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의 산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거제식물원 정글돔, 유치환기념관, 둔덕 기성

정헌의 티스토리 2022. 6. 16. 23:34

■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거제식물원 정글돔, 유치환기념관, 둔덕 기성    

 

    거제는 우리나라 섬 중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하여 해안 둘레길로만 본다면 제주 올레길보다 더 길다한다.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팀이 금차 찾은 곳은 유치환의 작품세계를 둘러보는 유치환기념관과 거제에서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비교적 덜 찾는 몇 곳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찿아본다.

 

 

▷ 가는 길

 

     조선해양문화관은 일운면 ,정글돔은 거제면, 유치환기념관과 둔덕기성은 둔덕면에 위치한다.

 

 

 

 

 

 

▷ 탐방코스 (2022. 6. 12.)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거제민속전시관 - 거제식물원 정글돔 - 중식 - 유치환기념관 - 둔덕 기성

 

 

 

 

▷ 탐방후에

 

    ▣ 거제 조선해양문화관, 거제민속전시관

 

 

    거제 일운면 지세포리 929-88

    거제어촌민속전시관과 조선해양문화관(거제조선테마파크)가 나란히 있다.

 

 

 

 

 

 

    먼저 조선해양문화관을 둘러보러 간다.

 

 

 

 

 

 

 

 

 

 

 

 

 

    조선해양전시관, 조선해양문화관, 거제조선테마파크로도 불린다.

 

 

 

 

 

 

    이용요금은 4D포함  4,000원이다.

    4D는 영상탐험관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

 

 

 

 

 

 

    1층엔 매표소와 놀이시설 같은데 유아조선소, 해양학습실이 있고,

 

 

 

 

 

 

    2층 전시실엔 선박역사관, 조선기술관, 해양미래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박역사관에는 선사시대의 배에서부터 동력으로 움직이는 현대의 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던 배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조선기술관은 조선소의 입지여건, 시설 및 건조 방식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해양 미래관에는 미래 해양 도시, 해양 탐사기지 건설, 해양 건조물을 통한 해양공간 이용 및 해양자원 개발 등 미래의 성장 동력 근원지,

    해양의 무한한 가치를 개발하여 해양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등이 소개되어 있다.

 

 

 

 

 

 

    4D 영상탐험관도 사청해 본 만 하다.

 

 

 

 

 

 

    좌측에 보이는 높은 건물이  '소노캄 거제'

    앞쪽 해안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 좋은 곳이다.

 

 

 

 

 

 

    지세포 해안으로 좌측 멀리 거제대학이 있고, 저곳 해안으로도 걷기좋은 길이 연결된다.

 

 

 

 

 

 

    우측 저쪽,

    해양레포츠 센타가 있다.

 

 

 

 

 

 

    어촌민속전시관도 둘러본다.

    입장권을 집행부에서 관리해서 확실히는 모르지만 해양전시관과 통합하여 둘러볼 수 있지 싶다.

 

 

 

 

 

 

    이곳 전시관에는 '전통의 바다', '생활의 바다', '부흥의 바다', '체험의 바다' 등 4개 주제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해양레포츠센타 앞쪽이다,

 

 

 

 

 

    ▣ 거제식물원 정글 돔.

 

 

    거제 식물원은 야외 공간과 정글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글돔은 4468㎥ 면적에 최고높이 30m,  7472장의 유리로 덮여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 식물원이다.

    돔 내부에는 300여종, 1만 주의 열대 수목이 있으며, 내부에는 석부작 초화원, 석부작 계곡, 포토존, 선인장원, 흑판수, 빛의 동굴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 금액은 경감/ 거제시민, 거제시 장원봉사증 소지자 등

 

 

 

 

 

 

    먼저 정글돔을 둘러본다.

 

 

 

 

 

 

 

 

 

 

 

 

 

 

    정문을 들어서 계단 또는 엘리베이트를 이용 2층으로 오르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안내표지판이 잘 설치되어 있으므로 이를 따르면 된다.

