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소리 따라 수승대, 월성계곡
거창 위천면, 북상면은 거창군의 서쪽 지역으로 덕유능선 동쪽에 위치한 곳이다.
남덕유과 삿갓봉 사이에서 발원한 월성천이 구비구비 내려 오면서 맑은 물과 수려한 바위가 어울려 월성계곡을
이루고, 이어 북상면 신수리를 거쳐 내려오는 신수천, 병곡리 병기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분계천, 송계계곡에서
흘러드는 소정천을 차례로 만나 위천을 만들고 수승대를 거쳐 거창읍 황강으로 합류한다.
금일 약간의 시간이 있어 금원산 얼음축제를 하나? 하고 위천을 찾았지만 구제역을 미쳐 생각치 못하였다.
온김에 수승대를 둘러보고 월성계곡을 거쳐 남령을 넘어 함양 서상으로 넘어가 볼까 한다.
계곡이야 여름이 제격이지만.....
▷ 가는 길
진주 - 산청 - 거창 위천면 - 북상면 - 함양 서상면 - 안의면- 진주
▷ 여행코스 ( 2011. 1. 16 )
정온선생 생가와 반구정 - 수승대 - 월성계곡
▷ 여행 후에
아래 설명을 붙인 내용 대부분은 <거창군청 문화관광과> 자료를 참고하였다.
▣ 뚝배기 식당 중식
△ 거창군 위천면 소재지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다?
위천면 소재지에서 금원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약 100m쯤? 있는 음식점이다.
정갈하고 깨끗한 음식맛을 느낄수 있어 예전에 이어 다시 찾은 집이다.
이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주인에게 얼음축체를 물었더니 구제역으로 인해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다한다.
온김에 수승대와 월성계곡을 둘러보기로 한다.
▣ 정온선생 생가
△ 위천면 소재지에서 수승대로 가는 길목 좌측,
강천리에 위치한 이 고택은 조선시대 충절로 소문난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년)선생의 종택으로,
후손들이 1820년 (순조 20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다.
△ 정온 선생은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고 병자호란(1636)때 척화를 주장 하다가
화의가 이루어지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덕유산 모리(某里)에 은거하다가 여생을 마감하였다.
돌아가신 후에 영의정과 홍문관 대제학에 추증되었고,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 남계서원에 배향되었다.
△ 고택은 조선후기 사대부 주택의 원형을 살필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로 대문채, 시랑채, 중문채,
안채, 아랫치, 곳간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영남 내륙에 위치한 거창의 기후특징에 알맞게 우리나라 북부지방의 보편적인 겹집형태와
남부지역의 특징인 높은 툇마루를 두어 두지역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 현재 주인이 거주하고 있어 조심 조심 둘러보았다.
△ 이곳은 안채이다.
뒤편에는 사당도 있다.
▣ 반구헌
△ 반구헌은 정온선생 종택과 바로 이웃하고 있다.
조선 헌종.철종 년간에 영양 헌감을 지낸 야옹 정기필 선생이 기거했던 집이다.
야옹선생이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 왔을때 재산과 거처가 없을 정도로 그의 목민관 생활은 청렴하였으며,
안의 현감의 도움으로 이 반구헌을 지을수 있었다 한다.
반구(反求)는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 보고 반성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 이곳에는 현재 사랑채만 남아있으며, 사량채 상량문에 의하면 1870년 무렵 창건 또는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량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사대부가의 품격이 들어나는 비교적 큰 규모의 팔작지붕 민도리 건물이다.
이 건물의 특징은 대청이 가운데 있지 않고 1칸 크기인데 반해 방이 3칸이며 측면에 난간을 두른 누마루 1칸이
마련되어 있다.
방 2개를 동시에 난방할 수 있게 건물 뒷편 중앙 아궁이를 설치토록 한 것도 특이하다.
▣ 수승대
△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에 위치한 수승대는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한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李滉) 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
(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 전국이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날.
그래도 몇몇의 관광객들이 보인다.
