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지역의 산

고령 대가야 둘레길

정헌의 티스토리 2024. 12. 8. 21:45

■고령 대가야 둘레길 / 대가야생활촌,대가야 고분길, 고령향교, 당간지주,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고이리 벽화고분, 상무사 기념관

 

고령에 가야할 일이 생겼다.

가는 김에 시간을 내어 고령 고분군 일원을 둘러보기로 한다. 대가야 생활촌에서 출발하여 고분군과 고령읍내을 한바퀴 돌아 보는 일정이다.

 

 

▷탐방코스

대가야생활촌 - 대가야기마문화체험장, 모듬내캠핑장 - 대가야 고분길 - 고령향교 - 당간지주 -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 고이리 벽화고분, 상무사 기념관 (2024. 12.  5.)

 

▷탐방안내도

오늘 둘러본 코스는 1코스와 2코스의 조합이다.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가볍게 둘러보기에는 좋은 코스다.

 

 

 

▷탐방후에

 

◐대가야 생활촌

 

대가야 생활촌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주차료는 없으며,  입장료는 무료관람이다.

생활촌 정문 앞 광장에 대가야 종각을 세웠다.

 

 

 

 

 

대가야 생활촌 정문이다.

서쪽에도 문이 있어 야영장쪽과 연결된다.

 

 

 

 

 

정문을 들어서니 대가야 생활촌 영상관?이 지하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먼저 둘러본다.

 

 

 

 

 

프론트,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몇 볼거리와 영상관 등이 있다.

 

 

 

 

 

주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영보관? 옥상(위)로 올라본다.

1층 건물을 흙으로 덧 씌웠으니 옥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가야 시대 생활상을 재현해 놓았다.

 

 

 

 

 

대가야 건국신화 상징조형물 "대가야의 탄생"

 

대가야의 건국신화는 "가야산신 정견모주의 하늘신인 천신 이비가와 감응으로 두 아들이 탄생하였으며, 첫째는 대가야의 시조왕인  이진아시왕(뇌질주일)이 되었고, 둘째는 금관가야의 시조왕인 수로왕(뇌질청예)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신중동국여지승람)

 

 

 

 

 

주거지

 

대가야 사람들은 낙동강 주위의 비옥한 땅에서 논농사를, 구릉지에서는 밭농사를 지었다. 주식은 벼와 보리를 비롯한 오곡이었으며, 산나물과 과일 등을 먹기도 했고, 소나 닭 등을 길렀다. 음식은 주로 시루에 쪄서 조리를 했으며, 접시나 항아리에 담아 수저와 국자로 먹었다.

생활은 주로 화덕과 난방시설이 있는 움집에서 생활했다. 움집은 바닥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뒤 짚이나 갈대를 덮었다. 바닥 모양은 주로 원형이 많았으나 정사각형과 직사각형도 발견되며 오늘날의 원룸처럼 1칸 짜리 구조를 가졌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포목점 건물이다.

대가야의 남자들은 평상시 바지와 저고리에 겉옷을 입고 모자를 썼다. 여자들은 치마와 저고리, 겉옷을 입고 모자 대신 머리장식으로 머리를 꾸몄다.

대가야의 금관은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신라의 금관과는 다른 풀잎 모양이다. 테두리에 새겨진 정교한 물결 무늬는 처음에는 곡선이었다가 후기에는 직선에 가까운 모양으로 바뀌었다. 후기에는 달개장식과 곱은 옥이 달리는 등 장식적인 요소가 강해졌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이곳은 불묏골

대가야 철기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봉수대도 있고, 한약재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이곳은 한기촌 초가마을로, 숙박시설로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은 한기촌 기와마을

 

 

 

 

 

고령어린이과학체험관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문은 닫혀있다.

 

 

 

 

 

주산루

고령어린이과학체험관 윗쪽(옥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뒷산인 주산의 이름을 따 주산루라고 하였나 보다.

 

 

 

 

 

연못도 조성되어 있다.

 

 

 

 

 

이웃하여 공방촌이 있고. 이곳은 생활촌 점방이 있는 곳인데 썰렁하여 보인다.

간식 등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인데 영업을 하는 듯도 싶고, 하지 않는 듯도 싶다.

