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영동 구수천 옛길(상주 백화산 둘레길)
대충 보면 백두대간이 보은과 상주를 경계지으며 속리산 구간을 지나면 고도를 낮춰 상주군내를 통과하여 추풍령으로 연결 된다. 이 상주 구간은 뚜렷한 명산도 없고 고도도 낮아 일반 야산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상주 화서면 백두대간 상의 봉황산(740.6m) 남동쪽에서 발원하는 이서천이 화동면(삼포리천), 모서면(금계천), 모동면으로 내려와 반계천과 합류하여 석천이 되고, 이 석천은 옥동서원, 반야사 앞을 지나 황간읍 원촌리(월류봉 광장 인근)에서 영동 물한계곡을 발원지로 하는 초강천에 흡수된다. 석천(구수천이라고도 함)은 중간 반야사 옛 터를 기준으로 하여 상류는 상주군에 속하고, 하류는 영동군에 속한다.
상주군에서 모동면 옥동서원에서 반야사까지 구간에 옛길을 복원하고 다듬어 백화산 호국의 길로 이름 붙였고, 영동군에서는 월류봉 광장에서 석천변을 따라 반야사까지 길을 내고 다듬어 월류산 둘레길로 이름 붙였다.
백화산 호국의 길 거리는 명확히 표시되어 있지 않다. 상주군 홈페이지에는 10.3km, 3시간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이해하기 어렵고, 둘레길 이정표상으로 보면 옥동서원에서 반야사 옛터까지 4.98km 또는 5.06km로 표시되어 있고, 반야사 옛터에서 반야다리까지 1km로 표시되어 있다.
반야다리가 반야교를 말함인지 반야사 농다리까지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옥동서원에서 반야사까지는 6km 정도로 보면 되겠다.
월류산 둘레길은 총 8.4km로, 3개의 구간으로 나누고 1코스 여울소리길(2.7km), 2코스 산새소리길3.2km), 3코스 풍경소리길(2.5km)로 작은 이름을 붙였다. 3코스는 우매리에서 반야사까지 이다.
백화산 호국의 길은 편도만 걷기에는 거리가 조금 짧고, 왕복하기에는 같은 길을 다시걷는 단조로움이 있고 4~5시간쯤 잡아야 한다. 따라서 백화산 호국의 길과 월류봉 둘레길 2코스, 백화교까지 걷는 것으로 코스를 잡아본다.
▷ 가는 길
▷ 탐방코스
옥동서원 - (약 6km) - 반야사 -(3.4km)- 백화교
(계 약 9.4km, 옥동서원에서 반야사까지 천천히 2시간 5분, 점심시간 1시간, 반야사 경내 약40분, 반야사에서 백학교까지 45분 합계 약 4시간 30분 소요 / 2022. 1. 14.)
▷ 탐방안내도
강 건너편으로 방문객지원센터에서 출렁다리까지 탐방로 있음,
▷ 탐방후에
상주시 모동면 수봉2길 29.
옥동서원을 들머리로 한다.
서원앞에 제법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혹 내비에 옥동서원이 검색되지 않으면, <수봉1리 마을회관>으로 검색 후 옥동서원으로 찾아가도 된다.
회보문 현판을 달고있는 옥동 서원의 문은 닫혀있다.
옥동서원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명재상이었던 황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헤 세운 서원이다.
1518년 황희의 영정을 모신 것을 시작으로 1580년 백옥동 영당이 건립되어 황희의 신주를 모셨다. 1714년 서원으로 승격되어 전식을 모시기 시작하였고, 1876년 황효현과 황뉴을 추가로 모셨다. 1789년 나라로 부터 <옥동서원>이란 이름을 받았다.
서원을 구성하는 주요 건물인 문루(청월루), 강당, 사당은 일직선 위에 놓여 있으며 다른 서원처럼 유생들이 숙식하던 기숙사는 동재와 서재가 없고, 문루의 다락집에 온돌방을 둔 점과 각종 부속 시설이 적은 점이 특징이다.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기능이 줄어들고 지역을 다스리는 기능이 점차 강화된 17~18세기 서원 건축의 변화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현지 안내문에서 >
방촌 황희(1363 ~ 1452)정승을 인터넷 상에서 검색하니 출생지가 개성 가조리로 나온다.
고려말 부터 관직에 올라 조선이 건국된 이후 무려 5명의 왕을 모셨던 최장수, 최고령 영의정이다.
