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의 산

담양 관방제림, 김선기 가옥, 모현관과 미암박물관, 몽한각과 매산리 소나무

정헌의 티스토리 2025. 8. 11. 21:41

■담양 관방제림, 김선기 가옥, 모현관과 미암박물관, 몽한각과 매산리 소나무 2그루.

 

관방제림은 담양천변의 둑방길로 수백년 된 숲길입니다. 오늘은 메타프로방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국수거리까지 갔다가 되돌아 올 겁니다. 중간에 담빛예술창고 신.구관 두 동과 카페가 있어 타일작품, 사진, 천을 주 재료로 한 예술품과 어느 작가님의 도자기 작품을 만날수 있습니다. 국수거리는 국수집이 밀집된 지역으로 역시 담양천변에 있으며 담양을 여러번 지나치면서도 이곳에서 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어 오늘 점심은 국수로 했습니다. 담양읍내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자 한다면 죽녹원도 있고, 시내 가운데 오층석탑, 대나무 박물관도 있어 이들을 코스에 넣을 수 도 있지만 오늘 일정의 주 목적지는 명옥헌 원림의 배롱나무 꽃입니다. 따라서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로 담양읍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대덕면에 있는 김선기가옥, 모현관과 미암사당, 미암박물관을, 매산리 몽한각과 소나무를 경유하여, 고서면 명옥헌 원림으로 가는 코스를 정했습니다.

명옥헌 원림, 담양후산리 은행나무, 창평향교, 만풍정, 관가정, 죽림재, 수남학구당은 다음 편에 올립니다.

 


▷일정

담양읍내 관방제림 - 대덕면김선기가옥 - 모현관 - 몽한각, 매산리 소나무 - (명옥헌 원림 -창평향교 - 관가정 - 죽림재 -학구당)  / 2025. 8. 10.


▷탐방후에

 

◐관방제림 / 관방제림, 담빛예술창고, 국수거리 중식

 

메타프로방스 주차장에 주차하고 관방제림을 걷기로 합니다.

도로를 건너면 이내 관방제림으로 바로 연결됩니다.

 

 

 

 

8월 중순, 금년은 참 덥습니다.

그래도 오늘 이 둑방길은 시원하게 바람도 솔솔 불어줍니다.

 

 

 

 

 

관방제림

 

관방제는 전라북도와의 경계를 따라 북쪽으로는 추월산과 용추봉, 동쪽으로는 광덕산, 남쪽으로는 덕진봉과 봉황산, 고비산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유역에 걸쳐있는 담양천 변의 제방으로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숲이 관방제림이다. 조선 인조 26년(1648)에, 해마다 홍수로 60여호에 이르는 가옥이 피해를 당하지 당시 부사를 지낸 성이성이 제방을 쌓은 뒤 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 철종 5년(1854)에는 부사 황종림이 연간 3만여명을 동원해 제방과 숲을 다시 정비했고, 이후에 부임해 오는관리들도 개인의 재산을 털어 관방제림을 관리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과거 관방제림 안에는 약 700그루의 나무가 심어졌다고 하나, 현재는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등 15종의 낙엽 활엽수 32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특히 푸조나무는 남부 지방의 낮은 지역에서 자라는 전형적인 난대 수종으로, 강바람이나 바닷바람을 잘 견뎌 방풍림이나 해안 방제림으로 매유 유용하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2km의 구간 안에는 200년이 넘은 팽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개서어나무 등이 신묘한 기운을 뿜으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관방제림길은 이 둑방길과 하천변으로 또다른 산책로가 있습니다.

둑방길이 시원하여 왕복으로 이 길을 걸었습니다만 하천변으로 난 길을 따라 되돌아 오셔도 됩니다.

 

 

 

 

 

 

 

 

 

 

 

 

 

 

 

 

관방제림을 걷다보면 우측편에 운동장이 있고, 좌측 편에 조금 엉성한 공원과 담빛예술창고가 있습니다.

2동은 전시관이고 1동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담빛예술창고를 둘러보고 갑니다.

이곳은 신관 건물입니다.

 

 

 

 

 

현 신관 건물 1층엔 보이는 것처럼 보름달 같은, 주 재료는 천조각을 이어붙여 작품외 몇 작품, 그림같은 흑백사진, 타일에 바다를 입힌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료는 없습니다..

 

 

 

 

천조각을 정교하게 이어붙이니 작품이 되었습니다.

 

 

 

 

 

크기가 작지만 초승달에서 보름달, 하현달을 표시한 것 같습니다.

 

 

 

 

 

달 작품외 몇 분의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한쪽에는 이런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겨울 위..... 가을을 보다.

Photographer : Eom Ranhee (엄 난희)

 

 

 

 

 

2015 /대한민국 부채대전 /최우수상

2020 / 광주시미술대전 / 특별상

2020 / 무등대전 / 특선

 

 

 

 

타일?에 바다를 입힌 작품입니다.