△ 내용이야 그렇다 치고,
겨울이어서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다.
△ 거북바위의 다른 쪽 모습이다.
▣ 요수정
△ 수승대 건너편에 요수정이 있다.
요수정은 요수 신권(1501 - 1573)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키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아에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그뒤 다시 수해를 입어 1805냔 후손들이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 또한 이 요수정은 수승대의 경치를 완상하고 시회와 교육 등을 위해 솔숲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정자 건물로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전통적인 정자건물 형식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산간지역의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의 내부에 방을 들이고 있
어 이 지역의 건축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고 연대가 확실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 원각사
△ 아래 광장에는 얼음이 얼도록 대나무로 꾸몄다.
▣ 관수루
△ 관수루
이 관수루는 구연서원의 문루로 1740년에 건립되었으며,
좌측의 바위가 거북모양의 욕기암으로 이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관수란 <맹자>의 <관수유술/觀水有術>에서 따온 말로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봐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 고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군자의
학문은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란다.
△ 관수루 안쪽으로 구연재(구연서원)가 있으며, 우측으로 山高水長碑 등 비석이 있다.
요수 신권선생과 관련이 있다.
▣ 용암정.
△ 용암정.
용암 임석형이 1801년 위천 강변 바위에 지은 정자로, 1864년 보수공사를 하였다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중앙에 방1칸을 만들어 마루 아래에서 불을 땔수 있게 하였고
마루 둘레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정자안에는 용암정(龍巖亭), 반선헌(伴仙軒), 청원문(廳猿門), 환학란(喚鶴欄) 편액이 걸려있다.
△ 용암정은 월성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강 건너로 보이지만,
약간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 용암정 앞 계곡 또한 경치가 좋다.
▣ 사선대
△ 월성에서 황점마을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사선대는 도로변에서도 조망이 되며 주위 경관이 좋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선생이 이 곳에 은거하면서 머물러 송기(宋基) 또는 송대(松臺)라고 불렀으며,
1909년 고조의 5남 의친왕 강(堈)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전 승지 정태균(鄭泰均)을 찾아와 머물면서 북상 위천
지방의 우국청년들과 만나 사선대 일대를 뒷날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훈련장과 병사를 만들기 위하여 준비
하던 중 일제에게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구국의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왕실의 선원(璿源)을 기린다는 뜻으로 사선대(思璿臺)라 부른 것을, 대암(臺岩) 포갬이 4층이고 돌 위
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로 사선대(四仙臺)라고 부른다.
△ 대 맨 아래 바위면에 전서로 사선대라고 새겨진 곁에 경상 감사 김양순(金陽淳)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마치 기단위의 3층석탑을 방불케 하는 사선대 맨 위 바위 모양은 마치 거북 같기도 하고, 봉황새 모양 같기도
한데, 그 머리 부분이 남덕유 쪽을 바라보고 있다.사선대는 그 경치가 기이하고 빼어나 18세기의 화가 김윤겸
과 김희성(金喜誠)이 송대(送臺, 종이 담채)라는 제목으로 그린 담채수목도가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일본 도쿄
국립 박물관에 남아 있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이 역기심(亦奇甚, 매우 기이하다) 이라고 짧은 평을 썼다한다.
월성계곡은 남덕유산 등산 기점인 황점 매표소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지만, 매표소 앞을 지나 포장된 도로
를 따라가면 해발 800m 가까이 되는 남령을 넘어 덕유산 종주 기점인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로 이어진다.
남령 고갯마루에 서면 거창, 함양 일대의 산군과 멀리 지리산 능선까지 조망할 수 있으며, 거창읍에서 20분,
지곡 IC에서 35분, 서상 IC에서 15분 소요된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양 일두고택과 산책길 (0) | 2011.02.15 |
---|---|
서울 창덕궁 (0) | 2011.02.06 |
전남 장흥 기행 (0) | 2010.11.23 |
전남 강진 기행 4 / 남미륵사. (0) | 2010.11.23 |
화순 운주사 (0) | 2010.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