황희 정승과 이곳 서원과의 관계가 안내문에 조금 언급되었으면 좋을 것 같다. 왜 이곳 옥동서원에서 황희 선생을 모셨는지 알 수가 없다.
서원 좌측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백옥정으로 간다.
서원 앞에 이정표가 있어 들머리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길은 옥동서원 뒷편의 야트막한 산봉우리를 넘어 백옥정으로 가는 길이다.
또다른 길은 옥동서원 앞에서 백옥정을 바라보면 바로 아래 데크를 따라 오르는 길이 보인다. 이 데크를 따라 올라도 되고, 백학정으로 오름이 힘들다면 백화정을 오르지 않고 강변쪽으로 바로 돌아가도 된다.
옥동서원 좌측 뒷편, 사당과 담을 사이에 둔 곳에 소형 주차장?이 있다.
저만큼 이정표가 보인다.
가까이 백옥정 0.63km,
반야사 옛터 4.98km를 알리고 있다.
반야사 옛터는 영동과 상주의 경계지점으로 현재의 반야사와는 대충 1km? 이내의 거리이다.
위 이정표 방향을 따라 옥동서원 뒷편의 야트막한 무명봉을 향해 오른다.
리기다 소나무 숲이 좋다.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간다.
오늘 코스가 하천변을 따라난 평탄한 길이기 때문에 이 봉우리를 오르면서 살짝 힘을 써보는 것도 좋다.
백화정 가는 길,
이후, 보이는 길 보다는 험하다.
이곳에서 백옥정 0.1km 남았음을 알리는 지점이다.
백옥정을 둘러보고 이곳으로 되돌아와 임천석대 방향으로 내려갈 것이다.
이정표에 그냥 반야사 몇 km로 표시하면 좋을 곳이지만 반야사가 충북 영동땅에 있어 표시하지 않고 임천석대, 또는 반야사 옛터로 표시하나 보다.
백옥정 인근,
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는 상부의 이정표이지 싶다.
백옥정에서 반야사 방향으로 이어갈때 임천석대 방향 능선을 따르면 위 사진의 임천석대 갈림길이 나오므로 그곳 갈림길에서 임천석대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백옥정.
옥동서원에서 20분쯤 소요되었다.
높지는 않지만 조망 좋은 곳에 자리했다.
모동면 수봉리 일원이다.
앞쪽에 보이는 교량은 수봉1리쪽에서 백화산 들머리 보현사쪽으로 건너는 백화교이다.
저곳 골짜기 어디쯤 보현사가 있고,
여러해 전 저 골짜기 쪽으로 오르다가 금돌산성을 거쳐 백화산(한성봉)에 오른 후 반야교로 하산한 적이 있다.
석천 건너편에 보이는 저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면 출렁다리 건너편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물론 중간에 서로 건널 수 있는 곳이 현 신축중인 다리, 징검다리를 포함하여 3곳 있다.
복숭아 밭이던데......
저쪽 하늘색 하우스? 로 보이는 끝에 세심석이 있다.
임천석대 갈림길을 지나 내려간다.
무심코 어! 큰 바위네 하고 지나칠 수 있다.
보이는 밧줄을 잡고 바위에 오르면 상부가 제법 넓고 평평하여 20여명은 앉을 수 있다.
이 세심석은 밀암 이재 선생이 1716년 9월에 백화재 황인재 선생을 방문, 이곳을 동유하며 함께 세심석이라 명명하였는데 이는 세속의 마음을 씻고 선비가 청정한 마음으로 학문하고 유상 할 만한 자리라 붙인 이름이라 한다.
세심석
우평 황인노
기연일석성중군 / 품위 있는 한 돌 돌 가운데 왕이니
우세태심쟁절분 / 비로 이끼 낀 중심 씻어 깨끗이 세분 끊었다.
위덕진감은사우 / 덕을 위해 참된 숨은 사우 맡았고
기명개취계사문 / 그 이름 대개 주역의 계?사에서 취했다.
중고발지삼삼장 / 가운데가 높이 땅에서 구장을 빼어 냈고
상광용인십십군 / 위가 넓어 이십군의 사람 용납한다.