 

서동빈

큰별제작소 대표

케이레진아트협회 부회장

오방협동조합 이사

광주공예가협회 목칠분과장

(사) 한국이트르태프트협회 정회원 -제진우드마스터과정 강사

 

 

 

 

 

가격을 표시하였는데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갑니다.

 

 

 

 

 

2층에도 규모가 아담한 전시관이 있습니다. 

 

 

 

 

 

 

좌측 관방제 관방제림과, 우측 천년담양 역사보기관,

안쪽에서 서로 연결되므로 어느쪽으로 들어가 다른 쪽으로 나오면 됩니다.

 

 

 

 

 

1018년

담양의 탄생

 

 

 

 

 

담양의 역사와 문화

 

담양은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시원지이며 아름다운 대숲의 고장으로 햇볕과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하여 일찍부터 문화가 번성하였다. 담양에 최초로 사람이 등장한 시기는 약 2만년 전 구석기시대이며, 이어서 신석기시대에는 영산강변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만들고 살았다. 청동기시대에는 이른 시기부터 대형 움집을 짓고 수만은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이들의 문화는 마한을 거쳐 삼국시대의 백제로 편입되는데, 그들이 남긴 수많은 집터와 무덤이 담양의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영산강을 통로로 백제의 왕도와 가야 그리고 멀리 왜와도 교류하였다.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는 견훤을 도와 후백제를 지원하였으며 868년에는 개선사지에 아름다운 석등이 세워졌다. 담양을 상징히는 읍내의 오층석탑과 담양이란 명칭도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담양은 본래 백제의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으며 신라 때는 추성군(秋成郡)으로 바뀌었고 고려 성종 14년(995)에 담주도단련사를 두었다가 1018년(현종9년) 담양군이 되었다.

담양은 탄생 후 천년 동안 국가의 위난시에는 우국충정으로 분연히 저항하였고, 수많은 시인 묵객들은 아름다운 누정과 원림을 짓고 학문을 노래하였다. 백일홍 붉게 물든 명옥헌과 광풍제월의 소쇄원은 담양의 인문학적 깊이를 더욱 뚜렸하게 한다.

 

 

 

 

담양의 역사와 문화 편년표

 

 

 

 

 

지도에 나타난 담양, 기록에 나타난 담양,

 

 

 

 

 

관방제와 관방제림

 

 

 

 

 

한쪽 벽면에는 관방천을 표현한 대형 그림으로 채웠습니다. 

 

 

 

 

 

2층을 둘러보고 되돌아 내려갑니다.

 

 

 

 

 

 

 

 

 

 

 

맞은편 구관 건물로 갑니다.

 

 

 

 

 

 

 

 

 

 

 

구관 건물로 들어섭니다.

로비엔 생활도자기를 자율판매하고 있습니다.

 

 

 

 

 

이곳 구관에는 아주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도자기류가 이만큼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양반 작품인가 봅니다.

가격표가 매겨져 있어 문외한에게는 많은 이해가 됩니다.

 

 

 

 

 

 

 

 

 

 

 

 

 

 

 

 

 

 

 

 

 

 

 

 

남송창고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곳입니다.

 

 

 

 

 

한쪽 벽면에는 많은 장서들로 이곳에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곳은 국수거리에서 콩국수로 점심식사 후 되돌아 오면서 커피 한 잔 했습니다.

 

 

 

 

 

관방제림길을 이어갑니다.

 

혹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도보로 오층석탑까지 갔다와도 좋을 듯 합니다만 날씨도 덥고, 오늘의 주 목적지는 명옥헌 원림의 배롱나무 꽃을 보는 것이라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관방제림의 끝이지 시작지점으로 지나온 곳을 되돌아 봅니다.

항교교 입구로  이 교량을  건너면 죽록원 입구입니다.

 

 

 

 

 

옛날 담양국수집에 왔습니다.

 

국수거리 입구에서 군밤을 판매하는 분과  이곳에서 식사하시는 현지인으로 부터 국수 맛집을 물으니 맛은 서로 비슷비슷고 합니다. 옆에서 식사하시던 중년의 부인은 이  집 할머니는 국수량을 넉넉히 주어 푸짐하다고 귀뜀합니다. 다른 어떤 집은 너무 쬐끔 주는 집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경남진주의 어느 두어 국수집도 맛과 푸짐한 량으로 점심시간이면 많은 분들이 찾습니다.

 

 

 

 

 

옛날 담양국수집은 앞쪽 도로의 정비로 삼각형 건물이 되었으며 장소는 생각보다 협소하고 청결한 분위기는 덜하지만 맛과 량은 푸짐했습니다.

