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숲체험휴양마을, 법주사와 세조길, 은구석공원, 정일품송, 꼬부랑전망대, 보은향교, 보은 동헌
숲체험 휴양마을에서의 일정은 숙박후 조식과 숲체험휴양마을을 전동차를 타고 한바퀴 둘러보는 것입니다. 이후 속리산으로 이동후 세조길을 걷기로 합니다. 법주사는 덤입니다.
은구석공원에서 법주사의 경계를 확인하고 연꽃과 정일품송을 둘러본 후 말티고개 상부로 이동하여 꼬부랑 전망대에 올라 12굽이 고개길을 내려다 보는 것과 능이 칼국수로 이른 저녁식사를 한 후 귀가길에 오릅니다.
해가 길어 보은 읍내에 위치한 보은향교와 관아를 잠시 둘러보았습니다.
▷일정
숲체험 휴양마을 - 법주사와 세조길 - 은구석 공원, 정일품속- 꼬부랑 전망대 - 능이칼국수집 - 보은향교, 보은 동헌
▷탐방후에
◐보은 숲체험 휴양마을

숲체험 휴양마을입니다.
일요일 저녁이어서 주말 요금이 적용되지 않고, 몇 할인 적용을 받으니 저렴한 가격에 하룻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한옥건물동은 12인실도 있지만, 한 건물을 크게 2칸으로 나누어 한쪽에 기본 6인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가 대부분입니다.

심선재(心善齋)
착할(선할) 선 자를 저렇게도 쓰나봅니다.
우리 일행이 묵은 방입니다.

8시에 조식이 예약되어 있어 주변을 잠시 둘러봅니다.
한옥동 뒷편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8시 직전에 이런 차량을 타고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이 차량으로 조식후 숲체험 휴양마을을 둘러볼 겁니다.

식당으로 갑니다.

식당
오늘은 월요일, 숙박동엔 우리 일행밖에 없나 봅니다.
참고로 휴양림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숙소동에서 객실내,외 취사는 금지됩니다.
성인은 석식기준 2만원이며 조식은 숙소 정원에 맞춰 무료제공하고, 추가 인원은 7천원씩 추가된다고 합니다.

찬의 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단촐하게 그러나 맛있게 아짐 조식을 마칩니다.

이 분이 휴양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실겁니다.

속리산 정상과 문장대가 저쪽이라 하는데 가늠이 잘 되지 않습니다.

초가황토동 방향

이곳 각 숙소동을 지을때 유명한 풍수가를 모시고 신경을 써 집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안내인의 말로는 기가 강장 센 곳이라며 다음에 올 때는 이 방에서 주무셔보라고 합니다.

약초 재배단지



이곳 숲체험 휴양마을엔 한옥마을, 초가지붕 황토마을, 너와지붕 황토마을, 통나무마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방문자 종합센터라 합니다.
도서관, 회의실, 세미나실 등이 있습니다.

족욕장
7~8월 개장시 숙박객만 무료로 이용가능하다고 합니다.

족욕장, 수영장 주변의 어느 조형물

풀장도 보수를 끝내고 머잖아 개장될 것 같습니다.
이곳도 7~8월 개장시 숙박객만 무료료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곳은 다목적 잔디광장으로 유소년 축구장과 족구장을겸하고 있습니다.
휴양마을 단체숙박 이용시, 50% 감면혜택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전천후 육상 경기장
길이가 200m가 조금 넘는다고 들었것 같습니다.

숲체험 휴양마을에서 도로변으로 내려오면 솔향공원이 되겠습니다.

솔향공원에는 스카이 트레일, 스카이 바이크, 속리산 테마파크 모노레일 등의 시설물들이 유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스카이 트레일 입장료는 15,000원(1시간 이용가능),
모노레일(숲체험휴양마을 숙박객 또는 경로 등 우대 있음으로 할인대상 여부 확인할 것) 대인 7,000원, 소인 4,000원, 스카이 바이크 20,000원,
집라인 5~8코스 35,000원, 1~8코스 55,000원,
속리산 미디어파크 무료

솔향공원 주변


솔향공원 주차장 앞 도로변까지 내려왔다가 되돌아 올라갑니다.

전천후 육상경기장

아랫쪽과 윗쪽의 고도차이는 조금 있디고 합니다.
길이는 200m조금 더 된다고 들은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되돌아 숙박동으로 올라가 숲체험마을 투어를 마칩니다.
◐속리산 법주사, 세조길

세조길도 걷고, 법주사도 둘러볼 겁니다.