 

 

 

 

 

이곳은 어린이 놀이터

 

 

 

 

 

 

 

 

 

 

 

주산통문 현판을 달고 있는 이곳 생활촌의 서쪽 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대가야 기마문화체험장 또는 모듬내캠핑장과 연결된다.

 

 

 

 

◐ 대가야체험캠프

 

이쪽 지역은 캠핑장이 주류를 이루고 승마체험을 할 수 있다.

 

 

 

 

 

 

 

 

 

 

 

 

 

 

 

 

 

제법 넓은 면적에 상당한 규모로 다양한 종류의 텐트가 쳐져있다.

몸만 오면 될 듯 한데  이용객은 극소수인 듯 한산하다.

 

 

 

 

◐ 대가야 둘레길

 

 

 

 

 

 

 

이 길은 작업용 차량외 출입은 통제한다.

저기 보이는 고개를 넘어야 함으로 약간 오르막 길이다.

 

 

 

 

 

중간 쉼터도 만들었다.

 

 

 

 

 

위 쉼터에서 내려다 본  대가야생활촌 방향

 

 

 

 

 

 

 

 

 

 

 

 

고개에 갈림길이 있다.

좌측 능선(대가야 고분관광로, 왕릉 전시관(0.8km)) 으로 방향을 잡는다.

 

 

 

 

 

팔각정을 지나,

 

 

 

 

 

임종체험관으로 2동이 있다.

대가야 무덤 중 돌덧널무덤(석곽묘)을 재현한 곳으로 임종체험을 통해 자신에 대한 반성과 현재와 미래의 삶을 생각해 보는 체험장소이다.

 

 

 

 

 

이곳 골짜기는 가야역사테마관광지로 꾸몄다

능선으로 진행하여 고분군 끝까지 오른 후 나중 이곳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이곳은 야영장 구역이다.

보이는 건물 뒤 또는 옆으로 데크를 만들어 두었다.

 

 

 

 

 

제518호분 270m

대가야 박물관 1.1km,

주산성 1.9km

 

 

 

 

 

이곳 이정표

 

지나온 대가야생활촌 1.0km,

주 능선방향으로 대가야 박물관 1.45km로 표시되어 있다.

 

 

 

 

 

주 능선을 따른다.

 

 

 

 

 

이내 고분군이 시작된다.

 

 

 

 

 

 

 

 

 

 

 

지산동518호분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봉분의 크기는  1408~1604m이고,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발굴조사로 확인되었다.

 

 

 

 

 

 

 

 

 

 

 

 

 

 

 

 

 

우측으로 살짝 튀어나간 지능선이다.

 

 

 

 

 

고령읍내가 조망된다.

 

 

 

 

 

되돌아 주 능선을 따른다.

이 구간은 대체로 완만한 오르내림으로 힘든 곳은 아니다.

 

 

 

 

 

 

 

 

 

 

 

저만큼 대가야 박물관이다.

앞쪽으로 지나가는 도로가 살짝 보인다.

 

 

 

 

 

대가야박물관 앞쪽을 지나는 도로의 상부인 셈이다.

살짝 내려섯다 오르게 된다.

 

 

 

 

 

 

 

 

 

 

 

이후 고분군 오름길은  지나온 곳보다는 경사가 심해진다.

 

 

 

 

 

 

 

 

 

 

 

지산동 32~35호분

 

 

 

 

 

갈림길이 있는 고분이다.

 

 

 

 

 

처음엔 이 길을 따라 내려갈까도 했다.

 

 

 

 

 

 

 

 

 

 

 

 

 

 

 

 

 

 

 

 

 

 

 

지산동 45호분

 

 

 

 

 

 

 

 

 

 

 

가야고분군은 입지와 군집, 묘제와 부장품을 통해 1세기부터 6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가야의 정치, 문화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가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며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발전해 나갔으나, 가야 각국들은 독립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상호교류을 통해 문화를 공유하는 연맹왕국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생활, 생산기술, 장례의식을 통해 각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동감감을 나타내었다. 고분에 부장된 각종 물품은 가야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고, 동아시아 각국과의 교류관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가야는 동아시아 고대국가 형성기의 여러 정치 형태중에서 연맹왕국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가야의 7개 고분군은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맨 윗쪽에 있는 고분으로 제1호분이다.