 

 

 

 

 

 

    석부작계곡,

 

 

 

 

 

 

 

 

 

 

 

 

 

 

 

 

 

 

 

 

 

 

 

 

 

 

 

 

 

 

 

 

 

 

 

 

 

 

 

 

 

 

 

 

 

 

 

 

 

 

 

 

 

 

 

 

 

 

 

 

 

 

 

 

 

 

 

 

 

 

 

 

 

 

 

 

 

 

 

 

 

 

 

 

 

 

 

 

 

    거제 정글돔은 사계절 다양한 식물과 생태체험을 통하여 푸르고 풍요로운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며, 식물문화 체험을 통하여 녹색 식물이 주는

    교육문화 가치의 미래 구현에 기여한다.

 

 

 

 

 

 

    또한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연구. 수집을 통하여 지속가능한 생태계 유지 보전에 힘쓰고 있다.

 

 

 

 

 

 

 

    정글돔은 입구와 출구가 구분되어 있다.

 

 

 

 

 

 

 

    출구 맞은 편에 '비내리는 정원'이 있어 이를 통과한다.

 

 

 

 

 

 

    비나리는 정원을 지나와서 되돌아 본 경관이다.

 

 

 

 

 

 

    비내리는 정원을 지나면  '아! 왜? 나무길'이 있다.

 

 

 

 

 

 

    다른 쪽 출구로 나온다.

 

 

 

 

 

 

    정글타워

 

    키와 몸무게에 따라 이용시설이 구분되며, 대충보면

    올리브형(전체 9종 이용) 12,000원

    바나나형(일부 이용)  6,000원

 

 

 

 

 

 

    거제 시조협회의 재능기부 공연도 보고,

 

 

 

 

 

 

    정글돔의 동남쪽 방향이다.

 

 

 

 

 

 

   잔디광장과 여러 온실이 있어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도 되겠다.

 

 

 

 

 

 

    곤충체험관.

 

 

 

 

 

 

    다육식물 전시관

 

 

 

 

 

 

 

 

 

 

 

 

 

    중심부 잔디광장

 

 

 

 

 

 

    이곳은 힐링 허브랜드

 

 

 

 

 

 

    역시 허브랜드 온실이고, 이웃해 국화육묘실도 너르다,

 

 

 

 

 

 

    야생화 온실이든가?

 

 

 

 

 

 

    난 순화온실

 

 

 

 

 

 

    농심테마파크쪽,

 

 

 

 

 

 

    수생학습장

    주변 이곳 저곳 산책삼아 좀 더 돌아볼 수 있다.

 

 

 

 

 

 

    정글돔 앞쪽의 생태수생정원을 끝으로 거제 식물원 탐방을 마친다.

 

 

 

 

 

    ▣ 둔덕면 식당 <아지트>

 

 

    둔덕면소재지에 위치한 음식점이다.

    은근 대기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예약은 되지않으며 선착순이다.

 

 

 

 

 

    이집 메뉴,

 

 

 

 

    ▣ 청마기념관.  생가,  방화카페, 목피화.패각공예

 

 

    카페 방화

    점심식사후 청마생가 뒷편에 위치한 이곳에서 잠시 휴식이다.

 

 

 

 

 

 

    입구,

 

 

 

 

 

 

    내부,

    쉬어가기 좋다.

    안주인에게 말이라도 붙여본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위 카페에 걸려있는 섬사진을 유심히 보면 뭔가 다르다.

    카페의 뒷 정원 한쪽켠에 이 집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청마 생가 뒷집(방하리 2길 12)인 셈이다.

 

 

    월범 정동효

    작품문의   010- 3585 - 1765

    수석, 목피화, 패각공예.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

 

    

 

 

 

 

 

    나무껍질을 자르고 다듬어 붙이기도 하고, 작은 게를 몇 번이고 삷고 다듬어 작품에 이용한다.

 

 

 

 

 

 

    전시 공간은 작은 편이지만 한번 둘러보고 설명도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청마생가 인근에서 바라본 방화카페와 사진상 좌측의 목피화. 패각공예 전시실.