호서제일가람
호남과 호서는 제천의 의림지 또는 금강 상류의 호수(호강)를 기준으로 명칭이 나뉜다고도 합니다. 호서는 그렇다 치고, 이 경우 호남은 좀 애매합니다.
김제 벽골제를 기준으로 남쪽을 호남이라고 들은 것 같가도 합니다.

법주사 앞쪽에 왔습니다.
법주사를 둘러보고 세조길을 걷기로 합니다.

절 입구에 하마비가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마비에는 보통 대소인원개하마라고 적혀있는데 뒷편을 보니 뭔말인지 알수 없는 화소(火巢)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화소(火巢/ 새집 소)는 산불을 막기 위하여 능원(陵園), 묘(墓) 따위의 울타리 밖에 잇는 나무나 풀을 불살라 버린 곳이라 합니다.


법주사

정문인 금강문으로 들어서지 않고,

좌측 이 문으로 들어갑니다.

마애불을 먼저 보기 위함입니다.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마磨崖如來倚坐像) / 보물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은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매애불(암벽에 새긴 불상)로 높이가 약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돋을 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마애불로는 보기 드물게 의자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이다.
불상의 얼굴은 둥글고 온화한 인상을 주며, 길고 큼직한 코,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 꽉 다문 두꺼운 입술 등이 특징적이다. 또한 기다란 귀, 목의 삼도(三道) 표현은 고려 초기 마애불의 특징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넓은 어깨에 비해서 유난히 잘록한 허리는 비사실적인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조각 수법에서도 나타난다.
<현지 안내문에서>

지장보살

돌확

당간지주
당간이란 찰(刹, 절 찰) 또는 찰주(刹柱)라 불리고 일반적으로 절을 사찰(寺刹)이라 말함은 절에 당간 즉, 찰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종파를 표시하기 위해 당간 위에 특정한 색깔의 깃발을 내걸기도 하였다.
한편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 되어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현재 전하는 법주사 당간지주는고려 목종 7년(1006)제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는 전체 약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고종 3년(1866) 국가재정마련을 위한 당백전 주조라는 대원군의 명에 의해 사찰의 수많은 금속물들이 수거된 바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철당간 역시 파괴되었다. 곧이어 순종 당시(1910년경) 이곳 철당간은 22m의 높아애 원래 모양대로 복원되었으며, 1972년 다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법주사로 들어오는 중간에 이보다 작은 당간이 한곳 더 있습니다.

잠시 문화관광 해설사님과 함께

천왕문 앞쪽의 이 나무는 어느 주지 스님의 명으로 꼭대기를 잘랐다 합니다.



철확


지나온 당간지주쪽


범종각

팔상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八相圖)를 모신 5층 목조탑이다.
법주사를 처음 지을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인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선조 38년(1605)부터 인조 4년(1626)에 걸쳐 벽암 대사가 주관하여 다시 세웠다.
팔상전은 두 단의 석조 기단위에 세워져 있고, 기단 네 면의 중앙에는 돌계단이 있다. 이 기단과 계단은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든 것이다. 각 층의 밑면은 정사각형이며 1층과 2층은 다섯 칸, 3층과 4층은 세 칸, 5층은 두 칸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가 줄어들어 안정감을 준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는 공포(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데 짜맞추어 댄 나무쪽)는 1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식(공포를 기둥 위에만 배열하는 방식)이고 5층은 다포식(전통 목조 건축물에서, 공포를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짜 올리는 방식)이다. 지붕은 꼭대기를 중심으로 네 개의 지붕면이 뻗어 있는 사모지붕이며, 지붕 위 꼭대기 부분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팔상전 내부 한가운데에는 5층 전체를 통과하는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의 네 면에는 팔상도가 두 폭씩 있고 그 앞에는열반상과 삼존불상이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잇는 유일한 목조탑으로 건축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현지 안내문에서>

남쪽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동쪽

북쪽

서쪽
설산수도상


순금 80kg으로 도금했다고 합니다.

