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 청룡사 기행
여러해 전 경기도 안성 서운면 산평리 인근에서 바우덕이 묘 뒷쪽의 능선을 거쳐 서운산으로 오르는 중간, 좌성사 길을 만나 청룡사로 내려온 적이 있다.
당시 기억으로 서운산의 유순한 산세가 좋아 가을철 능선을 걸으면 좋겠다는 기억이 있다.
오늘 여러해 만에 서운산에 오르기 위해 청룡사를 찾았는데 귀가 시간을 고려하니 시간이 늦다.
과거 들렀던 적이 있는 음식점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고 청룡사 주변만 둘러보기로 한다.
선운산 정상은 또 다음으로 미뤄야 겠다.
▷ 가는 길
1.서울 쪽에서는 경부고속도로 - 평택제천 고속도로 남안성 IC- 서운면 청룡리 청룡사주차장.
2.대전 쪽에서는 경부고속도로 북천안 IC - 입장면 - 서운면 청룡리 청룡사주차장.
▷ 탐방코스 (2015. 10.18)
중식(풍물기행) - 청룡사 - 바우덕이 사당.
▷ 탐방후에
▣ 식당, 풍물기행
△ 서운면 청룡리,
유원지 같은 청룡저수지를 지나 청룡사 쪽으로 진입하면 마을 들머리에 위치한 음식점이다.
풍물기행이란 상호에서 보듯이 근.현대의 여러 풍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집으로 보리밥, 묵밥 등이 주 메뉴이다. 여러해 전 이집에서 직장 동료들 모임을 한적이 있어 다시 찾았다.
△ 입구,
좀은 엉성한듯 하지만 물레방아간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 식당 건물이다.
완벽한? 현대의? 한옥도 아니고, 토기와 지붕도 아닌 좀 어정쩡하다.
두채의 건물을 하나로 합한건지? 아님 본 건물에 붙여서 증축?을 한건지 하여튼 실내는 하나다.
△ 입구.
작은 민속촌의 표시가 있다.
입구로 들어서니 번호표를 준다.
가을철 주말이어서인지 2-30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에 주변을 둘러본다.
△ 식당건물 바로 앞에 여러 도구통, 술을 조제할때 쓰는 도구?, 디딜방아 등이 있다.
△ 마당 한켠엔 무쇠 솥을 앃아 탑을 만들었다.
마당 앞쪽에 거북이하고 뜀박질 이긴 토끼가 있다.
차례로,
용궁을 다녀온 토끼도 있고.
나가수 장닭도 있고,
조그만 그네와 이웃하여,
통일을 바라는 비돌기도 있다.
해후소,
내부는 현대식이다.
마당 가운데 우물이 있다.
두레박을 이용하여 물을 퍼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서운산 맑은물이 흘러 넘친다,
옛 빨래 방망이다.
서방님은 어디에서 무얼 할꼬?
고모는 또 뭣 땜시 왔을까?
식당 입구 우측,
펌프에는 계속 맑은 물이 흘러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수랏간 앞쪽이다.
모닥불을 피워 놓은 걸로 보아 가을이다.
식후, 통나무 벤치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수정과나 식혜를 드시는 분들이 많다.
굴뚝 위도 앙증맞다.
밖에서 본 수라간이다.
수라간 우측 뒷편에,
큰 며느리도 출입을 금지하는 구간이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옛 부엌의 축소판을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다.
실내, 제법 넓다.
그런데 자리가 많이 있다.
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맞이할 주방 인력이 모자라 번호표를 주었나 보다.
가마, 풍로, 탈곡기, 짚신..................
윤기가 흐른다.
각종 근대의 골동품이 정갈하다.
벽면의 장식이다.
멍석과 다리미, 가마니 짜는 도구의 조합이다.
이 집의 주 메뉴는 보리밥정식, 옛날보리밥, 묵밥, 보쌈두부 등등이다.
보리밥 정식이 옛날보리밥과의 차이는 수육에 약간의 두부가 겻들어 지고 가격이 높아진다.
양은 도시락이 밥그릇이다.
맛은 ?
먹어봐야 알겠다.
저녁식사 준비 시간도 있다.
요즘은 비슷한 안내문을 다른 식당에서도 종종 볼수 있다.
다듬이 돌로 탑을 쌓았다.
이 집에 대한 음식보다
여러 풍물을 볼 수 있음으로도 찾아볼만 하다.
▣ 청룡사.
몇몇 상가를 지나 청룡사로 향한다.
상가앞 바우덕이 사당과의 갈림길 삼거리 도로 한가운데 청룡사 사적비가 있다.
청룡사의 건립연대, 변천과정, 기타 사찰에 관한 사항등을 알려주는 사적비이다.
비문은 승려 안정나준이 지었고, 글씨는 직산현감을 지낸 황하민이 썼다한다.
청룡사 앞.
일주문인 셈이다.
대웅전 / 보물 824호
청룡사는 원래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건립하여 공민왕 13년(1364) 나옹화상에 의해 새롭게 지어진 사찰로, 조선 초기까지도 왕실(인평대군)의 원찰 (예전에, 죽은 사람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비는 법당을 이르던말)이 있었던 곳이다.