천고강분장득밀 / 천고의 강물결에 정밀을 얻어 갈무렸으니
불방림예주환훈 / 숲에 숨는 것 방해 않아 낮에도 도리어 어둑하네
(현지 바위에 각자되어 있는 시 인데, 한자로 변환이 안되고 틀린 글자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심석, 세심석 시를 기록한 바위, 정자와 이웃하여 간이 화장실이 있다.
이곳부터는 석천 강변을 따라 내려간다.
석천은 구수천이라고도 한다. 옥동서원에서 반야사 사이에 여덟군데 여울 구간으로 나누어 팔탄이라 한다.
그래서 구수천 팔탄 옛길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상주에서는 몽고군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려 백화산 호국의 길이라고 한다.
전망대가 있다.
앞쪽에 다리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다리 공사 현장.
처음으로 징검다리를 만난다.
얼어 붙어 건너기에는 위험해 보인다.
위 징검다리목의 이정표.
백옥정에서 1.4km 옥동서원에서 1.81km지점이다.
이 징검다리는 잠시 쉬어가면 모를까 특별히 건널 이유는 별로 없다. 왜냐면 건너편으로 강을 따라난 농로의 중간쯤으로, 조금 아래에 독재골 산장으로 건너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를 지나는 구간엔 부처님도 모셨다
위 불상 주변으론 절벽 아래를 지나는 셈이다.
처음으로 구수천 삼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난다. 1탄과 2탄을 알리는 안내표지판은 보지 못했다.
방성재에서 ~ 송골 구간이라 적혀 있다.
겨울이어 하천이 얼어붙어 있어 지형의 속살을 볼수 없고, 방성재가 어디고 송골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멋진 탄(여울)으로 소개하기에는 그렇고 그런 구간이다.
사실 하천변을 따라난 이 호국의 길은 숲과 어울려 좋다 싶지만, 석천의 탄(여울) 자체는 큰 경관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3탄 주변의 경관이다.
다리도 아니고, 잠수교라 할 수도 없고,
하여튼 상부 수봉리에서 석천 건너편 하천을 따라 내려오는 농로는 저곳에서 이쪽 독재골 농장(산장)으로 이어지며, 승용차는 아주 조심, 기타 RV 또는 트럭은 충분히 다닐 수 있겠다.
참고로 보이는 건너편에서 아래 출렁다리까지는 상당 부분 데크길을 포함하여 탐방로가 개설되어 있다.
이곳 부터는 넓은 의미에서 독재골 산장 또는 농장 구역으로 보면 되겠다.
과거 밤나무를 많이 식재되어 있으나 지금은 고목이어서 수확은 의심스럽고 약초를 재배하는지 밤. 약초 재배단지라는 조그만 표지판이 있다.
좌측은 독재골 산장
구수천 4탄 안내표지판 인근이다.
이 구간은 송골~ 보장골로 명소로는 난가벽이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난가벽은 출렁다리를 아랫쪽 근거리에 위치하여 나중에 소개 하겠다.
구수천 4탄 주변이다.
건너편으로 암석지대와 데크길이 보인다.
농장인근을 지난다.
저 아래쯤 출렁다리가 가늠 되는 곳이다.
출렁다리까지 왔다.
옥동서원에서 천천히 1시간 10분쯤 소요되었다.
출렁다리를 건넌다.
길이가 제법이고 많이 흔들린다.
출렁다리 건너편에 있는 안내도이다.
출발지 수봉리 일원에서 현위치 출렁다리까지는 석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탐방로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백화산 호국의 길은 거리가 편도 약 6km이나 거리에 비해 시간이 비교적 많이 소요되어 편도만 걷기에는 거리가 좀 짧고. 왕복하기에는 쪼금 시간이 많이 걸린다.( 4~5시간 정도) 따라서 차량 회수를 위해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왕복하여야 하며, 이 경우에는 이곳 출렁다리 상부는 석천 양쪽으로 탐방로가 있으므로 오갈 때 다른 길을 걸으면 지루함을 줄일 수 있다.
편도만 걷는다면 지금까지 내려온 길(옥동서원에서 석천을 우측에 두고 따라 내려오는 길)이 건너편 보다는 낫다. 건너편의 농로보다는 숲길이기 때문이다. 단지 밤나무골(독재골 산장)로 하천을 건너오는 곳부터 출렁다리 까지 구간은 건너편이 대체로 암벽, 데크 길이 많아 경관이 좋아 보일 수 도 있지만, 이쪽 독재골 농장? 길도 나쁘지 않다.
