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유머

물에 빠진 구두쇠 영감

정헌의 티스토리 2013. 3. 11. 18:44

          물에 빠진 구두쇠 영감
 

 경상도 지방을 유랑하던 김삿갓이 어느 마을에 들어갔는데 지독한 노랑이 영감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영감은 열 서너 살부터 장사를 시작해  수십 년 동안 먹지도 입지도 않고  오로지 돈만 모아 
지금은 거부

 가 되었다.
 마을사람들에게 들은 바로,  그 영감은  목숨과  돈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하면 서슴
 없이 돈을 거

 머쥘 위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이지만 누가 영감의 이마에 못을 박아 넣어도 아프다는 말 대신
『오! 쇠붙이를 얻게 됐으니 이게 웬 횡재냐!』하며 오히려 좋아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돈이 좋기로서니 자기 목숨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걸 보면 그 영감이  얼

 마나 구두쇠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었다.
 

 

 김삿갓은 구두쇠 영감을 한 번 만나 보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영감이 볼일이 있어  강 건너  마을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김삿갓은 일찌감치 나루터에 나가 영감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모두 배에 오를 때까지 구두쇠 영감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 외출을 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가려다가 혹시나 해서 사람 하나를 붙잡고 물어

 보았다.
『혹시 구두쇠 영감님이 저 배에 타셨나요?』
『예, 저기 다 떨어진 갓을 쓰고 있는 노인이 바로 구두쇠 영감이오』
 김삿갓이 배 쪽을 바라보니 과연 거지 행색이나 다름없는 노인 하나가 배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감의 행색은 말 그대로 거지차림이었다.
 김삿갓 자신도 입성이 거지와 다를 바 없었으나, 그보다도 영감이 더하면 더했지 나은 게 없었다.

 아무리 구두쇠라고 해도 명색이 거부라는 사람의 입성이 저토록 거지꼴이 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라

 미처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터였다.
 김삿갓은 서둘러 배에 올라 영감의 옆에 앉았다.

 

 천천히 배가 떠나기 시작할 즈음에 김삿갓은 슬며시 영감에게 말을 붙였다.
『영감님,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영감은 김삿갓을 한 번 슬쩍 쳐다보더니『강 건너』하고 짧게 대답할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강 건너에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영감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하도 대답이 없기에 다그치듯 몇 차례 더 질문을 던졌으나 영감은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때 옆에 있던 사내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차며 김삿갓에게 말했다.
『쯧쯧, 헛고생이오. 저 영감님은 이제 한 마디도 안 할거요』
『아니 왜 말씀을 안 하신단 말입니까?』
『말을 하면 그만큼 힘을 쓰게 되잖소? 그러면 배도 쉬 고파지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소?』
 김삿갓은 그제야 영감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쓸데없는 데 기운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노랑이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으나 그저 웃어 보자고 지어낸 소리인 줄 알았더니 바로 옆에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배가 중류쯤에 이르자 문제가 발생했다.
 구두쇠 영감이 자리를 옮기려다가 기우뚱하더니 그만 물에 빠지고 만 것이었다.

 

 영감은 헤엄을 못 치는지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영감을 구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감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를 건져 줘도 사례금은 한 푼도 못 주네. 그런 줄 알고 나 좀 살려 주게.  아이고, 사람 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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