 

지산동고분군은 5세기부터 6세기까지 가야 북부지역에서 후기가야의 주요세력으로 성장한 대가야 지배자들의 무덤들이다. 고분군은 높은 산자락에 위치하여 경관이 빼어나며 가야 고분군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고분의 규모가 클수록 전망이 좋고 높은 곳에 위치하며 큰 고분 주위에는 작은 고분이 호위하듯 배치되어 있다.  44. 45. 72. 75호분 등 대형 고분은 으뜸덧널 주위에 10~40여 명의 순장자를  함께 묻어 지배층의 무덤임을 잘 보여준다.

고분에 부장된 각종 유물은 대가야의 문화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대가야 양식의 토기는 5세기 후반이 되면 합천과 남원 등 가야 전역에서 출토되어 후기 가야연맹을 주도한 대가야의 영향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44호분에 부장된 백제 무령왕릉 출토품과 같은 형태의 청동그릇, 일본 오키나와산 야광조개로 만든 국자,  45호분에 부장된 신라 황남대총 남분 출토품과 같은 형태의 세잎무늬 고리자루큰칼, 일본 전역에서 출토되는 대가야 양식의 귀걸이와 마구류 등은 대가야의 활발한 교류관계를 잘 보여준다.

지산동고분군은 가야 사회의 계층구조와 대내외 문물교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가야 후기의 대표 고분군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맨 윗쪽 고분 뒤의 이정표 방향이 애매하지만 능선을 따라 계속 오르면 주산성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보이는 길을 따르면 충혼탑 및 고령향교로 가는 길이다.

고분박물관과 고령읍내 중심지와 멀지않은 거리임으로 고령향교쪽으로 내려간다.

 

 

 

 

 

고령향교로 내려가는 길

초반은 완만한 능선사면으로 길이 이어진다.

 

 

 

 

 

산이 날 에워싸고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보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심고

들질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고령 주산성

 

주산성은 대가야시대의 산성으로 내.외성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주산성의 규모는 둘레 1,789m, 면적 104,494㎡(내성 둘레 368m, 면적 21,479 ㎡, 외성 둘레 1,420m, 면적 83,015 ㎡)정도이며, 주산 탐방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반을 깨서 성돌을 만들어 구축한 석축산성이다.

외성의 추정남문지 부근에 배수시설과 보강시설을 갖춘 6세기 전반 대가야의 석축산성이 확인되었으며, 내성벽 추정범위 및 2곳의 내.외성 접합지점 중 동편 접합부분에 대하여 조사를 진행하여 내성의 구조와 성격 및 내성벽의 존재 여부 그리고 외성과 비교한 축조시기 등을 확인하였다.  또한 내성내 평탄지에서는 대가야 말기에 축조된 곳으로 추정되는 지하 저장시설인 목곽고가 확인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발췌>

 

 

 

 

능선 사면으로 주산성이 이어가지만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월담정시 (月潭亭詩)  / 남명 조식

 

가야고국산연총(伽倻古國山連塚)  가야국 옛 무덤은 산위에 이어지고

월기황촌망차존(月器荒村亡且存)  원기(지산리)쓸쓸한 마을은 없어졌다 다시 사네

소초빈빈춘대색(小草斑斑春帶色)  어린풀은 아롱아롱 봄 기운이 한창인데

일년소거일촌혼(一年消却一 村魂) 겨울이면 말랐다가 이듬해 그 혼 다시 돋네

 

 

 

 

 

 

 

 

 

 

 

주산은 대가야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이 일대에 문화선양과 휴양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산주 김태호씨의 협조로 산림욕장을 만들었다.

충혼탑에서 반룡사, 미숭산에 이르는 8km의 등산로와 명상의 숲, 벚꽃, 철쭉단지 조성, 그리고 청금정을 세워 이고장의 명소로 만들었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변은 산림욕장으로서의 기능은 부족해 보인다. 

 

 

 

 

 

 

 

 

 

 

주변에 묘비와 이 건물이 묘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조금 내려오면  갈림길이 있다.