건너편 탐방로는 동절기에서 해빙기 사이, 장마기에는 통행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있으나 통행을 딱히 막지는 않는 것 같다.
이젠 석천을 왼쪽에 두고 내려간다.
출렁다리에서 3~4분 진행하면 저승골 갈림길이 있다.
위 저승골 갈림길 안내도이다.
빨간점①의 출렁다리, 현 위치의 흰색 점(저승골 입구)으로 표시되어 있고. 사진상 나무가지 그늘로 인해 잘 보이지 않지만 현 위치 좌측의 붉은 점②은 임천석대이다.
이 구간은 아랫쪽으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으며 저승골을 들머리로 하는 길이 임천석대쪽으로 많이 온 지점에서 한성봉④으로 오르게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저승골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홍지가 금돌성에서 일제히 성문을 열고 나와 앞과 뒤에서 협공당한 몽골군은 우왕좌왕하다 제4의 관인이 화살에 맞아죽고 군사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백화산 기슭 이 골짜기는 몽골군의 많이 죽었다 해서 그 후 <저승골>로 불려왔다.
구중서 소설 <항몽전쟁 - 참혹한 산하 2권>의 한 구절이다.
"몽고장수 차라대가 상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황령사의 승 홍지가 제4관인을 사살하고 사졸의 죽은 자도 반이 넘자 드디어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고려사에 기록된 저승골과 연관된 이야기는 이후 패퇴한 몽골군이 남하하며 사로잡힌 남녀가 무려 20만 6천 8백여 명이나 되었고, 살육된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거쳐간 고을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어, 몽골의 난이 있는 이래로 이보다 심한 때가 없었다고 하였다. <저승골>에서 패퇴한 보복으로 여겨지며 <저승문>, <저승골>에서 <저승폭포>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이 몽골군을 유인한 방향이고 초겨울 빙판을 이룬 <저승폭포> 부근에서 협공을 당해 아비규환을 이뤘으며 간신히 도망친 몽골군이 내를 건너자 건너편 <전투갱변>에서 매복하여 대첩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백화산 최고봉 한성봉은 원래 한성봉인데 몽골군 총사령관 차라대가 물러가며 '한을 남긴 성과 봉우리'에서 유래되고 "방성재"는 몽골군이 방성통곡하며 퇴각했다 하여 구전된 지명이다.
육군본부 간행 "고려 전쟁사"에도 대승첩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 역사의 현장은 대첩이후 고려가 몽골군에 항복하며 '반역의 장소'로 격하되어 혹은 순수 민간인들의 항쟁이었기에 세간의 이목에서 사라진 듯 하다.
<상주시 안내문에서>
길가 바위에 난가벽에 대한 유래를 새겼다.
독재골 산장 앞에서 시작된 4탄이 이곳 아래 어디까지 인가 보다.
난가벽
백화산 구수천 팔절단의 4탄
절벽이 구수천변에 병풍을 두른 듯이 산을 의지하여 서 있고, 물 흐르는 소리가 제일 요란하다.
'백화팔경'에다 식산 이만부가 '백화동대벽기(백화동대벽기)'에 "옛 사람을 조문하고 막히고 쌓인 깃을 토로해 보지만 다 할 수야 있겠는가? 늙은이가 겉으로 드러내어 감당할 바가 너무 많구나? 오직 두가지만 여기 남긴다. 그러므로 전하기를 그 벼랑을 일러 난가(난가/ 난간 란, 가지 가)라 하고 그 대를 일러 아양(아양/ 높을 아, 큰바다 양)이다" 하여 난가벽으로 전해진다. 아양은 곁에 접한 탄금대 임천석대를 지칭한다.
난가벽 맞은편 폐사지 진불암을 거쳐 몽고군이 패퇴하여 방성통곡하며 퇴각했다는 방성재로 닿는 옛길이 나오고 임천석대에서 구수천 팔탄을 따라가면 몽고군이 섬멸된 저승골, 저승폭포에 이른다.
<현지 안내표지석에서>
팔절명탄 / 여덟마디 우는 여울
만성 김 재 륜
비죽비사절절명(비죽비사절절명) / 퉁소도 거문고도 아닌데 구비 구비 울리니
자연성악석간생(자연성악석간생) / 자연의 성악이 돌 사이에서 생겼다.
부포비말수거사(부포비말수거사) / 뜬 거품 나는 물방울은 비록 니가 시킨 것이나
정측연징역성정(정측연징역성정) / 멈추면 맑은 못 되는 게 또한 너의 성정이다.
