참고하면 되겠다.
▷ 탐방후에
보길도로 가는 배편은 해남 땅끝마을과 완도 화흥포항에서 있으며 노화도 신양항과 동천항으로 연결된다. 배삯, 시간은 비슷하다.
노화도, 보길도는 나름 크기가 있으므로 차량을 가지고 가는게 여러모로 편하다.
오늘은 땅끝마을에서 노화도로 향한다.
▣ 동천석실
보길도는 등산을 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둘러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1박 2일로 둘러본다면 여유가 많다.
오늘은 섬으로 들어오는 시간 등을 고려하니 지금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을 넘고 있다.
먼저 섬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세연정 주변을 먼저 둘러보고 보옥리 망끝전망대와 공룡알 해변을 둘러보는 것을 일정으로 한다.
먼저 동천석실을 둘러본다.
주변 주차장 시설은 양호하다 할 수 없으나 주차 공간은 충분하다.
도로변에서 바라본 도천석실.
저곳 가운데 바위지대에 동천석실이 있다.
바위 지역을 줌으로 당겨본다.
이런 다리를 건너,
그리 심하지 않은 오르막을 조금 올라야 한다.
도로변에서 10분여,
동천석실에 오른다.
석담.
부정형의 연지로 ㅏㅇㅁ석을 파서 인공으로 만든 것으로 석천과 석담사이에 구멍을 뚫어 물이 통하게 하였다.
석담 앞에서 동천석실로 건너가는 조그만 다리를 희황교(희황교)라 이름붙였다.
석담 위쪽에 8단의 계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석천과 석담사이에 구멍이 뚫린 바위가 그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희황교라고 하는 석교를 말하는데 희황은 중국의 홛제 복희씨를 말하는 것으로 동천석실(동천석실)을 천자가 사는 곳으로 비유하였다. 희황교는 돌거북이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희황교 시>
교북교남착소란(교북교남착소란) 희황교 남북에 작은 난간을 두고
중간흡수양포단(중간흡수양포단) 가운데 양포단을 깔기에 적당하네
청산제후지고와(청산제후지고와) 청산에 비갠 뒤 턱 받치고 누웠으니
수락하향흥일반(수락하향흥일반) 물소리 연꽃향에 온갖 흥이 절로 나네
< 현지 안내문에서>
동천석실을 좌측의 바위 상부에 있고,
아랫쪽 건물은 침실이다.
차바위
동천석실 바로 앞에 움푹 패인 바위로 고산선생이 차를 끓이던 장소라 전한다.
바위에는 차상다리를 고정 할 수 있도록 몇 개의 구멍을 파 놓았다. 이 곳에 올라서 앉아 청별항, 격자봉, 곡수당, 낙서재, 낭음계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다도를 즐겼다고 한다. 낙서재 주변 지형과 유사한 모양을 한 홈 형태도 이채롭다.
<현지 안내문에서>
용두암(용두암)
용두암(용두는 도르레의 방언)은 동천석실 앞에 있는 두개의 바위로 두 바위 사이의 홈에 도르레 같은 시설을 설치하여 통속에 넣은 음식을 줄에 매달아 낙서재지역으로부터 손쉽게 날라다 먹었다고 전한다.
<현지 안내문에서>
동천석실(동천석실)
동천석실은 절벽위에 세운 한칸짜리 정자로 이곳에서는 서책을 즐기며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천이란 신선들의 거주처인 동천복지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안내문에서>
이곳에서 보니 어느 봉이 격자봉인지 모르겠다.
가운데 좌측으로 보이는 봉우리이지 싶다.
낙서재, 곡수당 방향이다.
좌측 잘록한 고개가 큰길재로 예송리와 곡수당쪽 갈림길이 있는 고개이다.
아랫 침실쪽으로 내려간다.
아랫쪽 침실 인근에서 올려다본 동천석실,
침실
동천석실에서 약 20m 아레에 있는 정자형 침실로 크기는 비슷하다.
2002년 발굴조사시 석열과 기동자리와 온돌, 연도가 발굴되었으며 고산이 추운날에는 불을 때고 잠시 쉬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아궁이가 석축 아래 멀리 있어 온돌구조가 특이한 구조이다.
< 안내문에서>
동천석실 주변을 둘러보고 되돌아 간다.
도로변에서 동천석실을 둘러보고 되돌아 가는데 약 40분쯤 소요되었다.
▣ 낙서재, 곡수당
낙서재와 곡수당 주차장.
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낙서재 0.3km,
곡수당 0.2km.
좌측으로 곡수당이 보이나 계속하여 낙서재로 오른다.