사진은 내려와서 올려다 본 모습이다.

좌측 길이 내려온 길이다.

우측 길은 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현충탑은 사진에 보이지 않지만 앞쪽 지능선상에 있다.

 

 

 

 

 

위 갈림길 앞쪽 현충탑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저만큼 테크 갈림길이 있어 어디로 갈까 잠시 망셜였지만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것이 낫다.

 

 

 

 

 

내려가는 입장에서 볼 때 좌측에 고령군민독서실이 있고,

 

 

 

 

 

조금 아랫쪽에 광복지사 영주 김상덕선생 사적비가 있다.

 

김상덕(1891~납북, 1990년 독립장) 선생은 고령출신으로 동경유학중 조선기독교 청년회관에서 2.8독립선언 11인 대표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던 중 피체되어 옥고를 치른후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이후 만주로 옮겨 김동삼, 이청천, 김좌진 등과 "전민족유일책진회"를 결성 항일 운동에 진력하였고, 1943년 임시정부 의정원 학무위원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셨고, 1944년 임시정부 국무위원(문화부장)으로 재임중 조국광복을 맞아 김주 주석, 김규석 부주석과 함께 임시정부요인으로 귀국하였으며, 1948년 고향 고령에서 건국 초대제헌국회위원에 당선되어 국회헌법기관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어 매국 친일 청산에 주력하다 6.25사변때 납북되었다.

 

 

 

 

맨우측에서 좌측으로,

애국지사 장로 최영돈선생 현창비, 김천 개령 동부동일대 독립운동 주도, 임시정부 독립 공채 모집 호응

애국지사 백농 김재열선생 현창비, 대한광복회원으로 활약 대구부호 서창규에게 군자금 수합

해파 곽태진선생 항일독립운동 현창비,비밀결사 호의단 주도. 조직하고 항일투쟁 전개.

 

 

 

 

 

대가야교육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앞쪽에 연조공원이 있고, 한켠에 고령향교가 있다.

 

 

 

 

 

주변 주산체육관

 

 

 

 

 

연조공원이다.

 

 

 

 

 

독립투사 수석 남형우선생 순국기념비

 

남형우선생은 1909년 비밀독립운동단체인 대동청년당에 가입 활동하였으며, 1915년 대구의 안일암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결성하여 활동을 하다가 1919년 경남 창원 등지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적극 주도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남형우(1874~1943, 1983년 건국포장)선생의 공적을 추모하고자 건립함

<현지 안내문에서>

 

 

 

 

 

애국지사 해영 신철휴선생 기념비

 

신철휴선생은 1919년 간도신흥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1월 만주 길림성 파호문회에서 의열단 결성에 참여, 밀양경찰서 폭파계획 사건으로 징역 7년형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신철휴(1898~1990, 1997년 건국포장)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대가야국성지(大伽倻國城址)

 

 

 

 

 

고령향교

연조공원 앞쪽에 접하여 있다.

 

 

 

 

 

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다.

 

 

 

 

 

담 너머로 바라본 명륜당

 

 

 

 

 

명륜당 뒷편에 내삼문과 대성전이 위치하여 전학후묘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고령향교 앞쪽으로 내려서기 보다는 주산체육관 앞쪽에서 도로를 따라 읍내로 내려가기 위해 되돌아 간다.

 

 

 

 

 

대가야 다례원

 

 

 

 

 

주산체육관 앞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가 있다.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 보물 제54호

 

사찰의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 당(불화를 그린 기)을 걸었던 긴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2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 중기인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는 314cm이다. 앞뒤 양 측면에는 두 지주가 똑같이 너비 9~11cm의 외연선문을 돌려 하부는 지주를 따라 내려졌는데, 상부에는 안상 모양의 조각이 있다. 단정하고 아담하며 조각 솜씨가 뛰어난 당간지주로 평가된다.

<현지 안내문에서>

 

 

 

 

 

당간지주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르면 고령고분박물관으로 가는 길이다.

 

 

 

 

 

중간 우측으로 고령 군청이 보인다.