 

 

 

 

 

 

    청마생가

 

    거제 둔덕면은 신라시대는 당시 거제의 명칭이었던 상군의 치소지가 있었고, 고려시대는 기성현의 치소지가 위치한 거제도의 중심지였으며,

    18대 고려 의종이 정중부의 난을 피해 거제 둔덕기성(구 폐왕성/ 사적 제509호)에 피난하여 3년간 둔덕에 거주했다.

    둔덕면의 덕은 '왕'을 뜻하며, 둔은 '머무르다'의 의미를 담은 지명이다,

 

 

 

 

 

 

    초가로 아담하게 윗채와 아랫채가 ㄱ자 배치로 복원되어 있다.

 

 

 

 

 

 

    출생기

 

            청마  유치환

 

    검정 포대기 같은 가마귀 울음소리 고을에

    떠나지 않고 밤이면 부엉이 괴괴히 울어

    남쪽 먼 포구의 백성의 순탄한 마음에도

    상서롭지 못한 세대의 어둔 바람이 불어 오던

    강희 2년!

 

    그래도 계절만은 천년을 다채하여  지붕에 박넌출 남풍에 자라고

    푸른 하늘엔 석류꽃 피 뱉은듯 피어

    나를 잉태한 어머니는 

    짐즛 어진 생각 만을 다듬어 지니셨고

    젊은 의원인 아버지는 

    밤마다 사랑에서 저릉저릉 글 읽으셨다.

 

    왕고못댁 제삿날밤 열나흘 새벽 달빛을 밟고

    유월이가 이고 온 제삿밤을 먹고 나서

    희미한 등잔불 장지 안에

    번문욕례 사대주의의 욕된 후예로

    세상에 떨어졌나니

 

    신월같이 슬픈 제 족속의 태반을 보고

    내 스스로 고고의  곡성을 지른것이 아니련만                (울 고)

    명이나 길라하여 할머니는 돌메라 이름지었다오.

 

           이천십육년 초겨울  이창 구기문

 

 

 

 

 

    잠시 생가를 둘러보고,

 

 

 

 

 

    청마기념관으로 왔다.

 

 

 

 

 

    유치환(1807~1967)은 거제 둔덕면 방하리에서 태어나,  2살때 통영으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냈다. 통영공립보통학교(현 통영초등학교) 4학년을 수료

    하고 일본 토요야마 중학교에 유학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였고,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했다.

    시를  쓰면서 한때 시진관을 경영하기도 했고  그 뒤 여러 작업을 전전하던 중 1937년(29세) 통영으로 귀향하여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가 되었다.

    1940년 만주로 피신했다가 해방 후 귀국하여 다시 교육계에 투신, 충무. 부산. 경주 등지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였다. 훗날 안의중학교 교장을 시작으로 경주고. 경주여고.경남여고.대구여고.부산남여자상고 교장을 역임했다.

    청마기념관은 2008넌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인 이곳 방하리에 세워진 문학기념관이다.

    유치환이 시에서 탐구했던 인생의 의미는 사람. 생명. 그리고 사회이다. 사랑은 실재로 이루어지지 못한 자신의 경험을 토태로 님과 함께 하는

    기쁨이 아니라 님과 합일될 수 없는 아픔을 노래한다. 청치나 종교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사회적 격동기를 지나며 창작된 시에서는 생명을

    노래한다.

 

 

 

 

 

 

    청마 유치환이 초기시부터 후기시까지 꾸준히 탐구했던 명제는 생명에 대한 탐구이다. 하지만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생명보다 삶의 한계를

    노래하며 신 대신 초인을 기다리며 현실의 허무를 주로 표현한다.

    실제 유치환은 '시는 인생을 담는 그릇'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치환은  광복 직전에 귀국하여 통영여자중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당시 가사 교사로 근무했던 시조 시인 이영도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사랑에 빠진 유치환은 처음만나게 된 1947년 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이영도 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1967년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가 5,000여 통이었다. 이영도는 그 편지 중 일부(200통)를 간추려 유치환 사망 두달후에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으며, 당시로는 기록적인 25,000부를 찍어냈다한다, 

    문제는 그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으며, 이영도는 21세에 남편을 잃고 외동딸을 홀로 키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현실의 만남을 갖지 않았다고 하나 이영도도 싫어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흔들렸다? 쪽이었던것 같다. 출판물에 대한 판매수익이 문제가

    되어 판매수익은 모두 기부했다고 하며, 유치환의 아내는 죽어 유치환의 무덤이 보이지 않는 곳에 묻어달라고 했다하나 실제는 합장되어 있다한다.