낙서재를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곡수당에 들럴 것이다.
동와
보길도지에 의하면 낙서재와 무민당 사이에 이곳과 서와을 지었다하며 각기 한 간씩인데 사방으로 퇴를 달았다고 한다.
동와 윗쪽에 위치한 저곳은 낙서재를 먼저 둘러보고 오르기로 한다.
낙서재(낙서재)
낙서재(낙서재)
낙서재는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1637년(인조 15년)에 들어가 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윤위의 <보길도지>에 따르면, 처음 이곳에 집을 지을 때는 수목이 울창해서 산맥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사람을 시켜 장대에 깃발을 달고 격자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그 높낮이와 향배를 헤아려 집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잡은 낙서재 입지는 보길도 안에서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이곳은 강학하고 독서하면서 소요하고 은둔하고자 하는 선비의 생활공간이었다. 최근 낙서재 마당 북쪽에 고산이 달구경하던 귀암(귀암)이 발견되어 남쪽의 소은병과 낙서재, 귀암의 축선이 확인되었다.
처음에는 모옥(모옥, 피나 이엉 따위로 지붕은 만든 집)으로 지어 살다가 그 뒤에 잡목을 베어 거실을 만들었는데 후손들에 의해 와가(와가)로 바뀌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귀암(귀암)
<고산유고> '귀암' 시편에 나오는 4령(사령)중의 하나요, 윤선도 선생이 달맞이하던 장소로 기록된 이 바위는 화강암을 쪼아 거북 형상을 만든 370×270cm규모의 바위로 선생이 낙서재 터를 고르는데 중요한 지표였다.
2011년, 이 바위의 발견으로 보길도지에 기록된 소은병(소은병) 낙서재(낙서재), 귀암의 축선을 확인하게 되어 낙서재 원형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현지 안내문에서>
소은병(소은병)
주자가 경영한 중국 복건성 승인현 무이산의 대은병 건너편에 있는 봉우리 이름으로, 윤선도는 산속에 은거하며 학문에 몰두한 주자의 행적을 따른다는 뜻에서 낙서재 뒤편 바위에 이 이름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은병 바위 위에는 삼각형의 홈이 크게 파여 있어서 빗물이 고이면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윤선도는 숲이 뻭뻭한 이 부근에 나와 사색에 잠기곤 했다고 한다. 붂족에 잇는 낙서재와 귀암이 이 바위와 축을 이룬다.
정자
기록에 의하면 서재옆에 정자가 잇었다고 전하며 현제 건물의 형태나 규모를 확인할 수는 없다.
< 현지 안내문에서>
낙서재 좌측 윗쪽에 있는 건물로 사당이다.
고산 윤선도선생이 낙서재에서 돌아가신 뒤 이곳에서 얼마간 초장을 지낸곳이라 한다.
사당 옆에 전사정이 있다.
전사청은 학관의 아들 이관이 제사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고 제물. 제기 등 제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이다.
근데 크기가 너무 작아보인다.
이곳 낙서재 동재에서 곡수당이 내려다 보인다.
곡수당 쪽으로 내려왔다.
서재.
재는 곡수 남쪽 두골짜기 중앙에 임지한 강학을 위한 건물로 건림 당시에는 학유공 정유악(정유악), 심지사단(심진사 단), 학관(학관, 고산 5남)등 여러사람들이 고산 선생에게 배우던 곳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곡수당
곡수당(곡수당)은
고산의 아들 학관이 거주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조성한 공간으로, 낙서재 골짜기에서 흐른 물이 이곳 인근에 이르러서 곡수를 이루고 있다. 1칸짜리 집으로 사방에 퇴를 달고 반자를 두었으며, 남쪽 난간에는 취적헌(취적헌), 서쪽은 익청헌(익청헌)이라는 편액을 학관의 글씨로 새겼다. 주변에 일삼교(일삼교)와 유의교(유의교)가 있다.
< 현지 안내문에서 >
상연지
높이가 한 길(보통 사람 키) 정도되는 방대 위헤 가산을 만들고 허리부분에 구멍 하나를 뚫어 돌로 된 통을 기워 뒤에서 끌어온 물이 구멍을 통해 연못으로 쏟아지게 하고 이를 '비래폭.비래폭'이라 하였다.
< 현지 안내문에서>
곡수당 옆의 이정표.
보옥리 6.0km
청 별 4.8km
예송리 1.8km
큰길재 0.9km
곡수당 앞의 연못을 하연지라 한다.
