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안동 퇴계종택과 선비문화수련원. 퇴계기념공원, 퇴계 묘소와 동암종택(수졸당), 이육사 문학관과 목재고택, 이원영목사 생가. 토계동 계남고택

정헌의 티스토리 2025. 5. 11. 21:40

■안동 퇴계종택과 선비문화수련원, 퇴계묘소, 동암종택(수졸당), 이육사 문학관

 

안동 군자마을, 예끼마을에서 중식 후 도산서원을 둘러보았습니다.

퇴계종택과 선비문화수련원, 퇴계기념공원이 서로 인접하여 있고, 하천 건너편에 계산서당, 고계정이 보입니다만 시간적 여유도 없어 먼 발치로 저곳이구나 하며 지나쳤습니다.

퇴계 이황선생 묘소는 동암종택 서쪽 능선상에 있어 약 150m정도 능선을 따라 올라야 하며 동암종택과 같이 둘러보면 되며, 잘 지어진 이육사 문학관과 인근마을에 목재고택과 이원영목사 생가가 있습니다. 차창으로 보면 저곳이구나 감이 잡히는 곳입니다.

토계동 계남고택은 현지 카카오 지도상에는 있지만 실물은 안동시로 이건해 갔다고 현지 주민이 알려주어 헛걸음 했습니다.

 

 

▷일정

(계산서당) - 안동 퇴계종택과 선비문화수련원, 퇴계기념공원 - (고계정) - 퇴계묘소, 동암종택(수졸당) - 이육사 문학관 - (목재고택, 이원영목사 생가) - (토계동 계남고택은 안동시로 이건)   /2025. 5. 6.

 

▷탐방후에

 

◐안동 계산서당

 

퇴계종택 조금 못미쳐 개울 건너편에 계상서당이 있습니다.

 

 

 

 

 

계상서당

이만큼 도로변에서 건너다 보는 것으로 합니다.

 

 

 

 

 

도로변에 계상학림중건비(溪上學林重建碑)가 있습니다.

 

퇴계선생께서 50歲時 벼슬에서 물러나 이듬해 조그마한 서당을 지어 독서와 저술에 정진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곳이 계상서당이다. 이곳은 도산서당 이전 선생의 정좌수련과 강도전수의 수도처로 선생의 도학이 시작되고 꽃피워진 곳이다. 일찍이 농암선생께서 자주 방문하셨고 율곡선생께서도 23세시에 이곳에서 사흘동안 머무르면서 도학을 전수받으셨던 유서 깊은 곳이며 선생은 이곳에서 일생을 미치셨다. 계상서당은 비록 작은 집이지만 만물일체(萬物一體)라는 선생의 사상은 우주를 아우르는 크고 넓으신 것이다. 서당 앞을 흐르는 실계천은 선생이 은퇴하여 퇴계수가 되었고 주변에 거처하시던 집과 자연은 선생의 깊은 학문과 사상이 깃던 도학의 淵源處(연원처)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선생의 자취가 모두 없어져 안타깝게 여겼는데 1715년  창설재 권두경 선생이 앞장서서 추월한수정을 짓고 도학연원방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1997년 청민 권오봉교수의 없어진 유적 고증으로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溪上書堂, 寒栖庵(깃들일 서), 溪齋 등 옛 유적을 중건하게 되니 후학들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선생의 講道遺躅(강도유탁/머뭇거릴 촉, 자취 탁)을 통틀어 계상학림이라 하고 선현들의 뜻에 따라 이 마을 전체를 계상도학연원방이라 부른다. 계상학립중건사업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선생의 도학을 체득케하여 선현들이 걸으셨던 도덕의 길로 걸어가게 하는데 그 뜻이 있다. 그간 퇴계선생의 유적복원과 보존사업에 힘써주신 이의근지사, 김관용지사, 김광림 국회의원, 정동호시장, 김희동시장, 이삼걸부지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그 동안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표하면서 이 비를 세우다.

2011년 4월 24일

 

 

 

◐ 퇴계종택, 

 

계상서당쪽에서 살짝 당겨본 퇴계종택입니다.

 

 

 

 

 

퇴계종택 솟을 대문은 닫혀있습니다.

 

 

 

 

 

우측 추월한수정 솟을대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봅니다.

 

 

 

 

 

추월한수정

 

 

 

 

 

추월한수정 좌측 뒷편에 사당이 있습니다.

 

 

 

 

 

추월한수정에서 퇴계종택 사랑채로 이어지는 문이 있습니다.

대문이 닫혀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 봅니다.