 

 

 

 

◐김선가 가옥

 

담양읍내에서 관방제림 산책을 마치고 대덕면 장산리에 위치한 김선기 가옥을 둘러보러 왔습니다.

대문이 잠겨있어 입구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주변 좌측으로 혹 또다른 입구가 있을까 둘러보지만 다른 집으로 연결됩니다. 마을에 할머니 두어분이 계서서 이 집에 대해 물으니 별 볼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귀가후 위성지도로 이 집을 확인하니 우측편에 약간의 여유공간이 있어보이고, 여차하면 들어가 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미암 박물관, 모현관, 미암사당

 

미암 박물관 

 

이곳 미암박물관은 조선 중기 선조 초년의 명신인 미암 유희춘 선생과 관련된 유물을 관리하는 곳이다. 미암은 해남 출신이지만 이곳 대곡이 처향이어서 말년에 대대적으로 집을 짓고 안주하였으며, 후손들도 누대세거하였다.

2000여평의 부지에 전시관, 교육체험관, 관리사, 삼문, 공중화장실 등 5채의 목조 전통한옥으로 건축되었다. 배근당(培根堂), 달지당(達枝堂), 삼벽당(三碧堂), 정관루(靜觀樓) 등 한옥 건물의 현판액은 모두 미암선생이 옥산서원 등에 제명(題名)한 당호이다,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룰 제260호 미암일기와 지방지정 유형문화재 제265호 모현관 고문서, 민속자료 제36호이 미암사당 벽회  등 800여점의 유물과 복제물 모형물을 수장전시하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미안 유희춘(1513~1577)

 

선조 초년의 명신으로 본관은 선산, 자는 인중, 호는 미암, 별호는 연계이다.

순천에서 해남으로 이거하여 은거불사한 유계린의 차자로 외조는 금남 최부이며, 호남 3걸로 잘 알려진 기묘명현 취암 유성춘은 그의 백형이다. 하서 김인후와 함께 모재 김안국의 문인으로 중종 33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수찬, 정언 등을 지냈다.

1547년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고 이어 한반도 최북단인 종성에 19년간 적배되었다가 1567년 선조 즉위와 함게 해배되어 재등용 되었다.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  부제학, 전라감사 등 내외 고위관을 역임하고 예조 형조 이조 등 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1577년 선조의 부름을 받아 상경하여 입궁을 대기하던 중 65세로 졸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문절(文節)의 시호가 내려졌다. 호남삼현으로 전국적 유림의 추존을 받은 대학자로 담양에 의암서원이 사액되어 배향되었다.

경사(經史)와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거의 산일되었으며,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미암일기초(眉巖日記草)가 남아있다.

부인은 이곳 산 이름을 문호로 한 홍주송씨 덕봉이며 시문에 능하여 조선조 4대 여류문인으로 꼽힌다,

<현지 안내문에서>

 

 

 

 

정관루

 

 

 

 

이곳은 미암박물관 샛문입니다.

이 문도 굳게 잠겨있습니다.

 

 

 

 

 

박물관 마당엔 잡초가 무성합니다.

 

 

 

 

 

모현관을 둘러봅니다.

 

 

 

 

 

 

 

 

 

 

 

 

 

 

 

 

 

 

 

 

 

 

 

모현관 뒷쪽에 미암사당이 있어 둘러봅니다.

 

 

 

 

 

 

 

 

 

 

 

 

 

 

 

 

 

미암사당

 

미암사당은 조선 선조 초년의 명신인 미암 유희춘의 사당이다.

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정면 문틀 상단 외벽에 칸별로 180cm*60cm크기의 벽화가 3폭 있는 데 왼쪽부터 백학도, 등룡도, 봉황도가 그려져 있다.

미암사당은 미암 사후 2년이 되던 선조 12년(1579)에 초창되었으며, 이후 번와 작업중 양각으로 7행이 세로로 쓰여진 암막새 명문이 발견 되었는 데 '추월산 진경사에서 만력 36년(1608)에 만든 기와'임이 확인되어 담양 추월산 가마골의 어원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현지 안내문에서>

 

 

 

 

 

모현관(慕賢館) / 국가등록문화제 제769호

 

보물 제260호로 지정된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목판'을 비롯해 미암 선생 관련 고적을 보관하였던 수장시설이다.

청석을 사용한 정방형의 석조 조적식으로, 정면에는 남종화의 거장읜 의재 허백년이 쓴 '慕賢館'을 음각하였는데,  미암의 14대 종손 유대수가 주도하고 전국의 관계 및 학계, 경제계의 지원을 받아 1957년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유물보호를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회적 가치가 크며, 화재와 도난를 우려하여 연지 한 복판에 부지를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 보관하였던 유믈은 2012년 건립된 미암박물관에 모두 이관, 전시하였고, 모현관은 2019년 국가등록문화제 제 769호로 지정되었다.