저승골 갈림길에서 약 5분여, 난가벽에서 2~3분 소요되어,
구수정에 도착한다.
구수정 앞에 임천석대 안내표지판이 있다.
임천석은 북과 거문고를 잘 켜는 고려 영관으로 고려가 망하자 건너편 높은 절벽 위에다 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거문고를 켜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고려 악사이다. 태종이 음률을 잘 아는 것을 알고 부르자 거절하고 다시 강압을 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명시를 남기고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상주의 역사서 상산지에 전한다.) 왕조실록 정조 편에 김광우가 '우주 간에 길이 빛날 충절이니 비를 새겨 남기자' 상소하자 정조 대왕이 윤허 했지만 현재 비는 찾을 수 없다. 이곳으로 낙향하기 백오십여 년 전 파죽지세로 남하한 몽고의 강적을 만나 적의 과반을 사살하여 대첩을 이룬 건너편 백화산 저승골, 저승폭포, 저승문을 바라보며 또 몽고군이 방성통곡하며 물러간 방성재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임천석대 위에서 북과 거문고로 망국의 한을 달랬을 것이다.
성해응의 '44명의 신라, 고려인 행적을 담은 신라유민전에도 "임천석대 아래 떨어져 죽으나 수풀 사이로 새들이 슬피 울고 산하가 참담하였다."고 임천석을 기린다.
< 현지 안내문에서>
임천석대 안내문 옆에 부처바위 표시가 있는데 어디에 있지?
혹 좌측 상단의 돌기둥?을 말하는 듯 하나 닮은 점을 찾기 어렵다,
임천석대 하류.
임천석대 / 구수정을 지나면 이내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저승골 0.1km.
위 저승골 입구 갈림길로 연결된다.
지나온 곳 수봉리 2.6km, 진행할 반야사 엤터 1.2km로 표시되어 있다.
인근에 진불암 옛터 안내표지판이 있다.
작주임천석 / 임천석대에서 항신술 올리고
사쟝정계수 / 석양에 암자 찾았다.
인무진불견 / 사람없고 암자 보이지 않으니
백일고은음 / 한낮에도 아직껏 느늘음 하네
장원 황원선, 정조 22년 고종 10년
자 : 진부. 호 : 장원 본관 : 장수
겨울철이어서 양지바르고 바람불지 않는 곳을 찾으나 마땅한 장소가 없다.
임천석대 주변이 정자도 있고 지형도 다듬어 두었으나 그늘이어서 춥고 바람도 많다. 임천석대를 조금 지난 도로변에서 점심상을 펴고 약 1시간여 점심시간을 갖는다.
중식후 탐방로를 이어간다.
저만큼 농다리가 있다.
이런 다리를 농다리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위 다리에서 바라본 계곡 상부,
하부.
하천을 우측에 두고 내려가는 길이지만 하천과는 거리가 있다.
구수천 육탄은 전투갱변 ~ 저승골 구간이다.
역시 특별한 경관을 보이는 곳은 아니나 육탄을 알리는 안내표지판이 저승골 입구를 지나. 임천석대를 지나, 첫번째 농다리 건너 조금 진행한 지점이다.
구수천 육탄 안내표지판이 잘 못 세워진 것은 아닌가?
1탄과 2탄 안내표지판은 보지 못했고, 방성재 ~3탄~ 송골 ~4탄~ 보장골 ~5탄~ 전투갱변 ~6탄~ 저승골 ~7탄~ 명경호 ~ 8탄 안내표지판은 보지 못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방성재, 송골, 보장골, 전투갱변 등의 각 구간별 시작과 끝 지점이 어딘지 초행자는 알 수 도 없거니와, 이정표, 안내도가 있는 저승골 입구가 저승골이라면 6탄의 안내표지판이 저승골 상부쪽으로 옮겨져야 할 듯 싶은 생각을 해 본다.
비슷한 농다리를 한번 더 건넌다.
위 다리에서 바라본 계곡 상류,
계곡 하류,
이번엔 구수천을 좌측에 두고 내려간다.
구수천 칠탄 주변이다.
칠탄은 저승골에서 명경호 구간이다.
하천 주변으로 평평한 지형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반야사 옛터표지판이 있다.
너무 강변에 위치하여 절터 표시가 없다면 그냥 지나칠 곳이다.