원통보전

쌍사자석등 / 국보
통일신라시대 석등이다. 성덕왕 19년(720)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석등 가운데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높이는 3.3m, 널따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두발로는 아랫돌을 디디고 서 있으며, 앞발과 입으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석등의 구조는 8각의 바닥돌에서 하대 연화석, 쌍사자, 연화 상대석을 따로 조각하여 쌓아 올리지 않고 하나의 돌에 조각하였으며, 다른 석등에 비해 불을 밝히는 화사석과 지붕돌이 큰 것이 특징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법주사 사청왕 석등 / 보물
화사석에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석등으로, 팔상전 서쪽(?)에 있다.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뜻한다,
석등의 높이가 3.9m이며, 받침돌, 불을 밝히는 화사석,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에는 밑받침돌과 윗받침돌이 대칭을 이루도록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화사석은 여덟면으로 되어 있는데, 네 면에는 창을 내고 나머지 네 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간 형태이며 꼭대기에는 보주(구슬 모양의 장식)를 두던 받침이 남아 있다.
이 석등은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 양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식으로 보아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고쳐 지었을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보전

내부



금강문을 나섭니다.

법주사 앞에서 세조길을 따라 세심정까지 갔다오기로 합니다.




속리산 힐링공간

저만큼 부조탑이 있어 가 봅니다.

법주사 입구쪽에도 부조탑군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도 있습니다.

부도탑의 잔재들인가 봅니다.
아랫쪽에서 소규모 부도탑이 또 있습니다.










태평휴게소
당초 이곳까지만 왔다가 되돌아 나가 관광단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입구쪽 은구석공원과 정이품송, 꼬부랑 전망대를 올라보고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이집에서 간단히 요기만 하고 나중 조금은 이른 저녁식사로 이지역 맛집으로 통하는 능이칼국수집에 들러기로 합니다
파전, 감자전, 메밀전병, 도토리묵, 우동.............













목욕소
"마마의 피부병은 곧 완쾌될 것이니 너무 고심하지 마십시오"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복천암에 머물던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에게 나타나 이 말을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피부병을 심하게 않던 세조는 월광태자의 조언을 듣고 이곳에서 목욕을 하니 몸에 있던 종기가 깨끗하게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세조길 세심정쪽 들,날머리

세심정

세심정 특선메뉴
솔잎막걸리
두부김치
해물파전
팥빙수, 아이스커피.........
이곳에서 점심을 겸해 먹을려 했는데 아랫쪽 태평휴게소에서 요기를 했습니다.

세심정
세속을 떠난 산에서 마음을 씻는 정자(터)란 뜻으로 세속을 떠나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는 지금의 현실문제 즉 사업문제, 직장, 가정문제 등 복잡하고 힘든 문제들을 저 산 밖에 내려놓고 이 곳에서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내 앞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즐기라는 뜻입니다.
이 산에서 주는 글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미루지 말고 확실이 즐겁게 하면 "생활의 도인", 보이지 않는 것을을 미리 걱정하면 당신은 바보입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복천암으로 갑니다.
세심정에서 0.5km, 0.4?


淸信女朴順來紀念碑 / 佛紀 2963年 丙子 九月( 1936.9월)
청신녀는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불자(보살)을 뜻한다 합니다. 불교에서 여자 불자가 절에 공덕이 많거나 시주를 많이 하면 높여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답니다.
복천암에 현대식 비석이 한 기 더 있습니다. 이곳 비석 전면에는 한글로 대시주 밀양박시긔념비라고 적혀있습니다.
박순례여사가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복천암에 많은 시주(본인 소유 보은과 상주의 땅과 임야 약 12천평)를 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새겼다 합니다.

복천암 입구의 "이 뭣고 다리"

지렁이는 땅 속이 갑갑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은 자기 중심의 잣대로 판단하므로 생기는 것입니다.
개구리는 연못이 운동장이고 올빼미는 밤이 낮이고 지렁이는 땅 속이 갑갑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릴 때 닫혔던 문도 열리고 함께 사는 길도 열립니다.
<복천암>

직진(좌측) 용바위골 휴게소, 문장대 가는 길
우측에 복천암이 있습니다.

복천암으로 갑니다.