<현지 안내문에서>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55세가 된던 명종22년(1567) 10월 1일부터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까지 약 10년에 걸쳐 쓴 일기로 11책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된 것은 아니고 간략하게 기록하거나 기록하지 않은 날도 있다고 합니다. 11책 가운데 1책은 미암과 그의 부인 송덕봉의 시문을 모아서 필사한 책이라 합니다.

미암집 권 5~14는 일기라는 제목으로 미암일기의 전반적인 내용을 편집하여 수록하였고, 권 15~18은 경연일기(經筵日記 / 대자리 연)라는 제목으로 유희춘이 조정에 나아가 주로 경연활동을 한 내용을 편집하여 수록하였다고 합니다.  

미암알기와 미암집에는 유희춘의 개인 일상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 가계의 수입과 지출, 천문과 날씨 등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연계정도 둘러봅니다.

 

 

 

 

 

연계정은 미암 유희춘이 후학의 강학을 위해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정입니다.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나 1868년 유희춘의 후손과 사인들의 힘을 찹쳐 90여 인의 계조직이 재산을 모아 중건하였다고 하며, 정자의 이름은 앞의 계류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그 후 몇차례 개보수를 거쳐 1916년 중건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여러해 전 이곳을 찾았을때는 관리상태가 허술했는데 지금은 앉아 쉬었다 갈 수 있을 정도로 관리상태는 양호한 편입니다.

 

 

 

 

 

연계정을 둘러보고 매산리로 이동합니다.

 

 

 

 

◐ 담양 몽한각과 매산리 소나무 2그루,

 

대덕면 소재지내인 매산리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이 소나무는 매산리 소나무 2그루 중 2번째 소개되는 나무(소나무 2)입니다.

가슴 높이 둘레가 평균 3m, 나무 높이가 평균 16m이다. 자연 식생의 독립수로 생육 상태나 활력도가 양호하고 나무 모양이 매우 아름답다고 안내하고 있으나 뭐 이정도 입니다.

 

 

 

 

 

앞에 朝鮮宗室秋城公子遺跡碑(조선종실추성공자유적비)가 있습니다.

 

 

 

 

 

방향을 달리하여,

담양 매산리 소나무 2주는 수관층이 반송형(원 줄기 중간부분에서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소나무)으로 나타난 전형적인  원식생의 소나무들이라 하는데,  이런 형태는 반송형 같지 않으며, 원식생이 뭔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위 소나무 안내문 옆에 몽한각 표지석이 있습니다.

 

 

 

 

 

몽한각에 왔습니다.

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50m쯤 거리에 있습니다.

외삼문은 잠겨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우측 담 너머로 몽한각을 너머다 봅니다.

 

 

 

 

 



 

 

 

 

 

몽한각(夢漢閣) /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이 건물은 이서(李緖)공의 재실(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이다.

이서는 태종(1400~1418)의 5대손이며, 양녕대군의 증손으로 중종 2년(1507) 이과(李顆)의 죄(모반 혐의)로 인하여 전라도 창평으로 유배되었다. 그 후 14년 동안의 귀양살이 끝에 풀려났으나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대덕에서 일생을 마쳤다. 이 몽한각은 양녕대군의 후손들이 지방에서 관직을 지내면서 오랫동안 이서 공의 재실이 없음을 알고 순조 3년(1803)에 현재의 몽한각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옆에서 볼 때 八자 모양)이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곳에 위치하여 1979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몽한각이라는 이름은 이서가 유배 중 지은 시에서 따왔습니다.

시 구절인 분명금야몽(分明今夜夢 : 분명 오늘 밤 꿈에는), 비도한강파(飛渡漢江波 : 한강 물살을 넘어 날아가고 싶다.)

여기서 夢(꿈)과 漢(한강) 을 따서 몽한각이라 이름지었다 합니다.

 

 

 

 

 

몽한각 우측 저쪽에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끕니다.

 

 

 

 

 

몽한각 쪽에서 갈 수 있으려나 하고 언덕을 올라보지만 수풀이 너무 무성하여 여름철엔 접근이 어렵습니다.

 

 

 

 

 

도로를 따라 이 소나무를 찾아왔습니다.

 

 

 

 

 

훤칠한 키에 균형감각이 부족하여 아주 멋지다 싶은 생각은 부족합니다.

 

 

 

 

 

담양 매산리소나무 1

 

담양 매산리의 몽한각 정면에 있는 <소나무 1>의 가슴 높이 둘레가 평균 4m, 나무 높이가 평균 29m이다. 자연 식생의 독립수로 생육 상태나 뢀력도가 양호하고 나무 모양이 매우 아름답다.

<현지 안내문에서>

 

 

 

 

 

매산리 소나무를 둘러보고 고서면에 있는 명옥헌 원림으로 갑니다.

명옥헌 원림 이후 일정은 다음 편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