이곳 반야사 옛터가 경북 상주와 충북 영동의 도 경계이자 군 경계인가 보다.
어떤 공사가 이루어 질런지, 좌측에 보이는 석재가 여럿 있다.
반야사옛터의 영동구역으로 들어서면 이정표가 있다. 상주쪽과 구별을 두어 글씨체가 달라졌다.
몇 백미터 거리의 차이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역의 이정표 치고 꼭 맞아떨어지는 곳이 몇곳 없다.
따라서 오늘 백화산 호국의 길인 옥동서원에서 반야사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다. 상주군의 자료인 이정표를 보면 차이가 있으나 옥동서원에서 반야사옛터까지 대충 5km 쯤 된다. 이곳 반야서 옛터 이정표에 백화산 입구 1.5km로, 반야사 다리 1km로 표시되어 있다.
영동군에서 제공하는 월류봉 둘레길 자료에 따르면 반야교에서 반야사까지 0.9km이므로, 이정표의 반야사 다리가 반야교를 말함이라면 이곳에서 반야사까지 0.1km가 되는 셈인데 이는 아닌것 같고, 반야사 앞 농다리 까지는 1km를 표시한 것이라면 좀 많은 듯도 싶다.
참고로 백화산 입구는 반야교 다리목 인근에 있으므로 반야사 다리가 반야사의 농다리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백화산 호국의 길은 대충 6km로 추정했다.
강 건너편에 반야사에서 문수암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보이는 바위 주변이 <영천>인가 싶고 뒤로 망경대 높은 바위 위에 문수암이 있다.
나중 반야사에서 저 곳을 거쳐 문수암으로 오른 곳으로 경사는 상당히 급하나 오를만 하다.
문수암
묘한 곳에 자리잡았다.
보이는 바위를 망경대라고도 한다.
반야사에서 바라 보았을때 호랑이 형상으로 보이는 너덜겅의 발 부분을 지나고 있다.
올려다 본 너덜겅
반야사가 저만큼 보인다.
옥동서원에서 반야사까지 구수천을 따라 내려왔지만 경사가 그의 없는 완만한 길이다.
따라서 역순으로 반야사에서 구수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경사 때문에 힘들어 할 구간은 없다.
반야사 쪽으로,
반야사 농다리가 저만큼 있다.
사실 이런 다리를 뭐라 불러야 할 지 몰라 농다리라 했다.
이곳 다리의 가운데 부분은 지난해 보강공사를 완료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호랑이 형상.
나무로 인해 배, 뒷다리 부분이 가려져 뚜렷한 형상은 아니다.
반야사에 도착한다.
점심시간 약 1시간을 제외하면 옥동서원에서 2시간 5분여 소요되었다.
혹, 이곳 반야사에서 옥동서원으로 되돌아 올라가는 시간도 2시간쯤 걸린다고 보면 된다.
대웅전
호랑이 상은 녹음이 우거졌을때 명암 차이가 있어 더 선명하다 한다.
문수암으로 오르는 길은 두 곳 있다.
한 곳은 사진상 보이는 현 위치에서 서북쪽(하천변)으로 난 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망경대와 영천이 나오고 문수전은 망경대(일명 문수바위)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다른 한 곳은 대웅전 뒷편으로 길이 보이므로 들머리를 가늠할 수 있다,
대웅전 뒷편으로 난 길이 오르내리기 쉽고 더 가까운 길이나 주변 경관을 구경할 겸 하여 영천쪽 길을 따라 오르고 대웅전 뒷편으로 보이는 길은 나중 내려올 길이다.
세조대왕 목욕하신 곳,
설화
반야사를 문수도량이라 하는데는 세조대왕과 문수보살에 얽힌 설회에 기인한다.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가 반야사를 중창하라 명하시고 회향법회를 열어 여러 보살님께 공양드리니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영천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했다. 이윽고 문수보살은 "왕이 불심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망경대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시다가 홀연히 사라졌는데 왕이 목욕을 마친 후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사찰 이름을 반야사라 한 것도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 현지 안내문에서 >
올려다 본 문수암.
문수암으로 오르는 길이 까칠하다.
문수암.
문수암 내부.
문수암 뒷편인 셈이다.
대체로 편편한 지형을 보이고 있다.
저곳이 반야사 옛 터이며 경북과 충북의 경계이기도 하다.
문수암에서 바라본 너덜겅.