청룡사란 아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 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고 하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들머리에서 바라본 우측,
이 절에서 눈여겨 볼 것은 대웅전과 법당 안에 있는 청동종과 큰 괘불이다.
대웅전은 오래된 통나무의 기둥으로 인해 춤추는 기둥으로 불리기도 하며 고색에서 여러 의미를 찾을수 있다.
대웅전이 다시 지어진 시기는 알수 없으나 조선 선조34년(1601)에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7세기 이전에 건립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후 몇차례 고쳐 지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규모로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에 초석을 두고 둥근 기둥을 세운 다포계 팔작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 윗몸에 연꽃과 연꽃봉오리를 화려하게 조각해 놓아 장식이 많이 섞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건물의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으로 꾸몄다.
< 경내 안내문 >
청룡사감로탱 (보물 1302호)
감로탱은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그린 불교그림이다.
이 그림은 가로 200㎝ 세로 237.5㎝ 크기이며 3단으로 화면구성을 하고 있다.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가운데 아미타삼존을 포함한 7여래와 극락세계로 영혼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 등을 그려 이상세계를 표현하였다. 특히 불·보살의 몸을 금가루로 칠했는데, 이는 다른 불화에서는 거의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청룡사영산회괘불탱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괘불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회화를 말한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 10대 제자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이 그림은 효종 9년(1658)에 승려화가인 명옥 등이 그린 것으로 본존의 크기가 매우 컸던 고려말∼조선초의 그림과는 달리 본존인 석가불이 작아져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크기와 비슷해진 그림으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 다음 백과사전>
대웅전 좌측의 건물이다.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요사채 같다.
기와 불사를 받고 있고, 기념품도 판매하는 것 같다.
절마당에서 바라본 종각쪽이다.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이 있다.
높이 2.38m, 평면 사각형의 단층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은 부분적으로 판손된 지대석 위헤 3단의 받침이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은 4장의 돌로 만들어 졌는데 각면에 모서리 기둥(우주)과 버팀기둥(탱주)이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다른돌로 만들어 졌으며 탑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1층 탑신에 비해 2층과 3층의 탑신의 높이가 급격하게 낮아져 비례가 흐트러져 보인다. 지붕돌의 경사가 급하다가 전각에 이르러 살짝 반전되었으며 탑 각선이 뚜렸하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있지 않고 석탑에는 훼손이 있다.
관음전이다.
앞에서 대웅전을 바라 보았을때 좌측 요사채? 뒷편에 자리하고 있다.
선운산 산행은 시간상으로 늦어서 다음으로 미룬다,
청룡사 주변을 둘러본다.
관음전 앞을 지나 골짜기 쪽으로 길의 흔적을 따라 조금 오른후 도로를 따라 내려온다,
계곡변에 위치한 음식점에 물레방아를 이용한 시소가 쉼없이 오르내린다.
청룡사 앞으로 내려가는 길가엔 가을이 오고있다.
청룡사 아랫쪽,
청룡사 사적비 삼거리에서 바우덕이 사당쪽으로 난 불당골로 향한다,
이내 부도군이 있다.
도로 좌측으로 바우덕이 사당이 있다.
도로변에서 보니 문이 잠겨있는 것 같다.
범인의 눈엔 그사당이 그 사당이다. 뜰에는 바우덕이 동상이 있다.
떨어져서 보고, 그냥 지나친다.
바우덕이
안성 남사당의 전설적인 인물이면서 한국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인물이다.
구전에 의하면 5살 때 머슴으로 살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남사당패에 맡겨져 성장하면서 재주를 익혀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남사당의 모든 기예를 익혔다고 한다.15살때 당시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던 윤치덕(꼭두쇠)이 사망하자 남사당패의 관례를 깨고 여성인 바우덕이를 우두머리인 꼭두쇠로 선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우덕이는 여성 꼭두쇠라는 특성과 탁월한 기예로 안성 남사당패를 최고의 인기패로 육성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865년(고종2)년 경복궁 중건 공사때 인부들을 위로하고자 전국의 남사당패를 불러들였는데 이때 안성에 거주하던 이승지의 후원으로 바우덕이패와 안성 돌우물패가 최고의 인기를 얻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기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바우덕이가 살던 곳은 청룡사가 위치한 불당골인데 이 곳은 예로부터 남사당패가 겨울을 나던 장소이다. 이 곳 남사당패는 청룡사의 신표를 받아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을 누비고 겨울에는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바우덕이는 23세 때 폐병으로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마지막에 그를 돌보던 이경화가 망인의 유지에 따라 청룡골 입구 개울가 양지 바른 곳에 매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 다음 백과사전에서>
바우덕이 사당 앞쪽,
개울가 도로변에 까페가 있다.
조금은 스산해 보인다.
내부는?
까페앞을 지나,
불당골 가든 윗쪽 도로가 계곡을 건너는 곳까지만 갔다가 되돌아 간다.
다른 각도에서 본 바우덕이 사당이다.
짧은 청룡사 주변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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