    청마묘소는 현 이곳 방하리 유씨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한다.

 

 

 

 

 

    행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이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곁에 시달리고 나부까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뜻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편지>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면, 그러나 얼굴을 부벼 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 드는 지고, 덧없는 목숨이여 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 같이 요지경 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의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깝지 않은 정향

    

    - 52년 6월 2일 당신의 마.

 

 

 

 

 

 

    그리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즉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무제 1  / 이영도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하지만 유치환은 일본 동경의 유학시적에 고향 소꿉친구인 권재순에게 열정에 가득찬 편지를 쓰며 결혼에 성공했고, 당시 통영의 젊은이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결혼 후 부인 권재순시는 통영에서 문화유치원을 운영했다.

 

 

 

 

 

    병처

 

    아픈가 물으면 가늘게 미소하고

    아프면 가만히 눈감는 아내.....

    한 떨기 들꽃이 피었다 시들고 지고

    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또한 죽어가다

    이 앞에서는 전 우주를 다하여도 더욱 무력한가

    내 드디어 그대 앓음을 나누지 못하나니

    아아 그대는 일찍이

    나의 청춘을 정열한 한 떨기 아담한 꽃

    나의 가난한 인생에

    다만 한 포기 쉬일 애증의 푸른 나무러니

    아아 가을이런가

    추풍은 소조히 그대 위를 스쳐 부는가

 

 

 

 

 

 

 

 

 

 

 

 

    마을앞 주차장가의 노거수,

 

 

 

 

 

    ▣ 둔덕 기성

 

 

    청마기념관에서 건너다 보이는 곳,

    이곳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승용차 ( 25인승 버스도 가능)는 오를 수 있다.

 

 

 

 

 

    주차장 옆으로 우두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이 등산로는 여러해 전 오른적이 있으며, 당시 주 능선상에 수풀 무성하여 조심스레 진행했었다.

 

 

 

 

 

 

    우두봉은 오량마을에서 적의 임도를 이용하면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등산로가 부분적으로 표시되어 있어 임도와 연계한 지도를 만들었으면 더욱 좋겠다.

 

 

 

 

 

 

    둔덕기성으로 간다.

 

 

 

 

 

 

    둔덕기성은 크지않은 산성이다.

    성곽주변으로 한바퀴 돌아보면 된다.

 

 

 

 

 

   일부 성곽을 보수하였지만,

 

 

 

 

 

    대부분 무너진 상태로 있다,

 

 

 

 

 

 

    동문 안으로 들어서면 좌 우 어느쪽으로 한바퀴 둘러봐도 된다.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아 본다.

 

 

 

 

 

 

   집수정

 

    둔덕기성은 고려시대 의종(1146~1170)이 정중부의 난에 의해 폐위되면서 이곳에 거주하였다고 전해져서 폐봥성이라고 불리었으나, 

    2010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 따라 '거제 둔덕기성'으로 변경되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에 의하면 7세기

    신라시대에 처음 축조되었고, 그 이후 고려시대 12세기 무렵 수축되었고, 조선시대 전기까지 계속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성내 남동쪽 낮은 지대에 위치한 집수지 역시 7세기대에 산성의 축조와 함께 조성되었다.

    집수지는 유사시 장기농성을  위해 필수적인 물을 저장하는 시설로 7세기대 처음 축조된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초까지 모두 3차에

    걸쳐 이용한 흔적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고려말 1170뇬(의종24) 9월 매일 호사스러운 연회를 베풀면서 무신을 경멸하였던 의종은 무장들을 위로하기 위해 연회를 베풀엇다.

    이 자리에서 문신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자 정중부 등 무신들이 문신을 모두 죽여 반란을 일으켰다. 