 

 

 

 

 

도로를 따르다 좌측으로 대가야 문화누리

 

 

 

 

 

우측 대가야 종묘

 

보이는 천성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좌측에 대가야관, 우측에 상현재가 있고 주건물은 숭령전이다.

대가야 종묘는 시조 이진아시왕을 비롯하여 역대 국왕의 위패를 모신곳이다. 대가야는 서기 42년부터 562년까지 16대 520년간 철기문화를 토대로 가야를 대표하는 국가로 발전하였다. 562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 지금까지 대가야 왕들이 추모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대가야 왕릉제'란 이름으로 추모식을 거행해 왔다. 이에 군민의 뜻을 모아 후기가야의 맹주였던 대가야 왕들의 덕을 기리고, 찬란했던 대가야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가야 종묘를 건립하였다. 2018년부터 3년여의 노력 끝에 2020년 5월에 준공하여 대가야의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추모제를 올리며 선조들의 덕을 기리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대가야 문화누리 지하주차장 입구.

 

 

 

 

 

인근의 넓은 광장

 

 

 

 

 

보라, 여기 !

대가야 희망의 숲을  / 권영세

 

조상의 빛난 얼 살아 숨쉬는 

면면히 이어 온 은혜의 터전

 

보라, 여거!

숭고한 뜻이 모였나니

대가야 희망의 숲이러라.

 

...........................

 

 

 

 

 

 

 

 

 

 

대가야 역사터마관광지 앞으로 왔다.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주차장

 

 

 

 

 

대가야케마관광지로 들어선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이곳은 카페 고도 520

 

 

 

 

 

 

 

 

 

 

 

 

 

 

 

 

 

 

 

 

 

 

 

대가야시네마

 

 

 

 

 

정견모주 분수

 

 

 

 

 

고대 가옥촌

 

 

 

 

 

 

 

 

 

 

 

철기방

 

 

 

 

 

화장실 겸 쉼터

 

 

 

 

 

미로 탐방숲길

 

 

 

 

 

가야광장

 

 

 

 

 

인빈관

 

 

 

 

 

왕가마을 펜션(대가야 펜션)

 

 

 

 

 

고개로 넘어,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캠핑장)으로 되돌아 왔다.

 

 

 

 

 

대가야 생활촌은 정문이나 측면의 문을 통과하여 다닐 수 없다,

마감 시간이 되면 문들 닫는다. 따라서 직진하여 도로를 따라 종각앞을 거쳐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오늘 탐방을 마친다.

생활촌 주자장에서 출발하여 되돌아 오는데 천천히  2시간 50분여 소요되었다.

 

 

◐고령 상무사 기념관,  고아리 벽화고분 모형관

 

고령 상무사 기념관에 왔다.

대가야 생활촌에서 동북방향으로 근 거리에 있다.

 

 

 

 

 

이 기념관은 조선시대 지방의 상업을 담당해 온 부보상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고령상무사란 이들 중 고령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오던 상인 단체를 가리킨다. 조선시대 전국의 시장을 돌아 다니며 장사하던 부보상단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의식과 조직체계, 윤리규정 등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각 지역의 상업을 장악했다. 부상단은 특히 생선, 소금, 목기, 토기, 수철 등 다섯 가지 물품의 판매을 독점했다. 그렇지만 일제의 침략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점차 쇠락했고, 지금은 이 지역을  비롯한 경상밤북도와 충청남도 몇 곳애서만 그 존재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다.

고령군 지역의 시장을 장악했던 고령상무사는 부상단인 좌사계가 1866년, 보상단인 우사계가 1899년부터 조직되어 활동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매년 봄과 가을 우두머리인 반수와 접장의 덕을 기리는 제사(공문제)를 지내며 조선부보상단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고령상무사 좌사계에는 <선생안>, <계안, <규약>, <고령군좌사절목>, 물금장, 인장, 나팔 등 전적(典籍)과 유물 17점이 전해오고 있으며, 1992년 <국가민속문화재 제30-5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대가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상무사 바로 옆에 고아리 벽화고분 모형관이 있다.

좌측으로 난 능선으로 오르면 고아리 고분군이 있다.

 

 

 

 

 

시간이 늦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곳의 관람안내를 보면 일 9회 운영시간에  맞춰 관람할 수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