 

 

 

 

 

퇴계종택 / 경상북도 기념물

 

종택이란 한 가문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 온 집을 말한다. 퇴계종택은 조선시대의 학자 퇴계 이황 가문의 종택으로, 이황의 장손인 이안도(1541~1584)가 처음 지었다. 그러나 이안도가 지은 원래의 건물은 1907년에 불에 타 소실되었다. 지금이 가옥은 이황의 13대손 이충호가 1926년부터 3년에 걸쳐 새로 만든 것이다.

퇴계종택은 정침(평소에 거처하는 살림채 및 제례를 거행하는 장소)과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은 'ㅁ'자형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배치되어 있으며, 행랑채로 통하는 솟을대문에는 이안도 부인 안동 권씨의 절개를 기리는 정려가 걸려있다. '퇴계선생구택'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대문을 지나면 정자 영역에 도달한다. 정자 영역에는 조선시대의 문신 권두경(1654~1725)이 숙종 41년(1715)에 이황을 추모하여 지은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이 있다. 원래의 정자는 1896년 일제에 의하여 불탔고, 1926년에 400여 문중의 성금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재 추월한수정은 수련생을 강의하거나 문중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있습니다.

 

 

 

 

 

퇴계종택을 둘러보고 앞쪽에서 바라본 건너편입니다.

좌측과 우측에 범상치않은 한옥 건물이 보입니다. 카카오 지도로 검색하면 우측의 건물이 고계정입니다.

 

 

 

 

 

퇴계종택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좌측편 골짜기에 퇴계수련원이 있습니다. 퇴계기념공원과 연계하여 올라봅니다.

퇴계종택에서 100여m로 표시되어 있으나 이보다는 살짝 더 되어보입니다.

 

 

 

 

 

중간 퇴계선생 시비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선비문화수련원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퇴계종택

 

 

 

 

 

산수헌

 

 

 

 

 

선비문화수련원입니다.

 

 

 

 

 

퇴계선생동상

 

 

 

 

 

수련원이기에 외형만 둘러봅니다.

 

 

 

 

 

윗쪽에 수련원의 다른 건물이 보입니다.

 

 

 

 

 

수련원에서 퇴계기념공원으로 내려갑니다.

 

 

 

 

 

 

 

 

 

 

 

퇴계명상길

 

이곳은 퇴계선생의 학문과 사상이 깃들어 있는 우서 깊은 계사상학림으로서 선생께서 산 넘어 도산서당을 오가며 우주와 자연을 벗 삼아 사람의 도리를 추구허였던  '퇴계명상길'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런 연유로 2001년 '퇴계선생탄신500주년'기념 시비 공원과 2011년 도산서원 선비수련원 시설이 함께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있는 명상길 첫머리에 요즈음 건강 요법으로 각광받는 맨발 걷기 길을 이 도산 지역세서 채취된 신비의 광물 레드-일라이트(Red-Illite, 적운모)를 사용하여 조성하였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고계정

우측 한옥건물 인근에 있는 것이 고게정인것 같습니다.

 

 

 

 

 

윗 사진 좌측의 건물

 

 

 

 

 

고계산방(古溪亭)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휘령(1788~1862)이 거처하였던 곳으로, 예안읍지인 <선성읍지>의 누정조를 보면 고계정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휘령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군목, 호는 고계이다. 1816년(순조16) 생원에 급제하여 세자익위사세마, 의금부도사, 호조좌랑, 동복현감, 서산군수, 영천군수, 동래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고계집 8권 4책'을 비롯하여 '십도고증'이 있고. 국문으로된 '방경무도사'도 전한다,

고계산방은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쓴 '고계산방'이란 현판이 전해져 왔으나 수년 전에 분실되었으며, 정면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로 현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구들과 지붕이 일부 꺼지는 등 건물상태가 매우 퇴락하여 수리와 보존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는데 현재의 상태는 모르겠습니다.

<디지탈안동문화대전>

 

 

 

◐퇴계선생 묘소

 

퇴계선생 묘소 입구에 조그만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동계종택을 같이 둘러볼려면 마을앞에 주차할 수 있으나 지형이 좁으므로 이곳에 주차해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퇴계선생 묘소 입구

 

 

 

 

 

계단길을 따라 능선을 올라야 합니다.

 

 

 

 

 

봉화금씨 묘소(퇴계선생 며느리)

이곳에서 100m 더 올라가야 퇴계선생 묘소가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맨 앞쪽 양꼭의 문인석? 몸집이 상당하다.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퇴도만은지성이공지묘)

 

 

 

 

 

한켠의 이 돌은 과거 상성이었을까?