40분여 반야사와 문수암을 둘러보고 반야사 앞 다리를 다시 건너 월류산 둘레길 3코스를 따라 반야교 쪽으로 내려간다.
물론 반야사 입구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가도 석천 강변을 바라보는 경관이 좋겠지만, 숲길이 좋고, 백화산 등산로 입구도 확인할 겸 해서 월류산 둘레길을 따라 내려간다.
백화?선원.
백화?선원 옆에 관음상이 있다.
관음상이 있는 백화?선원까지 도로를 따르면 백화산(한성봉) 들머리자 날머리가 있다.
현지에 안내도가 있어 방향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래 사진의 반야교 맞은편 신설된? 아님 새 방부목으로 교체한? 등산로는 주행봉으로 오르는 길인것 같으나 아무런 이정표가 없다.
이곳은 반야교 맞은 편이다.
안내도를 보면 주행봉으로 오르는 길인것 같은데 신설인지 보수인지 모르지만 이 방향으로의 이정표는 없다.
반야사에서 0.9km, 천천히 13분쯤 소요되었다.
반야교를 건넌다.
반야교에서 잠시 도로를 따르면,
이내 하천변으로 난 둘레길을 안내한다.
저만큼 차도와 만나는 곳 우측에 징검다리가 보인다.
반야교에서 7~8분 진행하면 하천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있다.
징검다리도 보이고, 이정표도 있어 길을 모를 우려는 없다.
이어 또다른 징검다리를 건넌다.
이후 하천을 왼편에 두고 백화교까지 내려가게 된다.
반야사에서 2.5km, 월류봉 3코스 시작지점으로 천천히 35분쯤 소요되었다.
반야교에서는 1.6km 지점으로 약22분, 중간 징금다리 두 곳을 건넌 곳에서 7~8분 거리로, 석천을 따라 내려가는 입장에서 보면 좌측은 하천, 우측은 산 기슭 사이을 따라 내려오던 탐방로가 농지를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 월류봉 둘레길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다.
현 위치, 월류봉 둘레길 2코스(완정교에서 우매리 까지 3.2km)가 끝나고 3코스 풍경소리길(우매리에서 반야사까지 2.5km)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곳은 위치는 우매리 산 54-1번지 혹은 인근이다.
우매리쪽에서 하천(석천) 상류쪽으로 올려다 보면 석천 좌측편의 농지가 끝나는 지점쯤으로 아래 백화교에서 약 0.9km 상부이며, 지형을 특징짓기 곤란한 이곳을 월류봉 둘레길 2코스의 끝으로 정했다.
영동군에서 이곳을 우매리로 표시했는데 우매리 마을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인근에 2가구의 주택이 있긴 하지만 차라리 백화교까지 월류봉2코스로 정했으면 이해하기 쉽겠다.
위 안내도상 현위치 주변에서 바라본 둑방길이다.
두곳의 징검다리를 건너 산길슭이자 하천변 사이를 따라 내려왔다면 이젠 둑방길을 따라 백학교로 내려가는 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우측편에 이런 주택이 1채 있다.
건너편에는 우매리에서 반야사로 이어가는 길이 하천변 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월류봉 둘레길 2코스 끝, 3코스 시작지점 주변을 나름 상세히 설명했다.
둑방길을 따라 백학교로 간다.
일송.
뭐하는 집이지?
외형은 음식점 같으나 아무런 표시가 없다.
백학교 인근
카카오 지도에는 금강고시원 표시가 있는데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다.
백학전원마을 입구이기도 하다.
이곳 백학교 인근의 이정표,
반야사 3.4km로 표시되어 있고 약 45분쯤 소요되었다.
옥동서원에서 석천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지만 길은 그의 평지수준으로 보면 되며, 주변 경관이 기대했던 것 보다 좋은 길로 기억될 것 같다.
이곳에서 월류봉 둘레길을 따라 월류봉 광장까지는 5km로 표시되어 있다. 월류봉 광장에서 이곳까지 왕복해도 10km 정도이고, 월류봉 둘레길 2코스가 끝나는 우매리 어느 주택앞 지점까지는 0.9km쯤 되므로 이 구간을 포함해도 되나 특별한 것은 없다. 걸음 걷기를 좋아한다면 반야사 탐방까지 포함해도 왕복에 반야사 체류시간 포함 2시간이면 충분하므로 큰 무리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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