복천선원, 복천암, 호서제일선원
법주사 복천암
복천암 사적기에 따르면,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된 후, 고려 태조 1년(918) 증통국사, 선종 1년(1084) 도생승통, 예종 2년(1107) 자정국존 등이 각각 증수(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한 사찰이다. 이후 조선 세종 31년(1449) 신미대사가 증수했고, 영조 11년(1735)에는 소실된 암자를 탁융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순조 3년)1803) 취준사가 증수했다고 전한다.
복천암은 조선 세조가 방문하여 머물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유력한 고승들이 머물던 속리산의 중심적인 사찰로, 보물 2점과 충청북도 지정문화재 4점을 보유하고 있다.
복천암에는 세조가 높이 예우했던 신미대사의 부도탑인 보은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보물 1416호)과 학조대사의 부도탑인 보은 법주사 복천암 학조화상탑(보물 1418호)이 외곽의 능선에 나란히 건립되어 있다. 부도 표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주인공과 건립 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데, 수암화상탑은 1480년 8월에 세워졌으며, 학조화상탑은 1514년 5월에 건립되었다.
복천암 극락보전(충북 유형문화재)은 창건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733년 화재로 소실된 후 1735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후 1803년 중수하였으며, 부분적으로 보수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락보전 내부의 불단 위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을 주존으로, 관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을 협시불로 모신 목조 아미타삼존불상(충북도 유형문화재)이 봉안되어 있다. 그 뒤로 융희 3년(1909) 5월 8일에 금어, 금호, 약효 등의 화사 집단이 제작한 것이라는 삼세불도(충북도 유형문화재)가 있다. 이 탱화는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있고, 삼세불 하단에 팔대보살, 상단에 제자와 권속을 그렸으며, 화면의 4방에는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전체적을 적색과 청색을 주색으로 사용하였고, 황토색, 녹색, 흰색을 보조색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극락보전 안의 우측에는 조선후기 대표적 화승인 신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복천암 신중도(충북도 유형문화재)가 걸려있다. 재질은 비단이며 채도가 높다. 또한 색채가 선명하고 세필에 의한 정교한 선묘, 다양하고 섬세한 문양, 사실적인 지물이나 복식 표현 등을 볼 때 18세기 불화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현지 안내문에서>

약수

극락보전

정면에서 본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복천암의 중심건물로 조선 세종 31년)1449)에 중창하고 영조 11년(1735)에 모두 불탄 것을 다시 지었으며, 순조 3년(1803)에 허물어진 것을 고쳤다. 현재의 건물은 1976년에 지붕을 해체한 뒤 보수한 것이다. 건물 안에는 신미대사 영정을 비롯하여 조선 세종이 하사한 아미타삼존불상, 신중탱화, 후불도가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중.후기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희귀하게 건립된 양식으로 전국에서 20여 동밖에 보이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내부

극락보전 좌측 뒷편으로 돌아가면 나한전이 있습니다.

나한전 가는 길

뒷쪽 건물이 나한전입니다.
앞쪽 건물은 별다른 편액을 달고 있지는 않습니다.

복천암을 둘러보고 되돌아 갑니다.

법주사 입구로 내려왔습니다.
◐은구석 공원, 속리산 연꽃단지, 정이품송

은구석 공원은 속리산포레스트 앞쪽 도로변에 조성된 공원으로 현 외형상 크게 볼것은 없습니다.
의미를 둔다면 옛 이야기로 전하는 왕에게서 하사받은 법주사의 경계가 은구석 공원까지라고 합니다.
도로를 따라 난 긴 주차장을 중심으로 앞쪽에 속리산 연꽃단지가 있다. 마침 연분홍 예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정이품송
◐말티재, 꼬부랑 전망대

말티재 정상부위에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만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만약 이곳이 만차라면 조금 아랫쪽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말티재 로타리
저쪽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 입구가 있습니다. 입구 조금 아랫쪽에 별도의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말티재 정상에는 이런 구조물을 세웠습니다.

말티재 꼬부랑길 들날머리도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속리산테마파크엔 숲체험휴양마을, 솔향공원도 포함되나 봅니다.

이곳 말티재 정상부 구조물 속에 카페도 있습니다.

민속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꼬부랑 전망대


12구비 말티재

◐능이칼국수

보은읍 성족리에 위치한 능이칼국수집입니다. 내비에 능이칼국수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청주에 사는 친구가 종종 들러는 집이랍니다.



한적한 시골인데 앞쪽에 이런 카페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은향교

6월의 낮은 깁니다.
능이칼국수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귀가길 보은을 지날려니 아직 해가 지지않았습니다.
보은 읍내에는 보은향교와 보은 동헌이 있어 잠시 둘러보기로 합니다.

홍살문 주변에 하마비외 몇 기의 비석이 있습니다.