 

 

 

 

 

 

 

 

 

 

 

 

 

 

 

 

◐동암종택(수졸당)

 

퇴계선생묘소 입구의 마을에 동암종택이 있습니다.

 

 

 

 

 

마을 앞,

 

 

 

 

 

동암종택

 

 

 

 

 

수졸당 및 재사 / 민속문화유산

 

수졸당은 조선 시대의 저명한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의 손자인 동암 이영도(1559~1637)가 분가할 때 지은 것으로 알려진 살림집이다. 수졸당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후손들이 이영도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사(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건축물)이다. 수졸당은 17세기에, 재사는 18세기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집의 뒷산에는 이황, 앞산에는 이영도의 묘소가 있어 재사에서 두 사람의 묘제를 함께 모신다. 이영도는 이황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며 총명했기에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웠으며, 전쟁 중 군량미를 조달함으로써 공을 세웠다.

수졸당과 재사는 원래 현 위치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5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건축 구조를 보면 수졸당은 'ㅁ'자형 본채, 정자,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재사는 대문채와 몸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집의 이름은 이영도의 맏아들 수졸당 이기(1591~1654)의 호에서 따왔는데, 때로는 이영도의 호를 따서 동암종택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지 안내문에서>

 

 

 

 

 

 

 

 

 

 

 

 

 

 

 

 

 

 

 

 

 

 

 

 

 

 

 

 

 

 

 

 

 

 

 

 

 

 

 

 

 

 

 

 

 

 

 

 

 

 

 

 

 

◐이육사 문학관

 

이육사문학관이 도로변에 접하여 있고, 도로 아랫쪽 강변?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저만큼 좌측으로 쬐끔 보이는 마을에  목재고택과 이원영목사 생가가 있습니다.

 

 

 

 

 

이육사 문학관

시골 한적한 곳이어서 문학관도 조그만하려나 생각했느데 규모가 상당합니다.

 

 

 

 

 

입장료 일반 2,000원, 경로 무료

 

 

 

 

 

로비

 

 

 

 

 

 

 

 

 

 

 

 

 

 

 

 

 

 

 

 

 

 

 

 

 

 

 

 

 

 

 

 

 

 

 

 

 

 

 

 

 

 

 

 

 

 

 

 

 

 

 

 

 

 

 

 

 

 

 

 

 

 

 

 

 

 

 

 

 

 

 

 

 

 

 

 

 

 

 

 

 

 

 

 

 

 

 

 

 

 

 

 

 

 

 

 

 

 

 

 

 

 

 

 

 

 

 

 

 

 

 

 

 

 

교목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붙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어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이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곡 길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문학관 뒷쪽의 이 건물은?

청포식당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데 영업은 안하는 것 같아보입니다.

 

 

 

 

 

 

 

 

육우당(六友堂)

본 가옥은 이육사(1904~1944)의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이다. 원래의 이육사 생가는 현재 청포도 시비가 세워진 자리(원천리 881번지)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인하여 1976년 4월에 안동시 태화동(포도골)으로 이건되었다. 그러나 소유주가 바뀌면서 원형이 변질되어 생가로서의 기능이 훼손되었으므로 이곳에 고증을 거쳐서 복원하게 되었다. 이 집에서는 육사와 맏형 원기, 아우 원일, 원조, 원창, 원흥 육형제가 태어났으며 육사는 여기서 열여섯 살 되던 해 까지 살았다. 육형제의 우의를 기리는 뜻으로 당호를 육우당이라 지었다 한다.

이 건물의 구조는 "ㅁ"자 형태이며 앞채는 사랑채로 방 두 칸, 중간 마루 한칸이고 뒤채는방 두 칸,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으로 지어졌다. 사랑채의 오른편은 팔작지붕인 반면 왼편은 맞배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목재고택, 이원영목사 생가

 

이육사 문학관을 지나면 이내 위치한 원천리마을입니다.

많은 집들로 구성된 마을이 아니어서 쉽게 고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도로변에서 대충 위치만 가늠합니다.

 

 

 

 

 

카카오지도를 보면 목재고택과 이원영목사 생가는 서로 이웃하여 있습니다.

 

 

 

 

◐단천리  /토계동 계남고택

 

토계동 계남고택을 찾아 단천리에 왔습니다.

몇 안되는 마을에 심증이 가는 고택이 보이지 않아 지역주민에게 계남고택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지역 주민의 말로는 관리가 안되어 안동시내로 이건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