    폐위된 의종은 거제도로 쫓겨와 둔덕 기성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후  신하인 장순석의 권유로 복위를 위하여 경주를 거쳐 서울로 가던 중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1173년(명종3) 10월 경주에서 장군 이의민에게 허리가 꺾여 47세로 사망했다.

    

 

 

 

 

 

    남문지 인근이다.

    성내의 완만한 경사지와 달리 좀은 급하게 경사를 이룬 이룬쪽으로 성이 축조되어 있다.

 

 

 

 

 

 

    남문지

 

    둔덕기성 남문의 경우, 고려시대에 삼국시대 성벽 바깥쪽으로 성벽 일부를 확장하면서 새로 문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한다.

 

 

 

 

 

 

    고려시대  및 성내 건물지

    고려시대 건물지는 11동이 조사되었는데 둔덕기성 남쪽으로 가장 넓은 평탄지에 집중되어 있고 역시 주변  다수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서문지

    서쪽으로 견내량을 비롯한 통영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둔덕기성의 가장 높은 곳으로 왔다.

 

 

 

 

 

 

    서문지에서 이곳으로 이르는 구간은 견내량과 통영일원 조망이 좋다.

 

 

 

 

 

 

    석환군

 

    인근 바닷가의 몽돌을 투석용 무기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성내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대부분 직경 10~20cm 크기의 원형 및 타원형 몽돌로서 성내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 한다.  특히 성내 정상부 암반의 남족에 연접한 장타원형의

    넓은 범위에서 약 2,000여 개 정도로 추산되는 석환군이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의 삼국 ~ 조선시대의 성곽에서 성나 농성시 방어용 투석제로 사용된 석혼이 흔히 발견되는데 이와 같이 대량으로 확인된 경우는

    거의 없으며 남해 임진산성에서 석환군이 확인된 바 있다.

 

 

 

 

 

 

    한편, 우리나라 산성 중 성내에 성황당을 짓고  마을을 수호하는 성황신에 제사를 지내거나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으로서의 기능을

    겸비하는 사례도 있어 둔덕기성의 제사장으로서 이용하였을 거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주변에서 출도된 기와 및 토기편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현지 석환군 안내문에서>

 

 

 

 

 

 

    저장고

  

    둔덕기성의 성내 최북단에 위치하는 저장고는 성내에서 소요되는 여러가지 식품류와 경장 등을 위한 씨앗류 등의 저장을 위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장고는 북쪽 성벽 하부의 자연암반층 및 기존 대지조성층을  1~1.7m깊이까지 방향으로 굴착한 후, 굴착면에 덧대어 방형 석축을 조성

    하였다하나 육안으로 보기엔 저장고 같은 느낌은 들지않고 안내문만 있다.

 

 

 

 

 

 

    동문지

    고려시대 문지 아래에서 확인된 삼국시대의 동문지는 사다리 등을 통해 성내로  진입 할 수 있는 현문(일명 다락문) 구조라 한다.

 

 

 

 

 

 

    둔덕기성 입구에는 동래로 유배온 정서가 의종을 그리워하면서 지었다는 정과정곡 시비가 있다하나 보지못했다.

 

    정과정곡

 

    내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 내 님을 그리워하여 울고 있더니

    산 접동새 난 이슷요이다.     / 접동새가 나와 (그 울고 지내는 모양이) 비슷합니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 (그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거짓인 줄을

    잔월효성이 아시리이다.      / (오직) 지새는 새벽 달과 새벽 별만이 (저의 충정을) 아실 겁니다.

    넉시라도 님은 녀져라 아으 / (살아서 임과 함께 지내지 못한다면) 죽은 혼이라도 임과 한자리에 가고 싶습니다.

    벼기시더니 뉘러시니잇가   / (임의 뜻을)어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과도 허물도 천만 업소이다. / (참으로) 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힛 마러신뎌   / (임께서 죄 없는 몸이라고 용서하시고 소명하실 줄 알았더니)말짱한 말씀이었구나(거짓말이었구나)

    읏브뎌 아으                                /(정말) 죽고만 싶은 것이여.

    니미 나 마 니시니잇가                / 임께서 벌써 저를 잊으셨습니까

    아소 남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 임이시어, 돌려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둔덕기성 탐방을 끝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