그 중 한 기는 철제비입니다.
行郡守 洪侯祐龍 慕聖興學碑 (행군수 홍후우용 모성흥학비)
조선시대 보은 군수를 지낸 홍우용이 백성의 교육 진흥(흥학)과 유학 장려(모성?)에 힘쓴 군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철제비입니다.
관직 앞에 행(行)자를 붙이는 이유를 AI에게 물었더니 조선시대의 관직제도인 행수법(行守法) 때문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개인의 품계(명예계급)이 관직(실제 맡은 직책)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용했던 표기법이라 합니다. 죽 자신의 품계보다 낮은 직책을 맡았을때(예를 들면 품계는 정2품이지만 정3품 벼슬일 대사헌을 할 경우) 관직앞에 붙인다 합니다.
반대로 수(守)는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직책을 맡았을때 관직앞에 붙인다고 설명해 줍니다.

외삼문
문이 잠겨있습니다.

향교를 바라보았을때 좌측편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향교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협문이 있지만 아예 트여있는 공간이 있어 아무때나 출입이 가능해 보입니다.

향교를 관리하는 교직사기 있습니다.

교직사 뒷편에 전사청이 있습니다.
전사청은 제기의 보관이나 춘추향대제시 제물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보은 향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로 앞에는 유교 교육을 위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중간에는 내삼문을 두었고, 그 뒤 편에는 문묘인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있어 공자을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봄, 가을로 제향을 받들고 있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실시되자 점차 교육기능은 없어지고 문묘의 제향만이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은향교는 조선 세종 때(1418~1450) 처음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 보수하였으며, 지금의 명륜당은 고종 8년(1871)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상현서원의 강당을 옮겨지은 것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안내문에 기재된 내용과는 달리 동재와 서재, 동무와 서무는 현 없습니다.

명륜당 현판의 바탕은 청색입니다.

명륜당 뒷편에 대성전이 있습니다
여느 다른 지역의 향교에 비해 오르는 계단이 많습니다.

다른 지역의 향교와는 달리 이곳 보은향교는 외삼문으로 오르는 계단 외에 좌우 협문이 있어 이곳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별도로 있습니다.

대성전입니다.
일반적으로 대성전은 큰곳은 5칸, 작은 곳은 3칸이 일반적입니다.
이곳은 5칸으로 규모가 상당히 커 보이며, 전면에 퇴칸은 없습니다. 입구의 안내문과는 달리 동.서무도 없습니다.

관수대일 겁니다.
제법 높이가 있어 손을 씻기는 편한 것 같습니다.
건물로 오르는 계단이 없는 대신 보이는 것과 같이 디딤돌을 놓아 계단을 대신했습니다. 좌.우. 그리고 가운데 2곳에 놓여있습니다.

안내문에는 동무와 서무가 있는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없습니다.
장소상으로도 협소하여 최근에 없어진 것 같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이곳은 전사청에서 협문을 통해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습니다.
담장 바깥쪽에 계단이 있습니다. 대성전 구역에 협문이 있는 곳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입니다.
◐보은 동헌

보은동헌에왔습니다
앞쪽에 노거수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고, 한켠에 비석군이 있습니다.

현감(군수) 송덕비 이전기
여기 역대 현감(군수) 송덕(선정)비는 관내 각 지역에 산재된 우리 고장의 역대 현감(군수)비 중 연고가 없는 분들의 것을 그 유적을 보존하고 유업을 기리고자 1988년 8월 그분들이 집무하였던 이곳 동헌 앞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왼쪽의 훼손된 비석은 일제가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고자 관내의 여러 현감 송덕비를 일제군수관사 주춧돌로 사용하였던 것을 이돗에 모아놓은 것입니다.
<현지 안내문에서>

동헌은 이런 펜스로 울이되어 있어 출입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보은 동헌은 조선시대에 보은군의 청사로 쓰던 동헌이다.
보은은 본래 신라의 삼년산군(三年山郡)으로 고려 초기에는 보령군으로 바뀌었고, 조선 태종 16년(1416)에는 보은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철종 11년(1860)에 다시 고쳐 세웠다.
융희 1년(1907)에 항일 의병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일본의 헌병대가 사용하다가 경찰서로 사용하면서 구조가 많이 변형되었다. 1983년에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찰작지붕집이다.
<현지 안내문에서>

이런 모습으로 협문을 복원하여 놓았다.

동헌에서 바라본 앞쪽 느티나무,
귀가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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