형태는 정방형에 가깝고 한변의 길이가 13m정도이다. 호안 축대의 높이는 약 1m가량 되며, 발굴 당시 연못 입수구와 출수구가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었다. 연못 옆에 석정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한다.
곡수당을 둘러보고 세연정으로 향한다.
▣ 세연정 / 윤선도 원림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을 둘러보고 세연정으로 왔다.
옛 과거의 정문이 윗쪽으로 옮겨져 있다.
입장료가 있다.
주차장과 정문이 세연정 뒷편에 위치한 셈이다.
지형상, 도로, 개인사유지 등의 이유라 추정된다.
보길도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유적이 잘 어우러진 명승으로 격자봉(435m)을 중심으로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의 부용동 지역에 원림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고산 운선도(1587~1671)는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도착하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이후였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탐라)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은 보길도내 경관이 수려한 곳곳에 경치를 명명하고 그곳을 오가며 성정함양과 작품활동을 하였다.
또한 부용동은 그기 13년가 오가며 <어부사시사>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고산은 노년을 자연과 산수를 노래하다가 85세(1671)로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쳤다,
보길도 부용동원림은 세연정을 비롯하여 최근 복원된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 등에 고산의 경관의식과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적 조경수법이 내재된 조선시대 대표적 원림유적이다.
< 이상 현지 안내문에서 >
혹약암(혹약암)
혹약암은 세연정 연못에 있는 일곱 바위 중의 하나이다.
이 바위는 마치 힘차게 뛰어갈 듯한 황소의 모습을 닮았다.
'옥약'은 바로 역경(역경)에 나오는 '혹약재연,(혹약재연 / 뛸 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이란 말에서 따온 말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비홍교(비홍교)
<보길도지>에는 "세연정이 못의 중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정자 서쪽. 제방 동쪽 겨우 한 간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중앙에는 거북이가 엎드려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 등에 다리를 놓아 누(누)에 오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라불렀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잡석을 쌓아 호안과 방단(방단)이 연결되어 있어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현지 안내문에서>
사투암(사투암)
세연정 주변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칠암)이라 불렀는데 그중 하나인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받침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못쪽에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부분에 발을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세연정(세연정)
세연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으로 고산연보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라 하고 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세연정), 동쪽에 호광루(호광루), 서쪽에 동하각(동하각), 남쪽에 낙기란(낙기란)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칠암헌)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 현지 안내표지판에서 >
동대
세연정에서 바라보아 오른쪽 판석보 옆에 위치해 있고, 그 규모가 가로 6.7m, 세로 7.5m의 장방형으로 높이는 약 1.5m이며 자연석으로 쌓아 올렸다.
어부사시가가 불리워지면 여러 사람이 어울려 군무(군무)를 즐겼던 곳으로 평형이다.
<현지 안내표지판에서>
판석보(판석보)
우리나라 조원 유적 중 유일한 석조보(석조보)로 일명 '굴뚝다리'라 부르며, 세연지의 저수를 위해 만들었으며, 건조할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보(보)의 구조는 양쪽에 판석을 견고하게 세우고 그 안에 강회를 채워서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그 위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
과거에는 저곳이 입구였는데 지형적 조건이 않맞나 보다.
세연정 뒷쪽? 앞쪽? 산 중턱에 눈에 띄는 바위가 있다.
올라본다.
옥소대로 오르는 중간 바위
바위지대로 오르면 이런 석문을 통과하기도 한다.
주변 바위지대.
제법 상당한 규모이다.
옥소대에 오른다.
제법의 조망을 보인다.
바다도 보이고.
아래로는 세연정이 조망된다.
옥소대를 둘러보고 되돌아 간다.
옥소대까지 올랐다 되돌아 오는데 15분쯤 소요되었다.
세연정에서 보면 연못 건너편으로 이쪽으로도 탐방로가 있다.
세연정 주변을 둘러보는데 약 45분쯤 소요되었다.
세연정을 둘러보고 보옥리로 이동한다.
보옥리에서 멀지않은 곳에 망끝 전망대가 있다,
망끝 전망대를 잘 정비하였지만 이곳에서 보옥리쪽으로 쬐끔 떨어져서 (100m??쯤) 또다른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의 조망이 좀 더 시원할 수 있다.
보옥리 공룡알 해변으로 왔다.
마을내 길은 좁은 편이고 주차시설도 열악한 편이다.
보죽산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올라봄직 하지만 이곳에서 바라만 본다.
이곳 공룡알 해변에서 예송리로 이어가는 해안길이 시작되지만
격자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마을에 있다.
등산로 이정표가 있으므로 조금만 주의하면 공룡알 해변으로 내려서는 중간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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